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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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주 우연한 계기로 탄생했다. 다른 책을 조사하러영국을 여행하던 중에 독일군이 채널제도를 점령한 시기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는 어떤 충동에 이끌려 계획에 없던 건지 섬으로 날아갔고, 섬의 역사와 아름다움에 한눈에 반해버렸다.
이 책은 그 여행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오랜세월이 흘러야 했지만,
불행한 일이지만 책은 저자의 머릿속에서 완성품이 되어 튀어나오는 게 아니다. 이 책은 조사와 집필에만 몇 년이 걸렸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나오기까지 우리 가족의 인내와 지지가 필요했다. 나는 책을 완성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의심했지만 남편 딕 섀퍼와 딸 리즈와 모건은 단 한순간도 그런 의심을 품지않았다. 그들은 나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부단히 나를 컴퓨터와 키보드 앞에 앉혀놓은 일등 공신이다. 일개 아이디어가 한권의 책으로 존재하게 이끌어준 것은 내 등 뒤에서 팔짱을 끼고 나를 감시하던 쌍둥이 딸의 공이다.

독일군 점령하에서도 저는 찰스 램 덕분에 웃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돼지구이에 관한 글이 압권이지요. 우리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도 독일군에게는 비밀로 해야 했던 돼지구이때문에 탄생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찰스 램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성가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찰스 램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보다는 실례를 무릅쓰는 편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니 찰스 램과 친구가 된 것 같거든요.
폐가 되지 않기를 희망하며, 도시 애덤스추신. 제 친구 모저리 부인도 한때 당신의 것이던 소책자를 구입했답니다. 제목은 《불타는 떨기나무는 과연 존재했을까? 모세와십계명을 위한 변론》이죠. 모저리 부인은 당신이 여백에 남긴메모가 마음에 든다고 합니다. ‘신의 말씀? 아니면 군중통제의수단?‘ 어느 쪽인지 결론이 났습니까?

친애하는 애슈턴 양, 제 이름은 도시 애덤스입니다. 건지 섬 세인트마틴스 교구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지요. 제가 당신을 어떻게 아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예전에 당신이 갖고 있던 찰스 램의 《엘리아 수필 선집》이 지금 저한테 있습니다. 앞표지 안쪽에 당신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더군요. 그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전 찰스램의 열렬한 팬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 제목이 ‘선집인걸로 짐작건대 작가의 다른 글들도 나와 있다는 얘기 같아서요. 다른 작품이 있다면 당연히 읽고 싶은데, 독일군은 건지 섬을 떠났지만 남아 있는 서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2 0그래서 당신에게 부탁드립니다. 런던에 있는 서점 이름과 주소를 좀 보내주시겠습니까? 찰스 램의 작품을 우편으로 주문ㄱ이유하려 합니다. 그리고 혹시 그의 전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런 와중에 타임스>에서 저더러 문학 특별판에 실을 글을써달라더군요. 독서의 실용적, 윤리적, 철학적 가치를 논하는 3부작 특집을 차례로 실을 예정이래요. 필자 세 명이 하나씩맡아서 쓰는 거죠. 제가 맡은 주제는 ‘철학‘인데 지금까지 생각해낸 거라곤 ‘독서는 망령이 나는 걸 막아준다‘는 것뿐이에요.
보시다시피 저에겐 도움이 필요해요.
당신의 문학회 이야기를 칼럼에 넣으면 문학회 회원들이 싫어할까요? 문학회 설립에 얽힌 이야기는 분명 〈타임스 독자들을 매료시킬 거예요. 저는 진심으로 그 모임에 대해 더 알고싶어요. 하지만 싫다고 해도 괜찮아요. 전혀 마음 쓰지 마세요.
어느 쪽이든 이해할 수 있어요. 그리고 어느 쪽이든, 다시 한번 당신의 편지를 받을 수 있잖아요.

친애하는 애슈턴 양,
저의 염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줘서 고마워요. 어젯밤 문학회 모임에서 당신의 〈타임스 칼럼 이야기를 했어요. 칼럼에찬성한다면 자신이 읽은 책과 독서에서 찾은 즐거움에 대해 편지를 써서 당신에게 보내라고 제안했고요.
반응은 폭발적이었어요. 문학회의 회장인 이솔라 프리비가조용히 하라며 의사봉을 두드릴 정도였답니다(하긴 이솔라는 누가 부추기지 않아도 의사봉 두드리는 덴 선수죠). 곧 당신에게 편지가 많이 갈 거예요. 당신이 쓸 칼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좋겠어요.
우리 문학회의 설립 배경은 도시에게 들으셨죠? 돼지구이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독일군에게 체포되지 않게 꾀를 쓴거라고요. 우리 집에서 열린 파티에는 도시, 이솔라, 에번 램지, 존 부커, 윌 시스비, 그리고 우리의 사랑스러운 엘리자베스매케너가 참석했어요. 독일군 코앞에서 즉석으로 이야기를 지어낸 그 아이 말이에요. 그녀의 재빠른 기지와 빛나는 말솜씨에 감사할 따름이랍니다.

