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 - 되풀이되는 연구 부정과 '자기검증'이라는 환상
니콜라스 웨이드.윌리엄 브로드 지음, 김동광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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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은 ‘자기기만’에 빠진 과학자들을 무수한 사례들을 통해 일반인들이 알게 쉽게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는 일부 유명한 과학자들이 대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이작 뉴턴, 로버트 밀리언, 찰스 다윈 같은 저명한 과학자들이 한번쯤은 진실을 왜곡한 채 자신의 명성만을 드높였다는 사실이 못내 충격적이게 다가왔다.


  명예를 위하여 진실을 왜곡한 이들의 허울뿐인 논문을 보면서 인간이란 무척이나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누구나 성공이나 재물의 유혹의 손짓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한다. 그리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신분이 세상에서 가장 명확하고, 가장 보편적이어야 할, ‘과학’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전 국민을 감쪽같이 속여 넘긴 황우석 박사의 연극처럼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게 되어 있다. 설령 천 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말이다.


  나는「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이 최근 과학계에서 부는 의혹의 바람을 타고 새롭게 출간된 책 인줄 알았는데, ‘연구윤리의 고전’이라는 표지의 문구를 보고 출간된 지 이미 25년이나 된 오래된 책임을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10년 전, 「배신의 과학자들」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윌리엄 브로드와 니콜라스 웨이드’는 <뉴욕타임즈> 과학 전문 기자로 활동 중인 언론인이었다. 이들은 기자 특유의 치밀함을 자랑하며, 사건들의 전모를 상세하게 파헤치고 있다. 과감하게 폭로되는 과학자들의 배반행위는 흡사 9시 뉴스를 보는 듯 생생하다.


  과학에서 결코 2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최초의 발견자에게 영광이 돌아가고 2등은 아예 상대조차 해주지 않는다. 선취권을 얻지 못한 발견자에게 남겨지는 건 쓰라린 결실일 뿐이다. 학자, 학생, 스포츠인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1등의 위치는 확고하다. 그러기에 지나친 경쟁심이 불러일으킨 그릇된 야망의 결과로 과학자들은 표절이나 데이터의 조작 등, 자기기만 행위를 반복 시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학 엘리트층의 확고한 권력 구조 역시 과학자들의 치명적인 오류를 재생산하고 있었다. 자신의 연구 성과가 주목 받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과학자들의 입장 역시, 변하지 않는 과학 자체의 인지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진부한 변명만을 늘어놓고 있다.

 

  그래도 진실 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믿었던 훌륭한 학자들이 정말로 진실 된 사람이었다고 믿고 싶다. 빈번한 모방이나 표절이 더 이상 제 2의 창조가 될 수 없듯이, 거짓투성이 과학자들에게는 죽은 후에도 불명예가 씻겨 내려가지 않는다. 과학자뿐만이 아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질실 왜곡 자들이 존재하고 있을까? ‘사기’도 똑똑한 사람만이 행할 수 있는데, 그 똑똑함과 영민함을 좋은 일에 투자하면 안 되는 걸까? 정령 깨끗하고 투명한 사람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는 걸까? ……이런 저런 고민과 걱정들을 동반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신기한 점은, 과학자들의 표절을 폭로하며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고 있는 바로 이 책을, 또 다시 표절한 책이 있다고 한다. …아, 정말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생각 할수록 어이가 없고, 머리가 아파온다. 사리분별 못하는 일부 몰지각한 과학자들이 ‘준 굿필드’의 말을 들으면 뭐라고 할까? 아마도 자신은 결백하다며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겠지. 이 책에 등장했던 모든 과학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듯이.


