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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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보충 수업시간이었다. 작문 시간 " 자신을 주제로 글쓰기 "였는데 다들 그말을 듣자 마자 한숨을 내쉬고 들이쉬고 했다 .

아이들 대부분이 고개를 숙인채 ,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본 선생님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작문을 쓰서 제출하고 선생님께 검사 받으면 일찍 쓴 만큼 빨리 집에 보내준다.

 

그당시 , 교생 실습기간 이었던지라, 담임선생님이 연수를 가고 우리반 담당 교생 선생님이자 국어 담당이었던 그분은 아이들에게 잘 대해주려고 무척이나 애쓰셨던 기억이 난다.

난 그분에게 조금 장난을 치고 싶었다. 그래서 작문의 주제을 " 불행한 우리 집 "이라는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 바람나서 집나간 아버지, 우리 오남매 ( 많이도 낳았다 )양육하기위해 온갖 힘든일을 하면서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마저 그 부담때문에 , 엄마가 없어야 아버지가 돌아올거라는 기대로 집을 나가버린 우리집.

오남매만 남은채로 주위의 도움없이 , 일상를 살아내야 했던 우리 형제들의 일과를 썼던 것 같다.

밥을 하고 동생들을 돌봐야했던 큰언니부터, 공부는 잘했지만 끊임없이 동생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오빠, 주눅들어 세상의 모든 소리로 부터 귀를 닫았던 작은 언니, 그리고 철 모른척 해야 살 수있었던 나와 동생이야기 .

 

내 이야기를 쓰라니 너무 쉬워서 , 후루룩 쓰고 제출하면서 그 교생 선생님의 반응을 살펴보게 됐다.

" 못됐다 못됐어 "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래나 싶기도 하지만 , 그당시 집에 일찍 가고 싶은 맘도 컸고 , 무엇보다도 가난이라는 나의 수치심이 오랫동안 선생님들에게 차별 받아온 복수심 과 함께 아이들에게 잘 대해준 그 교생 선생님이 나같이 가난한 아이에게는 어떻게 대할까 못된 심리적 반응도 있었던 것같다.

 

그이후 교생기간이 끝날때까지 학교안에서 나를 만나면 웃으면서 애매한 눈빛과 함께 나의 손을 잡아주고 등을 토닥여주던 그분. 하지만 동정으로만 느껴져서 그기간 동안 은근히 선생님를 피해 도망쳤던 기억이 난다.

이책을 읽으면서 갑자기 어렸던 시절 , 거짓동정을 받으려고 했던 나의 첫 글쓰기가 생각났다 .

 

어떤 글은 존재를 입체적으로 증명하지만, 어떤 글은 존재를 납작하게 만든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 읽는 사람에게도 그렇다.

글쓰기에서도 가치판단이 적용되는 기준이 있다면 바로 이부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글, 고유한 개개인을 하나의 덩어리로 뭉개는 글은 위험하다.

나의 첫 글쓰기는 위험했다 .

 

 

 

8페이지

 

이책을 통해서 나는 깨닫는다. 나를 위한 글쓰기 또는 타인을 위한 글쓰기는 어떠해야 했는지 말이다.

장난처럼 시작된 나의 첫 글쓰기는 나만 아니라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닌 복수심과 수치심이 깊이 잠겨 있어서 나를 위한 위로도 없고 타인에게는 불행한 이야기로 동정만을 강요했던 것을 ..

그동안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를 못했던 이유를 , 글쓰는 것이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매번 제자리에서 머무는 이유를 이책을 통해 깨닫는다.

 

책은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 타인의 이야기를 쓰는 법, 매혹적인 글을 쓰는 실천적 방법들로 세장으로 나뉘어져있다.

 

첫번째장 - 나를 나로 살게 하는 글쓰기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에서 감추어야 할것과 감추지 않아야 할것의 경계는 결국 자신의 내면안에 있는 것임을, 사회가 바라는 이야기가 아닌 , 온전히 내자신을 보듬어 줄 수 있는 내안의 이야기로 경계를 지어야 진정한 글쓰기가 된다는 것을 나는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여야겠다. 이글을 통해서

 

내가 찍은 마침표를 쉼표로 만들어 자기 이야기를 이어가는 사람들 앞에서 목"소리가 목소리를 부른다" 는 문장의 무게를 실감했다.

p 22

 

  

  

나에게 글쓰기 수업은 누군가 자기 이야기로 쏙 들어갈 수 있게 돕는 사랑의 방식이었다.

