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에서는 어떤 식으로 이 장면을 묘사할까? 외로운 곳 위에 서있는 여신, 점점 멀어지는 그녀의 연인, 촉촉하지만 뜻을 헤아릴 수없고, 자기 안을 들여다보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두 눈, 동물들이그녀의 치맛자락으로 모인다. 참피나무가 꽃을 피운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기 직전에 그녀가 한손을 들어 자기배를 만진다.
그의 배가 닻을 올린 순간부터 내 뱃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평생 속이 메슥거려본 적 없는 내가 이제는 매 순간 메슥거렸다. 목구멍이 찢어지고 위장이 오래된 견과처럼 덜거덕거리고 입가가 갈라지도록 구역질이 났다. 내 몸이 지난 백 년 동안 먹은 걸 모두 게워낼 기세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렇게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는다. 첫 발길질을 느꼈을 때는 눈앞이 아찔했고, 약초를 빻거나 그의몸에 맞게 옷감을 자르거나 골풀로 침대를 짜면서 아이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내 옆에서 걷는 그의 모습을, 아이에서 소년에서 남자로상했다.
와중에도 전적으로 비참하지는 않았다. 나는 정해진 형태도 없고 불투명하며 온 사방의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는 불행이라면 이골이 나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해변도 있고 깊이도 목적도 형체도 있었다.
끝나면 나의 아이가 생긴다는 희망도 있었다. 나의 아들. 마법 때문인지 예지력을 물려받아서 그런 건지 몰라도 나는 아들이라는 걸 알았다.
아이가 자랐고 그럴수록 아이 안의 연약함도 자랐다. 그를 갑옷처겹겹이 감싸고 있는 내 불사의 육신이 그렇게 고마운 적이 없었

아 있는데 내가 건드리는 바람에 죽으면 어쩐다? 하지만 끄집어냈고,
아이는 살갗이 허공에 닿는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같이 울음을터뜨렸다. 그보다 더 달콤한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이를 내가슴에 눕혔다. 우리가 깔고 누운 돌이 깃털처럼 느껴졌다. 아이는몸을 부르르 떨고 또 떨며, 살아 있는 축축한 얼굴로 나를 눌렀다. 나는 탯줄을 잘랐다. 그러는 내내 아이를 잡고 있었다.
봤지?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한테는 아무도 필요 없어.
대답이라도 하는 듯 아이가 개구리처럼 꺽꺽거리고서 눈을 감았다.
내 아들, 텔레고노스였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없었다. 아이는 햇볕을 질색했다. 바람을 질색했다. 목욕을 질색했다. 옷을 입는 것도, 다 벗는 것도, 엎드려 눕는것도, 똑바로 눕는 것도 질색했다. 이 위대한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
그중에서도 특히 나를 질색했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평생 동안 나는 비극이 찾아오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런 순간의도래를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나에게는 남들이 과분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소망과 반항심과 능력이 있었고 그건 모두 벼락을 유발할 만한 것이었다. 열몇 번의 상심이 나를 그슬었지만 여태껏 그 불길이 내 살 속까지 태운 적은 없었다. 그 무렵에 내가 미쳐버릴 것 같.
았던 이유는 새로이 확실해진 사실 때문이었다. 신들에게 드디어 나를 협박할 무기가 생긴 것이다.

그 당시의 내가 어땠는지 안다. 불안하고 안정감이 없는, 잘못 만들어진 활과 같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 안의 모든 단점이 발가벗겨졌다. 모든 이기심과 모든 약점이 드러났다.

하루는 주문을 만들기로했는데 아이가 커다란 유리그릇을 집어서 자기 맨발로 산산조각을내 머리가 쿵쾅거렸다. 분통을 터뜨리게 내버려두면 결국에는 지쳐느낄 수 있었것이다. 아테나가 분노하며 달려올 것이다.

낸 적이 있었다. 내가 아이를 다른 데로 옮기고 유리조각을 쓸고 닦으려고 달려가자 아이는 가장 친한 친구를 빼앗기기라도 한 듯이 나를 때렸다. 결국에는 아이를 침실에 넣고 문을 닫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고함을 지르고 또 질렀고, 머리로 벽을 때리는지 쿵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망가뜨려놓지 않았던가. 그러니 아이가 성질을 부리는 것도가자, 나는 아이를 구슬렸다. 우리 재밌는 거 하자. 마법을 보여줄게이 산딸기를 다른 걸로 바꿔줄까? 하지만 아이는 산딸기를 내팽개치고 다시 바다를 보러 달려갔다.
매일 밤 아이가 잠이 들면 나는그의 침대를 내려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일은 좀더 잘할 수 있을 거야. 가끔 그 말대로 될 때도 있었다. 가끔 둘이서 웃으며 바닷가로 달려가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파도를 구경할 때도 있었다. 아이는 계속 발길질하며 내 팔을 쉴새없이 잡아 뜯었다. 그래도 뺨은 내가슴에 얹혀 있었고 숨을 쉴 때마다 부풀어올랐다가 꺼지는 아이의가슴을 느낄 수 있었다. 인내가 넘쳐흘렀다. 계속 소리를 질러라,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견딜 수 있어.

의지였다. 매 순간이 의지였다. 따지고 보면 주문과도 같았지만이건 나에게 거는 주문이었다. 아이는 넘쳐흐르는 거대한 강물이었고, 나는 아이의 급류를 안전하게 유도할 물길을 매 순간 준비해놓고 있어야 했다. 나는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먹을거리를 찾다가 발견한 토끼나 엄마를 기다리다가 만난 아이처럼 쉬운것부터 시작했다. 아이가 더 들려달라고 아우성치기에 계속 들려주었다. 그런 잔잔한 얘기를 들으면 호전적인 영혼이 차분해지지 않을까 싶었고 어쩌면 내 생각이 맞았을 수도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 한 달이 왔다가 가는 동안 아이가 땅바닥으로 몸을 던지지 않았다. 다시 한 달이 지났고 그 중간 언제인가부터 아이가 더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언제 그런 날이 오리라는 걸 알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걸어놓은 주문 덕분이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마주보았다. "내가 그 마법의 효력을 유지하느라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했는지, 아테나가 절대 뚫고 들어올 수 없는 게 확실한지 온갖 시험을 하면서 얼마나 한참 동안 마음을 졸였는지 아니?"

"어머니가 좋아서 하시는 일이잖아요."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나는 긁는 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네가 태어난 뒤로는 할 새가 없어서 거의 하지도 못하는데!"

"그럼 가서 주문 연구 하세요! 그거 하시고 저는 보내주세요! 솔직히 아테나가 아직까지 화가 안 풀렸는지 어쩐지 어머니도 모르잖아요. 아테나하고 대화해보려고는 하셨어요? 십육 년이 지난 일이라고요!"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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