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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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낸 세금으로 만드니까 이 시설은 보기에는 그럴싸하지만 전혀 쓸모가 없다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되지. 또 하나 건축가란 말이야, 역시 후대까지 기억되는 건축물을 만들지 않으면 주어진 역할을 다한 것이 못 돼. 그것은 관공서 시설관리과든 종합건설사든 똑같아. 전화국이든우체국이든, 저절로 감탄이 나오는 건축물이 있어. 건축가가 누군지 모르는 건축물이지만 안에 들어갔을 때 방문한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고, 언제 누가 어떤 생각으로 이것을 설계했는가 상상하게 된다면 정말 멋지지 않겠나? 국립현대도서관을 어디에서 수주하게 될지 모르지만, 실현되지 못하더라도 플랜은 남겠지. 낙찰받지 못하더라도 젊은 건축가들이 이쪽이 더 좋았을라고 생각할 만한 것으로 만들고 싶네. 건축가가 죽은 뒤에 완성되는 건물도 있으니까 말이지."

구겐하임 미술관은 선생님이 사사했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죽고 반년 뒤인 1959년에 준공되었다. 의뢰받았을 때부터 십육 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였다. - P140

는다. 개구부는 쓴다. 예컨대 여름 별장의 뛰어난 점을 몇 가지들라고 하면 나는 맨 먼저 설계실의 개구부라 할 것이다.
남쪽의 미닫이 유리창을 좌우로 활짝 열어젖히면 바깥에서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여름 별장에 와서, 나에게 주어진 설계실 책상에 앉아서 맨 처음 생각한 것은 이 큰유리창은 계수나무가 잎사귀를 활짝 펼치고 있는 가운뎃마당경치를 보기 위한 것 같다는 것이었다. 계수나무의 황록색 잎사귀는 날이 맑든 흐리든 밝고 경쾌하다
둥근 모양의 잎사귀를 내려다보면 살짝 부유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 P143

우치다 씨는 이미 전체 도면을 다 그렸다. 균질한 연필선이 트레이싱페이퍼 위를 달리고 있다. 청사진이 되어도 우치다 씨가그린 연필선의 아름다움은 확고하게 뉘앙스를 남기고 있다. 이런 선을 그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여자도 능숙하게 대할 거라고생각했다. 섬세하면서도 속도와 결단력이 있다. 내가 만일 여자라면 이 연필 한 줄에서 우치다 씨의 손가락 움직임까지 떠올릴지도 모른다. - P144

선생님이 손을 보신 것은 우치다 씨 디자인을 좀더 세련되게 연마하는 것이아니고 반대로 좀더 투박하게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닌가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실제로 완성된 것을 보면 원안보다 좀더 합리적이고 쓰기 좋은 형태가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신경이 구석구석 미친다는 것과 신경질적인 것이 어떻게 다른가, 선생님이 덧붙인 선에 그 대답이 보이는 것 같았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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