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주택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1
유은실 지음 / 비룡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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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유쾌한 독서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그 흐름을 거스르며 사는 것은 투쟁하거나 소외되거나 무리를 떠난 캐릭터가 되기 쉽다. 순례 씨라는 캐릭터는 작가가 말했듯 우리가 만들어놓은 세상에 대안이 될 삶의 방식을 사는 사람이라고 할까? 만일 이 이야기를 순례씨를 주인공으로 그녀의 삶이나 마음을 통해 풀어 갔다면 식상했을 것이다. 중학교 3학년 수림이가 가족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어른들의 모습과 순례 씨의 특별한 삶을 그리고 있어 재미있었다. 순례 씨의 생각을 완전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녀가 지향하는 삶이 투명해서 그녀의 선택은 분명하다. 자본과 계층의 문제에 매몰되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우리에게 단순하고 명료한 메시지를 전한다. 식상하지 않게.

 

김 순례 씨는 세신사 일을 해서 번 돈으로 1층 양옥집을 샀다. 순례씨는 그 집을 때탑이라 불렀다. 주변지역이 개발되고 지하철역이 들어오면서 집값이 두 배로 뛰고, 집의 일부분이 도로로 편입되면서 많은 보상금을 받았다. 땀 흘리지 않고 얻은 재산에 불편한 마음을 갖는 게 바로 순례 씨의 경제관념이다. 그래서 빌라(현 순례주택)를 짓고, 임대료는 시세대로 받지 않고 순례 씨가 먹고 살만큼만 받는다. 홀로 아이 둘을 키우는 조은영 미용실 원장은 우리 식구는 이 순례 주택을 딛고 일어섰어요.(11p)”라고 자주 말한다. 이 빌라야 말로 필요에 의해 공유경제를 실천하는 장이다. 옥상을 함께 쓰는 공간으로 공유하고, 누구든지 이 공간에서 먹을 수 있도록 라면과 김치, 커피를 채워놓는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게 밤에만 옥상에 혼자 있다가 조용히 내려가는 401호 영선 씨의 새벽을 방해하지 않는 순례주택 사람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배려를 본다. 순례 주택을 통해서 작가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주거의 문제점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새로 지어진 아파트 원더 그랜디움에 주인공 오수림의 가족이 살고 있다. 엄마는 빌라촌 아이들이 단지내 학교에 다니는 것 때문에 아파트값이 더디게 오른다고 속물적 성향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다. 버릇처럼 솔직히 말해서로 시작하는 노골적인 인터뷰 내용이 나가는 바람에 거북마을 빌라촌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아파트 카페에서도 퇴출되었다.

수림의 아버지는 대학 시간 강사다. 언니 미림은 공부만하는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캐릭터! 수림이를 낳고 엄마가 몸이 아팠던 까닭에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순례 씨의 손에서 자랐다. ‘1인 가족들 사이에서 스스로를 ‘2이라 생각하는 수림이는 순례주택이 더 편하다. 엄마는 그런 수림이를 서운해 하면서도 동시에 불편해한다.

 

원래 이 아파트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집이었다. 딸과 사위가 전임교수가 될 때까지만 도와달라는 부탁에 집에 들어와 살고, 함께 사는 게 불편한 할아버지가 오랜 연인이던 순례 씨의 빌라 201호에 살았다. 수림이의 부모님은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으로 과시하고 구별 짓고, 허위와 허영만을 쫓는 스노비즘을 보여준다. 그리고 수림이는 그런 가족들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다.

 

작가는 수림이의 가족과의 갈등, 가정의 역기능성, 계층 간 갈등 등의 문제를 순례주택이란 공간 안에서 풀어간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수림이 부모님은 파산상태에 이른다. 아파트를 떠나 갈 곳이 없었던 그들을 받아준 곳이 순례 씨의 순례주택이다. 수림이네 부모님은 거북동 빌라촌 순례주택에 살면서, 어른들이 그렇듯 절망적으로 변화가 없지만, ‘진정한 어른으로 변해갈지 기대하게 된다.

 

우리가 도시 생활에서 흔히 경험하는 경계의 문제를 보게 된다. 순례주택의 옥상 공유는 임대주택과 분양 아파트가 함께 있는 주상복합건물의 고층으로 통하는 비상계단을 막아 화재 대피로를 차단함으로 인해 생긴 분쟁에 대한 뉴스를 떠올리게 한다. 빌라촌 애들과 어울리는 게 걱정됩니다(28p).”라고 했던 수림이 엄마의 인터뷰는 흔한 이야기라, 얼굴이 붉어지는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이 순간 특별히 생각나는 시가 있다. 신철규 시인의 슬픔의 자전이다.


타워팰리스 근처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의 인터뷰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타워팰리스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무허가 건물들

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식탁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중슬픔의 자전신철규)


그 아이가 자신의 슬픔의 크기를 말하기 위해 동원한 단어가 지구, 그 지구만큼 슬펐다는 표현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시인의 표현처럼 처음 자전을 시작한 행성처럼 먹먹했다도로와 건물이 그어놓은 우리 안의 경계와 구별짓기가 아이들의 가슴에 이 지구만큼 큰 슬픔을 새겨놓은 것이다그 아이의 상상 속에 가장 큰 세계인 그 지구를 이런식으로 조각내고 황폐화시킬 수 있는 힘을 우리가 갖고 있다는 게 비극이다.

 

순하고 예의 바르다는 의미의 순례(順禮)에서 순례자(巡禮者)에서 따온 순례(巡禮)로 개명한 순례 씨의 정신이 담긴 곳이 순례주택이다. 순례 씨는 통장에 천만 원이 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잔액을 털어서 함께 먹고 나누고 돕는데 사용하고, 더 이상 재산을 불리지 않는다. 불의하게 벌어 가족만을 위해 쓰는 남편과 이혼하고 땀 흘려 벌어 아들을 키웠다. 그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받으려 하자, 자신의 재산은 국경 없는 이사회에 기부하기로 한다


지구별을 순례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삶, 이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해법이고 위로다.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순례 씨와 같은 사람이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가 겪는 많은 사회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순간순간 내가 순례 씨가 되어보는 것도 좋다. 꿈같은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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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10-22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관.갈때마다.이.책 사서쌤이.추천도서러.세워두셔서.제목을.많이 봤는데, 순례를 ritual이라.생각했어요 그레이스님 깔깔 웃게.만든 작품이라니.호감 더.상승

그레이스 2023-10-23 06:33   좋아요 1 | URL
요즘 중학교 추천도서로 뜨더라구요.
전 어른들이 보아야할 책으로 추천합니다.
촌철살인의 속시원한 부분들도 있어요^^

아! 그리고 읽는데 2시간정도 걸린것 같아요.

yamoo 2023-10-23 0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즐겨 읽는 분야는 아니지만 간만에 그레이스 님의 리뷰를 보니 반갑네요..^^

그레이스 2023-10-23 09:3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3-10-24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잠깐
도서관에 들러서 빌리려고 했는데...
실패했네요.

집에 가면서 빌릴라구요.
기대 중입니다.

그레이스 2023-10-24 22:02   좋아요 1 | URL
^^
빌리셨나요?
즐독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