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이 사랑한 천재들 - 클림트에서 프로이트까지 도시가 사랑한 천재들 1
조성관 지음 / 열대림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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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훌륭한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은 차원을 넘어서, 깊은 감동에 숨조차 쉬기 힘들어진다. 멋진 그림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단 한 점뿐인 명화를 소유하게 되는 꿈을 꾸는 사람들은 오늘도 경매장을 경마장처럼 드나들며, ‘그, 혹은 그녀’가 남긴 ‘한 점의 그림’을 얻기 위해 열정과 함께 재력을 불태우고 있다. 멋진 건축이 주는 신비로움과 경이로움 역시, 죽어있던 공간 속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


  이렇게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예술 속에 담긴 아름다움에 동화되곤 한다.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영원하다!’무덤 속의 히포크라테스는 지금까지도 이 말에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예술을 탄생시킨 예술가들의 삶은 짧을지언정, 그들이 남긴 예술은 지금도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어 남겨져 있다. 불변의 진리라는 말은 예술을 두고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음악이나 미술, 혹은 건축이라는 분야에 전혀 관심이 없는 문외한들조차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사람들이 있다. 그 주인공들은 천재 혹은 광인, 때로는 시대를 앞서간 불운한 영혼의 소유자라고들 한다. 약간의 관심만 가진다면 ‘클림트, 모차르트, 베토벤, 프로이트, 로스, 바그너’ 라는 이름은 우리 주위에서 너무도 친숙하게 접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런 불멸의 예술가들이 모두 오스트리아의 빈이라는 도시에 살았었다는 공통점에 관심을 기울였던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빈은 모든 거리와 건물들이 ‘그야말로 예술’ 그 자체이다. 환상거리를 중점으로 곳곳에는 이들 예술가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그들의 생활을 재연해 놓은 박물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 발짝 내 딛는 거리마다 그들이 거닐던 공기를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 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빈에 살았던 모든 분야의 지식인들이 총 집합한 작지만 거대한 세계의 모습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한번쯤 염원해 보았던 풍경이 있었다. 예전에 우연히 책을 읽다가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가 자주 갔었다는 카페 ‘드 플로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가서 그가 즐겨 마셨던 커피를 직접 마신다면 어떤 기분일까, 하고 상상해 보며 흥분했었다. 그런데 ‘빈’은 모든 곳에는 클림트의 그림이 있고, 프로이트가 즐겨 찾던 카페가 있고, 모차르트가 교향곡을 작곡했던 집이 있다. 그리고 베토벤이 거닐던 공원과 로스와 바그너가 설계한 숨 막히게 아름다운 건축물까지!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내일이라도 당장 비행기 표 예매해서 날아가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빈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눈물나게 부러웠다. 그러나 대리만족이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떠나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책을 읽으면서 눈으로나마 자제심을 배웠다. 이 책의 저자 ‘조성관’씨는 기자의 신분으로 빈을 마음껏 취재하면서 역사의 페이지를 걷고 또 걸었다. 간략하게 위인들의 연보나 일화 등을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면서 유명한 관광지를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다양한 사진 자료들을 보면서, 직접 가볼 수 없는 자는 위안을 삼기에 충분하다.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여섯 명의 예술가이자 천재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격동적이고도 혼란스러운 시대를 맞이해 고통을 겪으면서 ‘시대’라는 거대한 벽과 충돌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신들마저 질투할 만큼 타고난 천재성을 바탕으로 후세에 더욱 그들의 업적을 인정받았다는 점 또한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필립 솔레르스’의 말대로, ‘시대는 그들을 감당할 자격이 없었다.’