  ‘모든 직업 중에서 과학이 가장 비평적이다. 음악, 미술, 그리고 시와 문학에는 전문 비평가들이 있지만 과학에는 없다. 왜냐하면 과학자 스스로가 그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 준 굿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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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전쟁 - 불륜, 성적 갈등, 침실의 각축전
로빈 베이커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학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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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性)은 꽤나 껄끄럽고 조심스러운 주제이다. 개방적인 서구사회에서조차 성은 매우 민감하게 다루어야 할 부분인데, 많은 문제점과 호기심 역시 동반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성을 자유자제로 다루며 평균보다 유난한 관심을 보이는 사람을 보면 흔히 ‘밝힌다.’라는 경멸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성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나라에서 숨죽이며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성에 대한 지식을 부족하지 않게 알아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정자 전쟁」은 노골적이다 못해, 불쾌감을 일으킬 정도로 적나라하게, 모든 사람들이 극도로 꺼리며 민감해 하는 부분들을 들추어내고 있다. 과학서적 답지 않게 포르노 채널을 보는 듯 생생한 ‘예시’들이 단락마다 등장한다. 총 37장면의 생생한 상황 묘사로 통해, 한 층 쉽게 독자에게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좋은데, 장면 묘사가 지나치게 극단적인 경우의 재미만을 추구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 마디로, 불필요한 도입 부분들의 묘사가 너무 많은 것 같다. 본문만으로도 이해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정자전쟁」의 ‘로빈 베이커’가 궁극적으로 목표하고 있는 질문은, 인간의 종족보존 전략의 탁월함이 모든 성관계에서 어떤 식으로 상호 작용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의 외도에서부터, 자위행위, 양성애, 난교, 매춘, 심지어 강간까지 인간의 성관계에 따른 모든 행위의 본질적인 한 가지의 목적은 오로지 ‘종족 번식’과 ‘보다 나은 유전자’를 차지하기 위한 획일 된 활동이라는 것이다.


  지구상에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종족의 번식과 번영을 목적으로 태어나고 생을 마감한다. 특히 ‘남성(수컷)’은 태생적으로 종족의 번식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기에 남성이 배우자를 제외한, 최대한 다양한 상대와의 성관계를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졌음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그러기에 나는 도덕적으로는 결코 인정할 수 없지만, 남성이 저지르는 불륜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자 전쟁」에서는 남성의 근원적은 동물적 욕구에 반해, 여성들 또한 종의 보존 전략에 기하여, 되도록이면 많은 남성과 많은 성관계를 통해, 난자 잡이를 통해 ‘월등히 우수한 품질(?)’의 정자를 신중하게 고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종족의 번영을 추구하기 위해 태어나기 전부터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가슴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을, 이성으로나마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에 매우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수억의 정자들이 여성의 질 속을 통과하며 무수한 전쟁을 치루면서, 최종 승리를 거두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일부일처라는 다분히 계산된 산업사회의 결혼 제도 속에서도, 여성은 끊임없이 여러 정자들의 최대한의 수용을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 생리적으로, 과학적으로 그렇게 태어났고, 우리 신체가 그러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도덕과 윤리라는 이성 속에서 선뜻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니, 이미 많은 부부들이 배우자가 아닌 상대로부터의 성관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후엔 양심의 가책과 함께, 법적인 응징이 뒤따른다.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우리의 몸. 내 자신조차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없는 몸의 신비 속에서 잠시 방황했다.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굳이 알게 된 후의 기분과 흡사하다. 쾌락의 추구의 저편에는 정자들의 무시무시한 전투가 펼쳐지고 있었다. 「정자 전쟁」은 일반적인 남(男)과 여(女)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신비로운 번식의 서바이벌 게임을 매우 사실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씁쓸한 마무리 또한 함께 남기고 있었다.


  그리고 생식기에 대한 그림이나 정자들의 움직임을 현미경으로 찍은 사진, 혹은 신체 해부도가 몇 장 추가되었더라면 더욱 쉽게 이해를 도왔을 텐데, 단 한 장의 그림이나 사진도 없이 빽빽한 글자만으로 채워진 책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저자의 상세한 신체 설명에도 불구하고, 내 몸속 안을 훤히 들여다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어 무척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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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메리의 아기 밀리언셀러 클럽 57
아이라 레빈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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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즈메리의 아기」를 읽는 내내 으스스한 기분이 떠나지 않았다. 이를테면 이런 느낌들이다. 새 출발을 위해 이사한 아파트에 오래전부터 이어진 기분 나쁜 소문들이 퍼져있다. 그리고 그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은 ‘지나치게’ 친절한 반면, 어딘가 모르게 음침하고, 수상쩍다. 세탁실로 내려가는 어두컴컴한 통로에서는 금방이라도 무언가가 튀어나올 듯 섬뜩하다. 삐걱거리는 주변의 소음, 이상한 음악소리, 조용한 일상 중에 파고드는 원인 불명의 위태로움들…. 바로 평범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소름이 책의 곳곳에 만연해 있다.

  ‘스티븐 킹’이라는 서스펜스계의 거목인 작가가 가장 멋지게 조리하는 단골 메뉴가 바로 ‘일상의 공포’다. 미국에 사는 중산층의 평범한 가정을 둘러싼 묘한 공포감에서 전형적인 오컬트 호러로 전개된다. 편안한 일상이 어느 날 갑자기 오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둔갑해서 벌어지는 공포감을 ‘킹’ 못지않게, ‘아이라 레빈’ 역시 잘 소화해 낸 듯 하다. 이 작품의 탄생연도가 1967년도이니, 제법 오래된 소설인데, 고전이라는 느낌보다는 현재의 소설들과 견주어도 세련된 감각이 더욱 돋보인다.


