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이 발전하려면 사치도 빈곤도 아닌 여유(schole)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그리스어 스콜레는 라틴어 스콜라와 영어 스쿨의 기원이다.)
예전 내 명상 스승께서는 수행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곤 하셨다.
천인(天人)들은 너무 행복해서 수행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지옥 중생들은 고통스럽기만 해 수행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인간은 고통과 즐거움을 두루 겪기에 수행을 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고통에 처한 모든 사람들이 수행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수행의 대체재는 많다.
수행 대체재의 의미를 지니지 않은 글쓰기가 더 많겠지만 나는 글쓰기를 수행의 훌륭한 대체재라 생각한다.
다만 글쓰기 역시 철학이나 수행처럼 적절한 인연이 되어야 할 수 있다.
SNS에 넘치는 글들이 궁금하게 하는 것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어떤 동기로 사람들은 글을 쓰는가란 것이다.
동기의 대부분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행복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이라는 매체의 특성이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가끔 주위 사람들로부터 어떤 동기로 글을 쓰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런 질문에 나는 일부러 모호하게 연습을 위해서 쓴다고 답한다.
현재로선 이것이 최선의 답이다. 다시 명상 스승의 말씀을 인용하자면 그 분은 매 순간 순간을 놓치지 않고 보는 것이 수행이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
수학에서 미분(微分)이 어떤 순간에나 운동 상태를 포착하게 해주는 수단이듯 수행은 작은 순간들까지 놓치지 않고 보게 하는 수단이다.
지금으로서 내 글쓰기는 그 주시(注視; sati)가 가져다주는 고통의 소멸들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