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소설 페미니즘 다산책방 테마소설
장류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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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미니즘 소설, 나에겐 아직 낯설고 익숙하지 않다. 여자라서 꼭 읽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 여자이기 때문에 알아둬야할 이야기라는 강박이 있었다.

페미니즘에 빠지면 너무 시니컬해 지지 않을까 !! , 혹은 머리에 질끈 띠 매고 무슨 단체라도 가입해야 하는것 아니야 하는 촌스러운 사고를 가졌었다.

그래서 오히려 점점 폐미니즘 소설이나 영화라면 눈을 돌리고 멀리 했던 것 같다.

가보지 않은 미국을 가본것 처럼 단정짓는 그런 희한한 사고 ,또는 허세와 두려움을 이책은 조금 날려주는것 같다.

6명작가들이 말하는 폐미니즘은 대단한 운동을 하거나, 무서운 이야기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자라오면서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 지금도 겪고 있는 일상의 차별대우 혹은 불합리한 시선에 대한 이야기였다. 읽을수록 , 오랜시간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그것이 부당함을 모르고 살아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 폐미니즘은 웬지 우울하고 지루할 것이라는 편견을 날려버리는 책이었다.

(새벽의 방문자들 )

새벽에 나의 집의 벨을 누르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새로 이사한 오피스텔에서 항상 남자들만 그리고 어김없이 응답이 없으면 문을 두드리고 하고 손잡이를 당기기도 한다.

이남자들 왜 이러는 걸까 ?

딩동

초인종이 다시 울렸다. 여자는 귀를 의심했다.

자신이 들은 소리가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하지 못해 당황했다.

딩동.

한 번 더 울리자 그제야 서늘한 공기가 여자의 심장을 훑고 지나갔다.

여자를 찾아올 사람도 없었고, 이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업었다.

더 남은 택배도 없었다.

무엇보다, 새벽 3시였다.

20페이지 (새벽의방문자들 )중에서

혼자살면서 가장 두려운 것중 하나는 새벽의 방문이다. 예상치 않은 벨소리, 바깥에서 들리는 현관번호키를 누르는 소리, 오피스텔에 살면 한두번은 겪는 이런 방문, 특히 12시를 넘어 새벽녁에 들리는 소리는 정말 자다가도 놀라서 벌떡 일어나게 만든다.

그런데 주인공은 한번으로 끝날줄 알았던 이방문이 연속적으로 계속 일어난다.

그것은 성매매 없소를 찾는 남자들의 방문이었다. 옆동과의 착각으로 인한 , 이런 조그마한 실수가 어떤 사람에게 공포가 될 수 있다는 사실 , 그리고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성문화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야기의 끝부분에 가서 예상치 못한 인물과의 만남 속에서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폐미니즘이 사실은 우리 일상속에서 아주 많이 근접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룰루와 랄라)

서른 다섯살 나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다. 그곁에 2년 같이 살았고 결혼을 앞둔 겸이라는 제철소 계약직 남자가 있다.

오래된 낡고 좁은 아파트 에서 자주 마주치는 어느 부부를 보면서 그 부인의 우울한 모습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반대되는 "룰루랄라"라는 별명을 붙이고 그들을 자주 주시하게 된다.

가난하고 불안정하다고 해서 아버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도 그런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그런 어머니의 자식으로 살아가는 일이 어떤 빛깔이고 어떤 소리인지 안다.

가난에서는 쓴맛이 아니라 짠맛이 난다.

그 소금기를 혀끝에서 느껴본 사람은 부르르 몸서리치게 되고,

인생에 시간과 사랑의 양념을 치는 일에 인색해진다.

우리 사이에는 아이가 없으리라. 나는 짐작한다.

룰루와랄라 중에서 51페이지

가난한 동네에서 아이들을 낳고 사는 그 룰루랄라 부부를 통해서 자신들의 미래를 상상해보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 어째든 그부부는 같이 다니면서도 나란히 걷는 법이 없다. 남편은 앞만, 여자룰루는 땅만보고 걷는다. 그러던 어느날 , 일러스터레이터 일거리가 줄어 공장에 알바를 하러 가게 된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룰루를 마주치게 된다. 그들 부부에게 생긴 가슴아픈 사연, 그리고 내가 공장에서 겪는 불합리한 일들 속에서 가난과 여성이라는 주제가 오롯이 떠오른다.

가난은 어쩌면 우리에게 이제 여성이라는 존재, 성마저도 포기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마음아픈 이야기였다.

베이비 그루퍼

가장 이해할 수 없으면서 가장 이해될 수 도 있는 이야기일 것 같다.

이해할수 없는 것은 나이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가장 흔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그루피: 록그룹 팬으로서 그들을 쫓아다니며 성적 파트너가 된 여성들을 지칭하는데서 유래된 말이다.

신설 예술고를 다니는 나는 거기서 "초"라는 친구를 통해서 홍대를 갔다가 음악을 하는 P를 알게 된다.

미성년자인 나와 달리 ,P는 어른이지만, 자립하는 어른이 아닌 제멋대로이면서 우유부단한 어른에 가까운 청년이다. 나를 여자친구라고 소개하지 않으면서 섹스를 하고 싶어하고 ,나와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면서 내몸을 탐하는 그런 남자이다.

