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최재천 지음 / 궁리 / 200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미, 고래, 늑대, 하다못해 바퀴벌레까지 거의 대부분의 생물들은 인간보다 지구에 오래 거주했던 이 땅의 선배들이다. 약 300만년 정도 되는 지구의 역사에서, 겨우 20만 년 전부터 인간은 처음으로 탄생했고, 그 전부터 이루어져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는 자연의 하모니는 경이롭기 그지없다. 동물행동학이라는 낯선 분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비로소 동물들의 위대함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처음으로 동물의 위대함을 깨달았던 것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 「개미」를 통해서였다. 한낱 미개한 종으로 여기고 있던 개미의 놀라운 문명에 대한 사실을 알고 누군가에게 세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소설 「개미」를 통해서 알고 있던 놀라운 개미들의 문명, 그리고 꿀벌과 수많은 곤충들에 대한 지식을 얻었는데,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을 읽고서 ‘동물행동학’이라는 재미있는 분야에 대한 본격적인 매력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다.

  자연의 완벽하게 다듬어진 세계를 알면 알수록 더욱 신비감이 증폭된다. 손톱보다 작은 개미와 꿀벌들이 인간들보다 더욱 나은 사회를 존속하고 있고, 더욱 올바른 정치를 실행하고 있었다. 개미들은 버섯을 재배하며 농사를 짓고, 다른 종을 사육해서 기르기도 하며, 페르몬을 분비해서 자기들끼리의 완벽한 언어로 소통한다. 인간 외에 유일하게 지금 당장의 배고픔을 채우기 위함이 아닌, 미래를 위한 ‘먹이 저장’을 하는 동물은 지구상에 유일하게 개미와 꿀벌, 단 두 종류뿐이라고 하니, 신기하다 못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작고 작아서 사람의 손가락 한 마디로도 죽일 수 있는 생물이 어쩜 이리도 영특할까?

  개미와 꿀벌 사회의 위대함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다른 우수한 종들에 대한 얘기들이 대단히 흥미로웠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조류와 설치류, 곤충들에 대한 지혜를 통해서 배울 점은 무궁무진 한 듯 하다. 인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그들의 삶. 종족을 이어가기위해서 가장 탁월한 방식으로 번식을 하며, 육아를 하고, 새끼들을 지키기 위한 영역을 다툼 전쟁을 한다. 인간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염치없는 사기꾼들도 있고, 공생관계를 통해서 유리한 쪽으로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도 한다. 인간 사회의 축소된 미니어처라고 보기에는 오히려 자연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이 더욱 많아 보인다.

  이 책을 단순히 동물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쓴 어느 동물학자의 에세이라고 여겨서는 안 될 것 같다. 생명과학이라는 분야가 얼마나 인류에 미치는 영향이 큰 지, 인간과 동물이 함께 한 진화한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서로의 화합이 공존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바르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독불장군처럼 우리 인간만이 우수한 종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며 이런 식으로 지구의 살림을 모두 파괴하면서 살다가는, 어쩌면 멀지 않은 시간 내로 이 지구에서 인간이라는 종이 영원히 멸종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 인간과 비슷하거나, 전혀 다른 또 다른 우수한 종이 탄생되어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겠지?
 
  ‘동물행동학’이란 것이 이렇게 재미있고 신비롭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훨씬 어렸을 적 이쪽으로 진로를 정해서 정식으로 공부해보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을까? 조금 더 자세히 이 분야에 대해서 알아가고 싶다. ‘행복한 동물학자의 삶’이라는 머리말을 읽으며, 정말 최재천 박사님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 …정말 그랬다. 가슴 찡하도록 감동적이고 신비로운 비밀들을 알고 나니, 그 작은 생명들을 절로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동물의 행동에 대한 작은 호기심에서 출발한 ‘동물행동학’ 연구의 결과가 인류의 미래를 정의 내릴 수도 있는 가장 크고 깊은 학문일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리를 향한 의식의 모험 헤겔의 정신현상학 Easy 고전 17
강순전 지음, 김양수 그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삼성출판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헤겔 사상의 출발점이라고 일컫는 유명한 저서「정신현상학」은 1807년에 출간되었다. 올해로 정확히 출간 200주년을 맞이한 셈이다. 200살이나 먹은 고전임에도 그 난해함은 현대인들조차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깊이 감을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칸트와 함께 독일 철학을 대표하는 헤겔, 그의 저서「정신현상학」은 철학사에서도 어렵기로 소문이 났다고 하니, 도대체 얼마나 어렵다는 건지….

