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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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박구리가 죽어 있던 그날 아침(9p)

직박구리를 묻어주고,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던 철이는 가슴 속에 치밀어오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슬픔일까, 아니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까?” 생명 안에 내재되어 있는 죽음을 불현 듯 실체로 직면한, 자신의 죽음을 미리 보아버린 자의 두려움과 슬픔일 수 있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 감정은 마치 상점의 쇼윈도 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볼 수는 있지만 손으로 만질 수는 없는.(16p)“이란 표현에서 수상함을 발견한다. 인간이 감정을 이런 식으로 느끼나?

 

막연한 추상으로 먼 곳에 머뭇거리던 죽음이 어느 날 급습하여 아버지의 몸을 관통해서, 나와 정면으로 맞닥뜨렸을 때의 그 예리한 통증은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지상에 숟가락 하나현기영 11p)”

 

대부분 발작적인 구토증, 흉통, 손끝의 저림, 눈물 등 즉각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철이에게는 그 분출이 거치는 단계가 있는 듯 보인다.

 

철이는 휴머노이드다. 스스로를 인간으로, 휴먼매터스의 연구원인 최박사를 자신의 아버지라 여기고 있던 철이의 정체는 곧 드러난다. 등록되지 않은 휴머노이드를 검거하는 요원들에 의해 잡혀 수용소로 보내진다. 그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독자는 연민을 느끼게 된다. 철이는 수용소에서도 오랫동안 자신이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은 어떤 느낌일까? 후에 자신에 대한 자료를 찾아 나선 철이의 기억은 항상 직박구리가 죽어있던 그날 아침으로 돌아간다. 모든 것이 흔들리던 그 순간에서 시작한다. 존재의 근원이 흔들리고 딛고 있는 지반이 사라진 주변을 둘러싼 모든 관계와 사물이 무의미해지는 그런 경험이 아닐까?

 

철이가 아버지라고 여겼던 최 박사는 가장 인간다운 휴머노이드, 인간의 감정과 윤리를 그대로 가지고 인간의 문화적 유산을 계승해나갈 휴머노이드(94p)”를 연구했다. 철이는 그게 바로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철이가 갖고 있는 성품은 만들어질 당시 입력된 데이터들과 최박사가 철이에게 했던 교육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철이에게서 보여지는 생명에 대한 사랑과 공감능력, 배려심 등은 가장 이상적인 인간성의 재현이라고 볼 수 있다.

 

철이가 수용소에서 만난 선이는 인간의 치료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클론이고, 민이는 애완용으로 제작된 휴머노이드다. 인간이 해야 할 노동이나 물질적 활동 뿐 아니라 정신적인 영역까지 휴머노이드에게 역할을 맡기게 되면서 인류는 존재할 이유를 상실한다. 의식은 데이터화 되어 사라진다.

 

몸이 파괴되거나 수명이 다한 휴머노이드는 인공 뇌를 활성화 시켜 의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 의식으로만 존재하는 상태는 마치 전신마비 안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데이터 망을 이용해 자신이 살던 휴먼매터스 위를 조망하는 자유를 보여주기도 한다. 애초에 인간의 육체를 가진 존재로 만들어진 철이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몸으로 해왔는가 새삼 깨닫는다. 작가는 민이의 재활성화라는 문제를 통해 다른 몸을 가진 존재는 처음 존재와 같은 마음을 갖게 될까? 라는 질문을 하지만, 철이가 의식으로 있을 때나 두 번째 몸을 갖게 될 때, 다름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순으로 그 질문을 의미 없게 한다.

 

몸이 낡아 그 생명을 다해도 구조요청만 하면, 의식으로는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길이 있었지만, 철이는 더 이상 존재하길 거부한다.

 

여기서 구조되더라도 육신이 없는 텅 빈 의식으로 살아가다가 오래지 않아 기계지능의 일부로 통합될 것이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되는 삶. 자아라는 것이 사라진 삶. 그것이 지금 맞이하려는 죽음과 무엇이 다를까?(295p)”

 

자작나무 숲에 누워 있는 철이는 직박구리가 죽어있던 날 아침을 회상한다. 의식이 사라지는 완전한 소멸의 순간 그가 회상한 그 장면은 철이 안에 심겨진 궁극의 인간성이 아닐까? 그 인간성이란 유한한 육체를 갖고 있는 인간의 죽음이다. 어쩌면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인간의 조건이 윤리나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수용소의 문제, 생명 윤리, 인간의 조건, 죽음, 마음의 실체 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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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1-07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영하 작가는 계속 책을 내고 있군요!
한국 작가들 작품을 안 읽은지 너무 오래 되어 요즘은 어떤 얘기를 들려줄지 궁금하긴 합니다.
요즘 한국 작가들 책들 보면 정말 예쁘게 잘나와 매우 읽고 싶게 만드는 거 같긴한데....읽어야할 세계문학 대기작이 넘쳐나서 읽을 수가 없어요..^^;; 그럴수밖에 없는게 김영하보단 부차티가 매우매우매우 좋아서...그런 순환의 연속..ㅎㅎ 한국작가들은 잠정적 후순위로 계속 밀리네요...하하~

그레이스 2023-11-07 11:44   좋아요 1 | URL
김영하작가의 읽어본 작품 중에 좋았어요.
항상 뭔가 걸리적 거리는 구석이 있었는데,,,
<검은꽃>, 소재는 좋았고 초반 내용도 좋았는데 뒤로 갈수록 읽기 힘들었구요
<엘리베이터...>는 처음부터 힘들었구요

항상 아이디어를 뒷받침할 스토리 구성력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었어요....제 생각!
제게 좋았던 작품은 <살인자의 기억법>이었는데... 이 작품 추가했습니다.
자료 풀이 좀 넓어지고, 구성력도 더 좋아졌단 생각입니다.
이런 평가할 자격이 있나 싶지만요.
제생각입니다.^^

새파랑 2023-11-07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의 별 다섯이군요~! 이 작품 너무 감동적이라고 하던데~!!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들이 떠올라서 왠지 손이 안가더라구요 ㅎㅎ

그레이스 2023-11-07 19:11   좋아요 1 | URL
저도 클라라와 태양이 생각나긴 했어요
그런데 그 작품과는 결이 다른듯요.
이시구로는 모호한 면이 있는데,,, 이건 차이가 있는듯요
뭐가 좋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읽는데 어려움이 없어서 하루 안에 읽는게 가능하더라구요.
마음 감정 이런 것에 꽂힌다면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