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경제적 결과 부글 클래식 boogle Classics
존 메이너드 케인스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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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존 메이너드 케인스라는 이름은 경제학의 대부라 불리우는 애덤 스미스처럼 잘 알려져 있습니다. ‘케인지언’, ‘케인스주의자’등으로 수식되는 의미조차 아주 명확합니다. 그는 켐브릿지에서 수학한 이후 경제학자로 활동하며,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파리평화조약에 관여하고,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영국 재무성 관리로 재직하고 전후 유럽 부흥과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를 만드는데, 공헌을 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이 책은 그가 1919년 영국 재무성의 공식 대표로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으며, 거의 2개월에 걸쳐 완성한 글로 원제는 ‘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로 국내에는 2016년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정식 판권으로 소개되기 이 전에 80년대에 ‘평화의 경제적 귀결’이라는 제목으로 일본판을 번역한 판본이 헌책방에 돌아다녔던 것이 문득 생각이 납니다. 이 부분은 그냥 참고로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책을 다 일독하고 나서 드는 생각은 제목이 아주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평화의 경제적 결과’가 파리 평화 회의 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의미하는 바가 역설적이지 않나 추측해 보기도 합니다. 바로 케인스는 그런 관점에서 1차대전의 종전 이후 ‘파리 평화 회의’를 다음 두 가지 관점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파리 평화 회의 자체가 파괴적 측면을 갖고 있었으며, 두번째, 우드로 윌슨과 로이드 조지, 조르주 클레망소 등 협상국의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경제적 측면의 고려를 결여한 협상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 두번째 비판과 관련해 ‘현실성’을 결여한 채 이상주의적이고 도덕적인 문제에 집착한 우드로 윌슨, 독일을 두 번 다시 프랑스 앞에 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조르주 클레망소, 선거를 앞두고 마찬가지로 독일의 굴복을 기대했던 로이드 조지의 이런 불편한 하모니가 사실상 ‘독일의 징벌적 배상’을 강요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위의 측면의 정당성 문제와 관련해 케인스는 “독일이 사실상 무조건 항복을 한 것이 아니라 평화 조약 협상에 참여를 요청하고”, “그 이전에 미국 윌슨 대통령과 전후 처리에 대한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봤을 때, 이것이 과연 합당한 결과인가”에 대해 되묻고 있습니다. 더욱이 조르주 클레망소가 주장한 “독일을 포함한 중부 유럽을 1870년(보불전쟁) 이전으로 돌리자”는 주장에 케인스는 전혀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프랑스에게는 독일 황제가 보불전쟁 이 후, 베르사유 궁전에서 대관식을 한 사건에 이르는 과정을 대단히 굴욕적으로 여기고, 카이저에 대한 전쟁 책임을 영국과 프랑스에서 요구한 것은 이에 기반한 것으로 보입니다.

독일은 1914년 이후로 유럽 전체에서 중요한 산업국으로 도약하게 됩니다. 알자스-로렌과 자르, 슈레스비히의 석탄 및 철광성의 자원으로 헤외에서 원료를 수입해 가공한 제품을 영국과 프랑스에 수출하는 등 이러한 산업 기반이 유럽 전체에 경제적으로 기여한 측면을 살펴보는 등 뒤이어 ‘4장 : 배상’ 에서 “본래 배상금이 정해지고 나면 지급하는 수단은 그 국가의 자유에 맡기던 것이, 파리 평화 조약의 경우 배상금을 받을 국가들이 금액을 정할 뿐만 아니라 배상금으로 내놓을 재산의 종류까지 명시한 것은 거의 최초라고 언급됩니다. 이러한 인식은 과거 카르타고식 평화로, 제2차 포에니 전쟁 후 로마가 카르타고에 강요한 평화조약에서 적을 잔인할 만큼 철저히 분쇄함으로써 유지하는 평화에 기인하는데, 결국 역사의 가정은 없다지만 독일 내부에서 전체주의가 자생하여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다만 케인스는 이러한 가혹하고 기준없는 독일에 대한 ‘징벌적 배상’이 독일 지역에서 혁명의 기운을 낳게 할 수도 우려했으나, 우리가 아는 바대로 아돌프 히틀러라는 시대의 악을 잉태했습니다. 또한 그는 케인스의 이 책을 통해 히틀러가 면밀히 연구하고 전후 사상적 인식에 도움을 받은 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출간된 6개월 이후 전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점이 무엇을 말하는지 예측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독일이 치뤄야 할 배상과 관련해서 케인스는 앞선 알자르-로렌과 자르, 슐레스비히에 대한 할양을 차치하더라도 대전 이 전의 연합국과 각 식민지에 존재했던 독일의 이권이 무상으로 몰수되고 이것이 배상액에 포함되지 않는 상황은 이해되기 힘든 행위라 여기고 있습니다. 독일 국내에 필요한 석탄 1억톤 가운데 프랑스와 벨기에 및 다른 주변국에 2000톤 이상 무상(배상금과 상관없이)으로 보내야 한다는 점과 보유한 선박들을(대체로 상선들) 마찬가지로 영국 등에 보내야 한다는 점, 벨기에와 같은 경우는 취약한 동부 국경지대의 피해 이상의 배상금을 따내고 바로 이것을 대전 도중 영국으로부터 받은 현물지원 및 차관으로 대체하는 등의 배상의 이차적인 측면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위의 할양할 지역의 독일 민간인 재산의 몰수와 관련해서 아무런 법적, 도덕적 근거가 없이 무상 몰수가 이뤄진다는 부분은 또한 배상금 안에 포함되지도 않는다는 측면에서 매우 가혹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봤습니다. 