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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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699237015

 

  이번달 함께 읽는 책으로 정한 이 얇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 시작했을 때, 책을 참 잘 정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군더더기 없는 우아한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중간을 넘어가면서 등장하는 동성애 성향을 가진 페긴(친구 딸)이 벌이는 낯선 일들의 적나라한 묘사에 잠깐 놀라기도 했다. 한 편의 연극 공연을 보는 듯한 짧은 소설이 강렬하다.

 

  한동안 무대를 주름잡던 연극배우 사이먼은 무력감에 시달리다 못해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아픔을 겪은 한 여성은 그곳에서 나간 후 소원하던 일을 이룬다. 스스로 생을 마감할 궁리를 하던 사이먼은 난데없이 찾아온 친구 딸 페긴을 만나면서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키운다. 동성애자인 페긴을 변화시켜 남들처럼 평범한 노후를 보내고 싶었던 사이먼은 모든 것이 자신의 상상이었음을 깨닫고 나락으로 치닫는다.

 

  무대에서의 연기를 더 이상 하지 못하는 대신 자신의 인생을 연극처럼 마친 사이먼을 보면서 노년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의 마음과 다르게 점점 고장나 가는 몸, 의지와 다르게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에 대해 좌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 보통의 사람들이다. 그가 만약 화려한 젊은 시절을 보냈을 경우 더 그럴 것이다. 왕성한 활동을 하던 헤밍웨이가 말년에 뜸한 것을 놓고 우울증이라고 생각하거나 엽총사고를 자살로 추정하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노년의 시절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 수 있을까? 몸이 아픈 것도,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는 것도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한 행복하게 지내려고 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과거를 회상하며 무능한 자신을 한탄하며 세월을 보내야 할까? 이 책에서 사이먼이 마지막으로 연기했던 체호프의 연극대본 <<갈매기>>를 읽어보고 싶다.

 

- "우리는 잃기도 하고 얻기도 해요. 전부 종잡을 수 없는 일이죠. 종잡을 수 없음이 지닌 무한한 힘. 반전 가능성. 그래요, 예측 불가한 반전과 그것이 지닌 위력이죠."



- 그는 그림을 그리는 자기 모습을 그렸다. 치료사가 그에게 무엇을 그린 거냐고 묻자 그는 대답했다. "정신이 망가져 제 발로 정신병원에 들어온 남자가 미술치료를 받으러 가서 치료사에게 그림을 그리라는 요구를 받는 그림이오." "그럼 사이먼 씨, 당신의 그림에 제목을 붙인다면 뭐가 좋을까요?" "그거야 쉽소. ‘젠장 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거지?’"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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