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본 백석 시집
백석 지음, 고형진 엮음 / 문학동네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출출이:뱁새
마가리:오막살이의 평안 방언
고조곤히: 고요히의 평북방언 - P95

삼천포三千浦-
남행시초 4

졸레졸레 도야지새끼들이 간다
귀밑이 재릿재릿하니 볕이 담복 따사로운 거리다.

잿더미에 까치 오르고 아이 오르고 아지랑이 오르고.

해바라기하기 좋을 변곡간 마당에
볏짚같이 누우란 사람들이 둘러서서
어늬 눈 오신 날 눈을 츠고 생긴 듯한 말다툼 소리도 누우라니

소는 기르매 지고 조은다.

아 모도들 따사로이 가난하니 - P80

탕약

눈이 오는데
토방에서는 질화로 우에 곱돌탕관에 약이 끊는다.
삼에 숙변에 목단에 백복령에 산약에 택사의 몸을 보한다는 육미약탕이다.
약탕관에서는 김이 오르며 달큼한 구수한 향기로운 내음새가 나고
약이 끓는 소리는 삐삐 즐거웁기도 하다.

그리고 다 달인 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밭어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야 만년年 넷적이 들은 듯한데,
나는 두 손으로 고이 약그릇을 들고 이 약을 내인 넷사람들을 생각하노라면 내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또 맑어진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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