저자인 케인스는 최소한 독일 경제가 배상금을 갚을 수 있을 만큼 산업 기반의 재가동이 필요한데, 이것을 원천적으로 제한하게 하는 이런 배상금 문제는 “독일 국민이 커피나 담배와 같은 기호품까지 끊어야 겨우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언급합니다. 기본적으로 독일이 1913년 이전 만큼 국내 경제가 유지되는 것이 영국과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이며, 반대로 과도한 배상에 따른 국내 시장을 초토화시키는 결과가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될 것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잠정적으로 독일은 프랑스에 배상할 전체 330억 달러에서 210억달러에 이르는 배상금을 납부했지만, 1920년부터 세계 대공황이 터지는 1929년 이후까지 대부분의 독일 국민을 경제적 고통에 처하게 만들어 나치즘이 활개치는 근본 원인이라 여겨도 무방합니다. 즉, 5장 : 평화조약 이후의 유럽에서 무역 저조로 인한 인플레이션의 확대가 유럽 경제의 위기로 대두할 가능성으로 케인스는 예견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또한 전쟁 배상금을 받지 못할 경우 장기적인 경제 침체에 빠질 것으로 예상하고 세르비아를 비롯한 낙후된 동부 유럽도 더 안좋은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이 책에서 나는 러시아와 헝가리, 오스트리아에는 별로 주의를 주지 않았다. 그곳은 삶의 비참함과 사회 붕괴가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에 별도의 분석조차 필요하지 않다”며 전쟁 이후 외적으로 발생한 유럽의 상황이 가늠하기 힘들정도로 좋지 않았던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이 평화조약에 따라 독일에 강요된 배상과 비슷한 예는 인류 역사에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는 케인스의 결론으로 설명되는 이 문장은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대한 전쟁 책임이 여러 측면에서 고려되지 않고 오로지 정치적 수단에 의해서만 계산된 것은 또 한번 대전을 치루고 수많은 인명 살상을 겪게 되는 비극적 원인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예상해봅니다. 여기에 어쩌면 1910년대 불기 시작한 계몽적 낭만주의가 정치의 불확실성을 간과하게 만든 요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비판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1차 세계 대전의 종전 분위기와 당시 유럽의 모습을 담고 있는 글을 쉽게 찾기 힘든 출판계에서 케인스의 이 글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협상의 이면과 정치적 문제 등을 비판적 인식으로 쓰고 있는 저자의 태도도 꽤 교훈으로 삼을만하다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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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책임 - 레옹 블룸, 알베르 카뮈, 레몽 아롱… 지식인의 삶과 정치의 교차점
토니 주트 지음, 김상우 옮김 / 오월의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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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2010년에 타계한 토니 주트는 우리에게 그의 생전 마지막 유고인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를 통해 신자유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고, 중동에서 일으킨 미국의 전쟁과 자기 자신이 유대인임에도 이스라엘을 비판한 실로 지식인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생전에 켐브리지와 옥스포드. 버클리를 거쳐 뉴욕 대학의 유럽을 연구하는 레마르크 연구소의 소장으로 재임했습니다. 그의 여러 논저들 가운데 가장 명성을 가져다 준 글은 ‘포스트워 1945~2005’입니다. 마찬가지로 위의 책은 국내에도 토니 주트의 주저로 대표될만큼 잘 알려져 있습니다. 소개할 이 책은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1930년경부터 냉전시기까지 토니 주트가 비판했던 당시 프랑스 지식인들의 이합집산과는 다른 삶을 살았던 레옹 블룸, 알베르 카뮈, 레몽 아롱의 정치적이고 학문적인 일대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원제는 The Burden Of Responsibility 로서, 지난 1998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조금 늦은 2012년 오월의봄에서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레옹 블룸부터 알베르 카뮈, 레몽 아롱의 차례대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마도 이 세사람이 서로 아슬아슬하게 겹치며 살다간 각자의 인생 순서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좀 더 엄밀하게 말씀드리면 알베르 카뮈와 레몽 아롱의 시간대가 많이 겹치고 2차대전 이후 삶을 마감한 레옹 블룸만이 따로 서술되는 느낌입니다. 물론 이건 제 개인적인 감상일 따름인데요. 토니 주트는 이 위대한 세 사람의 공통점을 도덕적 용기를 가졌으며, 대체로 반공주의자였던 점을 꼽고 있습니다. 여기에 레옹 블룸은 외로웠지만 고결한 이상주의자였고, 카뮈는 진리를 사심없이 성찰한 모럴리스트에 가까웠으며, 레몽 아롱은 이성을 겸비한 현실주의자라고 저자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세 사람 모두 당시 프랑스 지성계 및 지식인들 사이에서 꽤 독특하고 특별한 양심으로 당시 프랑스 지식인들 모두의 미움을 받은 전력을 공통된 경험으로 갖고 있습니다.

