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의 구성요소를 플롯, 성격, 조사, 사상, 장경, 노래로 정의했다. 그 가운데 극중 사건의 순차적 배열방식인 플롯을 비극의 생명이라고 강조한다. 비극의 소재가 널리 알려진 신화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관객은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다. 알고 있는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전개하는가에 따라 관객의 감동은 달라지게 된다.


그는 <오이디푸스 왕>을 좋은 플롯의 예로 제시한다. 극을 이끌어가는 플롯의 세부분은 급전발견파토스. <오이디푸스 왕>에서 사자(使者)의 등장은 상황의 역전, “급전(peripeteia)”을 이룬다. 동시에 역전된 상황(급전)을 통해 어떤 중대한 사실 또는 진리에 대한 발견(anagnorisis)”을 가져 온다. 한순간에 급전과 발견이 일어나, 극적 긴장감을 전달하는 효과적인 플롯을 갖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이 비극에서 오늘 안에라는 예언적 대사의 반복이 보여주듯이 하루라는 시간 안에 완결됨으로 그 긴밀성을 더하고 있다.

 

급전(急轉, peripeteia)이란 사태가 반대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변화는 위에서 말했듯이 개연적으로 또는 필연적 인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오이디푸스에서 그 예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자는 오이디푸스를 기쁘게 해 주고 그를 모친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시켜 줄 목적으로 왔지만, 그의 신분을 밝힘으로써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발견(anagnorisis)이란 그 말 자체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무지(無知)의 상태에서 지()의 상태로 이행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등장인물들의 행운에의 숙명을 지녔느냐 불행에의 숙명을 지녔느냐에 따라 우호 관계로 들어가기도 하고, 적대관계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발견은 오이디푸스에 있어서와 같이, 급전을 동반할 때 가장 훌륭한 것이다. (시학11)”


오이디푸스 왕을 재독하면서 시학과 함께 오이디푸스왕 풀어 읽기도 다시 읽었다. 이 책에는 고대 디오니소스 극장과 그리스 비극과 관련된 유물, 현대 다시 재해석되어 올려진 공연 사진들이 실려 있다. 타이론이 거스리(Tyrone Guthrie)가 연출의 1945년 런던공연(로렌스 올리비에 주연), 1955년 캐나다 스트랫포드 공연 시 타냐 모이세비치가 고안한 가면들, 1952년 독일 다름슈타트 공연, 미로슬라브 마챠첵(Miroslav Machacek)연출의 1963년 프라하 공연, 막스 라인하르트(Max Leinhardt)연출의 1910년 뮌헨·1912년 런던·1920년 베를린 공연의 사진들이다.

 

그리스비극의 기원과 공연을 이루는 요소들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기원전 6세기 중반 아테네에서 디오니소스의 도시라는 축제의 일환으로 시작되어 발전했다. 5세기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의 맹주가 되면서 주변 국가에서도 참여하는 행사가 되었다. 연극은 경연형식으로 이루어졌고 비극 3편과 목양신극(Satyr Plays:반인반수의 목양신들이 등장하는 노래와 춤으로만 이루어진 연극) 1, 또는 희극 3편과 목양신극 1편이 하나의 작품으로 출품되었고, 10개 부족의 대표자들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하여 투표의 형식으로 그 우열을 가렸다.(오이디푸스왕 풀어 읽기174p)”

 

고대 그리스의 극장은 객석 테아트론(theatron:theatre의 어원), 객석을 접하고 있는 반원형 또는 원형의 무대인 오케스트라(orchestra:원래 원형이라는 뜻), 단상 무대인 스케네(skene:scene의 어원)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에는 아고라에 목재로 극장을 만들었다가 객석이 무너지는 사고 후, 산비탈을 이용해 만든 것이 디오니소스 극장이다.

다른 요소들로는 가면(character:원래 가면을 뜻), 코투르나이(kothurnai, 높은 신발)이 있다. 가면은 세명의 배우가 일인다역을 하거나 대규모 공간에서 표현적 연기를 위해서 필요한 장치다.