어느 저녁 긴 구글링 끝에 나는 그루피라는 단어를 찾아냈다.

지난 여름 내내 내가 정체를 밝혀보기 위해 노력했던 P와 나의 관계가 그 단어 안에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그러모아도 설명되지 않던 한 시절이 그 단어의 발견과 함께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그날에 나는 울지 않았다. 문득 문득 눈물이 난것은 그 후로 며칠이 지난 어느날, 또 몇 달이 지난 밤들이었다.

문자에 답을 하지 않자 P는 이내 뜸해지더니 다시는 전화하지 않았다.

베이비 그루피 중에서 135페이지

예술가 P라서 아니라,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돼가 아니라, 이야기속에서 느끼는 것은 우리 사회는 왜 남자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에 급급해 ,여성의 몸을 생각하지 않는 P ,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것을 당당해 하는 그를 통해서 아직도 많은 남자들의 사고는 개화기에 머물러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하고 사귀는 것에 대한 교육이 없는 대학과 등수만 중요시되는 교육에서 뒷전으로 밀리는 성교육에 대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 했다.

나머지 세편도 만만치 않다. (예의바른 악당)에서 전혀 예의가 없는 남친이 나오고 그남친은 자신이 예의바르고 똑똑하다고 여기면서 여자친구에게 막말을 일삼는다. 그 이야기의 결말에 나온 문장

선배는 왜 , 사람들을 화나게 해요?

예의바른 악당 중에서 189페이지

여성들이 대부분의 남성에게 던지고 싶은 특히, 예의 바른 악당들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인것 같다.

(유미의 기분)에서는 평상시 남자들 ,특히 조직사회에서 던지는 여성의 성 상품화, 또는 여성 몸매나 얼굴로 우스개 소리를 하는 사회에 일갈 하는 이야기이다.

선생님 그 말씀 책임질 수 있으세요 ?

무슨 말?

한은새가 먼저 꼬리 쳤다는 얘기요.

어?

여자는 꼬리가 아홉이라서 꼬리를 잘 친다는 얘기요.

아, 그건 ,다같이 웃자고 한 얘기지.

저는 안웃었는데요.

유미의 기분 " 198"페이지 중에서

웃자고 한 이야기에 뭘 그리 정색하고 그래 ? , 여자들은 꼭 지보다 이쁘면 욕하더라 !! 라는 말들과 일맥상통한다.

어쩌면 정색한 내가 오히려 사람들한테 욕을 먹거나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을 느끼는 경우를 많이 당하는 경우가 아직도 많은것을 내포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어느 순간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어릴적 부터 조그마한 집단에서 부터 여성을 상대로 하는 유머를 하지 말아야 인식의 전환도 일어나리라는 것을 느낀다. 나도 한때 같은 여성이면서 유미를 탓했으니 말이다.

(누구세요) 찌찔이 남자친구와 멋있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19금도 살짝 가미되어있는데, 고구마 백개를 먹다가 갑자기 시원한 사이다이야기로 결말이 나는데, 가장 재미있으면서 통쾌 유쾌하다.

단,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나기 힘든 이야기라는 것이 단점이다.

남자들이 여성들을 상대로 가장 많이 하는 음담패설같은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 만나다니, 여성들보다는 남자들이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램이 가득한 이야기이다.

면밀하고도 냉정히 머리를 굴리다가 다시 나는 흠칫, 놀란다.

아니 ,당신,아가씨 . 댁은 도대체 누구세요 ?

내 안에 지금 계신 분,누구예요? 누구냐고요.

우리 오늘 처음 만나는 것 같은데, 애기 좀 해요.

나는 팬티를 벗어 세탁기에 던진다.

저 팬티는, 내 팬티가 아니다.

그럼 ,누구 팬티야?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누구세요 ? 중에서 264

마지막 작품의 작가는 "간혹 어떤 일들은 단지 성별을 바꿔놓은 것만으로 큭큭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그저 우리가 함께 웃어보았으면 좋겠다라는 글을 , 큭큭큭 하면서 .

그러나 작가도 우리도 안다. 큭큭큭 하는 날보다 ,현실에서는 ㅠㅠㅠ 하는 날이 많아서 큭큭큭 할 여유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어려서는 이쁘지 못하면 여성의 자리보다 사람으로 인식되고 , 엄마가 되는 순간 여성성보다는 모성을 더욱 요구하는 사회가 그리고 나이가 든 여성은 아줌마라는 성도 없는 이상한 중성의 위치를 요구받는 사회에서 살고 있음을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속에서라도 "큭큭큭"하고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준 작가에게 고마워진다.

폐미니즘 소설에 대한 편견도 날리고, 남성이 읽기전에 모든 여성들이 읽어서 우리가 우리에게 폐미니즘을 제대로 인식시키고 그리고 남성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라도 여성들은 꼭 읽었으면 좋겠다.

나의 주위에는 아직도 그녀의 존재자체가 축복임을 모르는 많은 여성들을 위해서 ..

6명 작가가 건네는 이야기에 방문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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