우선 레옹 블룸은 프랑스 알자스 출신의 유대인으로 사회주의자였던 정치가였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고 공화주의적 영향을 받은 프랑스인으로 여겼지만 동시에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갖고 있었습니다. 토니 주트는 블룸을 가리켜 “그가 프랑스에 그토록 충실했던 것은 그의 공화주의적 신념이 강고했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말합니다. 당시 유럽의 반유대주의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그의 삶이 무조건 평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사회주의자이긴 했지만 소비에트 혁명을 비롯한 공산주의와는 거리를 두었고 끝내는 유럽의 공산주의자들을 경멸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자의반 타의반 고립되었지만 고결하고 도덕적이고 이성을 갖고 있던 이 정치인은 세계주의적 입장에서 당시 정치적 판세를 다소 오판했는데, 특히 1943년 체코에 대한 히틀러의 교묘한 술책에 속아 넘어가 국내외적으로 비난을 받은바가 있습니다만 이것은 오로지 블룸 한 사람만의 책임은 아닙니다. 영국의 그 얼굴 두꺼운 총리 역시 히틀러를 오판했을 정도로 차라리 히틀러의 교묘하고 치밀한 언설을 끄집어 내야될 정도로 보입니다. 후에 패탱과 비시 정권에 대한 논쟁으로 인신 모욕까지 감내해야 했으나 그는 프랑스 전체를 위해 일했고 공화주의적 신념을 평생 지니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주트의 말마따나 그를 유대인이라는 인종적 편견으로 평가하는 것은 공화주의를 모욕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1944년 이후 히틀러에 의해 분열된 프랑스와 프랑스 지식인 계층은 그들이 레지스탕스와 나치로 분리지지 하여 시대의 난맥상이 어떠했는지 가감없이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레옹 블룸의 삶을 통해서 말이죠. 여기서 약간의 논외로 히틀러 정권을 지지한 비시 정권에 의해 프랑스 내에 유대인들에 대한 강제 인솔이 이뤄졌다고 글에 나오고 있는데요. 이런 문제 때문에 과거 발터 벤야민이 자의와 상관없이 스페인과의 국경지대까지 몰리게 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찌됐든 이 문제는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는지 실로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프랑스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로 알려져 있는 알베르 카뮈는 토니 주트의 표현대로 세 번이나 ‘유배되었던’ 알자스 이민자 출신의 아버지와 마요르카섬 이민자의 후손인 어머니에서 태어나 일생을 ‘뿌리없는 세계주의자’로 살았습니다. 토니 주트는 훗날 카뮈가 사르트르와의 논쟁에서 엄청난 상처를 받게 되는 연유를 ‘학력의 증표가 부족한’ 카뮈가 반대로 거의 완벽했던 ‘맹렬한 실존주의자’ 장 폴 사르트르에게 인간적이고 또한 작품의 본질이 더럽혀지는 것과 같은 치욕을 받게 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더불어 주트는 이 점에 대해서 “카뮈 스스로가 특히 끊을 수 없는 알제리에 대한 끈과 마찬가지로 사랑했던 프랑스 사이에서 대중들과 지식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했으며, 또한 좌와 우에서 혹은 양극단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았고, 여기에 자신의 작품 성과를 사르트르에게 부정당하기까지 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카뮈 스스로가 냉철하고 완벽한 이성을 보유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으므로 더욱이 정규 과정을 거친 다른 프랑스 엘리트 지식인들에 비해 항상 학력의 결핍을 안고 있었으므로 그의 내면의 양심이 어떠했을지는 감히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교통사고로 죽기전인 프랑스가 저지른 알제리 사태에 대해 그가 프랑스의 편을 들지 않게 되자, 그에 대한 지식인들의 분노와 비난은 맹렬했습니다. 후에 알제리인 포로들에 대한 프랑스 군의 고문이 드러나면서 프랑스 지식인들의 이중 잣대는 실로 역겨울 정도가 되었는데요. 뿐만 아니라 프랑스 군이 자행한 알제리인들에 대한 학살이 근래 계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주트는 이런 카뮈를 향해 “시끄럽고 분노가 판쳤던 파리의 공인세계에서 일찌감치 멀찍이 떨어지고 싶어하는 성향을 드러냈다”고 말합니다. 진리를 사심없이 성찰하는 사람이 되었던 카뮈는 말년에 모럴리스트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카뮈에게 중대한 문제는 도덕과 정치 가운데 어떻게 선택할지 하는 게 아니었다. 도덕적 참여를 통해서 어떻게 버려낼까 하는 것이었다”고 이 글은 밝혀내고 있습니다.

