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은 어느 관청에서… 그런데 어느 관청인지 굳이 밝히지않는 게 좋겠다. 온갖 관청, 연대(聯隊), 사무실 등, 말하자면 이런 곳에 근무하는 관료들보다 더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은 없다.
요즘 개인들은 모두 자신이 당한 일을 사회 전체가 모욕당한 것처럼 생각하니 말이다. 최근에 어느 군(郡)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하여튼 어느 군 경찰서장이 청원서를 제출했는데, 거기에는 국가의 법령이 폐기되고 있으며, 자신의 신성한 이름이 아무쓸모 없이 회자되고 있다고 적혀 있다. 게다가 그 증거로 어마어마한 분량의 낭만적인 소설이 첨부되었는데, 거기에는 열 쪽마다 군 경찰서장이 술에 취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러므로 그 모든 불쾌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이야기할 관청을 그냥 어느 관청이라고 부르는 게 낫겠다. 얘긴즉, 어느 관청에서한 관리가 근무하고 있었다. 이 관리는 그리 비범하다고는 할 수없는 위인으로, 키는 작고, 얼굴은 약간 곰보에다 불그스레하며,
보아하니 지독한 근시인 데다, 이마는 조금 벗어졌고, 양 볼에는주름이 있으며, 안색은 치질 환자처럼 보였다. 뭐, 어쩌겠는가!

(외투) - P47

언제, 어느 때 그가 관청에 임용되었고, 누가 그를 임명했는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몇 명의 국장과 과장이 교체되었든간에, 그는 늘 같은 자리와 같은 처지 그리고 같은 직급에서 변함없이 정서하는 관리로 일했으며, 훗날 사람들은 그가 분명 대머리에 문관 제복을 입고서 모든 걸 완벽하게 갖춘 상태로 세상에 태어났다고 믿었다. 관청 사람들은 그에게 아무런 경의도 표하지 않았다. 경비원들은 그가 지나갈 때 자리에서 일어서지도않았으며, 심지어는 현관으로 파리 한 마리가 날아 들어온 양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과장들은 냉정한 폭군처럼 그를 대했다. 부(副)계장은 고상한 직무를 수행하는 경우에 흔히 그렇듯이, "정서해 주십시오." 혹은 "흥미롭고 좋은 건입니다." 아니면듣기 좋은 말 한마디 없이 곧장 그의 코앞에 서류를 들이밀곤 했다. 그러면 그는 누가 서류를 갖다 놓았는지, 그에게 그럴 권한이 있는지 살피지도 않고 그저 서류를 쳐다보고는 곧바로 정서 - P49

자신의 직무에 그토록 충실한 자를 과연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열심히 일했다. 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정서를 하면서 다채롭고 즐거운 자신만의 세계에 접하여 만면에 화색을 띠곤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몇몇 자모를 쓰는 순간이면, 거의 몰아지경에 빠져버렸다. 웃음을 짓기도 하고, 눈을 찡긋거리기도 했으며, 마치 펜으로 써 내려가는 모든 글자를 하나하나 읽는 듯이 입술을 움찔거리기도 했다. 그의 열성에 걸맞게 포상을 내린다면, 아마도 그는경악을 금치 못하겠지만, 5등 문관직 정도는 얻을 법도 했다. 그러나 동료 독설가들이 말하듯이, 장기근속 끝에 그가 얻은 것이라고는 제복 단추와 치질뿐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전혀 주목을 - P51