이 중 가장 새롭게 의미를 발견한 것이 객석을 의미하는 테아트론이라는 단어의 어원과 관련한 것이다. 테아트론(theatron)본다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단어 테아오마이(theaomai, θεαομαι)유심히 관찰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보편적인 원리나 본질을 통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theory도 여기서 파생되었다. 김헌 교수는 객석 테아트론은 무대와 오케스트라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을 통찰(테아오마이)하라는 요청을 받는 자리라고 말한다. 유심히 관찰하는 태도, 그리스의 비극이 현대에도 새롭게 재해석되고, 거기서 독자나 관객이 통찰을 하는 원리다.

 

오이디푸스 왕에는 긴장감과 극적인 반전을 이루는 장면, 충격적 형상 외에도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리스의 역사를 알고 있다면 그 시대 아테네의 정치와 관련된 문제 제기도 포착하게 된다. 사건이 일어나는 곳은 테베라는 고대 도시국가이지만, 소포클레스는 아테네의 상황을 대입시켜 비판하고 있다. 코러스의 합창을 통해 아테네 전통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음을 알게 된다. 크레온과 오디세우스의 대화에서는 참주와 귀족 간의 견제와 갈등을 읽게 된다.

오이디푸스 왕의 마지막 부분을 차지하는 코러스는 신에 대한 경외심을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보아 소포클레스는 전통 질서를 지키려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델로스 동맹의 시대를 살고 있는 그로서는 평화를 깨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역병의 원인에서 출발하여 추적해간 오이디푸스가 닿은 진실은 그가 누구인가이다. 신탁을 피해 도망치지만 그 부르튼 발은 테베와 델포이와 코린트 사이를 헤매고, 세 갈래 길에서 저주를 이루게 된다. 스핑크스로부터 테베를 구하고 지도자가 된 그는 오만했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이다. 눈먼 테이레시아스가 볼 수 있는 오이디푸스의 존재와 운명을 눈뜬 오이디푸스 스스로는 볼 수 없는 아이러니, 이오카스테가 향을 피우며 신탁을 기원하는 자욱한 연기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사신의 초라한 모습이 바로 아폴론의 현현이고, 진실을 가진 자라는 역설을 읽게 된다. 스스로 눈을 찔러 피를 흘리는 그의 참혹한 모습은 두려움과 연민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한다고 하지만, 현재의 시간을 사는 나는 그 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를 생각해본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느끼는 한 연약한 인간의 절망감,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죄의식, 피해갈 수 없었던 자신의 무지와 무능에 대한 분노, 오만했던 시간들에 대한 비웃음과 처벌이었을까?


기원전 5세기 후반, 즉 플라톤이 유년 시절을 보낸 시기의 아테네는 인간의 힘에 대한 맹렬한 갈망과 활기찬 자신감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이때 아테네인들은 인간 삶이 갖가지 형태로 운에 가장 크게 노출됨과 동시에, 통제 불가능했던 우연성을 인간의 진보를 통해 사회적 삶에서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다.(『연약한 선』마사 누스바움 221p)”

이 문장때문에 이 책을 레퍼런스로 추가했다.


(갖고 있는 <시학>은 둘 다 절판된 책이라 같은 저자의 재출간 된 책을 같이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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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30 0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극에 관해 유익한 공부가 된 셈입니다.

그레이스 2023-06-30 09:07   좋아요 0 | URL
그런듯요
희곡 몇개 검색해서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청아 2023-06-30 1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이디푸스 왕>읽다 말았는데 꼭 읽어봐야겠어요! 연극으로 인물과 그에게 벌어진 상황을
읽고 통찰하는것은 참으로 입체적인 경험인듯 합니다.
관련 책들로 다방면에 걸쳐 뼈속까지 읽어내려 노력하시는 그레이스님 너무멋짐요~♡

그레이스 2023-06-30 14:2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재독하니 옛날에 지나쳤던 것들이 다시 보이네요

새파랑 2023-06-30 14: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이디푸스왕이 재미있는 이유가 있었군요~!! 오래전 작품임에도 전혀 위화감이 없더라구요 ㅋ

그레이스 2023-06-30 18:14   좋아요 1 | URL
예 맞아요
지금도 적용할 지점이 많죠~!

서니데이 2023-07-07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이디푸스는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책으로 읽으면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오래전에 산 책이 집에 있는데 지금도 있는지 찾아봐야겠어요.
그레이스님, 더운 여름입니다. 시원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3-07-08 14:07   좋아요 1 | URL
예~
서니데이님도 건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