최근까지 프랑스 학계에서 큰 존경을 받고 있는 레몽 아롱은 주트의 표현대로 ‘이상주의적 열망을 버리고’ 현실주의적 인생을 살다간 인물이라 평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 전쟁에 대한 묘한 이상주의적 분위기를 감지한 아롱은 후에 E. H. 카가 평가한대로 “전쟁에 대한 이상주의적 관점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불러일으켰는지” 이미 깨닫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알제리에 대한 프랑스의 전쟁이 사실상 프랑스에게 별로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아롱의 관점은 바로 그가 얼마나 현실주의자인지 깨닫게 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 쓴 꽤 독특한 철학적 논저로 명성을 얻기 시작해 당시에는 사르트르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은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물론 그도 마치 손쉽게 찍어내는 듯한 사르트르의 일관된 글쓰기에 질투를 느끼기도 했다고 주트는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레몽 아롱 역시 비범한 지식인임에는 분명해 보였습니다. 1949년 이후 서유럽에 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우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이 집단 안보에 나서는 것이 단순히 군사적인게 아니라 정치적이고 심리적인 행보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전후 유럽 정치를 정확하게 본 인물로 유명했는데요. 자유주의와 시장의 문제가 민주주의의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잠정적으로 에견한다든지 국제 관계에서 이론적 현실주의에 몰입하는 것 또한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바탕에 있는 그의 신념은 “사회과학자 (지식인)의 과제는 과거나 현재에 벌어진 사회적 과정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지식인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언제나 직시하고 선택해야 한다”고 일종의 지식인의 명제로 밝힌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당시 프랑스 사회학계를 뒤흔든 뒤르켐주의와는 궤를 달리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개인적으로 아롱과 가브리엘 타르드는 비슷한 관점을 견지한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비슷한 시대를 살다간 쥘리앙 방다 역시 지식인들의 종잡을 수 없는 ‘무리(떼)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바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지식인들의 무분별한 행태가 대중과 일반 시민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에 그러한 지식인들 자체가 사회의 해악이라고 여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세 사람을 통해 주트가 소개하고 있는 1930년부터 1950년을 넘은 냉전시기까지 프랑스의 지식인 사회가 어떠한 굴곡을 갖고 있었는지 가감없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위 지식인의 양심이라는 것이 허황된 신념과 왜곡된 가치에 전도되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프랑스의 비시 정권과 무모한 알제리 전쟁, 이집트 수에즈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개임 등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불완전하고 불확실성을 갖고 있는 인간들이 사회와 국가를 형성하고 그러한 바탕의 세계는 복잡하다는 일련의 전개는 실로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세계의 지식인들의 책무는 과연 무엇일지 이들 모두가 냉정하게 살펴보는 기회로 이 책을 반면 교사 삼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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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에 대해 문득 이 야밤에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로버트 달에 의하면 오늘날 민주주의는 사실상 엘리트 중심의 정치 체제 위에 선거제도를 비롯한 시민들의 기초적인 주권개념이 결합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사실 직접 민주주의는 추첨 민주주의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간접적으로 우리의 주권을 특히 정치인들에게 위임하는 것이죠. 그는 이 점에서 오로지 다원주의적 실험이 이 엘리트 지배에 대한 견제가 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민주주의하에서 이런 엘리트 지배체제의 반대 사례는 익히 존재합니다. 과거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내각이 엘리트 계층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로 대공황을 비롯한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해리 트루먼 역시 다소 보잘것 없는 학력에 오로지 독서와 사색으로 백악관의 주인이 된 인물입니다