  더더군다나 철학 전공을 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교양으로 읽어보기에「정신 현상학」은 난이도가 너무 높은 책이라, 쉽게 해석해 놓은 입문서를 먼저 읽어보는 쪽이 좋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 역시 워밍업 삼아서 중학생용「정신현상학」을 읽어보았는데, 우습게 봤다가 큰 코 다쳤다. 솔직히 나에겐 중학생이 읽는 이 책도 너무 어렵게 다가왔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대게 그렇듯이 아주 사소한 의문점에서 출발을 한다. 헤겔은「정신현상학」에서 정신이란 무엇이며, 정신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에는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 우리는 평상시에 아무렇지도 않게 ‘나 정신 나갔나봐.’ ‘너무 바빠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너 지금 정신이 있니, 없니?’라는 말들을 한다.

  이렇게 쉽게 입 밖으로 내 뱉는 ‘정신’이라는 단어의 깊이는 나의 상상을 초월하는 난해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쉽게 요약한 게 이 정도라면, 원문 「정신 현상학」은 얼마나 어려울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쉽지 않다’, 정도의 표현을 넘어선 ‘너무 너무 어렵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책이다.

  쉽게 요약해 보자면, 우리는 ‘감각적 확신’을 통해서 사물을 지각하게 된다. 거기에 필요한 ‘과학적 오성’이 반드시 뒤따라야하며, 대상임이 밝혀지면 ‘자기의식’의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다시 보편적인 자기의식을 통해서 의식의 형태가 지양되고, 이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가장 높은 ‘정신’이라는 진리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정리를 하면 쉬워 보이는 내용이지만, 정말 두 눈 부릅뜨고 집중하지 않으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어려운 사항들이 계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의식의 경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모든 정신현상들. 의식 경험의 전개과정들을 살펴보면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들은 매우 쉬웠다. 간단한 논리에 의해서 깊이 있는 이해까지 바란다는 것은 무리겠지만, 어디까지나 간단하게 살펴보기 위한 첫 관문이라는 점에서 나름대로 만족스럽다. 국내에 출간되어 있는「정신현상학 (한길사,2005)」을 작년에 읽어보려는 시도를 하려고 했으나, 구매부터 망설여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읽어봤자, 분명 이해를 못해서 난해함에 질러 덮어두고 있었을 것이다.

  청소년 논술을 위해서 출간된 이지 고전 「진리를 향한 의식의 모험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읽고 약간의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 여전히 머릿속에 빙빙 도는 질문들이 원을 그리며 떠다니지만, 조금씩 난이도를 높여가면서 헤겔 철학을 공부한다면, 내 정신 상태에 대한 아리송한 모든 의문점이 풀릴 것 같기도 하다. 어려운 헤겔 철학의 세계로 가기 위한 첫 발걸음이 돌덩이처럼 무겁지만은 않아서 다행이다. 내 자신이 조금 더 성숙해지고, 깊이 있는 독서가 가능해진다면,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꼭 읽어보리라 다짐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그나마 가볍게 읽어볼 수 있을 책이다. 더불어 수능을 준비하는 입시생들이나 청소년들이 읽어본다면 더욱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1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민음사)
02 사양 - 다자이 오사무 (소화)
03 전갈의 아이 - 낸시 파머 (비룡소)
04 여섯번째 사요코 - 온다 리쿠 (노블마인)
05~06 피터팬과 마법의 별 - 데이브 배리, 리들리 피어슨 (노블마인) 
07 미륵의 손바닥 - 아비코 다케마루 (한스미디어)
08 B컷 - 최혁곤 (황금가지)
09~10 소녀와 비밀의 부채 1.2 - 리사 시 (밀리언하우스) 
11 부의 미래 - 앨빈 토플러 (청림출판)
12 자연의 빈자리 - 팀 플래너리 (지호)
13 이것이 인간인가 - 프리모 레비 (돌베개)
14 새로운 인생 - 오르한 파묵 (민음사)
15 아버지와 아들 - 박목월, 박동규 (대산출판사)
16 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 - 정승희 (사군자)
17 6월 26일, 하멜른 - 케이스 매퀸, 애덤 매퀸 (가치창조)
18 산티아고 가는 길 - 정민호 (에세이)
 
