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30년 만의 휴가
앨리스 스타인바흐 지음, 공경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작년, 나의 친구에게 들은 여행 이야기 하나가 있다. 친구의 언니의 친구, 이렇게 멀찌감치 건너 건너서, 나와 전혀 인연이 없던 누군가의 여행기를 들은 것이다. 그 분은 3년간 직장에 다니며 착실하게 모은 돈으로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꽤 오랜 시간 여행을 했고, 돌아와서는 넓은 세상을 보고 온 흥분 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했다. 3년간 모은 돈을 여행에 모두 써버리다니, 아깝지 않느냐고 주위 사람들이 물었는데도, 그 언니는 1원 한 푼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며,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계속 넓은 세상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는 말을 들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 이런 위험하면서도 스릴 있는 일탈을 마음먹기는 결코 쉽지 않다.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 자주 접했던 행위지만, 실제로 주변에서 보기는 처음이라, 그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굉장한 자극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나도 여행을 위해 모아뒀던 저금을 털어 과감하게 떠날 수 있을까?’이런 걱정들이 드는 동시에 그 분의 용기가 부러웠고, 그 분의 선택이 탁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 언니는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인생의 가장 귀중한 경험을 얻은 것에 만족했으리라…….

  「앨리스, 30년만의 휴가」의 저자도 그 언니와 마찬가지로 잊고 있던 자신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본서의 저자, ‘앨리스 스타인바흐’는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두 자녀를 둔 50대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유럽을 돌아보기로 결심하고, 과감하게 근무하고 있던 신문사에 휴직서를 내게 된다. 그리고 아름다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30년 만에 긴 휴가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이여, 떠나라!’라는 광고 카피가 한창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던 그 여름 날, 나 역시 머릿속은 요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열심히 일했으면, 휴식이 필요한 법. 남녀노소 세대를 불문하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라면 복잡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피해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XX, ~~가다.’라는 식의 책들이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현시점에서,「앨리스, 30년만의 휴가」는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적절한 여행 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쉰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낭만을 알고, 사랑을 꿈꾸며,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그냥 ‘여자’이기 때문이다. 떠나고 싶음에, 발길이 이끄는 대로 유럽 대도시를 돌며 여행을 시작 했지만, 하나씩 발견하게 되는 내면의 진정한 나로부터,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재미까지 독자들을 흠뻑 매료시키고 있었다. 혼자 떠나는 것을 망설이는 여자들에게 한 가닥의 멋진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며, 오히려 혼자임이 편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혼자 여행을 할 때는 모든 이들이 친구가 된다. 이런 간단한 진리를 깨우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앨리스가 발 딛고 서 있는 멋진 도시의 어느 한 구석, 그녀의 친구가 되어주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성공한 미국 여성이라는 자신의 커리어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점을 배제하고도 ‘혼자’가 주는 이득이 의외로 많음을 깨달았다. 평범한 카페나 레스토랑에 앉아 있을 때, 자연스럽게 곁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그녀들의 삶의 방식이 너무도 시원해 보인다. 스쳐가는 한 마디의 대화라도, 조국을 떠난 타지에서 이방인의 입장에 서 본다면, 얼마나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지. 

  한번쯤 꿈꾸어 봤던 특별한 여자의 삶. 열심히 일한 후, 과감하게 현실을 떠나 멋진 유럽을 여행할 수도 있고, 향수병에 걸리면서도 이탈리아 호텔 테라스 카페에 앉아 카푸치노를 마시며, 모델처럼 근사한 남자들을 훔쳐보기도 하고…. 영국의 작은 연극무대에서 「오만과 편견」을 보면서 환희를 느끼기도 하고…. 그런 사소하면서도 아늑한 여행 이야기가 이 책에 자주 등장한다. 보금자리에서는 절대로 맛볼 수 없는 짜릿한 스릴까지 그녀가 거닐었던 거리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가장 애틋했던 이야기는 뭐니 뭐니 해도 ‘지베르니 행 기차’에서 만난 일본인 ‘나오히로’와의 운명적인 로맨스가 아닐까? 마치 한 편의 소설을 보는 듯 생생한 나오히로와의 조심스러운 사랑에 대한 솔직한 고백. 여자의 입장에서 진실되게 털어 놓을 수 있는 이야기들, 바로 그런 점이 이 책의 매력인 것 같다.

  일하는 여성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다 유럽으로 과감히 떠났던 앨리스. 그녀의 이름처럼 예쁘고 낭만 가득한 여행에 동참한 기분이 매우 즐겁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친구가 되어 가는 과정도 흥미로웠고, 모르고 있던 자신을 발견하면서 느껴가는 내면의 성숙함도 매우 부러웠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면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언젠가는 나도 정말 이 곳을 떠나보고 싶다. 그 생각만이 간절하다. 그리고 혹시 또 모르지, 나도 프랑스 여행 중에, ‘나오히로’ 같은 근사한 남자를 만나 여행 내내 ‘피가 뛰는’ 호사를 누리게 될지. ^^

아무리 멀더라도 방랑의 목표물을 보는 순간은 대단하다. 상상 속에 살던 것이 문득 손으로 만져지는 세계의 일부분이 된다. 그곳까지 산이나 강, 먼지 이는 길이 몇 군데 있든지 상관없다. 이제 이것은 영원히 나의 것이니까. - 프레야 - 27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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