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高興).. 고두현 시인의 경남 남해(南海)와 혼동을 한 적이 있었다. 몇 년이 되었지만 고흥은 아직 낯설고 멀게만 느껴진다.

참 갑작스레 전남인(全南人)이 된 여동생을 위해 어머니를 모시고 그의 고흥 집에 갔던 것이 한 서너번쯤 되건만..

고흥에 대해 말하라 하면 우주센터가 있는 나로도 말고 더 이상 생각나는 것이 없다.

지난 2015년 전남의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된 이후 고흥의 연홍도가 ‘지붕 없는 미술관‘(국내 유일의 미술섬)으로 꾸며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도를 펴보았다.

예상대로(?) 연홍도는 고흥의 서쪽 최남단에 위치해 있는, 고흥 중심지에서 많이 떨어진 멀고 먼 곳이다.

제주(濟州)라는 최적(?)의 유배지가 있지만 외람되게도 전남의 섬들을 생각하면 조선시대의 유배(流配)가 생각난다.

고흥과 남해를 혼동하는 것은 고두현 시인의 시 ‘늦게 온 소포’에도 나오듯 두 곳 모두 유자(柚子)로 유명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앞서 남해를 말했지만 이곳은 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까닭에 유배지로 각광을 받았다.

서포 김만중이 유배객으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은 곳인 남해에는 유배문학관이 있다. 고흥에 유배문학관이 없지만 유배된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세조 원년에 단종 폐위를 반대해 문한(文漢)이라는 사람이 흥양도로 유배되고 예종 원년에 한한수(韓韓守)라는 사람이 이시애의 난에 연루되어 흥양도로 유배되는 등 고종조까지 고흥에 유배된 조선인들은 60명이 넘는다.(다음 카페 ‘고흥문화관광해설가’ 수록 ‘조선시대 고흥의 유배인 고찰’ 참고)

5월쯤 고흥에 갈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다. 가면 사랑스러운 열다섯 살 남중생 조카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남해는 꼭 가고 싶다. 그 유명한 독일 마을보다 남해 유배문학관을 먼저 찾게 될 것이다. 기이한 행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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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4월 26일) 윤동주 문학관을 서둘러 둘러본 탓에 시인의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을 사진으로 담았을 뿐 실제 올라가지는 못해 미진한 마음이 크다.

한옥 도서관인 청운문학도서관에 마음을 빼앗겨서일 것이다. 기회가 되면 다시 찾아 시인의 언덕을 오를 것이다.

올해는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의 해이다. 지난 27일 열린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세미나에서 홍정선 교수가 한 말이 가슴을 흔든다.
홍 교수는 윤동주를 저항시인이라 부르는 것은 탐탁하지 않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저항시인이라는 말이 윤동주의 본질적인 모습을 가리거나 무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홍 교수의 말을 따르면 윤동주 시인은 신의 어린 양(agnus dei) 같은 사람이 된다. 흥미로운 문제제기이다.(물론 홍 교수 입장에서는 흥미로운 문제제기이지만 나에게는 공부 거리가 는 것이다.)
시인의 언덕에 오르면 서시(序詩)가 새겨진 돌이 있고 멀리 남산이 보인다. 무슨 명분으로 다시 시인의 문학관을 찾을까?

시인의 문학관과 청운문학 도서관을 찾기 위해 탄 1020번 버스를 이용하면 부암아트홀도 갈 수 있다.(7212, 7012번도 마찬가지)

적당한 repertoire를 골라 간다면 5월 마지막 토요일인 27일(18시..플룻 듀오 연주회)이 좋은데 한 달 가까이 남아 기다리기가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쿨라우, 도플러, 들리브, 쇼커 등 생소한 작곡가들의 곡들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기대감이 크다.(인문 도시 종로에서 플롯 소리라니..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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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 박물관 -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박찬희 지음, 장경혜 그림 / 빨간소금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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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 학예사의 '구석구석 박물관'은 38만점에 이르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들을 선사 및 고대관, 중근세관 등으로 나누어 설명한 책이다. 지식을 전하는 것 이상으로 박물관의 문화유산을 보고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주안점을 둔 책이다. 관심 있는 관계자는 물론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들까지 두루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할 만한 자료이다.

선사 및 고대관, 중근세관을 알아보기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의 개괄적 정보가 제시되었는데 우리나라 박물관의 역사 및 설계자의 의도, 영향을 받은 건축물들에 대한 이야기, 박물관을 활용하는 방법, 주의 사항, 유물이 박물관에 오게 된 사정, 그리고 관련된 역사적 인물들을 제한적 범위 안에서 최적의 조합으로 설명한 방식이 돋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유물의 비밀을 푸는 방법’이란 글이다. 옛날 글씨를 쓰던 재료인 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적외선을 쏘아 눈에 보이지 않던 글자를 알아보는 것도 그렇고 엑스레이를 조사(照射)하자 그림 속에서 또 다른 그림이 나온 것도 그렇다.

삼국시대의 책이나 종이 문서는 앞으로도 발견될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금석문은 앞으로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는 부분도 의미 있게 들어야 할 부분이다. 저자는 유물들은 원래 박물관에 전시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상상력으로 그들이 박물관에 오게 된 배경이나 역사적 상황을 헤아려보라는 의미이다.

저자는 박물관을 유물을 조사, 보존, 연구 전시하는 공간으로 설명한다. 선사 및 고대관에서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 주먹도끼, 농경문 청동기, 고조선, 가야 및 부여 등에 대해 친절하고도 쉬운 설명이 제시된다. 이 부분에서 흥미로운 내용은 우리가 미역을 먹게 된 것은 새끼를 낳은 어미 고래가 미역을 먹는 모습을 보고 따라 먹기 시작하면서부터라는 설명이다.

