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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없는 여자와 도시 ㅣ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월
평점 :
우연히 마주쳤다. 한 아파트에 살고 있으면서도 2년 동안 안부를 몰랐다는 당황스러움을 감추려 나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톤이 높아진다. “어떻게 지냈어요?”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가득한 그녀는 “그냥 그렇죠.”라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한다. 우리는 아파트 주차장에 조금 더 머물며 좀 더 자세한 안부를 물었다. 당시 힘들었던 문제가 어느 정도는 해결된 듯하나, 누군가를 원망하던 마음이 냉랭하게 얼어붙어 있다. 이내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는 마지막 만남을 떠올리게 했다. 맞다. 그 기억 때문에 문득 생각이 나도, 먼저 연락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녀는 당시 자신의 문제를 말하면서 화를 내고 있었고, 그 분노가 나를 향하는 것이 아님에도 나의 마음은 움츠러들고 뒷걸음질 쳤다. 콘크리트 벽처럼 냉랭해진 마음 앞에 절망감을 느끼면서, 조만간 만나 차라도 한 잔 하자며 헤어졌다. “심리적으로 조금이라도 불편한 건 절대 참아줄 수 없다는 이유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우연적 타자 취급을 받은 적도 역사상 없었다(25p)”는 작가의 말을 기억하면서.
『사나운 애착』에서 작가 비비언 고닉의 어머니는 타인의 문제에 개입하고 도움을 주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작가가 살던 브롱크스는 게토였다. 그들 스스로가 만든, 보이지 않는 높은 담장 안의 공동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이웃 부부의 성생활까지 알 정도로 울타리가 없는 삶을 살았다. 이웃의 가정사에조차 조정자로서 군림하는 어머니에게 작가는 경외심과 부끄러움, 분노 등이 뒤섞인 감정을 갖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작가에게서 타인들과 분리되지 않은 생활로 인한 애증과 환멸을 읽는다.
이제 그녀는 뉴욕 시내에서 살고 있다. 그곳에서 그녀는 “낯선 이의 눈에 되비치는 자아를 찾아(13p)” 거리를 걷는다. 걷다가 브롱크스 시절의 사람들과 우연히 만난다. 그 만남은 그녀에게 과거의 기억들을 가져다준다. 자신의 존재를 관통하는 엄마의 애착은 여전히 그녀에게 어려운 주제다. 서로를 참을 수 없어 싸우고 생채기를 내며 엄마와 걸었던 길들을 홀로, 때로는 둘이서 걷는다. 친구와, 때로는 엄마와.
그녀는 기억 속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엄마에게 청해 듣는다. “엄마 그 얘기 좀 해봐.”하고. 노인들의 반복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니다. 작가는 글의 소재를 생각하며 듣고 있을 것이다. “가끔 이렇게 한발 떨어져서 보는 순간에 우리 인생도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닐까?(『사나운 애착』 93p)”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면, “영락없는 엄마의 딸”이다. 사람들의 잘못을 똑 부러지게 지적해야 하고, 사랑의 성배를 찾았던, “엄마가 원판이면 그녀는 현상본(70p)”이었다.
어릴 적 기억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스스로 제조해낸 울분을 붙들고 있었던 어리석음을 깨우친 순간, 그녀는 “이 나이를 먹고도 이렇게 아는 게 없어.(122p)”라고 엄마의 말을 조용히 중얼거린다. 그렇게 그녀는 길을 걸으며 기억하고, 엄마인 자신과 화해하고, 엄마와 화해하는 길을 걷고 있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미완의 과제임을 받아들이면서.
그녀가 “갈수록 사회 변두리로 향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응어리진 쓰린 가슴을 달래기 위해 도시를 가로지르는 산책(20p)”은 습관이 되고, 자신과 타인을 읽는 응시가 되고, 글이 되었다. 그녀는 매일 집을 나설 때마다 “더 조용하고 깨끗하고 널찍한 동쪽을 걷겠다고 다짐하지만, 어느새 번잡스럽고 지저분하고 어수선한 서쪽에 와있는(120)” 자신을 발견한다. 그곳에는 “삶이라는 것에 주체가 있다는 느낌(120p)”이 든다. 군중의 물결 속에서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을 보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 거리에는 폭언과 무례함, 폭력의 위험도 존재한다. 동네 약국 대기석은 낯선 남자를 큰소리로 웃게 하는 넉살 좋은 수다를 떠는 장소다. 한 겨울 꽁꽁 언 빙판 길은, 손을 내미는 작은 친절을 통해, “난감한 상황에선 누구나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고, 그 광경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손을 내밀 의무가 있다는 평범한 인식(41p)”을 상기시키는 곳이다. 그렇게 거리에서 삶의 통찰이 이루어진다. 산책에서 돌아온 그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들의 몸짓이 보이도록 생기를 불어 넣는다. 그들은 그녀의 동행, 근사한 동행이 된다. 그녀에겐 사랑과 우정으로 이어진 한 시절의 동행들, 친구와 애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는 사람들보다 함께 하느니 차라리 익명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밤을 선택한다. 홀로 외로움을 즐기며 글을 쓰는 편을 선택하겠다는 의미이다. 그녀에겐 그녀를 아주 잘 아는 친구 레너드 한 사람과의 통화면 족하다.
이제 더 이상 블롱크스와 같은 장소는 그녀의 도시에도 나의 도시에도 없다. 도시는 변했고 과거의 장소는 사라졌다. 그곳으로 이어진 다리는 현재의 산책길처럼 걸어서 건널 수 없다. 개인의 삶에 밀고 들어오는 타인의 침범은 우리를 화들짝 놀라게 한다. “외로움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 주지만 불가해하게도 우리는 그 외로움을 포기하길 망설인다.(105p)” 아마도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순간에 이르면 블롱크스와 같은 장소에 머물게 될지 모르겠다. 앨리스의 요양원처럼. 거기서 다른 종류의 외로움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암담하고 쓸쓸한 이야기인 듯하나, 많은 지인들이 앨리스를 찾아가서 말벗이 되어준 것을 그녀가 죽은 후에야 알게 된 것처럼, 생각보다 세상엔 “사랑이 넘치고(89p)”, “다들 마음을 쓴다(90p)”.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보며 마음을 쓰는 것, 도시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이 일을 길 위에서 했다. 익명의 군중들과 동행하고 있는 그녀의 걷기를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