저는 여기서 한 가지 의심을 갖고 있는데요. 과연 전세계 엘리트들이 이 민주주의를 누구보다 신봉하고 있느냐는 부분입니다. 자신들을 보수 우파 엘리트라고 자임하는 많은 이들은 일반 대중에 의한 정치를 ‘중우정치’라 이해하고 이점을 두려워합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오늘날 집단지성이라 불리우는 일반 대중들의 출현이 나타났는데, 이를테면 정치 제안의 단계에서 이 집단지성들이 꽤 쓸모있는 의견피력과 토론 및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등의 놀라운 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점은 토크빌과 듀이와 같은 이들이 개인들의 정치 참여의 당위성이 어떠한가를 드러낸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민주주의 테두리 안의 이 엘리트 지배 체제를 완전히 불식 시키자는 게 아니라면, 신자유주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적 통제로 여겨지는 앞선 이들에 대한 끊임없는 견제와 도덕적 환기를 집단지성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 집단지성은 시민 개개인이 모여 이룩할 수 있는 그야말로 높은 단계이며, 민주주의를 축으로 정치경제 엘리트들과 시민들의 집단지성 및 각 3부의 시스템이 발전적인 균형 체제를 이룬다면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딛고 성공적으로 민주적 통제에 나서 시장-정치-주권이 서로 정상궤도에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앞선 정치-경제 엘리트들의 비밀스런 협조와 이해관계의 심화가 결국에는 과두제에 이르는 등의 민주주의의 쇠퇴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단순한 권력의 속성을 논하기에 앞서, 이 양대 엘리트들이 국가를 비롯한 사회 시스템 및 체제 전반을 자신들의 손으로 재구축하려는 시도를 전혀 배제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이 시점에서 중요한 귀로에 서있는데요.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라는 프레임 내지는 대결구도에 너무나 집중하고 있는 나머지 ‘밀실 엘리트들의 야합’을 시민들이 놓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제 전통적인 주권 위임 상태의 고결한 정치인들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교묘한 자신들의 이익을 여러 수단을 통해 달성하려는 정치경제 엘리트들을 과연 시민들이 적절히 견제할 수 있느냐에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앞으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계급 지배적 정치를 용인하기 힘든 정치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평등과 복지국가 개념을 이상하게 비틀어서 배포한 신자유주의자들이 금권의 저울을 스스로 들기 시작하면서 자본주의하에 돈의 가중으로 더 많은 자유를 보장받고 그것을 공고화하는 작업에 이미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촘스키가 이런 시스템이 결국 더 많은 부자들을 양산하기 위한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하는 것이 허언이 아닙니다. 이미 한번 국가가 시장을 구하는데 나섬으로써 자유시장주의자들에게 고약한 선례를 남긴 건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단순히 위기의 순간에 있다, 어떤 막연한 경각심을 드리려는 것보다 개인의 사적 목적에 의한 적지 않은 행동 만큼이나 공적인 영역에 대한 관심과 또한 필요합니다. 사실 모든 경제 왜곡 문제들은 우리가 정상적인 견제 조치들을 통해 시스템 자체를 바꿔 나갈 수 있습니다. 소위 지식인들이 정의와 양심을 통해 모든 정치 권력을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 옳은 과정이라면 이 지식인들이 다수의 시민들의 입과 손이 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건강한 여론을 형성하고 수많은 토론과 대화를 통해 충분히 이룩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 알라디너들은 책을 공유하고 지식을 서로 함께 하면서 많은 시민들을 같은 길로 인도할 수도 있죠.

아마도 많은 정치학자들이 우리의 연대와 참여를 바랐던 것은 바로 시스템 자체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쯤에서 제가 인용하는 것을 즐겨하는 루소의 말은 적어보고 싶군요. “시민은 마땅히 정부를 갈아치울 권리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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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가?
나카마사 마사키 지음, 김경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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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수의 사회과학 대학인 만하임 대학에서 수학하고 도쿄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뒤, 현재 일본 가나자와대학의 법학부 교수인 나카마사 마사키는 일본 내에서 한나 아렌트에 관한 연구로 명성을 쌓은 학자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한나 아렌트 권위자인 숭실대 김선욱 교수와 한나 아렌트를 주제로 그가 대담에 나선다면 독자들에겐 꽤 즐거운 기회가 되지 않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저자인 그가 법학을 전공했음에도 한나 아렌트에게 보인 학문적 관심은 일본 내에서 학자들과 지식인들을 가르는 첨예한 정치사상적 기준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일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의 원전은 지난 2009년 일본에서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5년 묻고 따지지도 않는다는 출판사 갈라파고스에서 번역 출간 되었습니다.

저자인 나카마사 마사키 교수는 한나 아렌트에 관한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정치사상가들이 존재하지만 많은 독자들과 시민들의 요구에 힘입어 많은 정치적 과제들과 문제들에 대해 명료한 해답을 도출하는 것을 ‘위대한’ 반열에 오르는 계단인데 한나 아렌트는 이와는 정 반대라고 언급합니다. 즉, 한나 아렌트는 우리에게 ‘명료한 해답’ 보다는 수많은 토론 거리들을 안겨주는데 그녀의 사상이 본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차이를 좁히는 대화와 토론을 중시했던 것으로 보아 이러한 미덕이 오늘날 시민사회를 비롯한 많은 시민들에게 정치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유인하는데 가능성 높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해보았습니다.

