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시작한 이래 늘 그렇듯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아인슈타인이고, 철학자 스피노자는 스피노자라는 생각으로 지내왔다.

아니 그들 사상의 공명 가능성 여부조차 까마득하게 생각하지 못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어떻든 그런 암흑시대 후 아인슈타인이 자신은 존재의 질서정연한 조화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을 뿐 인간의 운명과 행동에 관여하는 신은 믿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두 사람의 연관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이론에 엄격한 결정론을 적용하고 확률의 그 어떤 근본적 역할도 거부한 것은 스피노자의 우주적 질서 개념에 대한 믿음이 작용했고 어쩌면 그가 받은 뉴턴 물리학도 한몫 했을 것(폴 핼펀 지음 ‘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 164 페이지)이란 글을 읽기 전까지 알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아인슈타인의 결정론적 사고 체계와 무한하고 완벽하고 영원한 신 즉 자연이라는 스피노자의 사상이 관련된다는 생각이다.

스피노자의 엄격한 결정론적 사고 체계에 대해서는 기꺼이 지지를 보냈지만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은 불편하게 여겨온 것도 사실이다.

폴 핼펀에 따르면 슈뢰딩거는 우리가 만일 스피노자가 주장한 것처럼 영원하고 무한한 존재의 한 조각 또는 그 존재의 한 측면이나 변형이라면 당신은 그 가운데 어느 부분, 어느 측면이며 그것을 객관적으로 다른 것들과 구분해주는 것은 무언이란 말인가?란 말을 했다.

과학자에 대해서든 철학자에 대해서든 핼펀처럼 온전히 두 학자의 삶과 사상에 비교 분석의 메스를 댄 사례는 흔하지 않을 듯 싶다.

더구나 재미는 덤이고 더불어 고급 과학 지식까지 배울 수 있게 배려했으니 두고 두고 읽을 만한 책을 만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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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7-03-30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 - 저도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즐거운 독서하시기 바랍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7-03-30 20:53   좋아요 0 | URL
네... 그러시군요... 감사합니다... 읽을 만한 책입니다...
 

페북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

˝Hedonic adaptability means that even as we achieve our dreams our expectations rise in tandem, resulting in no permanent gain in happiness.˝..

쾌락의 적응 또는 쾌락의 역설을 의미하는 말이다. 원하는 바를 이루면 기대치도 함께 올라가 그 이룬 바가 의미가 없어진다(무용해진다)는 의미이다.

붉은 여왕 가설을 생각할 수도 있고 불교학자 에드워드 콘즈가 말한 되짚어 오는 고통(suffering from reversal)을 생각할 수도 있고 점증하는 강도에 의해서만 효력을 내는 마약을 생각할 수도 있다.

붉은 여왕 가설은 어떤 생물이 진화하더라도 자연환경이나 경쟁 대상이 매우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경쟁에서 뒤처지며, 자연계의 진화 경쟁에선 어느 한 쪽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움직이는 트레드 밀(러닝 머신) 위에서 뒤로 밀리지 않으려면 계속 발을 내딛어야 한다.

되짚어 오는 고통이란 쾌락은 모종의 조바심과 끈이 맺어져 있어 줄거울 때에라도 그것을 잃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스며 있음을 의미한다.(‘한글 세대를 위한 불교‘ 78 페이지)

tandem이란 말이 인상적이다. 따라, 같이, 함께, 동시에 등을 뜻하고 쌍두마차를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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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이 발전하려면 사치도 빈곤도 아닌 여유(schole)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그리스어 스콜레는 라틴어 스콜라와 영어 스쿨의 기원이다.)

예전 내 명상 스승께서는 수행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곤 하셨다.

천인(天人)들은 너무 행복해서 수행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지옥 중생들은 고통스럽기만 해 수행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인간은 고통과 즐거움을 두루 겪기에 수행을 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고통에 처한 모든 사람들이 수행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수행의 대체재는 많다.

수행 대체재의 의미를 지니지 않은 글쓰기가 더 많겠지만 나는 글쓰기를 수행의 훌륭한 대체재라 생각한다.

