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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의 포구기행 - 꿈꾸는 삶의 풍경이 열리는 곳
곽재구 글 / 해냄 / 2018년 12월
평점 :
제목만 많이 들었던 이 책을 좋은 이웃 영맨님의 블로그에서 보고 마음에 담아 두었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빌려 왔다. 내가 바다를 좋아한다는 것을 얼마 전에 깨닫고 그 후로는 바다가 더 좋아졌다. 얼마 전에 본 제주 해변과 포구도, 어릴 적 기억 속 바다도, 즐겨 가는 뱃터도 모두 정겹고, 아름답다. 이 책은 그냥 아름답기만 한 바다가 아닌 생계를 위한 일터에서 삶의 끊임없는 물음에 대한 답을 얻으려 했던 한 시인의 고뇌가 담긴 것이다.
내가 철이 든 후 가장 좋은 바다에 대한 기억은 대학교 4학년 때 졸업을 앞두고 졸업 작품을 그리기 위해 삼천포 바다에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한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어딘가에 갔던 기억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고등학교 때 멀리 등하교하는 딸을 데려다준 몇 번 외에 둘만 어디에 갔던 기억이 거의 없다. 그래서일까 그때 아버지랑 갔던 삼천포 바다는 나에게 추억으로 남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 찍은 사진으로 50호짜리 수채화 하나와 유화 하나를 그림으로 그려 졸업작품 전시회에 출품했었다. 그림을 그리며 계속 바다와 아버지를 추억했다는 의미다. 그때 교수님도, 친구들도 왜 좋은 것 다 놔두고 낡고 녹슨 배를 그리느냐고 물었었다. 그런데 녹이 슬어서 좋았고, 배라서 좋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그 배들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누군가를 호화롭게 태워 여행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삶의 애환이 담긴 생계 도구라는 것이 어린 마음에도 애잔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곽재구 님은 그런 마음으로 하고많은 관광지 중 포구들을 고른 것인지도 모른다.
책에는 내가 처음 듣는 지명들, 어청도, 구만리 포구, 인지리, 남동리 포구, 화포, 지심도, 상족 포구, 어란 포구가 등장한다. 수없이 많은 포구와 지명들을 가진 곳이 좁은 듯 넓은 이 땅의 삼면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섬들을 에워싸고 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그곳들을 집에 앉아 책으로 다닌다. 시인과 함께 포구를 거닌다. 그런 느낌이다. 책의 뒤로 갈수록 나의 마음은 정말 파도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멈출 수 없는 일렁임. 그건 바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다. 충무에, 여수에, 사천(삼천포)에 가고 싶다. 변산반도로, 제세포로, 선유도로, 화진으로 향한다. 이 책의 부작용(?)이다.
여수로 갔다는 충무의 두둥실호는 잘 운항하고 있을까? 시인이 이 책을 쓴지도 벌써 2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그의 마음속 버킷리스트인 두둥실호를 끝내 탔을지 궁금하다. 충무에 가면 두리둥실호를 볼 수 있을까? 마음에 담아도 담아도 다 담지 못하는 책의 부분들 때문에 결국 책을 샀다. 2002년 아마도 초판일지 모를 그 책이 1700원에 팔리고 있었다. 배송료보다 적은 돈으로 나는 시인의 설렘 가득했을 그 책을 손에 넣은 것이다. 이후 TV에 소개되면서 이 책은 굉장한 유명세를 탔고, 외국에까지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의미 있는 포구들과 지명에 얽힌 역사 속 인물 이야기들, 그리고 시인이 여행지에서 만난 살아있는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들이 여행지의 추억을 더 깊게 해 주었다. 실명을 담은 책 속 그들은 지금 잘 살고 있을까? 제자라는 K는 아이와 함께 중년의 나이가 되어 있겠지.
가끔 오래전 영상을 보면서 저 사람은 아직 생존하고 있을까, 아니면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까, 생각하는 때가 있다. 세월은 너무 빠르고 우리는 이 땅을 잠깐 여행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포구를 거닐며 역사와 삶에 대해 생각하고 발걸음을 돌렸던 시인처럼 우리는 똑같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간다. 한 번의 여행. 남들보다 조금 더 갖기 위해 아등바등 영원히 살 것처럼 지내는 건 아닌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도 태연한 바다처럼, 수많은 물고기와 끼니를 위해 그물을 던지는 어부들과, 지친 일상을 뒤로 하고 잠깐의 쉼을 즐기는 이들을 품는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것을 다짐하지 않았을까, 포구 여행을 마친 시인은. 책 덕분에 가고 싶은 여행지가 늘었다. 앞으로 내 여행의 구실이 될 것이다.
* 목소리 리뷰 *
https://www.podty.me/episode/15532857
- 훨훨 날아가렴. 또 다른 어딘가에 마을을 이루고 새로운 꿈을 꾸렴. 그래, 나도 언젠가 그 마을에 이르러 새로운 날들의 시를 쓸 테니……. 사방은 고요하다. 나는 갈대숲 사이를 걸어 다시 내가 사는 도시 속으로 돌아온다. 그럴 때 나는 종종 안드레아 보첼리의 노래를 듣는다 .아무것도 볼 수 없음으로써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 침묵함으로써 모든 욕망과 영혼의 본질 속으로 여행할 수 있는 시간들. 나는 내 꺾인 날개를 소중하게 바라본다. 고요하게 살아있는 순천만의 모든 생물들, 그들의 꿈, 삶의 지혜들……. 스무 살 적, 시에 젖어들던 그 침묵의 시간들 속으로 나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122-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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