그런 취지에 입각해 이 책은 크게 4장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은 전체주의와 악의 평범성을 고찰해보고, 2장은 많은 철학자들이 탐구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살펴보고, 3장은 인간 자유의 본질과 그것을 통한 공화주의적 자유를, 4장은 기본적인 칸트 철학이 내포하는 사유와 행위 그리고 방관에 대해 그녀의 독특한 사유 체계를 끄집어 내는 것으로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글 전체가 술술 읽혀지는 편이나, 다만 4장에서는 약간 정밀한 독서가 필요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장과 3장이 꽤 설득적으로 다가왔고, 동시에 흥미로웠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와 관련해 일반적인 민주주의의 외곽에서 발생한 노골적이고 폭력적인 정치 붕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서구의 근대가 본디 내포하고 있던 “모순의 발현으로서 전체주의를 이해하려” 했습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반유대주의를 통해 전체주의를 위한 서사적 소재가 마련되었고, 국민국가의 생성과 제국주의에 의해 대중사회가 성립, 이후 국민국가의 경제사회적 존립 기반이 크게 흔들리면서 대중이 동요하고 이런 대중들을 이용하는 총체적인 국가 권력을 아무런 저항없이 휘두르려는 정치 권력이 출현하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관련해서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악의 평범성’과 관련해서도 아이히만 본인이 악의 화신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일상적 삶을 영위했던 평범한 인물이 조직의 명령에 동조함으로써 유대인들을 절멸시키는 데 어떠한 판단 기준을 갖지 않은 인간의 본질로서 그녀는 바라봅니다. 이 점은 과연 “모든 인간은 선/악에 대해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있는가”로 다시 묻게 됩니다. 존 스튜어트 밀과 토마스 홉스를 비롯한 인간 교육의 중요성을 통해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회사상가들과는 완전 다른 “‘인간 본성’의 정의와 규정이 과연 적확한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아렌트의 사실상 인간 본성의 불확실성을 이 책에서는 소개하고 있는데요. 저 역시 인간 본성 자체를 선과 악으로 규정하는 것보다 사실상 인간이 스스로가 너무나 불확실하기 때문에 그로인한 본연적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절멸과 관련하여 “동유럽과 중유럽의 유대인 이송에 유대인 평의회가 협력했다는 사실을 그녀는 언급”했는데, 후에 수많은 유대인 단체와 조직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은 바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본 제국주의 시기에 일등 국민이었던 수많은 일본인들이 국가의 명령에 호응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없이 ‘나쁜짓’을 벌인바가 있습니다. 저자는 이 점에 대해 이들이 자유의사에 의해 악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단정하고 많은 일본인들의 사악함을 드러내려 할 것이라고 말하며, 단죄의 문제에 대해 사실상 적절치 않음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매우 교묘하게도 맥아더의 미군정이 일왕을 단죄하는 것은 결국 일본 국민 전체를 단죄하게 되는 결과를 불러일으켜 전후 일본을 미국의 민주주의 체제에 편입시키는데 크나큰 문제가 될 것이라는 관점에 동일시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왕의 단죄가 이뤄지지 않아 일본인들이 면죄부를 받은 것인지, 아니면 일본제국이 범한 과오의 책임을 대다수의 일본인들에 묻는 것이 과한 일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아렌트의 그 악의 평범성과 선/악을 구별하는 인간 본성의 기준의 모호성을 여기에다 덧붙이는 것은 저자에게는 매우 실망스러운 부분입니다.

보통 아렌트가 주장하고 연계시킨 사고의 체계들은 거의 전통적인 철학에 기인하기도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을 통해 기준을 잡은 것들도 많은데요. 이를테면 2장의 ‘인간 본성’에 관한 부분입니다. 마땅히 인간은 사적 영역에서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면, 과연 이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어떻게 구분하고 개인의 이익을 공적 영역으로까지 확대시키는 행위를 어떻게 근절할 것인가를 확인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아렌트는 개인들의 사적 이익을 포함한 사적 영역을 공적 영역과 엄밀히 분리시켜야 하며, 공적 영역에서의 타인과 타인과의 공공선에 대한 대화와 토론 및 가치 추구에 당위성을 부여한 바가 있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도 “한나 아렌트 자신은 ‘사회적 영역’에서 사람들이 사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공동의 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같은 취지로 저자는 밝히고 있습니다. 결국 이 점은 오늘날 현대 사회가 개인들의 공/사의 구분이 유동적이 되어가고 있고, 자본주의적 시민사회에서 일반적인 ‘인간성’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인간 본성 자체가 개인의 이익을 명도하는 것은 그것의 당위적인 혹은 정당성의 원칙을 부여하기 전에 본능이라는 부분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은 실정입니다. 