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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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에서 꺼낸 분홍색 명란젓이 요염하게 빛났다. 순간, 가지이마나코의 조그맣게 오므린 입이 생각났다. 껍질도 벗기지 않고 포크로 푹푹 찌르고 뭉개서 면에 거칠게 뿌렸다. 칼피스 버터를 칼로 큼직하게 잘라서 그 위에 올렸다. 리카는 연노란색 버터가 자글자글 퍼져서 진한 황금빛이 되어, 반짝거리는 명란젓과 섞이는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유지방의 고소한 향이 바다 내음과 함께 모락모락 올라와서 한껏 냄새를 맡았다. 손으로 찢은 차조기잎을 수북이 담아서 상자 식탁으로 날랐다. 명란젓의 어벙해 보이는 분홍빛이 버터의 걸쭉함과 섞이니 태평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마치 윤기가 흐르는 피부색 같은 파스타를 포크로 둘둘 말아입으로 가져갔다. - P48

직전까지 차게 해둔 덕인지 버터크림에는 단단함이 남아 있었다. 혀의 열에 녹은 달콤한 버터가 촤악 퍼져서 맛을 느끼게 하는온몸의 세포를 들뜨게 하는 것 같다. 보들보들하고 새콤달콤한 쇼트 케이크로는 이제 만족하지 못할 것 같은, 진하고 묵직한 우유맛과 탄탄한 케이크 부분. 그렇다, 훌륭한 맛만큼 열량도 가격도높다. 구하려면 몇 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눈을 감고 혀에 기억을새겼다. 소설가 무코다 구니코의 에세이에 이런 묘사가 있었다.
"요리를 좋아하는 그녀는 외식에서 맛있는 것을 만날 때마다 집중해서 그 맛을 혼에 새겼다." 우와, 진지하시네, 료스케 씨가 놀리는소리가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느낌이었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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