다만 글쓰기 역시 철학이나 수행처럼 적절한 인연이 되어야 할 수 있다.

SNS에 넘치는 글들이 궁금하게 하는 것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어떤 동기로 사람들은 글을 쓰는가란 것이다.

동기의 대부분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행복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이라는 매체의 특성이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가끔 주위 사람들로부터 어떤 동기로 글을 쓰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런 질문에 나는 일부러 모호하게 연습을 위해서 쓴다고 답한다.

현재로선 이것이 최선의 답이다. 다시 명상 스승의 말씀을 인용하자면 그 분은 매 순간 순간을 놓치지 않고 보는 것이 수행이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
수학에서 미분(微分)이 어떤 순간에나 운동 상태를 포착하게 해주는 수단이듯 수행은 작은 순간들까지 놓치지 않고 보게 하는 수단이다.

지금으로서 내 글쓰기는 그 주시(注視; sati)가 가져다주는 고통의 소멸들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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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심리학자의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을 읽고 있습니다. 이 분은 제가 신청한 페친입니다.

제게 여러 전문가들 또는 전문가급의 사람들이 친구 신청을 해오고 있어 귀추(歸趨)가 주목되는 가운데 저는 이 분이 제게 친구 신청을 한 분이 아니어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시간에 쫓기는 분이고 글을 워낙 잘 쓰는 다른 페친들의 글을 읽는 데만도 시간이 많이 들 것이기에 제 글까지 읽을 여지가 별로 없겠지만 만일 읽는다면 참으로 난감하리라 생각합니다.

이 분은 박근혜가 심리적으로 의존 상대를 필요로 하는데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마저도 극소수로 그 극소수는 박근혜를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인터뷰를 지난 2015년 4월 한 분입니다.

이 분이 예시한 바에 따르면 1940년대 초 미국 OSS(CIA의 전신)가 한 심리학자에게 히틀러의 심리분석을 의뢰했다고 합니다.

그 심리학자는 히틀러를 직접 만날 수 없기에 그의 저서나 연설, 기사 등에 기초해 심리 분석을 해 히틀러가 위기 상황에 몰리면 극적인 자살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예측을 해 적중시켰지요.

1944년 일본이 항복 후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하려는 미국 정부의 요청을 받고 직접 적국인 일본을 찾아갈 수 없기에 저서와 기사, 영화 등의 간접 자료들에 의거해 ‘국화와 칼’이라는 명저를 쓴 루스 베네딕트의 사례를 떠올릴 법도 하지만 히틀러를 정확하게 분석한 그 심리학자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어떻든 며칠 전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인 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에 대한 글을 일화(逸話) 중심이긴 하지만 쓴 뒤 물리학 교수 한 분과 과학 저술가 한 분으로부터 좋아요 클릭을 받은 뒤 글을 더 신중하고 정확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저는 제가 받은 친구 신청은 대체로 ‘와서 보라’는 의미의 초대장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전문가들의 그것은 말입니다.

김태형 심리학자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갈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사소한 마음의 상처도 대통령이 되면 완전히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말로 안철수의 말을 분석합니다.

개인으로 살아가면 굳이 심리 분석을 할 필요가 없고 대권(이 말은 상당히 권위주의적인 말이지만 우리의 현실을 리얼하게 반영하기에 그대로 씁니다.)에 도전한 이상 심리분석은 필수라 말합니다.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은 2017년 연말의 대선 정국에 맞춰 기획했지만 탄핵으로 대선이 앞당겨짐으로써 문재인, 이재명, 안철수, 유승민 등만을 대상으로 하고 안희정, 심상정 등은 다루지 못한 미완의 기획입니다.

특히 제가 지지하는 심상정 의원의 결락(缺落)은 아쉽습니다.(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의 분석을 반기지 않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저는 지지하기에 더욱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달 김태형 저자의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와 ‘거장에게 묻는 심리학’을 읽은 이래 이 분의 책을 집중적으로 읽어야겠다고 다짐했으나 실행하지 못한 아쉬움을 이 책으로 달래고 본격 가도에 들어설 것을 다시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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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3일 패치라는 이름의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가 미국 오리건주 법원으로부터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무성(無性) 판정을 받아냈다.

