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6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송영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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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486749543


  전쟁을 겪은 작가그는 전쟁을 빼고 다른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을까레마르크는 아버지 때부터 혁명으로전쟁으로 도망 다니는 시대를 살았던 작가다그래서인지 그는 전쟁과 관련 있는 일곱 편의 소설을 남겼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시작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작가 반열에 들어선 그의 다섯 번째 작품이며 앞의 작품들과 연결된다는 이 책을 인문학 모임 9월 책으로 읽게 되었다.

 

  모임 멤버 중 한 분이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 중 하나라는 것이 선정 이유였는데 읽다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독일인이지만 나치에 반대하다 수용소를 거쳐 프랑스에서 난민 생활을 하고 있는 라비크는 원래 큰 병원의 외과과장이었다하지만 프랑스에서 그는 존재를 숨긴 채 마취된 환자를 수술해 주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여권도 없이 여러 개의 가명을 가지고 사는 그에게 사랑이나 복수가 어떤 의미였을까언제 잡혀서 추방당할지 모르는 그에게는 사랑도집도,평범한 생활도 모두 너무 멀리 있는 신기루일 뿐이다혼자 호텔방에서 맞는 밤은 그에게 견디기 힘든 일과 중 하나다그래서 거리로 나간다.거리에서 자신과 비슷하게 휘청대는 여자를 만난다죽은 남자친구를 버려두고 도망 나온 조앙마두와의 첫 만남부터 인상적이다.

 

  그들이 계속 마시는 칼바도스(사과주)는 어떤 맛일까난민이지만 제법 돈도 가지고 멋있게 산다비록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호텔과 술집을 전전하며 무료한 시간을 달랜다갑작스런 사고에 끼어들었다 추방당한 라비크가 다시 파리로 돌아왔을 때 조앙은 이미 다른 남자와 살고 있었다다가갈 수도 멀어질 수도 없었던 조앙이었지만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된 이상 되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그녀의 집 앞,비오는 날의 그의 넋두리는 애절한 시가 되어 몇 장의 지면을 멋지게 채운다.

 

  그의 파리 생활을 개선문처럼 지탱해 온 것은 그와 동료들을 고문했던 하케에 대한 복수이다하지만 어설픈 그의 복수는 후회를 불러오고막상 고대하던 거사 이후에도 달라진 것 없음에 라비크는 허탈해 한다잃어버린 여인 조앙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전쟁 소식이제 그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끝은 새로운 시작인 법이다개선문마저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는 종전 소식을 꿈꾸었을까?



- "잊어버려요. 후회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익한 것이오. 되찾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소. 물론 보상할 수도 없소.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성자가 되지요. 인생은 우리를 완전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단 말이오. 완전한 인간이 있다면, 그야말로 박물관 표본감이지요." (100쪽)

- 빛. 언제나 새로운 빛. 빛은 바다의 짙은 남색과 하늘의 연한 푸른색 사이에서 생겨나는 하얀 거품처럼 수평선 저쪽에서 날아온다. 숨도 쉬지 않고, 그러면서도 아주 깊은 숨을 쉬며, 빛나고 반사하며 이렇게 환하게, 이렇게도 반짝이는 행복, 아무런 실체도 없이 떠다니는 단순하고도 태곳적 그대로의 행복을 가득 싣고 날아온다……. (273쪽)

- 등 뒤에 있는 나라가 불행과 흉조와 위험의 안개 때문에 차차 잿빛으로 변해가는데, 여기선 태양이 빛나고 맑게 갠 이곳에 죽어가는 세계의 마지막 포말이 모여 찬연하게 빛나고 있다.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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