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삶
이종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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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스무 살 시절의 일기장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존재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던 두 권의 일기장을 다시 읽으며 오글거렸던 그 시절의 순수한 짝사랑들을 떠올렸다. 이 책을 읽으며 그때로 다시 되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물론 당시의 나와는 정말 다르다. 게으르기보단 치열했고, 주인공보다는 조금 더 건전했다.

 

  요즘 시대를 사는 젊은 친구들은(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똑똑하고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돈을 많이 벌지 않는다. 원룸의 월세 내는 날짜 다가오는 것이 무섭게 느껴질 정도로 빠듯한 생활을 하지만 더 나아지기 위한 시도가 무모하리만큼 소용없어지는 사회의 투명 유리벽이 점점 높아진다. “꿈이 뭐냐고?” “오늘을 무사히 보내는 거요.”(30쪽) 어쩌면 젊은 친구들의 소원이 점점 작아져 하루의 안위로 만족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단조로운 일상에서 심심하리만치 정지되어 있는 순간들의 행복. 저자는 그것들을 말하고 싶어 했다. 빠듯한 일상에서도 늘 함께 하는 본능, 먹고, 자고, 사랑하는 소소한 기쁨과 슬픔의 조각들이 엮여진 이 책을 읽으며 조금은 답답함도 느꼈다. 내가 이미 그 시절을 지나온 기성세대라는 뜻이리라. 순수한 여유를 즐기는 주인공이 부럽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젊음의 열정과 벅찬 희망을 잃어 가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크다.

- "넌 뭐가 되고 싶어?" … "꿈이 뭐냐고?" 내일 일어났을 때 여길 나오지 않아도 되는 거요. 나는 가까스로 그 말을 참았다. 오늘을 무사히 보내는 거요. 대신 그렇게 말했다. 수의사가 안경 너머로 나를 응시했다. 큰 눈에 빛이 돌았다. 나이든 여자의 호기심 아니면 오지랖. 무엇이라도 성가시다. (29-30쪽)

- 브라운의 여자 친구는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았다. 이 사람 저 사람 혀에 올려놓고 방아를 찧었다. 방아깨비 같았다. 방아깨비는 뒷다리를 잡고 있으면 쉬지 않고 방아를 찧는다. 브라운과 나는 마주 서서 방아깨비의 다리 한 짝씩을 잡고 있었다. 방아깨비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좋지 않다. (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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