 
 
 
 
모두 재미있었습니다. ^^
재미있고 감동적인 책들 덕분에 뿌듯한 1월이 되었네요.
2월에도 더욱 열심히 읽겠습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물만두 2007-02-01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8권... 대단하세요^^

마늘빵 2007-02-01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보셨군요!

mind0735 2007-02-02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읽었던 새해였네요. 물만두님, 아프락님도 만만치 않으시지요~ ^^
 
산티아고 가는 길 에세이 작가총서 96
정민호 지음 / 에세이퍼블리싱 / 200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민호’님을 보면 언제나 ‘멋지다’, 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인터넷을 모르고 조용히 책을 읽던 시절, 마치 나는 우물 안 개구리와 같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고 있는지 그 때는 정령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한달에 열권에서 수십 권에 이르기까지, 머릿속에 저장하는 지식의 분량 또한 방대하다. 책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정민호’님 만큼 책을 사랑하며, 늘 가까이 하는 분도 드물 듯 하다. 나와는 겨우 두 살 차이. 그러나 생각하는 것이며, 늘 친절이 몸에 베인 듯한 태도는 나보다 스무 살은 더 많은 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책을 통해 알게 된 분이라 그런지, 언제나 이 분을 보면 기분이 좋다. ‘책 읽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가장 먼저 깨우쳐 마음을 열어 주셨기에, 멀리 있어도 그 분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작년 추석 쯤,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신다고 했다. 산티아고 성당 가는 고된 길을 다녀오겠노라고 선포하신 후, 한 달 가량 감감무소식. 그러던 중 날아온 엽서 한 통.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눈물이 쏙 빠질 만큼 가슴이 시큰거려 혼났다.

  작은 엽서를 통해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생생한 여행기를 담은 「산티아고 가는 길」은 스무날이 넘는 시간 동안 산티아고를 가기 위한 고행을 담은 귀중한 책이다. 왜 사람들은 여행을 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고, 작은 풀 한포기를 보면서도 감동을 하게 되는 걸까? 주거지를 벗어나 낯선 곳을 향하는 발걸음의 시작은 어려울지언정, 목표지를 세워두고 첫 걸음을 뗐을 때의 감동이 천천히 머릿속에 그려졌다. 설렘과 깊은 감동의 여운을 느끼기 위한 산티아고 가는 길의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한 없이 나약한 인간이구나, 라고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걸어서 800km를 간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두 발로 걸어서 대장정의 길을 걷고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여행객들로 산티아고 가는 길은 마치 거대한 인간 박물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미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일본, 그리고 고국의 스페인 사람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산티아고’라는 하나의 목표를 두고 걷기 여행을 한다면, 길을 가는 모든 사람이 동료이자, 친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단 며칠 동안 사귄 친구들 ‘마이키, 스요시, 매튜’ 친구들과 헤어지면서 코끝이 찡해 혼났다는 저자의 목소리에 나까지도 가슴이 울컥했다.

  오랜 걷기로 인한 다리의 고통. 그보다 더 힘든 물집 잡힌 발바닥에 가해지는 고통. 흡사 가시밭길을 걷는 듯한 이런 고통들을 느끼면서도 진정 행복했노라고 크게 외칠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 겪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커다란 감동이자 축복일 것이다. 악천후의 날씨,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에 힘들어하며,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언어에 대한 한계를 보디랭귀지로 해결하며, 그렇게 마침내 목표한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의 짜릿한 희열! ……아, 책을 읽으며 나 역시 진정 부러웠다. 

  언제나 인간은 가장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듯 하다. 낯선 이국땅에서 어렵사리 고군분투한 그 시간들 속에서 정민호님은 잃어버렸던 자아를 분명 찾았으리라. 지금 살아 숨쉬고 있는 거친 호흡소리에서 거친 생명력을 다시금 느끼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했으리라.