따지고보면 오늘날 공적인 영역이 이러한 관계로 더욱 어려움에 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차피 개인의 사적 영역을 희생하여 공적 영역에 투신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3장인 인간의 자유 본질에 대해서는 “정치적 공동체의 ‘공동선’애 대한 탐구를 멈추어버린다면, 그 사람은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 ‘공동선’을 둘러싼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 ‘인간’의 본래적인 ‘자유’가 나타나는 것이다”는 아렌트의 평가를 저자는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 점은 ‘인간 해방’이 결코 자유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그녀의 확고한 주장과 부합되면서, 더불어 루소를 통해 확립된 ‘공화주의적 자유’와 동일한 가치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정치’와 ‘자유’는 매우 긴밀하며, 미국 건국으로부터 시작된 이런 정치와 자유의 관계가 오늘날에도 중요한 관점임을 저자 역시 동의하고 있습니다. 요근래의 신자유의적 입장에서는 정치와 자유의 관계만으로 자유를 온전히 해석하는 것은 다소 어렵게 되었습니다. 시장이 사회와 정치를 시녀로 만들기 시작하면서 자본주의적 시민사회에서 각 시민들이 동일한 자유를 향유하고 있다고 정의 내리는 것은 허위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아마티아 센의 근원적인 분배 문제로 인해 각 개인들이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이 상이하고 특히 자본의 존재는 자유를 더욱 보장하는 ‘재화’가 되었습니다. 물론 위의 상황을 잠시 외면한다면 전통적으로 많은 공화주의자들이 법에 기초한 인간 자유의 증대를 주장했던 점은 큰 의미를 가집니다. 최근의 필립 패팃의 공화주의적 자유의 옹호는 바로 앞선 이유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인간이 선을 통한 사유와 행위를 근간으로 공공선을 합목적으로 여겨야 한다는 한나 아렌트 사상의 기초는 칸트로부터 시작된 계몽주의적 철학과 궤를 같이 합니다. 개인의 도덕 유무는 계몽주의적 접근의 실현 유무이기도 했으나, 그녀가 인간 본성의 본질을 다르게 봤던 것은 인간이 본디 도덕과 선을 추구하는 존재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문제로 드러났습니다. 물론 ‘정치적 자유’를 비롯한 공적인 가치에 대한 많은 개인들에 대한 그녀의 촉구는 충분히 공감받을 만합니다. 타인과의 교섭을 통한 소극적 자유의 획득이라는 부분도 홀로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 어불성설에 가깝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공화주의적 기반에 헌법과 제도에 의한 모든 이들이 수용하고 긍정할 수 있는 자유 획득이 중요한 결론으로 주어진다면, 배타적 자유를 주장하는 ‘자유지상론자들’의 주장은 대립 이전에 호응하기 힘든 문제이기도 하겠죠. 4장의 끝머리에 저자인 나카마사 마사키는 ‘방관자’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서 “현대 일본에서는 직접적인 이해관계 당사자나 당파적으로 적극 참여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은 역사적이고 이론적인 주제는 현행 정치적 논의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며 에둘러 현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국민 일반이 공평한 관찰자, 즉 공중으로서의 판단력을 가동하여 자신이 속한 정치적 공동체의 과거를 평가할 기회를 현재 일본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결론에 이릅니다. 아렌트를 통해서도 일본의 과거 역사문제가 단순히 칸트가 주장했던 ‘관찰자의 삶’으로 기능하고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을지는 저 개인적으로도 회의적입니다. 정치적 자유를 위한 공공선에 대한 공동의 가치 정립은 앞으로 일본 사회의 공공선과 사회를 구성하는 일본 시민들이 역사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열린 상태로 나아가게 되는 길임을 인식해야 하겠지만, 이러한 패러다임의 구축이 노골적인 국가의 방해를 받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의지가 결여된 것인지는 아직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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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란 무엇인가 (반양장) - 벌린, 아렌트, 푸코의 자유 개념을 넘어
사이토 준이치 지음, 이혜진.김수영.송미정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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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사이토 준이치는 와세다 대학원의 박사과정을 거쳐 현재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술원 교수로 재직중인 일본의 정치학자입니다. 더불어 사이토 준이치 교수는 일본 내 리버럴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국내에는 그의 대표적인 논저 ‘민주적 공공성’이 이미 번역되어 있는데요. 이 민주적 공공성이 처음 국내에 소개되었을 때 큰 관심을 받은바가 있습니다. 이 책의 일본어 원전 지난 2005년 이와나미 쇼텐에서 출판되었고, 국내에는 약간 늦은 2011년에 소개되었습니다.