  비슷한 내용의 소설로는 「엑소시스트」를 들 수 있겠다. 그리고 몇  해전 관람했던 영화 ‘케이트 허드슨’ 주연의「스켈리톤 키」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악마의 존재감이 리얼하게 표현된 수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로즈메리의 아기」 또한 유명세를 타기에 충분한 역량을 발견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잠시도 시선을 뗄 수 없었으며, 차분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어 특유의 서스펜스 감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뉴욕에 사는 평범한 부부 ‘로즈메리’와 ‘가이’ 어느 날 이사를 가게 되는 아파트에서부터 이 사건은 시작된다. 호러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면 유독 도입부가 ‘이사’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새로운 시작에 따른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며 묘하게 신경을 건드리는 감정이 존재하기 때문인 듯 하다. 여하튼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린 아파트의 수상한 이웃들과 교류하면서 으스스한 ‘살기’와 함께, 섬뜩한 의문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그리고 ‘로즈메리’의 임신과 함께 본격적인 공포의 엄습이 이어진다. 책의 제목만으로도 ‘아기’에 시선이 집중됨은 당연하다. 작품을 읽어본다면 이유는 분명히 알게 되실 테니, 더 이상의 줄거리는 생략하려고 한다.  


  미국에서 탄생된 호러, 서스펜스 소설은 대체로 느낌이 비슷한 듯 하다. 대략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끔찍한 살인귀가 등장해서 차례대로 사람을 죽여 나가는 ‘잔혹 공포’와, 인물들 간의 미묘한 신경전이 압권인 ‘심리 스릴러’ 내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불러일으키는 집단 공포심을 그리는 소설. 개인적으로 후자 쪽 호러를 선호하는 편이라, 「로즈메리의 아기」를 읽으며 오랜만에 진정한 서스펜스의 묘미를 맛보게 되었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소름이 돋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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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01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제 읽으려고 준비중인지라.. 리뷰는 생략하고 추천만^^;;

mind0735 2007-03-01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드립니다. ^^
저는 정말 재미나게 읽었는데..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영화도 보고 싶어요.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
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시무 지음, 김라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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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많은 작가와 감독들은 ‘월등하게 우수했던 누군가의 과거 작품’에 대한 존경심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존경심에서 비롯된 순수한 마음을 종종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은밀한 희열을 느끼게 된다. 책 쓰는 사람 역시, 책을 읽는 사람이기도 하므로, ‘독자’였다는 한 가지의 공통점으로 다시 한번 더 독자와 가까운 거리로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기존의 작품을 교묘하게 자신의 창작물에 차용한다면 ‘표절’이 될 것이고, 원작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 정중하게 ‘차용 좀 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적어둔다면, 이것은 ‘오마주’ 내지는, ‘패러디’문학으로 분류 될 수 있다.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은 저자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에드거 앨런 포’ 두 작가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재기발랄한 추리 문학을 탄생시켰다.


  본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르헤스’와 ‘포’의 작품들을 알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이해의 차원을 넘어 ‘즐기기’위한 목적이라는 전제가 붙는다면, 보르헤스와 포의 작품들을 알고 있다면 더 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듯 하다. ‘포’는 미국 추리문학의 선구자로서, 사후에 그의 문학적 천재성을 인정받아 그를 추종하는 수많은 추리 작가들에게 밑거름이 되었다. 보르헤스 또한 초현실적인 픽션에 뿌리를 두고, 20세기 문학사에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이 두 작가에 대해 얼마나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포의 단편 전집은 읽어보았으나, 보르헤스의 단편 전집은 읽어보지 못했다. 본서에 등장하는 포의 단편 중 가장 큰 핵심 요소로 자리하게 되는 ‘황금 곤충’을 알고 있었기에,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포’와 마찬가지로 가장 단순한 사건에서 우주적인 관점으로 해석의 흐름을 넓게 지향하고 있는 듯 보인다. 추리 소설의 정석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포’와 ‘보르헤스’라는 두 인물의 사실적인 요소들을 가미해서 ‘픽션 같지 않은, 픽션’을 탄생시킨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작품의 반전은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다지 놀랍지 않았고,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마주와 패러디라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영역으로 침범한 낯선 작가의 문학적 재능에 있다. 생소한 남미작가의 소설, 그것도 추리 소설…. 비록 저자는 추리 소설 전문가가 아니지만, 작품을 흔하지 않은 독특한 구성으로 감칠맛 나게 문장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는 듯 하다.