  고된 여행길에서 만난 친절한 사람들과 산티아고 가는 길의 다양한 풍경들을 책을 통해서나마 느낄 수 있어서 나 역시 행복했다. 그리고 또 하나. 평소에 틈틈이 외국어를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땀으로 범벅된 순례자들의 걸음이 새삼 부럽게 느껴졌다. 그간 나는 얼마나 걷는 것을 지겨워했는지…. 이제는 모든 것을 잊고, 무작정 걸어보고 싶다. 언젠가 가게 될 그 곳 산티아고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어딘가의 있을 나의 다른 세계를 꿈꾸어 본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d0735 2007-02-01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군님!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 멋진 정군님~
 
6월 26일 하멜른
케이스 매퀸.애덤 매퀸 지음, 이지오 옮김, 오석균 감수 / 가치창조 / 200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설로 내려오던 민담을 ‘그림 형제’가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동화로 편찬했다. 동화의 줄거리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쥐 떼가 들끓는 마을에서 피리를 불어 쥐들을 강물에 빠뜨려 모두 소탕했는데, 마을 주민들이 약속한 사례금을 주지 않는다. 화가 난 악공은 그 마을의 아이들을 피리로 홀려 모두 데리고 떠나버린다는 다소 엽기적인 잔혹 동화였다. 「6월 26일, 하멜른」은 이러한 동화의 뼈대에 피와 살이 덧붙여져 탄탄한 골격을 형성한 새로운 소설을 탄생되었다.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탄생한 소설이니만큼, 동화책에서 느끼지 못했던 현실적인 탄탄함을 발견했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 그리고 어떤 인문들에 의해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의 이야기가 전해지게 되었는지 명확하게 밝혀졌다. 대략적으로 알고 있던 사소한 사건에 대한 내용을, 주도면밀하게 다시 공부 한 기분이 들었다.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작가의 꼼꼼함에 놀라게 된다. 1284년 6월 22일부터, 26일까지 단 5일 동안 발생하는 이야기를 400페이지 가량의 텍스트로 기록해두었으니, 사건들의 연결이 매우 섬세하고 꼼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작 동화의 분량이라고 해봤자 분명 지극히 짧은 분량일 텐데, 약간의 단서들로 이토록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긴 이야기가 탄생하다니…. 놀랍기도 하고, 새삼 두 작가의 재치 있는 상상력에 경외감이 들었다. 「6월 26일, 하멜른」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한다면 단연, 전설속의 민담과 그림 형제의 원작 동화를 바탕으로 재미있는 소설 한 작품이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어른들의 무분별한 물질만능주의와 지나친 욕심으로 상처 받는 것은 언제나 못 가진 자들과 연약한 어린 아이들이라는 큰 교훈 역시 놓치지 않고 있다.

  ‘케이스 매퀸’과 ‘애덤 매퀸’, 부자(父子)가(사진을 통해서 본 두 부자는 붕어빵에다가 매우 미남들이다.) 공동집필한 소설답게, 이 책은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끈끈한 믿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소설의 내용역시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과 화합이라는 주요테마가 작용되어 있다. 주인공인 피리 부는 악사 ‘요하네스’와 길드의 배반자 ‘안셀름’, 그리고 영주의 아들 ‘슈트롬’ 역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배신, 그리고 사랑에 대한 진한 갈망 등이 잘 나타나 있는 듯 하다. 케이스와 애덤, 두 부자간의 정이 고스란히 소설 속에 투영되어 있었다.

  아들의 눈에, 때로는 아버지가 무능하게 보이기도 하고, 과욕으로 인해 한심하게 보이기도 한다. 아버지의 눈에 아들은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은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간혹 큰 사랑을 주지 못하기도 하고, 아들을 통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을 때는 화를 내기도 한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전형적인 부자간의 갈등이 아닐까? 이 책을 통해서 가장 진하게 느꼈던 부자애에 대한 부분들이 새삼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어른들의 이기적인 욕심에 언제나 아이들만 큰 상처를 받고 마는 것이다.

  몇 개의 단서만으로 용의주도하게 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두 작가의 탁월한 능력만큼은 인정해주어야 할 것 같다. 고전 동화와 판타지 소설, 혹은 추리 소설의 영역까지 넘볼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책이다. 떠돌이 피리 부는 사나이가 무엇 때문에 쥐 떼가 들끓는 하멜른으로 와서, 수 만 마리의 쥐들을 소탕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 보시기를! 모든 비밀을 알 수 있는 탄탄한 열쇠 꾸러미가 이 책에 숨어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