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전쟁 - 불륜, 성적 갈등, 침실의 각축전
로빈 베이커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학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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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性)은 꽤나 껄끄럽고 조심스러운 주제이다. 개방적인 서구사회에서조차 성은 매우 민감하게 다루어야 할 부분인데, 많은 문제점과 호기심 역시 동반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성을 자유자제로 다루며 평균보다 유난한 관심을 보이는 사람을 보면 흔히 ‘밝힌다.’라는 경멸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성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나라에서 숨죽이며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성에 대한 지식을 부족하지 않게 알아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정자 전쟁」은 노골적이다 못해, 불쾌감을 일으킬 정도로 적나라하게, 모든 사람들이 극도로 꺼리며 민감해 하는 부분들을 들추어내고 있다. 과학서적 답지 않게 포르노 채널을 보는 듯 생생한 ‘예시’들이 단락마다 등장한다. 총 37장면의 생생한 상황 묘사로 통해, 한 층 쉽게 독자에게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좋은데, 장면 묘사가 지나치게 극단적인 경우의 재미만을 추구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 마디로, 불필요한 도입 부분들의 묘사가 너무 많은 것 같다. 본문만으로도 이해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정자전쟁」의 ‘로빈 베이커’가 궁극적으로 목표하고 있는 질문은, 인간의 종족보존 전략의 탁월함이 모든 성관계에서 어떤 식으로 상호 작용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의 외도에서부터, 자위행위, 양성애, 난교, 매춘, 심지어 강간까지 인간의 성관계에 따른 모든 행위의 본질적인 한 가지의 목적은 오로지 ‘종족 번식’과 ‘보다 나은 유전자’를 차지하기 위한 획일 된 활동이라는 것이다.


  지구상에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종족의 번식과 번영을 목적으로 태어나고 생을 마감한다. 특히 ‘남성(수컷)’은 태생적으로 종족의 번식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기에 남성이 배우자를 제외한, 최대한 다양한 상대와의 성관계를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졌음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그러기에 나는 도덕적으로는 결코 인정할 수 없지만, 남성이 저지르는 불륜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자 전쟁」에서는 남성의 근원적은 동물적 욕구에 반해, 여성들 또한 종의 보존 전략에 기하여, 되도록이면 많은 남성과 많은 성관계를 통해, 난자 잡이를 통해 ‘월등히 우수한 품질(?)’의 정자를 신중하게 고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종족의 번영을 추구하기 위해 태어나기 전부터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가슴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을, 이성으로나마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에 매우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수억의 정자들이 여성의 질 속을 통과하며 무수한 전쟁을 치루면서, 최종 승리를 거두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일부일처라는 다분히 계산된 산업사회의 결혼 제도 속에서도, 여성은 끊임없이 여러 정자들의 최대한의 수용을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 생리적으로, 과학적으로 그렇게 태어났고, 우리 신체가 그러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도덕과 윤리라는 이성 속에서 선뜻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니, 이미 많은 부부들이 배우자가 아닌 상대로부터의 성관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후엔 양심의 가책과 함께, 법적인 응징이 뒤따른다.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우리의 몸. 내 자신조차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없는 몸의 신비 속에서 잠시 방황했다.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굳이 알게 된 후의 기분과 흡사하다. 쾌락의 추구의 저편에는 정자들의 무시무시한 전투가 펼쳐지고 있었다. 「정자 전쟁」은 일반적인 남(男)과 여(女)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신비로운 번식의 서바이벌 게임을 매우 사실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씁쓸한 마무리 또한 함께 남기고 있었다.


  그리고 생식기에 대한 그림이나 정자들의 움직임을 현미경으로 찍은 사진, 혹은 신체 해부도가 몇 장 추가되었더라면 더욱 쉽게 이해를 도왔을 텐데, 단 한 장의 그림이나 사진도 없이 빽빽한 글자만으로 채워진 책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저자의 상세한 신체 설명에도 불구하고, 내 몸속 안을 훤히 들여다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어 무척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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