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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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세는 눈을 감았다.
각 지역마다 추억이 있었다. 그곳에만 있던 새며 꽃, 나무들이그리워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 나이를 먹을 때까지 한 번도과거에 살았던 지역을 찾아가 보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불안정한 생활, 단절된 기억. 그것들은 서로 교차하는 일 없이 마음의그늘에 맥락도 없이 드러누워 있었다. 인생의 기로에 섰을 때, 혹나도은 도무지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절로 떠오르 더는 곳을 고향이라 부른다면 아오세에게는 숫제 고향이 없었다.
남은 건 빛의 기억뿐이다. 부드러운 빛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갈망이 솟아오를 때가 있다.

떠돌던 건설 현장의 숙소에는 희한하게도 북쪽 벽에 큰 창이나 있었다. 새어 들어오는 것도, 쏟아져 들어오는 것도 아닌, 왠지 조심스레 실내를 감싸 안는 부드러운 북쪽의 빛, 동쪽 빛의총명함이나 남쪽 빛의 발랄함과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은 듯 고요한 노스라이트(north light),

알 것 같았다. Y주택 2층의 커다란 창문 앞에 타우트의 의자가놓여 있던 까닭을, 요시노가 아버지 이사쿠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어쩌면 그건 유골함이었는지도 모른다. 하늘을 보여준 것이다. 타우트의 추억과 함께 이 한촌(寒村)의 푸르른 하늘로 돌아가라는 마음을 담아 요시노는 하늘을 보여준 것이다. - P322

칠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세월을 새기는 집‘은 아이러니하도 세월에 지고 만 것이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힘없이 스러져..
고개를 들려는 기척조차 없었다.
- 아오세는 목조주택‘을 받아들였다. 그 직감이 굴복도, 과거청산도 아닌 무구한 충동이라 믿고 유카리와의 인연에 베일을씩웠다. 애초에 그녀의 생가처럼 전통적인 일본식 가옥을 짓는다는발상은 머릿속에 없었던 까닭에 마음이 흐트러지는 일 없이 자문에 빠질 수 있었다. 재래 공법의 틀에 갇히지 않는, 양식미에 구애받지 않는, 진정 내가 살고 싶은 집‘이란 어떤 집인가. - P40

았다.
아오세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뭔가 달라진 걸까.
Y주택을 짓기 전과 짓고 나서, 제 안에서 뭔가가 달라졌을까.
달라졌을 터였다. 도망쳐 숨었던 패잔병의 소굴에서 기어 나.
와, 자학하는 태도를 벗어던지고, 새로 얻은 생명이 이끄는 대로자신이 만들고 싶은 집을 희구했다. 마음은 날개가 돋아난 것처럼 가벼웠다.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오갔다. 경험과 지식, 감성과 영혼 모두를 쏟아부었다. 완성된 집 앞에 서서 가슴 한가득공기를 들이마시며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올려다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아버지에게 보여드리고 싶었다. 유카리에게 알리고 싶었다 - P119

이 땅에 은혜를 느꼈다.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 자신을 다하게 맞아준 이곳에 감동했고, 감사했으리라. 하지만 죽은 특머나먼 이국땅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다니, 상식적으로 납득하기힘들었다. 한때의 고양된 감정으로 내뱉은 말은 아니었다.
트가 진심이었다는 건, 데스마스크를 가지고 이곳에 돌아온에리카의 존재가 증명했다. 이들 스스에리카가 있었기 때문일까. 아틀리에도, 테라스도, 서재도는 이국의 외딴집이었지만, 그곳에는 두 사람의 생활이 분명히있었기에 센신테이는 타우트의 마지막 집‘이 될 수 있었다.
마음이 검게 물드는 것 같았다. 롯폰기의 호화 맨션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서 있다. 이)
우리 그 집으로 돌아가자, 방 두 개짜리 집이라도, 차 없어도재밌게 살았잖아. - P162

"우리 모두 그렇다는 거야. 제 손으로 만든, 영혼을 담은 집에돌아가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지. 데스마스크를 쓰기 직전에 의식이 향하는 집으로, 너에게는 있지만, 나는 없어. 그게 다야."

뚝, 전화가 끊겼다. 한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대화가 무(無)에집어삼켜졌다.

마음을 더욱 굳건하게 했다. 안다. 어느 수준까지는 경험이 자사이나 이념을 이길 수 있겠지만, 그것을 넘어서면 한 인간의한 경험 같은 건 위대한 재능이 자아내는 이념과 이상 앞에꿇을 수밖에 없다.

만일 집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거나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면, 건축가는 신도, 악마도 될 수 있으리라.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건 인간이라는 사실을, 센신테이가, 그 소박한 공간이. 가르쳐주었는지도 모른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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