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부르는 이름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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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에게 갈등의 이유를 설명하기 쉬운 것은 차라리 편하다. 누가 바람을 피웠다거나 폭력을 휘둘렀다거나. 하지만 사사로운 위화감을 남들은 이해해주지 못한다. 그만큼혼자 더 괴롭고 외롭다. 그렇게 계속 안쪽 서랍에 깊숙이밀어 넣어두게 된다. 더 이상 자리가 남아 있지 않아 결국터져 나올 때까지.
한편으로는 행복을 느낄 줄 아는 것도 습관이고, 불행을 느끼는 것도 습관이겠지만, - P132

"엄마도 한때는 이별이 구원할 길 없는 결말이라고만생각했어.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가 알게된 많은 것들은 항상 ‘이별‘이 알려주었다고 생각해, 자신 )의 의지로 버릴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버리고 가야 할때도 있고, 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잃어버린 것들도 있지. 어쨌든 이제 그것들이 내 곁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비로소 그 무게나 선명함, 그리고 소중함 을 보다 강렬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어. 살다 보면 알게 돼,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바로 그 잃어버린 것들 덕분에얻은 것이란 걸."
무심코 ‘엄마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있던 수진은 속으로 울컥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초상화를 볼 수 있었던서른 살의 첫 오후였다. - P136

피부를 맞닿는 것, 상대의 온기를 몸으로 느끼는 것, 그것 외에는 사람은 진정으로 위로받을 수 없다고 한솔은 예전부터 생각해왔다. 그에 곁들인 대화, 시선, 배려, 냄새, 주고 싶은 마음과 빼앗고 싶은 마음. 상냥한 말 백 번을 건넨다 해도 사람은 말만으로는 진심으로 위로받지 못한다고.

박물관 이름처럼 작품의 주인공은 모두 사람‘이었다.
사람의 얼굴은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작품 속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면서 수진은 사람들 안에 이토록 다양하게 표현하고 싶은 감정들이 있다는 걸 확인하곤매번 놀랐다. 대체 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싶을 때도 많았다. 화난 사람, 슬픈 사람, 사랑에 빠진 사람,
군림하려는 사람, 실망한 사람, 인간의 대단함과 취약함, 그들이 놓여 있을 어떤 상황.
달고 쓴 인생사의 한 순간을 포착하고 기록한 그 작품들은 수진의 마음을 강하게 뒤흔들었다. 구체적인 포즈를취하지 않아도 표정과 시선만으로도 인물들의 속마음이 느껴졌다.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복잡하고도 단순한지.

두어 시간 후 조명을 다시 밝게 올리자 시트와 이불과수건은 검붉은 얼룩으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한솔의허벅지 안쪽에도 더러 핏자국들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확인하면서도 한솔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아니, 그는 두 사람이 함께 무아지경의 만신창이가 될 수 있었음에 무척 행복해하듯 뒷정리를 도맡아 하는 내내 엷은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며 수진은 울컥했다. 사람이 섬세한 것은 원래 성격이 그래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섬세해지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수진은 이제야 깨달았다.

수진 님께,
그렇게 많은 일들이 지난 한 달 사이에 다 벌어졌다니 믿기지가 않아요. 마치 제 삶에 다른 일들은 하나도 없었던 것처럼요.
그러고 보면 그동안 다른 기억나는 일들도 없었던 것 같아요. 오직 당신만이 있었어요. 요즘 제 인생의 전부예요. 함께 지낸 시간만이 제가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해요.
지금 창밖에 비가 내려요. 비가 오니 더 보고 싶어요.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아. 건축가는 이야기를 듣는 직업이거든. 이야기가 충분히 쌓이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 구체적인 형태로 보여주는 거지. 주택은 가장개인적인 건축이라 참 정직하기도 하고."
그는 그 작업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 P72

하지만 너무너무 좋은데, 그 너무너무 좋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어요.

"엄마도 한때는 이별이 구원할 길 없는 결말이라고생각했어.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가 알기된 많은 것들은 항상 ‘이별‘이 알려주었다고 생각해, 자신의 의지로 버릴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버리고 가야 할때도 있고, 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어버린 것들도 있지. 어쨌든 이제 그것들이 내 곁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비로소 그 무게나 선명함, 그리고 소중함을 보다 강렬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어. 살다 보면 알게 돼.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바로 그 잃어버린 것들 덕분에얻은 것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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