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아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북로드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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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말로 긴자가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20년전보다 지금이 긴자와 더 잘 어울렸다.
그는 "아사쿠사바시는 좀 아니지"라고 말했을 때부터 인생의 허무함을 알았던 게 아닐까. 허무하다면 하다못해 그허무함을 재미있게라도 여기려 했던 게 아닐까.
남자의 출세가 별것 아니라고 표현하기 위해 긴자에 집착했던 게 아닐까. 인간의 외로움을 공감할 수 있는 속이 꽉찬 마누라와의 생활을 단 하나의 확실한 것으로 삼아 함께살아온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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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년의 세월을 무시한 평범한 인사에 나는 조금 안달이 났다.
못난 얼굴 때문에 고민하긴 했지만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을 수 없는 세월이었다. 이십 년 전에는 코를 좀 세우어, 하얗고 반들반들한 피부라면 좋을 텐데, 하며 곁눈으로거울을 보긴 했으나 지금 나는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주름진 얼굴을 똑바로 볼 배짱을 가지고 있다.
마룻바닥 위에 찻잔을 올려두고 나는 레이 씨를 봤다.
"과연 예쁜 사람은 예쁜 할머니가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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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거야?"
"회사 때려치웠다."
"왜?"
"아무래도 쪼매 다른 것 같아서, 인간의 본질이라 카는 건조직에 있으면 이상해진데이, 반대로 말하자면 말이다."
"지금은 뭐 하는데?"
"프리랜서 됐다. 집도 나와뻤다. 결혼제도도 내는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부부니까 뭐가 우째 됐든 죽을 때까지 같이있어야 된다 카는 것도 이상하고 말이다. 종이 쪼가리 한 장아이가."
"엄청 원만하고 행복한 가족 같았는데."
"미묘한 긴데, 가치 기준이 완전 다르다. 그래도 이혼을안 해주드라. 와 종이 한 장에 연연하는지는 모르긋지만."
"여자라도 생겼어?"
"그런 거 아이다. 내가 큰 회사에서 안정돼 있는데 뭐 좋다고 프리랜서가 되는지 모르긋다 안 하나. 이런 건 주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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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이혼 도장 찍어줬다."
"뭐라고 하면서 찍어달랬는데?"
"그야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뻤다, 부탁한다 카면서 다다.
미에 이마를 문질렀제."
"흠, 근데 왜 결혼하고 싶은 거야? 종이 한 장이 뭐냐는 게당신 생각이잖아. 형식은 쓸모없다고 했잖아."
"그기야 글치만, 종이 한 장이지만, 서로 묶인다이가. 상대는 젊고, 도망가면 참을 수가 없다. 반대로 말하자면 말이다."
나는 기가 막혀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동했다.
에고이즘이란 숨김없이 드러내버리면 어쩔 도리가 없는것이다.
종이 한 장의 기만성을 만 마디 말로 설명해도 상대는 납득하지 못했다. 한데 에고이즘이 알몸으로 굴러오니 부인은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제멋대로네,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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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싶은데 싫다네." "아아." "손님, 어떻게 생각해요. 연에요." "괜찮잖아요." "그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상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했어요. 서른이라고 말했으니까. 그 정도로 보였거든." "육 년 동안 같이 살았댔죠? 그럼 나이 따윈아무래도 상관없잖아요." "그게, 요전에 몰래 결혼하려고 알아봤더니 열여덟 살 속였더라고요." "우와. 열여덟 살이나."
"결혼하기 싫다는 건 나이를 들키기 때문이 아닐까요. 손님,
어떻게 생각해요?" "대단하네, 열여덟 살 속여도 이상하지않다면 그걸로 좋잖아요." "결혼하고 싶어요, 나는. 아, 좀 기 다려줄래요? 라면 사올 테니."
운전사는 목을 움츠리고 비를 뚫으며 식료품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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