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은둔자 (리커버)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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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마이클 때문에 고심하는 것, 양가감정과 불만족을 만성적으로 앓는 것을 보면 그 꿈에 단점이 있다는 사실, 그런 식의 갈망에 단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도 정신이 또렷한 순간에는 잘 안다. 내가 이토록 끊임없이 더 많이 원하는 것은 현재의 관계나 마이클에게 정말로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처럼 타인의 우주에서 내가 중심이 되고자 하는 바람에는 나르시시즘적인 측면이 있다. 허영의 기미마저 있다. 아직도 나는 현실보다.
할리우드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사랑의 관념을 버리지 못한다. 나는 스펜서 트레이시의 캐서린 헵번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메릴스트립이 되고 싶다. 사람의 마음을 조작하는 이런 환상은 내 삶에서 다른 불만들도 만들어낸다. 그래서 나는 내 광대뼈가 아니라 미셸 파이퍼의 광대뼈를 갖고 싶다. 리타 헤이워스의 다리와 머리카락을 갖고 싶다. 나는 다른 사람의 삶, 다른 사람의 성격, 다른 사람의 관계를 갖고 싶다. - P78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타인의 애정이란 내가 얻어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어. 사랑받으려면 시험을 통과하고, 지적 후프를 뛰어넘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여겼어. 그러니 그저 존재하기만해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깊이 사랑받을 수 있다는사실을 너를 통해 알게 된 것이 내게는 놀라운 일이야. 이것이 네가 내게 준 선물이란다. 네 존재만큼이나 소중한 선물이란다.
(1995년) - P94

루실이 늙고 관절염이 왔을때, 내가 루실을 떠나보낼 날이 머지않았을때. 그걸 상상한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고, 이후 며칠 동안 그 이미지를 머리에서 지우지 못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생각해보게 되었다. 깊은 사랑은 이토록 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어른이 된뒤 대부분의 기간에 이런 강렬한 감정에 따르는 위험을 피하려고만 꽁지 빠져라 애써왔다는 사실을. 나는 내 개를 사랑한다. 따라서 개에게 나쁜 일이 생길까 봐 두렵고, 개가 내게 주는 깊은 즐거움이 언젠가 그만큼 깊은 고통으로 바뀔까 봐 두렵다.

이게 무슨 새로운 통찰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내가 오랫동안 스스로가 이 깨달음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막아왔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개가 내게 일으키는 복잡하고 어둡고강박증적인 감정들을 나는 뭐든지 환영한다. 개는 사람에게 진정한 애착이 무엇인지를 알아볼 기회를 준다. 비교적 안전하지만 진실된 방식으로,
(1996년) - P109

사람들이 흔히 부모에게 느끼는 죄책감, 그러니까 당신이 부모에게 좋은 자식이 아니었다는 걱정이 들 때가 있나? 혹은 만약 부모님이 아프실 경우에 당신이 좋은 자식 노릇을 하지 못하리라는걱정이?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고?

나와 같은 입장이 된 것을 환영한다. 당신이 그동안 누리던 ‘부모님 은혜의 시기‘가 이제 끝난 것이다.

부모님 은혜의 시기란 당신이 부모에게 복종하지 않아도 될만큼은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부모를 걱정할 만큼은 나이가 들지않은 시기, 그 짧은 기간을 뜻한다. - P119

이것이 삶임을 깨닫는 데도 긴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모두 나이 들수록 삶이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니라 더 쉬워진다는 신화를 믿으며 자라는데(그리고 이것은 진짜 신화일 뿐이다), 나이 드는 부모의모습만큼 그 믿음이 사실이 아님을 잘 보여주는 것은 많지 않다.
실제로는 우리가 나이 들수록 잃은 것이 많아진다. 점점 더 크고버거운 과제가 나타난다. 실수를 되돌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부모의 죽음을 생각해보는 일이 겁나는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모님 은혜의 시기가 끝나면, 우리의 순수의 시대 중 후반부의 한 단계도 끝난다. 그분들이 언제까지나 거기 계시진 않을 것이다. 우리 삶이 더 간단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1992년)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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