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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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세 번째 읽었다. 2017년에 두 번째 읽으며 몇 년 전에 읽었다고 썼으니 몇 년을 주기로 반복해 읽게 되나 보다. 이번에 이 책을 잡은 것은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를 보고서이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를 그린 영화를 감명 깊게 보았다. 영화에서 나오지 않았던 부분들이 책에는 있었고, 책에 자세히 그려지지 않은 전투 장면이 영화에 있었다.

이 책은 압송되어 고초를 당한 후 백의종군하는 부분으로부터 시작된다. 백성 돌보는 데는 지혜롭지만 정치적인 감각은 없었던 장군은 자신의 정치적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실제로 전투를 치른 날이 얼마나 될까? 나머지 날들은 군량미 없이 스스로 수많은 병사들을 먹일 걱정을 하고,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게 하고, 된장과 장아찌를 담그고, 물고기를 팔아 받은 쇠를 녹여 무기를 만들고, 전염병에 쓰러지는 병사들을 돌보는 나날을 보냈다. 적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있던 곳을 떠날 때 백성들은 짐을 싸 들고 수군의 배를 끝없이 뒤따른다. 수군이 없는 마을에 언제 적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불안 때문이다. 이순신은 패한 적 없는 위대한 장군인 동시에 부하들과 백성을 진심으로 아끼고 잘 살게 하고자 하는 진정한 지도자였다.

대담하고 용기 있는 장군은 의외로 약한 부분도 많다. 꿈속에 계속 등장하는 막내아들 면, 작가의 상상이 더해진 인물이긴 하지만 한 조선의 여성에 대한 기억, 심지어 벌목하다 압사한 적의 포로에게조차 연민을 느낀다. 그들을 묻는 다른 포로들의 울음을 보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적에 대한 연민이야말로 자신의 적임을 깨닫게 된다. 쌀이 없어 병사들의 끼니 걱정을 하던 장군은 어선들에게 통행세로 곡식을 받고, 소금을 만들고, 농사를 지어 군사를 먹이던 마지막 해(무술년)에 풍년을 맞지만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함대가 나갈 때 울고 돌아올 때우는, 늘 우는 백성들을 위해 그는 끝까지 싸울 계획을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으며 철군을 명하자 왜군들은 배에 육군 병사들을 태우고 퇴각을 시도한다. 장군의 수군은 마지막 한 척까지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을 각오로 노량 바다에 있었다.

적군의 배가 부서질 때 쏟아져 나오던 끌려간 조선의 격군들을 보며 장군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장군이 화물에 비유한 퇴각하는 배에 올랐던 수천의 무장하지 않은 육군들은 불타는 적군의 배 위에서 바다로 뛰어내린다. 적군의 면면에 마음이 흔들렸다면 대승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적군의 뇌물을 받고 약속을 어긴 명의 육군 유정, 몸을 사리는 진린을 뒤로한 채 의연히 싸우다 최후를 맞은 장군은 자신의 자연사(전쟁 중 전사)에 안도하며 눈을 감는다.

이 책은 장군의 칼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은 작가의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신문기자 생활을 오래 했던 저자에게 어떻게 이런 시적인 문장들이 숨어 있었을까? 오래전 작가의 휴가에 대해 읽은 기억이 난다. 일주일 동안 가방 가득 책을 싸들고 호텔에 가서 내내 읽으며 보내다 온다는 이야기. 이런 내 기억이 맞다면 작가의 문장은 아마도 그간 읽은 책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펜이 총을 이긴다는 등의 글 쓰는 이의 권위의식을 철저히 버리고 글 쓰는 삶을 밥벌이의 지겨움에 비유한 그의 겸손함이 오히려 작가를 귀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가 썼기에 이순신 장군의 삶이 더 고결하게 느껴진다. 앞으로도 때때로 꺼내어 읽게 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 말할 수 있다.

* 목소리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_0mJOdDLF3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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