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 김현진 연작소설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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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 두 명의 인물을 만나게 될 텐데 하나는 이야기 안에 있고 다른 하나는 바깥에 있다. 정아, 라는 이름을 가진 이 인물은 한 명이지만 동시에 몇 명이다. 독자들은 정아의 한정된 삶을 면밀히 듣고 보겠지만 이상하게도 그 삶은 나와 너, 우리의 사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구는 고개를 끄덕이고 누구는 고개를 돌릴 이 이야기는 재밌지만 씁쓸하고, 불편하지만 유익한 앎으로 가득하다. 이야기가 끝나면 또 하나의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바로 이야기꾼인 화자다. 나는 이야기 안에서 인물을 만나는 것도 좋았지만 이야기를 전해주는화자를 만나는 것이 더 좋았다. 숨기지 않고 전시하지도 않는,
미화하지 않고 움츠러들지도 않는, 온갖 경험을 정직하게 뚫고여기에 이른 화자의 담담히 당당한 그 말이 좋았다.
정용준 소설가

이 이야기들이 남의 일이었으면 좋겠다. 작가와도 독자와도상관없는 세계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을 그린 것이라면 좋겠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독자를 놓아주지 않는다.
쉴새없는 입담으로 잽을 날리다, 기회를 보아 진정성을 담은 스트레이트 펀치를 묵직하게 꽂아 넣어 실토하게 만든다. 그래,
맞아, 이건 내 이야기이기도 해. 그래서 재미있고, 그래서 슬퍼.
때로 신화가 되기도 하고 풍문이 되기도 하며 뉴스가 되기도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는 저마다의 무늬로 찬연히 빛난다. 이 무늬들은 천연덕스러운 이야기꾼 김현진이 전신에 새긴 경험들을본따 수놓은 것임을 떠올릴 때, 그가 능숙한 ‘아웃파이터‘가 되기까지 견뎠을 긴 시간도 함께 뚜렷해진다. 페더급의 속도감과헤비급의 파괴력을 바탕으로 날리는 회심의 한 방. 반격은 허락되지 않는다.
박서련 소설가

정아는 휴대폰의 메모리를 확인한다. ‘비읍 항목을눌러 번호를, 낯익은 그 번호들을 소리 내어 읽는다. 받지마1, 받지마2, 받지마3, 1은 아빠, 2는 엄마, 3은 동생이다. 어차피 이 휴대폰은 건호의 명의로 개통되어 있기 때문에 가족들이 이 번호를 알아낼 가능성은 거의없다. 어차피 태어나고 자라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유성을 완전히 떠나게 되면서 가족은 물론 친구들과도 죄다연락을 끊은 상태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이미이곳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과 좋아라 연락을 해서 만나곤 했지만 이미 그 애들은 모두 대학생이 되었고, 재수를 하다 결국 포기한 정아와 학점이 어떻고 서클 선

그러니까, 조금은 건호 탓이기도 하다. 정아는 자기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안다는 듯 입술을 꼭 깨물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임신테스터의 두 줄선이 한 줄이 될 리 없었다. 혹시나, 혹시나 하고 5분만더, 10분만 더…… 계속 기다려도 요술처럼 선이 사라져 한 줄로 되는 일은 없었다. 받지마1, 받지마2, 받지마3.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집인데도, 당분간은 참고 만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가족인데도, 그녀를 용서 안 하겠다고 고래고래 마지막 통화를 한 식구들인데도 여자란 동물은 새끼를 배면 제 핏줄이 그리운 모양인가. 그때 삼겹살을 먹었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5분을 더 기다렸지만 테스터는 여전히 선연한 두 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아기는 정아가아니라 지현의 아기고, 건호는 정아와 같이 살고 있기

싶어 했다. 그가 그러고 싶어 하면 정아는 언제나 두말없이 팬티를 끌어내리도록 내버려뒀다. 하지만 거의 언제나 콘돔을 썼으니까, 분명히 건호의 아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걸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 저번은 물론이번 달만 해도 콘돔을 쓰지 않고 그냥 한 적이 두세웃지 않아야 할 때인데도 웃음이 나왔다. 그날 정말번은 됐다. 날짜가 아니었기 때문에 건호가 파고드는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건호가 아닌 다른 사람하고 잔 날, 그날은 분명히 배란기였다. 어쩌면 이 아이는, 캐러멜프라푸치노의 아이인지도 몰랐다. 만일 정말그렇다면 아이를 낳을 때 양수 대신 캐러멜시럽이 쏟아지겠지. - P20

