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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착각과 오만 - 미국 민주당의 실패에서 배우기
토마스 프랭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미국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 출신으로 시카고 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역사학자로서가 아니라 미국 주류 정치학과 관련된 활발한 의견 개진으로 더 명성을 얻고 있는 토머스 프랭크의 최근 번역된 글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을 일독했습니다. 원제는 Listen, Liberal : Or What Ever Happened to The Party of The People 로 지난 2016년 출간되었으며, 국내에는 2018년에 번역 출판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토머스 프랭크의 글은 가장 최근에 서평을 썼던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 등에 이어 4번째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크게 만연한 불평등 문제와 원자화 된 노동자 그리고 미국 민주당의 변질과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실패를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위의 주제를 기본 토대로 삼고 후기 산업 사회에 이르러 계급 사회적 측면에서 ‘소위 전문가들의 등장’과 이들을 광범위하게 포함하여 ‘엘리트 지배 정치’에 대한 사실상 이런 패착에 대해 깊이 다루고 있습니다.
우선 1장 2장은 따로 분리해 다른 주제로 만들어도 될 만큼 근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지배 계급이라고 일컫는 ‘전문가 집단’과 이들이 바라보는 광범위한 불평등 문제에 대한 저자 자신의 상세한 이해와 분석을 담아 놓고 있습니다. “이들 소위 전문가들의 전문성이라는 것이 후기 산업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왔다”는 점은 단순히 부와 명예를 손에 넣은 유산자 계급에 대한 협소한 평가가 아니라 대중들의 인식과 특히 지식인들이 이들 전문가들에 대한 정상적인 견제와 비판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토머스 프랭크 자신의 자기 고백으로까지 저는 느껴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후기 산업시대에 이르러 더욱 ‘노동자들의 원자화’를 가혹화시키고 이러한 과정에서 전문가 집단이 ‘개인의 능력이 부족하고 학업의 기회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은 그 결과로 불평등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 전문가 집단들 자체가 이런 시민의 삶과 사회의 일면에서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불평등 문제 전반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 내지는 무시가 바로 이런 인식에 기반하는 것으로 여겨도 지나치지 않아 보였습니다.
노동자들의 원자화와 이런 불평등의 문제는 우리가 필연적으로 해결해야 되는 부분으로 조지 H. W. 부시에 이어 집권한 민주당의 신민주당원인 빌 클린턴의 “세계가 단일 시장으로 변모하고 집단 행동이나 정치, 경제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이 아닌 개별적인 자기 계발 노력만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주장은 최소한의 문제 해결에 대한 인식을 자의적으로 결여시키고 그것을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자연현상에 빗대어 어떠한 논의를 봉쇄하고 오로지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세운 어느 변절한 리버럴한 정치인의 모습이라고 말한다면 아마 미국의 빌 클린턴 지지자들의 비난이 이어지겠죠. 여기에서 토머스 프랭크는 클린턴이 집권 시기에 놀랄만한 경제적 호황과 높은 고용률로 인해 커다란 면죄부를 부여 받았지만 실상 조금만 파헤쳐 보면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 없게 과도한 것인지 알 수 있다고 증명합니다. 앞서 불평등 문제는 “사람들의 직업을 단순히 업그레이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로 과거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집중된 경제 권력이 모든 면에서 민주주의나 평등 같은 요소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많은 시민의 지지 기반을 바탕으로 정치 활동에 나서는 정치인들이 오늘날 미국에서는 이른바 공화당 의회가 ‘금권 정치’에 물들어 이것을 민주당 즉, 리버럴이 해소시킬 수 있느냐는 오바마의 시대에 원천적으로 잘 드러낸 바가 있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수많은 이민자들의 이익을 대변할 만하고 2008년 뉴욕 발 세계 금융 위기를 초래한 조지 W. 부시의 실패 보다도 한발 나아갈 수 있는 정치적, 법적 근거를 갖고 있었음에도 오바마는 민주당 뿐만 아니라 미국 진보층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국가 감시 체계에 대한 그 애매한 태도와 함께 2008년의 ‘채권 휴지화’의 주역들을 오히려 인센티브를 받고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다들 호사스런 개인 별장으로 은퇴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은 이들의 중요한 인권을 위한 것인지, 민주당 역사상 가장 많은 은행 및 금융권의 기부금을 받은 이력 때문인지는 불확실합니다. 여기에 저자인 토머스 프랭크는 높은 학벌과 학위를 받은 소위 엘리트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며, 1930년대 플랭클린 루스벨트의 민주당 정부가 뉴딜 정책을 통해 저학력자나 기반이 없는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사회가 붕괴되지 않도록 비 엘리트 출신의 각료들이 아주 슬기롭게 위기를 헤쳐나간 것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진보주의가 소수의 전문가들과 엘리트들에게 달려 있다는 점은 이것을 ‘반동’이라고 해석해야 될지 아니면 포퓰리즘 시기에 제일 먼저 지리멸렬한 진보 세력의 운명이라고 해야할지 이것 자체를 ‘신의 운명’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더욱더 우리가 원자화되는 길로 스스로 나서야 할지는 어느것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불평등 문제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날씨처럼 저항할 수 없는 자연의 힘으로 만드는 것”이 수많은 기득원 우파들의 논리였다면 그것을 견제하고 복지를 걷어찬 클린턴 행정부에 대한 비판을 해야만 했던 진보의 의무였으나 민주당 일각에서도 도널드 트럼프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워싱턴에서 공화당의 광신적인 티파티는 여전함에도 미국의 진보가 왜 이렇게 지리멸렬했는지는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으로 망하게 되는 연장서상의 한 장면일 뿐인지는 앞으로 더 고심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끝으로 이 책에서는 저의 암울한 결론에 토머스 프랭크는 실리콘 밸리와 같은 혁신 계급이 진보 계급을 대변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혁신은 그야말로 평등과 관련된 문제로 전방위적인 기술 혁신이나 기술 지식 노동이 과연 불평등 문제에 있어서 어떤 해결책을 손에 쥐어줄 수 있을지는 이 부분도 앞으로 많은 논의가 있어야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을 통해 한가지 통찰력에 이를 수 있었는데요. 법적으로 경제적으로 우월한 시기에 강력한 근거를 갖고 출범한 오바마 대통령의 참담한 실패가 아마도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을 초래한 중요한 원인이라는 점입니다. 정말 행간에 떠도는 강력한 군산복합체의 로비에 오바마가 굴복한 것인지 (음모론은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휴지 조각에 불과한 오바마 케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금융 및 경제 기득권들에게 항복한 것인지는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그의 실패가 수많은 미국 노동자들의 좌절을 불러 일으켜 트럼프라는 괴물을 만들어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시 진보성을 회복하는 민주당의 정체성의 개조와 혁신을 통한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는 다소 비관적이지만 미국 정치와 시민들의 내면화된 확고한 민주주의적 태도를 기대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맏형이 이대로 쓰러지는 것은 우리에게도 매우 불행한 일이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죠.
“진짜 문제는 노동자의 불충분한 지성이 아니라 불충분한 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