봉급 400루블이면 자신의 운명에 만족할 줄 아는 자의 평화로운 삶은 그렇게 흘러갔으며, 단지 9등급만이 아니라, 3등급, 4등급, 7등급의 모든 공직자들, 심지어 그어떤 공직도 맡아보지 못한 사람들의 인생 행로에 산재된 각종재난들만 없었더라면, 아마도 그렇게 늙어 죽을 때까지 흘러갔을 것이다.
페테르부르크에는 연봉 400루블 혹은 그와 비슷한 액수를 받는 자들의 강력한 적수가 있다. 비록 건강에 좋다고들 하지만,
이 적수는 다름 아닌 북방의 혹한이다. 관청에 출근하는 사람들로 거리가 가득 메워지는 아침 8시면 그것은 도무지 감출 길이없는 가엾은 관리들의 코를 사정없이 강력하고 매섭게 후려치기 시작한다 - P53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정해진 공간을 되도록 빨리 뛰어오려고 애썼음에도 얼마 전부터 등짝과 어깨가 심하게 타는 느낌이들기 시작했다. 결국 외투에 어떤 결함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생각에 다다랐다. 집에서 외투를 면밀하게 살펴본 후 외투 등허리와 어깨 부분 몇 군데가 무명처럼 닳아 있음을 발견했다. 나사(羅紗) 천은 속이 비칠 정도로 해졌고 안감은 누더기가 되어 있었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외투 역시 관리들의 웃음거리가될 만했다. 사람들은 외투라는 고상한 명칭을 박탈하고, 그것을덮개라고 부르곤 했다. 실제로 그것은 기이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다른 부위를 덧대느라 옷깃은 해마다 점차 줄어들었다. 덧댄 곳은 분명 재봉사의 바느질이 아니었고, 마치 자루처럼 늘어진 것이 보기 흉했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게 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재봉사 페트로비치에게 외투를 가져가기로 했다. - P54

솔직히말해 처음에는 그런 절제된 생활에 익숙해지기 조금 어려웠지만나중에는 길이 들었고 모든 게 순조로웠다. 심지어 저녁을 굶는게 습관이 되었다. 대신 미래의 외투라는 영원한 이데아를 늘 생각하면서 정신적인 양식을 섭취하였다.
이때부터 마치 결혼이라도 한 것처럼, 혼자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 곁에 있으며, 어여쁜 여자친구가 평생의 반려자가 되어주기로 한 것처럼, 그의 존재 자체가 어쩐지 더 충만해졌다. 그 여자친구란 다름 아닌, 두툼한 솜을 넣고 닳을 염려 없는 튼튼한안감을 댄 바로 그 외투였다. 그는 생기 넘쳤고, 삶의 목표를 세운 사람처럼 성품이 강고해졌다. 표정과 행동에서는 의혹과 우유부단함, 망설이고 주저하던 모든 성향이 저절로 사라졌다. 때로는 눈에서 불꽃이 튀었으며, 심지어 ‘진짜로 옷깃에 담비 가죽을 달까?‘ 라는 대담무쌍하고 용맹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아른거리기도 했다. 이러한 상념들은 그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 정도였다. 한번은 정서하다가 실수를 하여 거의 ‘악!‘ 하고 소리를지르고는 성호를 그었다. 한 달에 한 번씩 그는 어디서 얼마에 - P63

경찰서장은 외투 강탈 사건에참으로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사건의 본질에 주의를 기울이지않고, 왜 그리 늦게 귀가했는지, 어딘가 좋지 못한 곳을 들른 것은 아닌지 등등을 캐묻기 시작했다. 이에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당황했고 외투 문제에 대해 서장이 적절한 절차를 밟겠다는건지 아닌지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날그는 온종일 관청에 나가지 않았고 이는 그의 삶에서 처음 있는일이었다. 다음 날 그는 매우 창백해진 모습으로 더욱더 서글퍼보이는 낡은 외투를 입고 관청에 나타났다 - P73

그가 하는 말은 매우 낮고 엄격하게 들렸는데, 보통 "어느 안전이라고 그런 행동을 하는가? 지금 누구와 대화를 하고 있는지알고 있는 건가? 지금 누가 앞에 서 있는지 알고 있나?" 라는 말이 거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원래 마음이 좋은 사람으로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고 친절했으나, 장관이라는 지위가 그를완전히 혼란스럽게 만들어버렸다. 혼란스러워하며 갈팡질팡하다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모를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동등한 지위의 인물과 만날 때면 도리를 아는 매우 착실한 사람으로, 심지어 모든 면에서 전혀 어리석지 않게 행동했으나, 한계급이라도 낮은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면 매우 졸렬해져서, 입을 꾹 다물고 앉아 있다가 불쌍한 처지가 되곤 했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시간을 좀 더 재밌게 보낼 수 있었는데 하고 느낄 정도였다. 가끔씩 그의 눈을 보면 재미있는 대화나 무리에 끼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는 너무 많은 것을 보여 주는 건아닌지, 이것이 격에 맞는 행동인지, 위신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런 연유로 간혹 가다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항상 입을 다물고만 있어서, 급기야 참으로 무료한 사람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우리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바로 이 ‘중요한 인사‘ 앞에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자기 자신에게나 중요한 인사에게 가장적절치 못한 시간에 나타나고 말았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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