을 너무나 당당하게 늘어놓던 여동생에게 한 번이라도하고 싶었지만 못한 그 모든 말들이 파전과 골뱅이와그녀의 약혼자가 떠올랐고, 축복은커녕 마녀 같은 망토를 떨쳐입고 검은 닭의 목이라도 꺾으면서 거창한 저주를 퍼붓고 싶은 기분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충동적인 것이 청소년의 본성이라고 하지만, 한때 청소년이었던 모든 어른들도 가끔 자제력을 잃는 날이 있기마련이다. 그날은 정정은 씨의 마음속 청소년이 대폭발한 그런 날이었다. 똥차가 안 가서 차가 밀린다는 불평

"야 이 새끼가, 부탁을 하려면 공손하게 해야지!"
바바리맨은 흠칫 놀란 눈치였다. 어깨에 멘 배낭을고쳐 들며 잠깐 생각하더니 더듬더듬 다시 말했다.
"음……… 그럼…… 저기, 빨아주…… 실래요?"
"가까이 와봐! 자세히 좀 보게."
갑자기 바바리맨은 자랑스럽게 양팔을 벌려 쥐고 있던 코트 자락을 꼭 여몄다. 화정은 깜짝 놀랐다.
"왜? 빨아달라며?"
바바리맨은 갑자기 덜덜 떨더니 달아나기 시작했다.
화정은 황당해서 운동화를 고쳐 신고 바바리맨을 쫓았다. 역시 하체 근육이 빈약한 바바리맨은 빨리 달리지못했다. 화정은 쫓으며 소리쳤다.

"저도 태어나지 않는 것을 택하겠습니다. 자연유산을
"저 역시 자연유산을 택하겠습니다. 구천을 떠돌면서시켜주세요."
영원히 여러 가지를 구경하는 게 훨씬 낫겠어요."
"저도 자연유산을 신청합니다. 아, 그런데 혹시 제어머니에게 결혼 같은 것을 하지 말라고 전할 방법은 없을까요?"
아무도 자연유산 대신 출생을 선택하지 않았다. 유례없는 상황에 처한 관리자는 고장 난 녹음기처럼 여러분, 여러분, 하는 말만 되풀이할 뿐 어쩔 줄을 몰랐다.

어느 설문조사 결과를 읽었 다. 시간 여행을 하여 젊은 시절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가장 해주고 싶으냐는 것이었다. 짧은 문장 하나가 압도적으로1위를 차지했다. 엄마, 결혼하지 마. 비교적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 슬하에 자란 딸들 역시 젊은시절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면 결혼을 반드시 만류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나를 낳지 않아도 되니까, 결혼하지 말고 엄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인간이 낙원에서 추방당한 이후 제 몫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야한다는 것은 여남 공히 감당해야 할 짐이지만, 여성의짐은 다소 지리멸렬하고 얼핏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 - P245

"헉… 어엇…… 너무 좋아……. 아, 너도 느껴…..…?
응? 내 XX 좋아?"
좋긴 뭐가 좋냐! 나는 어디가 흥분되는지도 하나도모르겠고 그냥 뒤에서 퍽퍽 찔러대기만 하는데. 하여튼저 인간은 일본 포르노 같은 걸 너무 많이 봤다. 나도어깨너머로 그 동영상들을 봤는데, 무조건 여자의 흰엉덩이 위에서 카메라앵글을 잡고 그 속살이 화면을 꽉채운 채 간드러진 목소리로 앙 기모띠, 다메, 어쩌고 하면서 신음하는 옆얼굴만 간혹 보이는 그런 포르노 말이다. 네 XX, 넘 작아서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어……… 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그는 자기 것 정도면 대한민국평균 이상은 된다고 그래도 자부하고 있으니 말이다.
방에 텔레비전이 켜져 있어 나는 건성으로 신음 소리를 내주면서 슬쩍 그걸 본다. 어, 저 연예인도 마약 투약으로 걸렸구나. 참 좋겠다. 나는 이제 쥐꼬리만 한 실업 급여로 몇 달을 먹고살고 노동청의 청년 취업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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