패치는 원래의 성과 이름을 무효로 하고 무성 판정과 함께 새로 사용하게 된 ‘성명 구별 없는 이름’이다. 패치의 사례는 사상 최초이다.

지난 2013년 앤서니 보개트의 ‘무성애를 말하다’를 읽은 이래 약 4년여 만에 듣는 희유(稀有) 아니 초유(初有)의 소식이다.

무성애는 성욕은 느끼지만 상대와 성관계를 원하지 않는 경우, 감정적으로 끌리지만 성욕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

성욕도 느끼고 감정적으로도 끌리지만 성관계를 거부하는 경우, 성을 혐오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 등을 말한다.

보개트는 무성애자의 비율을 1%로 추정한다. 이들 가운데 13% 정도가 자신의 정체성이 남성 또는 여성으로 규정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적 성애자들 가운데 남성 또는 여성으로 규정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비율은 1 ~ 2%이다.

구글에 무성과 무성애의 차이를 논한 글들이 많지만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여섯 살 무렵부터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는 말들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으며, 자신은 트랜스젠더도 아닌 것 같다는 패치의 말이다.

한 외국 사이트는 성 정체성은 넓은 스펙트럼을 지니지만 패치는 그 스펙트럼의 어떤 곳에도 위치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궁금한 것은 이 부분에 대해서이다. 판결 이전 패치가 간직했던 정체성은 정확하게 남성과 여성의 중간이었을까, 란 점이다.

뷔리당의 당나귀란 개념이 있다. 뷔리당은 14 세기 초, 중반에 주로 활약했던 프랑스의 철학자겸 물리학자인 장 뷔리당을 말한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론을 반박해서이기보다 뷔리당의 당나귀란 개념으로 인해서이다.

당나귀가 질과 양 양면에서 정확히 똑같은 두 개의 건초더미의 정확히 중간 지점에 있을 경우 즉 어떤 차이도 없는 경우에 처하면 두 가지 가운데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굶어죽는다는 것이다.

뷔리당의 이야기는 뒤얽힌 채 알려져 있다. 뷔리당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했다. 조롱의 의미가 다분한 뷔리당의 당나귀란 개념은 뷔리당이 제시한 것이 아니다.

이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신봉했던 사람들이 자유의지를 부정(결정론을 제시)한 뷔리당을 조롱하기 위해 꾸며낸 것이다.

수학자/ 물리학자/ 생물학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이란 책에서 뷔리당의 반대자들이 제시한 가정의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한다.

피셔는 물론 뷔리당에 대해서 반박하는데 이는 그가 역사적 배경에 무관심해서일 것이다.

피셔의 논리는 현실에서 완전히 동일한 건초더미는 없고(“물리학적 세계는 통계적 편차로 가득하고, 생물학적 세계는 변이들로 가득하다.“),
두 물체 사이의 정확한 중간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이상적인 공간에서만 가능하기에 당나귀는 어느 한 쪽으로 가서 건초를 먹어 주린 배를 채워 굶어죽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정신의 동요에 빠져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인간은 당나귀이지만 그런 정신의 동요에서 빠져나오게 해주는 것 즉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자유의지가 아니라 사유의 힘이라는 말을 했다.

잘 알려졌듯 스피노자는 자유의지를 부정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자유는 인정했다.(이 부분은 길고 복잡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심강현의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3부 ‘자유, 전염된 타인의 욕망으로부터 자신의 욕망으로’를 참고하면 좋을 것.)

이제 처음 이야기로 돌아와 말하면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성 정체성 스펙트럼의 정확히 중간 지점에 위치할 수 있을까, 란 의문이다.

미세한 차이의 물매(기울기)가 있음은 물론일 것이다. 물론 패치는 극히 사소한 차이는 가지 치고 크게 보아 중간이라 의미 없다고 말했을 테니 내 이야기는 너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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