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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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줄 안다면, 사람들의 지극한 불행과 지극한 행복에 대한책을 쓰겠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책을 통해,
에서 배워 안다. 사고하는 인간 역시 인간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것도,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고라는 행위 자체가 상식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내 손 밑에서, 내 압축기 안에서 희귀한책들이 죽어가지만 그 흐름을 막을 길이 없다. 나는 상냥한 도살자에 불과하다. 책은 내게 파괴의 기쁨과 맛을 가르쳐주었다. - P12

삼십오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삼십오 년째 책과 폐지를 압축하느라 삼십오 년간 활자에 찌든 나는, 그동안 내 손으로 족히 3톤은 압축했을 백과사전들과 흡사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나는 맑은샘물과 고인 물이 가득한 항아리여서 조금만 몸을 기울여도 근사한 생각의 물줄기가 흘러나온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나는 이제 어느 것이 내 생각이고 어느 것이 책에서 읽은 건지도명확히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지난 삼십오 년간 나는 그렇게 주변 세계에 적응해왔다. 사실 내 독서는 딱히 읽는 행위라고 말할수없다 - P9

때면 나는 그 눈부신 광경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여기엔 야간 순찰〉이 있고 저기엔 사스키아>가 있다. 〈풀밭 위에서의 점심식사〉와 목맨 사람의 집이 있는가 하면 게르니카>도 보인다. 꾸러미마다 한복판에 『파우스트』나 『돈 카를로스 같은 책이 활짝 펼쳐진 채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나뿐이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피 묻은 종이상자에는 『히페리온』이 들었고, 낡은 시멘트 부대 한 무더기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피신처로 쓰인다. 어느 꾸러미가 괴테나 실러, 휠덜린, 니체의 무덤으로 쓰이는지 아는 사람도 나뿐이다. 나 홀로 예술가요 관객임을 자처하다 결국 녹초가 되어버린다. 날마다 죽을 것만 같은피로에 찢기고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이 피로를 덜어내고 자아 - P15

위가 침에 축축이 젖어 있다. 단단히 사리고 똬리를 튼 내 몸은겨울철의 새끼 고양이나 흔들의자 나무틀 같다. 한 번도 진짜로버림받아본 기억이 없는지라 그렇게 나 자신을 방기하는 호사를누릴 수 있다.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영원과 무한도 나 같은 사람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을 테지 .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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