가야가 철이 풍부했었던 것은 쇠의 바다라는 뜻의 김해(金海)라는 지명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일부 역사가들은 가야도 고대 역사에서 중요했었으니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이 아닌 가야를 포함한 사국시대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봉황의 머리를 닮은 유리병인 신라의 봉수형(鳳首形) 유리병을 설명하며 저자는 삼국시대의 문화는 먼 지역까지 오고 갔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풍성해졌다고 덧붙인다. 봉수형 유리병은 우리나라의 일반적 양식과 차이가 크고 지중해 및 인근의 것들이라 보는 게 타당하다.

조령(鳥靈) 신앙이 있었는데 이는 새가 죽은 이들의 영혼을 하늘이나 다른 세상으로 옮겨주는 역할을 한다고 믿은 것을 말한다. 후에 그 역할은 말이 잇는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의미부여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저자는 최고의 걸작으로 소문난 석굴암을 예로 들며 사실 과장된 측면이 있으니 자기 눈에 무엇이 보이는지, 솔직하게 어떤 느낌이 드는지 헤아려 보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유물을 공부하는 바람직한 태도일 것이다.

고려 청자, 앙부일구, 임진왜란, 대동여지도 등을 설명한 중근세관에서 저자가 말했듯 청자를 볼 때 나아가 다른 유물을 볼 때도 그것을 사용한 사람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든 사람, 만든 장소도 함께 떠올려야 유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구석 구석 박물관'의 장점은 디테일에 있다. 고려 개성의 관문이었던 벽란도(碧瀾渡)의 도(渡)가 섬이 아닌 나루터를 의미한다고 지적하는 것이 그렇다. 향을 피우는 그릇이 향완(香碗)임을 환기시키는 것도 그렇다. 목판을 새기는 사람을 각수(刻手)라 부른다고 말하는 부분도 새롭다.

저자는 청자에 따라다니는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기분 좋은 말 뒤에 숨은 시대의 속사정을 헤아려볼 때 유물을 다양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점이 바로 유물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이고 공부를 하는 좋은 방식일 것이다. 저자는 국보든 보물이든 지정되지 않은 유물이든 저마다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말했듯 '구석 구석 박물관'은 공부하는 자세, 유물을 대하는 방법, 나아가 생각하고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내는 방식을 깨닫게 하는 책이다. 관련된 많은 책을 읽고 답사도 부지런히 하며 진정으로 공부하고 유물을 사랑하는 문화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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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유물들 가운데 전시되는 것은 일부이고 대부분은 수장고(收藏庫)에 갇힌 채 영원한(?) 시간을 보낸다.

유물이 늘어 수장고의 공간적 여유가 없어지면 다른 곳으로 옮겨지겠지만 학예사들이 설정한 흥미로운 주제에 합당해 전시되지 않는 한 수장고 처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유물들은 원래 박물관에 전시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즉 박물관은 유물의 고향이 아닌데 전시라도 된다면 보람을 느끼겠지만 수장고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면 어둠과 슬픔으로 물든 삶을 사는 것이 된다.

책은 어떨까. 책도 보관 창고에 갇혀 빛을 못 보다가 폐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책의 그런 운명보다 더 한 문제는 생각을 풀어내지 못하는 것일 테다.

학예사들이 설정한 주제에 따라 유물들이 전시되듯 미발현된 내 생각들도 주제가 얼마나 흥미로운가에 따라 구체화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갇혀 지내는 것들이 얼마나 빛을 보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의 정도는 다르다.

(두보의 시를 응용해 말하자면) 얼마나 많은 꽃잎이 떨어지는가에 따라 봄빛의 양이 달라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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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대 시인의 ‘앵두꽃을 찾아서’에 “소주이거나 항주이거나”란 표현이 있다.

소주(蘇州)와 항주(杭州)는 중국의 명승지(名勝地)인데 소주이거나 항주이거나란 표현은 모두 아름다운 곳이니 차이가 없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인접(隣接)한 곳이기에 차이가 없다는 의미인지?
어제 사전 예약을 거쳐 경회루 2층 누각에 올라 높은 시야 즉 왕의 시선으로 경복궁 사방 풍경을 보았다.

평소와는 사뭇 다른 감회가 느껴졌는데 내게는 서쪽 방향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낙양각의 기둥과 기둥 사이에 펼쳐진 푸른 초목과 하늘 등의 풍경이 마치 액자 속의 절경을 보는 듯 했기 때문이다.

창덕궁 후원에 비견할 곳이 경복궁에는 무엇이 있는가, 란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제 경회루 2층 누(樓)에서 보는 낙양각 기둥과 기둥 사이의 풍경이라 말하고 싶다.

경복궁 (전체)이거나 경회루이거나란 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열린 마당의 경우 계단을 올라 보면 남산 풍경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마치 액자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안양루(安養樓) 아래에서 보는 위쪽 풍경이 액자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부석사(浮石寺)도 생각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설계자는 바로 이 영주 부석사(浮石寺)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기록을 보니 부석사가 세워진 것은 676년이고 1580년과 1740년 중건되었다.

경복궁은 1867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건되었다. 부석사(중건된 해는 1740년)가 경복궁(중건된 해는 1867년)보다 먼저 지어졌으니 경복궁 경회루의 액자 풍경이 부석사 안양루의 액자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연출된 것이라 볼 여지가 있다.

물론 우연의 산물일 수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아니 경회루의 경우든 안양루의 경우든 국립중앙박물관 열린 마당의 경우든 의도의 산물인지 우연의 산물인지가 사실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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