  재미있는 단서들로 ‘로트코프’라는 이름의 독일인의 죽음을 추적하는 세 사람. 나는 이 중에서 편지글의 발신인 ‘포겔슈타인’을 ‘작가 자신’으로 여기며 읽었다. 보르헤스와 함께 의문의 살인사건을 추적하면서, 보르헤스와 편지를 주고받는 포겔슈타인은, 아마도 작가의 분신이자, 작가의 염원이 아니었을까 싶다.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 굉장히 사실적이면서도 추리 소설적 규칙에 잘 따르고 있는 작품이다. 보르헤스와 포를 우상으로 삼고 있는 분이라면 이 책을 더욱 멋지게 즐기면서 읽어볼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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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28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뻔한 추리지만 보르헤스가 있어 빛난 작품이죠^^

mind0735 2007-02-28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뻔한 추리지만 '포'도 있어서 빛난 작품입니다. ^^
 
2차세계대전사 (양장)
존 키건 지음, 류한수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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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세계대전’이라함은, 전 세계 일곱 대륙 중 여섯 대륙과, 모든 대양에서 발발했던, 역사상 가장 크고 끔찍했던 전쟁이다. 2차 대전의 결과로 전 세계 약 5,000 만 명이 사망했다고 추산된다. 정확한 수치로 파악할 수는 없지만, 부상자의 수는 사망자의 수를 넘어서고, 전쟁으로 인한 물리적 손실은 헤아릴 수조차 없다. 교선국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겪었던 나라는 소련으로, 약 2600 만 명, 즉, ‘2차 세계대전’ 피해의 절반에 가까운 사망자수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수치로 남아있는 전쟁의 기록은 너무도 천문학적인 수치이기에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을 만큼 비현실적이다. 5,000만 명…. 현재 대한민국 인구가 이에는 못 미치지만 근사치에 가까운 인구인데, 5년간 이루어진 단일 전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끝내 몰락했다고 친다면, 살로 와 닿는 끔찍함의 깊이를 추려볼 수 있을 듯도 하다.


  1939년 9월 1일, 유럽서부전선으로부터 시작된 ‘2차 세계대전’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공식적인 항복 의사와 함께 막을 내린다. 대략 6년에 걸린 대 전쟁의 속내가 궁금했다. 무수한 영화나 소설의 소재거리로 등장하곤 하는 ‘2차 세계대전’을 조금 더 명확하게 살펴보고 싶어서 「2차 세계대전사-존 키건-」을 읽게 되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드라마틱한 전쟁의 상황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기록해 둔 것 같다. 물론 엄청난 분량이기에 세부적인 전쟁사를 기대했음은 물론이었고, 전쟁의 이데올로기의 실체 또한 치밀하고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1914년 ‘1차 세계대전’부터 시작된 20세기 유럽의 군사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산업혁명 이후 유럽 주요 도시 국가들의 인구는 두 배 가량 증가했다. 인구 증가에 따라, 군대에 입대하는 숫자도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두 배 이상 증가했으니, 군대가 유럽의 전 지역에서 정치적인 에너지를 불어넣게 된 것이다. 머릿수만 채워 넣고 방어에만 전념하던 과거 군대와는 질적으로 틀린 ‘20세기 군대’는, 정치 중립적이고 위계적인 하나의 사회모델로서 성장하게 된다.


