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갈대
펄 벅 지음, 장왕록.장영희 옮김 / 길산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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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갈대

“만세……만세!”
연춘은 더 이상 외치지 못했다. 즉시 총이 겨누어지고 총성이 울리는 순간 그는 목숨이 끊어진 채로 흙바닥에 나뒹굴게 된 것이다.

일본이 항복하고 독립운동을 했던 연춘은 조국이 일본에서 미국과 러시아에 이양되고 있는 절차를 조바심 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미군이 들어오는 날 아침. 태국기와 성조기를 든 환영 인파를 일본총독은 통제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미군을 환영하며 뛰어나갔던 사람들은 일본경찰의 총에 맞아 쓰러진다. 조선인들을 해산시키고 일본 관리들은 현 직책을 유지하라고 미군으로부터 하달된다. 이것이 일본의 항복이후 한 달이라는 기간이 지난 후 해방정국이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연춘은 만세를 부르며 길 한가운데로 뛰어나가고…… ‘살아 있는 갈대’가 죽은 것이다.
갈대는 꺽여도 죽지 않고 살아난다.

‘살아계신가요?’
살아있다! 큰아버지는 ‘살아 있는 갈대’ 였다. 몸은 비록 무덤에 누워 있지만 사람들은 그 말을 되뇌었고, 어떤 이들은 그가 탈출한 감방의 거친 돌 틈으로 죽순이 솟아나왔다는 오랜 전설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관에서는 탈출하지 못했으며, 사람들은 그것을 슬퍼하였다.…… 귀에 큰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봄이 되면 대나무의 늙은 뿌리에서 푸른 새순이 솟아난다.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야. 인간이 태어나는 한은.”

이 소설은 조선말 개항 후부터 1945년 광복까지 일한· 그의 아들들 연춘과 연환· 손자 양과 사샤에 이르는 3대에 걸친 일가의 이야기이다. 펄 벅의 작품으로 대지 3부작이 왕룽의 3대를 다루고 있다면, 이것은 구한말을 거쳐 일제강점기의 시대를 거치는 3대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한국에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일한은 임오군란, 갑오개혁, 을미사변, 을사조약에 이르는 기간 조선의 왕가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상류층 양반으로서 근대사의 격랑 한가운데를 지난다. 위기의 상황에서 민비의 피신을 돕고, 시해사건이 있던 날 왕궁으로 달려가 시신의 한 조각을 수습할 만큼 민비의 신임을 얻고 왕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과 한미수호통상조약을 맺고 사절단으로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 역시 井底之蛙! 당시 세계정세와 제국주의의 거센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주저하는 모습들은 당시 조선의 모습을 닮았다.

한일 합방 후 밤에 몰래 아이들을 위해 서당을 여는 일한. 아들 연춘은 조선의 상황에 분노하고 독립운동을 위한 비밀 결사를 하고 독립군이 되어 집을 떠난다. 둘째 연환은 신여성과 결혼을 하고 기독교로 개종을 한다. 3.1 운동을 기점으로 일본의 탄압은 심해지고 연환부부는 교회방화 학살로 죽음을 당하게 된다. 연환은 새로운 사상과 문화에 심취하고 향유하지만 결국 동포들이 겪는 고통에 눈을 뜨게 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쟁이나 식민지 상황은 사람들을 평범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편이든 저편이든 서게 한다. 그것은 마치 개인으로 하여금 가만히 서있는 군중 사이에 줄을 들고 와서 선을 긋는 행위처럼 느껴지게 한다. 친일이든 항일이든 좌이든 우이든. 민초들은 바람이 부는대로 이리 저리 휩쓸리고, 그들은 온전히 역사의 상황 한가운데 던져진 것처럼 느껴진다.
연춘은 해방이 된 조국의 아침에 미군을 환영하러 온 군중들 사이에서 미국 장국이 총독에게 칼을 받는 의식을 보며 마침내 자신이 있을 자리를 결정한다. 분노였을까 절망이었을까 때늦은 후회였을까.

무지(無知), 무사유(無思惟) 그것은 책임져야 할 과오인가?
슬프고도 가슴이 무거워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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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4-27 23: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펄벅이 한국사에 관심이 상당히 깊었나보네요?! 바로 찜합니다♡

scott 2021-04-27 23: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국 혼혈아의 일생을 담은‘새해‘라는 작품이 있고 한국 어머니의 모성애를 그린 ‘어머니‘라는 작품이 있는데 한국에서 번역되었는지 모르겠네요

bookholic 2021-04-28 0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옮긴이들 때문에 ˝읽고 싶어요˝ 눌렀습니다...

mini74 2021-04-28 17: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펄벅이 한국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군요 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