23페이지

    

 

쓰기에 필요한 기본적인 마음은 용기인 줄 모르는 용기가 아닐까.

내 숨을 막는 말, 한번쯤 꼭 꺼내야만 하는 말, 누구보다 내가 먼저 이해하고 싶어 어렵게 꺼낸 말, 쓰는 만큼 가벼워지는 각자의 순간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나도 다시 용기를 내본다.

077페이지

 

 

두번째장 - 타인과 연결된 문장은 단단해 진다.

 

감정불구자 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슬픈 영화에서 잘 안울고 , 누군가를 위해 위로나 충고를 잘 하지 못할 뿐만아니라, 타인을 위해 제대로 공감하면서 그 사람의 슬픔에 울어본적이 없다 .

세상 내 슬픔이 가장 크고 , 세상 내가난이 가장 커 보였다. 그랬던 지난날의10-30대기간이 오랫동안 심장에 마음에 자물쇠를 채웠던 것 같다. 항상 삶에서 타인을 대할때 차렷자세로 맞이하다보니 내 삶에도 정작 나는 항상 경직된 자체로 나를 위로 하지 못했던 것같다 .

세상을 돌아보니 내 슬픔과 상처는 다른 사람의 상처에 비해 크지 않았고 ,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지 못했던 지난날이 지금의 나- 감정 불구자 로 만들었음을, 불우한 환경이라는 비겁한 변명으로 나를 더 닫힌 마음의 결과를 낳았음을 책을 통해 요즘 느낀다. 타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것이 내자신을 가장 제대로 바라보는 방법이라는 것을 .

글쓰기 또한 그런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편협과 아집에 또는 감정만 잔뜩 있는 글이 된다것을 이책은 자세히 이야기해준다.

 

사라 아메드는 정의를 위해 싸운다고 해서 우리 자신이 정의로우리라는 보장은 없다며 망설여야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촘촘하게 차별로 연결된 고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조금더 촘촘하게 사유하고 망설이는 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쓰는 사람으로 지녀야 할 태도를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대변 할 수 없는 내위치의 한계알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하려는 노력을 버리지 않기 .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고통를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

쓸 수 없는 말을 쓰기 .

141페이지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에서 존 버거는 자신이 거의 80년간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던 동력을 이렇게 표현한다.

빈 곳을 메우는 사람. 말해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는 사람.

"쓰는 사람"에 대한 여러 묘사 중 가장 마음에 닿는 표현이다.

페이지 158

    

 

 

그냥 사람이라는 말, 그저 사랑이라는 말,

그러니 너는 마음 놓고 울어라 .

그러니 너는 마음 놓고 네 자신으로 존재하여라,

두드리면 비춰볼 수 있는 물처럼

물은 단단한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남겨진 것 이후를 비추고 있었다.

 

이제니 ( 남겨진 것 이후에 ) 중에서 .

 

 186 페이지 .

    

    

 

세번째장 - 매혹적인 글쓰기를 위한 안내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쓴다는것이 아직 두렵다. 내가 드러나는 이야기는 진짜 두렵고 어려운일이다. 아직.

감추고 , 있는 척 하고 , 세상과 동떨어진 이야기만 하는 나의 글쓰기를 위해 이장에서는 피해할 감정, 그리고 글쓰기를 위한 A-z 까지 나열되어 있다 . 그중에서 그녀가 좋아하는 비밀레시피 작가들 리스트가 좋았다.

내가 모르는 세계로 이끌어줄 작가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주는 작가들 리스트들이라서 ..

 

 

글쓰기는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맑은 길을 가로지르는 과정이 아니라 뿌옇게 흐린 길을 더듬으며 내 위치와 감정의 실체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관성적으로 쉬운 길로 가려고 할때마다 잠시 제동을 걸어 일부러 길 잃기를 선택하는 게 쓰기의 과정 아닐까.

