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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없는 새
정찬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평점 :
중국 전통 그림자극 「홍루몽」을 보고 나오면서 주인공은 실재와 허구, 있음과 없음에 대한 상념에 빠진다. 이 소설은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허물고, 있음이 없음이 되고 없음이 있음이 되는 공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죽을 때야 비로소 땅에 내려앉는다는 ‘발 없는 새’, 장궈룽(장국영)과 워이커씽이 그런 존재다. 장궈룽은 실재고 워이커씽은 허구다. 작가는 장궈룽의 비극적인 결말에 허구의 인물 워이커씽과의 조우를 끌어들인다. 『패왕별희』의 감독 첸카이거의 회상을 통해 이들의 만남을 재구성한다. 장궈룽이 『패왕별희』의 주인공 뎨이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람이 워이커씽이다. 매이란팡(매란방)은 중국 경극배우로 실존인물이다. 이 매이란팡이 장궈룽이 연기했던 뎨이의 모델이다. 매이란팡과 장궈룽 사이를 허구인 워이커씽이 잇는다. 장궈룽은 『패왕별희』 이후 뎨이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고 한다. 영화 속 그의 연기를 보면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뎨이의 잘려나간 여섯 번째 손가락처럼 모친의 사랑을 상실한 유년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허구 속 인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고단한 날개짓을 하다가 죽음으로 안식을 얻었다. 워이커씽 역시 그 영혼이 쉬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허구적 공간에 살았던 실존인물 장궈룽의 삶을 실재 역사를 통과한 허구의 인물 워이커씽과 직조하며 시작하는 이 소설은 “있음이 없음이 되고 없음이 있음이 되는(9p)” 세계를 창조한다.
워이커씽에게는 ‘난징 대학살’이라는 비극적 현대사가 그대로 담겨 있다. 이 비극이 그를 만들었다. 난징이 그다. 그러나 그의 정체성은 이 땅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러기에 그는 ‘난징대학살’의 문제를 계속해서 탐구하고 규명하려 애쓴다. 땅에 내려앉기 위하여.
아이리스 장은 『난징 대학살』을 통해 감춰진 참극을 세상에 고발했다. 그녀는 인터뷰와 조사, 집필 과정에서 만난 난징의 심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는 참혹은 그녀로 하여금 길을 잃게 했다. 난징이 발 없는 워이커씽을 낳았고, 아이리스 장에게서 발을 가져갔다. 두 사람 모두 인류라는 실존적 공간에 디딜 곳을 찾지 못하는 ‘발 없는 새’다.
위안부로 난징에 끌려갔던 조선의 여인들, 히로시마에서 인류의 종말과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들, 그들은 모두 돌아갈 곳을 잃은 사는 동안 그 영혼이 쉼을 얻을 수 없었던 존재들이다. 일본, 한국, 중국의 예술가들은 예술에서 구원을 찾기도 하고 오히려 침몰되기도 한다. 첸가이거가 전자라면, 미시마 유키오와 같은 작가가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허구적 서사를 현실 쪽으로 끌어오려고 했던 미시마 유키오의 시도는 극단적 행위로 이어졌다. 영화감독 첸가이거의 『나의 홍위병 시절』은 큰 울림을 주었고, 그의 영화는 그에게 구원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 그의 작품을 보면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다. 중국이 나아가고 있는 현재의 방향에 발을 맞추고 있는 그의 행보는 역사와 그 시대의 사유를 벗어나지 못하는 개인의 한계를 생각하게 된다. 혹시 그것이 중국인으로 태어나 그곳에서 발을 딛고 사는 방법은 아닐지?
소설 속 워이커씽은 첸카이거와는 다른 방향에서 찾는다. 그러나 세상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는 ‘난징대학살’과 같은 잔인하고 참혹한 범죄의 근원을 천황숭배에서 찾는다. 홀로코스트와는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전체주의가 아닌 숭배! 그러기에 그들은 죄의식을 갖지 않는 듯 보인다. 그 숭배는 홍위병의 폭력 안에도 존재한다.
한중일의 근현대사를 이룬 사건과 인물들과 허구의 인물들이 조우하고 마주쳐 생성한 이야기는 장자의 몽상처럼 여겨진다. 장자가 나비인지 나비가 장자인지.... 워이커씽은 비극에서 탄생한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다. 장자가 나비를 보듯, 나비가 장자를 보듯, 희생자가 가해자를 보아야 하고 가해자가 희생자를 보아야 한다는 그의 말은 언뜻 선문답 같지만, 가해자가 가해자임을 고백해야 한다는 말에 힘을 싣고 보면, 폭력과 비극으로 점철된 과거사를 정리하는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패왕별희』를 다시 봤다. 뎨이는 중국의 근현대사-청나라의 패망, 중일전쟁, 문화혁명 등-를 통과하며, 경극배우로서 영욕을 누린 인물이다. 그의 잘려나간 손가락은 가슴 아픈 가족사를 상징한다. 불운한 역사와 비극적인 가족사는 서로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으며, 역사의 수레바퀴는 개인을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결박해서 몰고 간다.
아이리스 장의 『난징대학살』과 션판의 『홍위병』이라는 책을 보았을 때와 달리, 영화『패왕별희』, 『인생』,『붉은 수수밭(홍까오량 가족)』, 『사람아 아, 사람아!』와 같은 문학에서 더 실재를 경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은 삶과 결혼했다”는 들뢰즈의 말이 다시 내 안에서 인용된다. 그렇게 허구가 실재가 되고 실재가 허구가 된다. 나는 그 실재가 된 허구에서 삶의 진실과 가치를 길어 올린다.
『길 저쪽』을 책상에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