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은희경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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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책을 낸다. 그런데 훗날 이 책을 뒤에서부터헤아리면 몇번째가 될까.
뒤가 있다고 생각하니 이 정도면 됐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다음에 잘하지 뭐,라고도,
실은 내 소설 모두가 다 이런 회피심리에 의지하며 쓰였다. 나는 비관적인 사람이고, 그래서 더욱 그런지 모르지만 헛된 힘을 빼는 일이 여전히 어렵다.
헛된 힘의 정체는 아마 상투성과 허위일 것이다. 좋은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던 시절이 있었다. 덕분에 내 머릿속에는 상식적인 생각이 가득 차 있다. 머리를 열면 그것이 제일 먼저 튀어나온다. 에헴, 하고 점잖게 걸어나오려 - P294

는 뚱뚱한 아이는 한때의 실수와 어리석음을 환기시켜주아버지를 만나는 날에는 내가 아버지 마음에 들지 않을 거리는 생각 때문에 항상 슬픈 마음으로 돌아오곤 했다. 아버지는 특히 내가 뚱뚱한 아이라는 걸 가장 못마땅해했을 것만 같았다. 순진하고 영민한 아이와 함께라면,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지만 심술궂거나 아둔해 보아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 P10

유년 이래 내가 뚱뚱한 사람으로 살아온 시간이 결코짧은 건 아니었다.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인간의 자기애는 아무리 열악한 것이라 해도 주어진 조건에 자신을 적응시킬 수 있으며 그 삶을 합리화하게 마련이다. 삼십여년 동안 내가 비만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생각했던만큼 어머니가 수상쩍다는 듯 한참이나 나를 훑어보는 것도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내가 갑자기 다이어트를 결심한이유를 발견해내지는 못한 것 같았다. - P15

나는 그를 한번 노려본 뒤 그대로 뚜벅뚜벅 영정을 향해 다가갔다. 내가 이태리 식당에서 지금까지 내가 알던것과는 다른 세계를 보았듯이 아버지 역시 자신이 알던것과는 다른 아들을 보았어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뚱뚱한 아이의 기억을 갖고 떠나버렸다. 비너스를 보며 나는 생각했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나를 멸시한다고,
아버지에게 천천히 절을 한 뒤 나는 고개를 돌려 입속의 밥알을 뱉었다. 토할 것만 같은 메스꺼움이 또 한번 턱밑까지 치밀었다. 그때 상주가 조화 뒤의 벽에 기대놓았던 커다란 액자를 가져오더니 내게로 내밀었다. 액자는집에서 포장한 듯 신문지로 꼼꼼히 싸여 있었다. 오래전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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