우선 우리 모임이 진짜 문학회는 아니었다는 말로 시작하는게 최선일 것 같습니다. 엘리자베스와 모저리 부인, 그리고 어쩌면 부커를 제외하고는 우리 대부분이 학교를 졸업한 후로 책과 인연이 별로 없었습니다. 우리는 깨끗한 종이를 망칠까 조제가 보기에 그는 말을 아낄수록 더 많은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찬탄하는 문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밝은 날이 다했으니 이제 어둠을 맞이하리라.‘ 바로심하며 모저리 부인의 책장에서 책을 꺼냈어요. 당시 저는 책따위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사령부와 감옥에 대한 두려움으로 책장을 펼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고른 책은 《셰익스피어 선집》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찰스 디킨스나 윌리엄 워즈워스는 나 같은 무지렁이들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누구보다도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그랬다고 믿습니다. 물론 제가 그의글을 항상 이해하는 건 아닙니다만, 언젠가는 이해하겠지요.
이겁니다.

어쨌든 책이 제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고 싶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아까도 밝혔듯이 저에게 책은 단 한 권입니다. 세네카 말입니다. 그를 아십니까? 가상의 친구들에게 편지를 뒤집어쓴 다섯 놈이 섬 주민들을 팔꿈치로 밀어내며 나란히 거리를 활보하는 꼴을 보자니 세네카가 로마 황제 근위병를 써서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설파한 로마 시대의철학자입니다. 역시 지루할 것 같지요? 하지만 그의 편지는 결코 지루하지 않습니다. 재기 발랄하지요. 글을 읽으며 웃을 수있다면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세네카의 글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어디든 적용이 가능합니다. 생생한 예를 보여드리지요. 나치스 공군과 그들의 머리 모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런던 대공습 때 건지 섬의 독일공군도 런던으로 향하던 폭격기 사단에 합류했습니다. 그들은밤에만 폭격 비행을 했고 낮에는 세인트피터포트에서 자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 시간에 뭘 했는지 아십니까? 미용실에서 손톱 손질이며 얼굴 마사지를 하고, 눈썹을 다듬고 머리를 말고는 정성스레 매만지기까지 했어요. 헤어네트 - P139

언제나 메리의 슬픔이 찰스 램을 훌륭한 작가로 만들었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문에 그가 시를 포기하고 동인도회사의 서기가 되어야 했다 해도 말이에요. 그의 연민은 위대한 작가 친구들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천부적인 재능이었지요. 워즈워스가그에게 자연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며 힐난했을 때도 찰스 램생 내 눈앞에 놓인 가구, 충직한 개처럼 어디든 나를 따라다니내게는 숲과 계곡을 향한 열정이 없어. 내가 태어난 방, 평은 이렇게 썼답니다.
는 책꽂이와 낡은 의자, 오래된 거리, 햇볕을 쬐던 광장, 예전에 다닌 학교……. 이래도 자네의 ‘산‘이 없다고 해서 내게 열정을 불태울 대상이 부족해 보이는가? 나는 자네가 부럽지 않아. 오히려 가엾게 여기지. ‘마음‘만 있다면 무엇과도 친구가될 수 있다는 걸 정녕 몰랐단 말인가.‘
마음만 있다면 무엇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전쟁 중에내가 자주 떠올린 구절이랍니다.
신이 그

"우린 살았어! 영국군이 왔다고!" 그러고 다가가니, 그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몇 분만 더 버티면 되었을 텐데. 저는 진흙탕에 주저앉아 마치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양 흐느껴 울었습니다. 탱크에서 나온 영국군들도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장교들마저 울더군요. 그 고마운 사람들이 우리에게 먹을 것과 담요를 주고 우리를 병원으로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 그들은 벨젠을 완전히 불태워 없애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축복이 함께하기를,
신문을 보니 그곳에 전쟁 난민 수용소를 세웠다고 하네요.
아무리 목적이 좋다 해도 저는 그곳에 다시 막사가 들어선다는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제 마음 같아서는 그곳은영원히 공터로 남아야 합니다.
이런 얘기는 여기서 그만하겠습니다. 왜 제 입으로 직접 얘기하기를 꺼리는지 당신도 이제는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세네카가 이런 말을 했지요.
‘작은 슬픔은 말이 많지만, 크나큰 슬픔은 말이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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