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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가는 길 ㅣ 에세이 작가총서 96
정민호 지음 / 에세이퍼블리싱 / 2007년 1월
평점 :
‘정민호’님을 보면 언제나 ‘멋지다’, 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인터넷을 모르고 조용히 책을 읽던 시절, 마치 나는 우물 안 개구리와 같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고 있는지 그 때는 정령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한달에 열권에서 수십 권에 이르기까지, 머릿속에 저장하는 지식의 분량 또한 방대하다. 책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정민호’님 만큼 책을 사랑하며, 늘 가까이 하는 분도 드물 듯 하다. 나와는 겨우 두 살 차이. 그러나 생각하는 것이며, 늘 친절이 몸에 베인 듯한 태도는 나보다 스무 살은 더 많은 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책을 통해 알게 된 분이라 그런지, 언제나 이 분을 보면 기분이 좋다. ‘책 읽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가장 먼저 깨우쳐 마음을 열어 주셨기에, 멀리 있어도 그 분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작년 추석 쯤,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신다고 했다. 산티아고 성당 가는 고된 길을 다녀오겠노라고 선포하신 후, 한 달 가량 감감무소식. 그러던 중 날아온 엽서 한 통.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눈물이 쏙 빠질 만큼 가슴이 시큰거려 혼났다.
작은 엽서를 통해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생생한 여행기를 담은 「산티아고 가는 길」은 스무날이 넘는 시간 동안 산티아고를 가기 위한 고행을 담은 귀중한 책이다. 왜 사람들은 여행을 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고, 작은 풀 한포기를 보면서도 감동을 하게 되는 걸까? 주거지를 벗어나 낯선 곳을 향하는 발걸음의 시작은 어려울지언정, 목표지를 세워두고 첫 걸음을 뗐을 때의 감동이 천천히 머릿속에 그려졌다. 설렘과 깊은 감동의 여운을 느끼기 위한 산티아고 가는 길의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한 없이 나약한 인간이구나, 라고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걸어서 800km를 간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두 발로 걸어서 대장정의 길을 걷고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여행객들로 산티아고 가는 길은 마치 거대한 인간 박물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미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일본, 그리고 고국의 스페인 사람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산티아고’라는 하나의 목표를 두고 걷기 여행을 한다면, 길을 가는 모든 사람이 동료이자, 친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단 며칠 동안 사귄 친구들 ‘마이키, 스요시, 매튜’ 친구들과 헤어지면서 코끝이 찡해 혼났다는 저자의 목소리에 나까지도 가슴이 울컥했다.
오랜 걷기로 인한 다리의 고통. 그보다 더 힘든 물집 잡힌 발바닥에 가해지는 고통. 흡사 가시밭길을 걷는 듯한 이런 고통들을 느끼면서도 진정 행복했노라고 크게 외칠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 겪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커다란 감동이자 축복일 것이다. 악천후의 날씨,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에 힘들어하며,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언어에 대한 한계를 보디랭귀지로 해결하며, 그렇게 마침내 목표한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의 짜릿한 희열! ……아, 책을 읽으며 나 역시 진정 부러웠다.
언제나 인간은 가장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듯 하다. 낯선 이국땅에서 어렵사리 고군분투한 그 시간들 속에서 정민호님은 잃어버렸던 자아를 분명 찾았으리라. 지금 살아 숨쉬고 있는 거친 호흡소리에서 거친 생명력을 다시금 느끼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했으리라.
고된 여행길에서 만난 친절한 사람들과 산티아고 가는 길의 다양한 풍경들을 책을 통해서나마 느낄 수 있어서 나 역시 행복했다. 그리고 또 하나. 평소에 틈틈이 외국어를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땀으로 범벅된 순례자들의 걸음이 새삼 부럽게 느껴졌다. 그간 나는 얼마나 걷는 것을 지겨워했는지…. 이제는 모든 것을 잊고, 무작정 걸어보고 싶다. 언젠가 가게 될 그 곳 산티아고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어딘가의 있을 나의 다른 세계를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