기본적인 의미로 자유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오늘날 지유시장과 관련된 ‘신자자유주의’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관념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18세기 공화주의의 태동에 있어 ‘주권 개념’과 함께 ‘개인의 자유’는 이른바 도약을 하게 되었는데요. 과거 유럽에서 상업과 중간계층의 대두로 기존의 전통적 권력에서 소수이긴 하지만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계몽적 자각이 다수의 인간이 지배계급에 매몰되어 있던 시기를 극복하는데 초석이 되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그런 평가를 해보게 됩니다. 애덤 스미스가 미래의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시장에 의해 제약을 받게되리라는 것을 스스로 예견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영국 사상에서도 ‘시장’을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는 저자의 단언은 꽤 의미심장합니다. 이 책의 서두에서 사이토 준이치 교수는 “평등한 자유를 옹호하기 위해 쓰인 것이며, 극심한 자유의 불평등한 분배 상황이 그 자체로 ‘자유’라는 이름하에 정당화되는 사태를 어떻게 비판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써 나가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자유는 이사야 벌린의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구분으로 정치학의 화두로 등장합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알게된 벌린의 자유 개념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은 바로 “실제로 자유를 누릴 수 없다 하더라도 자유 그 자체가 부정되지는 않는다”는 그의 주장입니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들 가운데는 특히 개인들이 폭력에 노출되는 최소한의 안전 보장이 안되는 사항이나, 오늘날 시장의 권력이 비대해짐에 따라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경제적인 것’의 시녀가 되어,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고, 마찬가지로 시민의 개인적 관심사 내지는 삶의 목적성이 지극히 개인주의적으로 시선이 좁아짐에 따라 전혀 공공적인 것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상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통해 ‘자유’ 자체가 정치 본연의 모습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2장에서 저자는 벌린의 ‘소극적 자유’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것으로 자유의 전반적인 재정의를 시도합니다. 단순히 ‘간섭의 부재’ 상태 만으로 인식되는 이 소극적 자유가 어떻게 보면 국가의 정상 기능에 대한 침해와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잠정적인 분리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한나 아렌트는 ‘타자와의 교섭’을 통한 자유의 확충을 중요한 관점으로 여겨왔고, 이를 통해 권력관계와 지배상태를 논하며, 특히 지배상태에 놓이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자유를 보존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여긴바가 있습니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왜 다시 자유인가’의 패팃은 ‘공화적 자유’로서 법률에 기초한 국가의 간섭을 긍정합니다. 즉, 여기의 공화적 자유는 ‘법에 의한 자유’를 뜻하며, 국가 스스로가 자유를 온전히 향유하지 못하는 많은 ‘경계인들’의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근래의 신자유주의를 비롯한 ‘배타적 자유 옹호론자들’의 국가 저항주의를 반증하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공화적 자유’가 밝히는 최소한의 선에 저역시 긍정하는 편입니다. 어쩌면 그보다 법에 의한 보장으로서의 자유에 관심이 가는 거겠죠. 여기에 “많은 공화주의자들이 국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재차 강조”한 것은 이러한 맥락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4장에 집약되어 있는 “모든 자유는 자기 규율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주제는 자유와 자기 통제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의미입니다. 우리는 사실상 자신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역시 동일하게 보장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벌린의 ‘소극적 자유’는 그 자체의 의미를 환원하더라도 (타인에 의한) 간섭과 자신의 자유는 대칭적이고, 마찬가지로 (타인에 대한 자신의) 간섭 또한 타인의 자유에 침해가 되는 것이죠. 그런 의미로서 개인의 방종은 필히 제어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러한 전술 조건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자유만을 강조하는 것은 어찌보면 폭력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인종 차별이나 성차별 등 증오 표현을 행하는 사람이 그로인해 상처를 받는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사례에 극히 공감하게 되는 것은 ‘소수 발언의 자유’를 무조건 옹호하기 힘든 이유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법에 의한 ‘개인의 의견 피력에 대한 자유’를 부정할 의도는 없지만, 발언의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고 이로인해 그 폭력의 대상자 내지는 그룹이 사실상 자유를 제한당하는 지경에 이른다는 확장된 결론을 일시적으로 부정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이 책의 5장과 6장은 자유가 성공적으로 자리하기 위한 기반이 되는 안전과 필요한 공공성의 개념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저자가 피력한 이 글의 목적을 소개하면서, 오늘날 민주주의하의 자본주의 시장 경제 시스템에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마땅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은 그 이해와 분석의 중대한 결여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아마티아 센이 일찍이 주장했던 것처럼 “빈곤에는 단순한 물질적 곤궁 뿐만 아니라 기본적 자유의 박탈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은 위의 관점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여러기지의 능력 차등과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의 차이로 인해 대부분의 시민들이 자신의 자유를 영위하고 행하는데 차별과 차이를 갖게 만듭니다. 그럼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하는가 아니면 사회나 국가의 개입 내지는 조정이 필요한가에 대해서 애초에 ‘공화주의적 자유’가 법에 의해 보장된 모든 이들의 자유의 보존이라면 우리에게는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더욱 강화된 사회내에서 ‘민주주의 이념의 강화’로 이어지는 것이 최선의 방안일 것입니다. 민주주의 체제가 계급 갈등과 노골적인 계급 지배적 이념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면 본래의 가치를 보호하고 혹은 회귀에 나서 다수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에 방점을 찍어야 할 것입니다.

저와는 달리 저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소수의 자유를 옹호하는 일에 관심과 책임을 갖는 것이 바로 나의 책임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나’라고 지칭한 것은 저자 자신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겠죠. 타인의 자유에 대한 책임을 나 자신이 인식하고 한나 아렌트가 강조한 바대로 끊임없이 타자와의 교류와 교섭 및 서로간의 이해를 지속해 자유 자체가 안고 있는 본질적 위험을 해소시키는 것으로 점차 나아가야 하겠죠. 우리는 우리들 스스로의 자유를 위해 타인과 사회, 국가, 제도와 법을 통한 아주 다각적이고 다양한 원리들로 무장해 사실상 정치와 사회를 제거시킨 시장의 위협과 이를 옹호하는 소수들로부터 지켜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결국 정치와 자유는 서로 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상호보완적이라는 말을 이제야 이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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