  군대의 성장과 함께, ‘공업화’의 산물인 ‘전쟁 무기’ 또한 엄청난 발전을 거듭한다. 혁명적인 무기라고 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 ‘원자 폭탄’의 발명, 전차와 기관총, 그리고 레이더에 첩보 작전, 암호 체계까지 합세해, 2차 세계대전의 규모는 과거의 소박함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폭발적인 증가로 확대된다. 마음껏 전 세계를 초토화 시켜버릴 ‘전쟁 무기’와 ‘인원’이 갖추어졌으니, 이제 남은 것은 전 세계인들이 서로의 등에 총을 겨누는 일만 남은 셈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각 국 대표자들의 전략적 딜레마에 따른 신경전의 양상이다. 타락한 자본주의 국가를 대포하며 전쟁의 승패를 손안에 쥐게 된 미국의 ‘루스벨트’, 쇄락해가던 영국의 낭만주의자이자, 제국주의자였던 ‘처칠’, 마르크스주의 독재 체제 속에서 소련에게 최대한의 이득을 취하고자 노력했던 ‘스탈린’.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을 주도했던 나치즘의 산물 ‘히틀러’까지. 이들 사이에 이루어진 연합군이라는 동맹의 모순과 해체들 속에서 전쟁보다 더욱 긴장감 넘치는 인물 열전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관심 있었던 ‘독소전쟁’의 비중이 작아서 아쉬운 감이 있었다. 역자의 말마따나, 저자가 ‘영국인’인 관계로다가, 유럽 서부전선에 지나치게 힘을 실어 넣은 나머지, 책 분량의 절반 가까이를 유럽 서부전선에 할애하고 있었다. ‘히틀러와 스탈린’이라는 두 인물에 포커스를 집중시켜 이 전쟁사를 차분하게 풀어나가야 했는데, 유럽권이라는 지역을 지나치게 비중 있게 다루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마지막 태평양 전쟁 중, ‘오키나와 전투’와 ‘일본의 패망 부분’ 역시 비중이 너무 적었다는 사견이다. 몇몇 아쉬움이 있기는 했지만, 무척이나 방대한 「2차 세계대전사」를 딱 한권으로 요약해서 읽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대체로 만족스럽다. 개인적으로 번역 또한 마음에 들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장에, 필요한 주석은 문외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에 충분했다.


  대 전쟁사를 읽어보며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가장 끔찍했던 점은 아무래도 독일의 나치즘이 아니었나 싶다. 나치 독일은 열등하다고 간주한 하등인간, 즉 게르만민족을 제외한 모든 민족을 말살 시키려는 무시무시한 이념을 지니고, 유대인과 슬라브인을 무참하게 학살했다. 강제 수용소를 만들어 하루에도 수십 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가스실로 보내 처형시켰다. 히틀러의 인종 말살정책에는 ‘강압, 처벌, 보복, 테러’의 결과로 결국 모든 인종의 전멸을 목표로 학살을 제국주의의 제 1 원칙으로 삼았다. …믿을 수 없게도, 불과 반세기 전에 일어난 일이다.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목표로 삼고, 모든 아시아를 일본의 수족으로 부려먹으며, 잔혹한 행위를 일삼았다. 실로 위선적이고도 혹독한 강탈을 일삼으며,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없는 가학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진주만 공격으로부터 시작된, 미국에게 ‘버티기’로 오만불손하게 설쳐대다가 결국은 원자 폭탄 투하로 패망하고 말았다. 이러한 두 나라의 정치원칙과 군사원칙이 세계인들을 향한 무참한 살상으로 이어졌지만, 잔혹한 독일과 무모한 일본은 각각 전쟁에서 보기 좋게 참패한다. 인과응보란 말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다. (비록 지금은 두 나라 모두 ‘지나치게’ 잘 살고 있지만…….)


  또 하나, 2차 세계대전의 아이러니한 점 하나는, 바로 전시 고급품을 둘러싼 각국의 이해 못할 모순점들이다. 전쟁 와중에, 역설적이게도 각 나라는 서로서로 전쟁의 무기나 항공기, 대포, 전차, 군화, 석유, 군인 식량까지 모든 물량들을 수출, 수입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서로 서로 총을 겨누며 싸우던 나라들이 ‘무역’이라는 이름 하에, 전시 보급품을 거래하다니. 총 겨누며 죽이니 마니, 하며 싸우면서도 상대방 나라에서 전쟁 물량이나 원자재를 구매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저 웃길 뿐이다.


  식민지를 만들어 그곳에서 필요한 식량과 물자를 조달하던지, 무역이라는 합법적인 통과의례로 필요한 무기들을 수입, 수출 하던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많고, 이해하기 어려운 전상의 진실 또한 많았다. 혹자는 평생을 바쳐가며 연구하는 ‘군사사’를, 본인이 며칠 만에 독파하며 이해하기란 불가능 하다. 몇 번 더 집중해서 읽어보면서, 전쟁 관련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본다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만약 2차 세계대전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분이라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책의 분량이 만만치 않기는 하지만, 격렬하고도 장대했던 2차 세계대전사는 지금까지도 계속 매력적이고도 음울한 역사의 기준으로 남아있고, 많은 매체에서 다루어지고 있기에, 한번쯤 읽어보면서 지난 전쟁의 과오를 살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니, 2차 세계대전사 만큼은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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