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의 나비 -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권장도서, 개정판
프란시스코 지메네즈 지음, 하정임 옮김, 노현주 그림 / 다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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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국경을 넘어 캘리포니아로 가면 우리 가족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국경이라는 말은 판치토(프란시스코)가 멕시코의 고향에서 자주 들었던 단어였다. 국경 너머에 있는 것은 희망이었고,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약속의 땅이었다.

 

판치토의 가족은 멕시코에서 캘리포니아를 향해 국경을 넘는다. 1940년대 국경을 넘는 불법이민자들이 그렇듯이 판치토네 가족도 지독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미국으로 왔다. 도착한 그곳은 불법 이주 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텐트촌이다. 판치토의 가족들은 딸기수확이 끝나면 포도 농장으로, 포도 수확이 끝나면 목화 농장으로, 그들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이동을 하며 산다. 판치토는 학교에 다니게 되지만 잦은 이동 때문에 친구들과의 많은 이별을 경험한다. 동생들이 태어나고, 아버지는 아픈 허리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는 날들이 많아진다. 형 로베르토는 농장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시내에서 일자리를 찾아 한 곳에 정착하기로 한다. 판치토도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그만 하고 싶어 한다. 로베르토가 일자리를 갖게 되고 판치토 역시 한 지역의 중학교에 계속 다니게 된다. 학교에서 독립선언문을 암기하고 있는 판치토 앞에 이민국 직원들이 들이 닥친다.

 

판치토가 외우고 있던 구절은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역설적인 그림 앞에 맥이 빠지고 허무하다. 인간의 존엄을 위해 자유와 행복의 추구의 권리를 보장하는 나라에서 그것은 누구에게나 자명한 진리가 아닌 것이다. ‘국경 순찰대차에 태워져 형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는 10대의 판치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국경만 넘으면 보장될 것 같았던 행복은, 그 철조망이라는 물리적 경계 뒤에 언어, 국적과 같은 훨씬 넘기 어려운 장벽이 막아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장벽은 애벌레를 담고 있는 유리병이 상징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교실 뒤에 있었던 병 안의 애벌레는 판치토를 닮았다. 실로 몸을 꼭꼭 감싸는 고치는, 숨겨두었던 판치토의 마음-엄마와 아빠와 형이 넓은 목화밭 안으로 사라진 뒤 기다리던 유년기의 두려움, 언어로 인한 고독, 선생님께 받은 외투가 커티스의 잃어버렸던 옷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느낀 수치심-을 상징한다.

한편 고치가 나비가 되고, 병속에서 나와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은 희망적이다.

이 책의 첫 장에 인용한 토마스만의 말처럼,

세상의 문제는 사실 단 하나뿐이니…….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어떻게 열린 곳으로 나아갈 것이가?

어떻게 고치를 벗고 나비가 될 것인가?”

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작가의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순환을 깨뜨리고 나비가 될 것이기 때문에.

 

영어 제목은 The Circuit : Stories from the Life of a Migrant Child 이다. 불법이민 가정의 아이 프란시스코의 유년시절은 circuit(순환)이다. 그것은 판치토의 가족이 끊임없이 목화, 포도, 딸기 농장 사이를 떠돌아다닌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애벌레에서 고치로 또 나비로 변태해 가는 과정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가난의 순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떠올리게 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그린다. 그들도 농장을 유랑한다. 그리고 그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농장주들의 횡포에 분노한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홍수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인간애에서 희망을 그린다. 또한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의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멕시코에서 하와이에서 같은 고난의 시간을 보낸 역사를 기억하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을 쓴 작가에게서는 오히려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프란시스코 지메네즈는 멕시코로 추방된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형과 함께 일하며 가족들과 재회한다. 어렵게 학교를 다니고 꿈을 이룬다. 현재 콜롬비아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이 내용은 돌파 Breaking Through라는 후속 작품에서 소개하고 있다.

 

멀지 않은 과거에는 작가와 같은 사람들에게 이런 기회라는 것이 있었다.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느슨해진 철조망처럼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여지와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미국의 국경선에 세워진 콘크리트 장벽이 보여주듯 그런 희망을 생각하기 어렵다. 밖으로 장벽이 많고 높은 배타적인 사회는 내부에서도 경계가 많아지고 뚜렷해진다. 외부로 향한 잣대는 그 사회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것은 내부에서도 효력을 발휘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배타적인 경계와 장벽이 높은 사회에서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는 않는다.

 

이 자전적 소설에는, 두 세대 이전,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통해 본 인간의 행복추구권에 대한 역설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이방인들은 행복한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난이라는 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은 과연 개인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인가? 경계와 장벽을 만들고 추방하는 사회에서 과연 누구에게나 기회와 권리는 있는 것인가? 에 대한 논제들을 던져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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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7-13 20: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작가는 꿈을 이루고 어려웠던 과거를 책으로 써내며 진짜 나비가 되었네요. 그레이스님 글처럼 분노의 포도나 애니갱? 맞나요. 생각도 떠오르네요. 구분짓기와 국경선만 없애도 훨씬 평화로워질거란 글이 기억나요 *^^* 재미있는 책 소개 고맙습니다 ~< 찜했어요 ㅎㅎ

그레이스 2021-07-14 07:14   좋아요 5 | URL
애네껜, 애니깽 ...
어차피 외래어니
김영하 작가의 <검은꽃>이나 청소년소설<에네껜아이들>이 유카탄반도에 이주했던 노동자들 이야기죠^^


scott 2021-07-14 00: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저임금 불법 이민자들이 없으면 멈춰버리는 곳입니다
목숨 걸고 국경 너머온 부모는 그자리에서 사망하고 아이만 살았는데
이들 전부 코로나로 어디 수용소로 보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1-07-14 06:43   좋아요 2 | URL
ㅠㅠ
두려움에 떨고 있을 아이들 눈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