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카를리 할멘의 침대는 비어 있었다. 우리는 늘 그랬듯이 식당으로 갔다. 눈 쌓인 바깥은 텅 비어 있고 간밤의 붉은빛도 사라졌다. 카를리 할멘은 이틀 동안 보건막사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높은 상처와 부은 눈, 시퍼런 입술로 다시 식당에 나타나 우리사이에 앉았다. 빵 도난 사건은 그렇게 끝이 났고, 모두가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우리는 카를리 할멘의 도둑질을 질책하지 않았다. 그도 우리가 내린 벌을 비난하지 않았다.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빵의 법정은 재판을 하는 게 아니라 처벌만 내릴 뿐이다. 설대영도(絶對零度)에는 세칙이 없다. 법이 필요 없다. 배고픈 천사가 넘「피를 훔치는 도둑이라면 절대영도는 법 자체다. 빵의 정당성에는현재만 있을 뿐, 전후 과정있을 뿐, 전후 과정이 없다. 완벽하게 투명하거나 완벽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다. 빵다른 폭력이다. 빵의사여 있다. 빵의 정당성은 배고픔이 뒤따르지 않는 폭력과는력이다. 빵의 법정에는 일반적인 도덕이 들어설 수 없다.
빵 도난 사건 127 - P127
집에서 가져온 책은 수용소에서 한 번도 읽지 않았다. 종이는 엄격하게 금지되었고, 첫해 여름의 반을 보낼 때까지 책들을 막사 뒤쪽 벽돌 밑에 숨겨두었다. 그리고 헐값에 팔아치웠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담배 마는 종이가 되어 50장에 소금 1되를 받았고, 700장에 설탕 1되를 얻은 적도 있었다. 페터 시엘은 아마포로 표지를 씌운 『파우스트」를 가져가고 양철로 참빗을 만들어주었다. 지난 8세기동안의 시를 엮은 선집으로는 옥수수 가루와 돼지기름을 먹었고, 바에버가 쓴 얇은 책은 좁쌀로 둔갑했다. 그러다보면 예민하다기보다. 는 민첩해질 뿐이다. - P131
빵의 덫에 걸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아침식사 때는 꿋꿋함의 덫에, 저녁식사 때는 빵 바꾸기의 덫에, 밤에는 머리맡에 묻어둔 빵의 덫에, 배고픈 천사가 놓은 가장 고약한 빛은 꿋꿋함이다. 배도 고프고 빵도 있지만 먹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게나 혹독해지는 것이다. 배고픈 천사는 아침마다. 단단히 얼어붙은 땅보다 혹독해지는 것이다. 배고픈말한다. 저녁을 생각해. 저녁에 양배추수프 앞에서 빵을 바꾼다. 내 빵다 항상 작아 보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 가지다. 빵을 바꾸기 직전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허둥대는 순간이 온다. 그러고나면 곧바로 의구심이 고개를 쳐든다. 빵이 내손을 떠나자마자 남의 손에 있는 빵이 더 커 보인다. - P134
빵 바꾸기는 필수다. 그 과정은 빠르지만 늘 아슬아슬하게 과녁을비껴간다. 빵은 시멘트처럼 기만한다. 시멘트 병에 걸리듯 빵 바꾸기병에 걸릴 수 있다. 빵 바꾸기는 저녁의 소요이며 눈에서 불꽃이 튀고손가락이 떨리는 사업이다. 아침에는 빵 저울의 접시를, 저녁에는 빵과 상대의 눈을 더듬는다. 빵을 바꾸려면 빵뿐만 아니라 얼굴도 제대 로 골라야 한다. 상대의 입이 쭉 찢어졌는지 잘 살펴본다. 낫처럼 가늘고 긴 입이 제일이다. 움푹 꺼진 볼에 배고픔의 털이 자랐는지도 살 펴본다. 하얀 털이 충분히 길고 촘촘한가. 사람은 굶어 죽기 전에 얼골에 토끼가 자란다. 그걸 보면 상대에게 빵이 이미 낭비임을, 먹어도그 값을 못 함을 알 수 있다. 얼마 못 가 다 큰 토끼가 밖으로 튀어나올 테니까. 그래서 흰 토끼와 바꾼 빵을 볼빵이라고 부른다. - P135
- 죽은 사람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전리품만 보인다. 시체를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악의적인 행동이 아니다. 입장이바뀐다면 죽은 사람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수용소는 실용적인 세계다. 수치심과 두려움은 사치다. 흔들림 없이, 어설픈 만족감으로 시체를 처리한다. 남의양 기뻐하는 감정과는 다르다. 죽은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이 리어들수록 삶에 더 악착같이 매달리게 되는 듯하다. 그만큼 착각 심해진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수용소로 간 거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사실은 효력이 없다. 사람들은 그 반대를 믿는다. 빵법정처럼 시체 처리도 현재만을 안다. 하지만 난폭하지 않다. 공정하고 순하게 진행된다. - P168
배고픔의 단어는 모두 먹는 단어다. 눈앞에 음식이 그려지고 입천장에 맛이 느껴진다 . 배고픔의 단어들 혹은 먹는 단어들은 환상을 먹여 키운다. 말이 말을 먹으며 맛있어한다. 배는 부르지 않지만 적어도 음식 곁에 머문다. 만성적으로 굶는 사람들은 저마다 선호하는 단어가 있다. 드물게 쓰는 단어와 지속적으로 쓰는 단어가 있다. 각자 제일 맛있어하는 단어가 따로 있다. 카푸스타처럼 명아주 역시 먹는 단어에 들지 못한다. 먹는 단어는 실제로 먹는 것 혹은 먹어야만 하는것이기 때문이다. - P178
내 생각에 배고픈 상태에서 맹목과 주시는 같은 말이다. 맹목적인배고픔은 음식을 가장 잘 본다. 은밀한 배고픔과 공공연한 배고픔이있듯, 소리가 없는 배고픔의 단어들과 소리가 큰 배고픔의 단어들이있다. 배고픔의 단어들, 즉 먹는 단어들이 대화를 지배할 때도 우리는혼자다. 저마다 자기 단어들을 먹는다. 함께 먹는 다른 사람들도 결국은 자기를 위해 먹는 것이다. 배고픔에서 타인이 차지하는 자리는 없다. 타인의 배고픔을 나눌 수는 없다. 주식인 양배추수프는 몸에서 설을, 머리에서 이성을 앗아가는 주범이었다. 배고픈 천사는 발작을으키듯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배고픔은 여름내 자라는 풀보다, T내 쌓이는 눈보다 빨리 자랐다. 평생 자랄 것이 하루 만에 자된할까. 내게는 배고픈 천사가 덩치만 불리는 게 아니라 수. 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모두 똑같은 처지였는데도 1저마다 개인적인 고통을 안겼다. 뼈와 가죽, 배설되지하루 만에 자란다고나게 아니라 수를 늘려 번식지였는데도 배고픈 천사는배설되지 못한 수분이 삼위일체가 되어 여자와 남자의 차이가 사라졌성(性)은 퇴화했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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