 

 

213페이지

 

 

 

자기 서사를 쓰는 일은 자서전 처럼 모든 일대기를 쓰는 일이라기보다,

내 기억과 일상을 낯설게 보고 기록하는 일이다.

권태에 눌리 않고 감각을 열어 지금을 살아갈때 , 과거와 지금의 경험에서 글감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게 아닐까 .

쓸거리가 없다고 느껴질 때에는 힘을 빼고 주의의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을 둘러보세요 .

 

236페이지 .

 

 

글쓰기를 위한 책이지만 다 읽고 나면 , 내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 그리고 지나온 시간에 대한 용서와 화해를 위한 심리학같은 책이다.

얼마전 모임에서 만난 지인은 " 이책의 저자의 삶에 비추어 난 너무 평범한 삶을 살아왔구나 " 라면서 나같이 일상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도 쓸 이야기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

저자도 책에서 " 시련이 준 상처와 슬픔이 내 서사에 힘을 실어준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특별한 경험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기에 글감으로써는 곧 고갈 수밖에 없다 "라는 말에 공감하면서 그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릴적 부터 엄마는 항상 내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 책한권이 훨씬 넘는다 "라고 , 대부분의 그시절의 부모님들의 삶은 비슷할 것이다. 그런 뻔하고 비슷한 삶이 , 어떤 식으로 쓰이는 가에 따라 소설이되고 에세이가되고 철학 심리학이 되는 것임을 , 홍승은 작가의 글을 통해서 느낀다.

때론 역경을 이겨내는 대단한 영웅보다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들속에서 우리는 더 많은 감동과 공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 사는게 거기서 거기지 , 돈이 많던 적던 "이라는 뜻모를 말을 하면서 ..

하지만 다 읽고 나니 다시 그런 생각이 든다. 나의 글쓰기는 내 삶의 불안한 어린시절의 나를 제대로 보듬고 표출하는 일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 재작년 평생를 바람으로 일관해 우리 모두의 삶을 불행이라는 단어속에 갖두었던 아버지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솔직히 눈물이 안나왔다. 사고라는 전화를 받는 순간 시작된 이기적인 마음이 앞섰다 . 중환자실에 오래 누워 갖은 병원비와 고생을 우리에게 떠넘길까봐.

 

그런 생각도중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 나는 , 나를 아는 누구도 초대하지 않았다. 오려는 그들을 막으면서 내가 한 변명은 멀고 번거롭다는 핑계였지만, 사실 우리 가족 모두가 슬퍼하지 않은 초상을 보여주기 싫었고 , 그런 모습을 한채로 있는 나도 보여주기 싫었던것 같다.

 

화장장에서 울던 언니를 째려보며 " 울긴 왜 우냐 "라고 눈총을 주던 나는 지금 ,갑작스런 울음이 난다.

해가 지날 수록 ,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죄책감이 불현듯 일상의 어느때고 나를 깨운다.

어쩌면 아직 나는 나를 제대로 쓰지 않아서 , 이런 감정들이 불쑥 불쑥 올라오는 것이 아닐까 !!

 

책의 첫문장 " 담백하고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온화한 미소 , 차분한 말투, 기복 없는 단단한 중심을 가진 사림이 .. 그런데 이번 생은 틀렸다. 끈적거리고 질척거리는 문장을 온전히 뱉어내지 못해서 , 쓰고 싶은 문장과 쓰게 되는 문장의 거리는 , 되고 싶은 나와 지금의 나 사이거리처럼 아득하다는 이야기 홍승은 작가의 문장이 지금의 나에게는 더 현실적이다.

글은 오래 썼지만 ,나의 글쓰기는 중학교 시절 작문시간의 첫 글쓰기 , 그자리에 그대로 써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런 나를 발견하게 해준 "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로 통해 용기있는 글쓰기를 할 용기를 가져본다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아직 나는 모르겠다 . 좀 더 .. 시간이 .. 지나면 ... 될까 ?

 

 

담백하고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온화한 미소 , 차분한 말투, 기복 없는 단단한 중심을 가진 사림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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