  이 책을 통해 ‘빈’이라는 예술의 도시의 정취를 흠뻑 만끽해 보았다. 이 책에 등장한 여섯 명의 천재들을 비롯해, 합스부르크 왕가의 정착 이후 탄생한 다양한 예술가들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빈에서 태어났거나, 빈에 머물렀던 수많은 사람들. 지금은 역사의 페이지에 소중하게 기록되어 전설로 남겨진 사람들. 실레, 코코슈카, 하이든, 슈베르트, 브람스, 말러, 츠바이크, 슈니츨러, 비트겐슈타인, 로맹 롤랑….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와 아돌프 히틀러까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예술적인 불꽃을 발산하면서 혼을 불태웠던 비엔나는, 오늘도 죽은 자들의 영혼이 자신의 업적을 뒤돌아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그리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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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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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라는 넓은 영역이 포함하고 있는 범위의 한계란 있을 수 없다. 상대가 누가 되었든, 시기가 언제가 되었든 간에, 사랑을 하고 있다는 순간이 주는 쾌락은 실로 대단하다. 생애 처음으로 느끼는 첫사랑의 의미는 그런 의미에서 더욱 특별하다.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자신이 살아가고 싶은 목적을 탐구하게 해주는 인물을 만났을 때의 충만한 기쁨. 인생에서 가장 고독하고, 가장 절망적인, 그리고 가장 섬세한 나이라고 자부하는 열여섯에 만난, 그 특별한 사랑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는, 생애 처음으로 겪게 된 누군가를 향한 사랑의 떨림에 따르는 살벌한 공포감과, 환회로운 감정을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을 이끌어나가는 인물 ‘헨리’는 열여섯의 나이로, 분주하게 머릿속을 떠다니는 잡다한 생각들이 끝이 없는 복잡한 내면의 소년이다. 항상 ‘죽음’의 존재를 염두 해 두고, 지나칠 만큼 죽음에 대해 파고들며 사색하고 있다. 죽음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는 상태에서 가장 사랑하던 친구의 죽음을 맞게 되면서, 친구와 함께 했던 최초의 기억으로 돌아가 그를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강렬하게 다가오는 흐름의 특색을 읽을 수 있었다. 사건은 종횡무진 과거의 현재를 넘나들면서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간간히 등장하는 사건일지를 통해서 ‘왜 헨리는 배리의 무덤에서 춤을 추었는가?’라는 주제를 더욱 깊이 탐색하고 있다. 애초부터 이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질문의 답을 소설적인 형식으로 흥미롭게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첫 만남에서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사건이 주는 긴박감 속에서 끝없이 독백하는 주인공의 깊은 마음속까지 침범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선을 느껴볼 수 있었다.


  잔혹한 성장 통을 겪는 청소년 소설로 간주하기에는 이 책이 주는 감동의 스케일이 무척이나 광범위하다. 헤리는 누구나 한번쯤 꿈꿔 볼만한 인생의 ‘솔 메이트’를 꿈꾸던 중, 기적처럼 등장한 배리와 친구를 넘어선 사랑의 영역까지 침범하면서 영혼의 소통을 꿈꾸고 있다. 비록 그것이 자신이 이루어 낸 허상의 이미지라 할지라도 두 사람이 진정한 마음을 나누어 가졌다는 의미에서는 반문의 여지가 없다. 동성애라는 편견의 시선을 배제하고, 상대방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우주의 원리에 따라 그 속에 자신을 내맡기게 된 것이다. 친구라는 단순한 의미의 차원을 넘어선 영혼의 동반자는, 그는 그렇게 큰 의미가 되어 자신의 인생으로 뛰어 들었고, 그 후로 머릿속에는 온통 배리의 생각만이 동결된 채 서글픈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 어떤 종류의 사랑이 아닌, 단지 스스로의 인생을 걸고 싶었던 유일한 존재 일뿐….


  죽음은 최고의 자극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129p


  죽음은 진정 최고의 자극이자, 살아 있을 동안에는 영원히 풀 수 없을 신비의 ‘그 어떤 것’이다. 고뇌하는 해변의 카프카처럼, 이 책의 화자 ‘헨리’는 계속해서 죽음에 대한 미지의 영역 속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 하고 있다. 의례 모든 청소년 도서가 그렇듯, 그 시절 느꼈던 모든 불안과 흥분들이 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기분이다.


  친구와의 모험을 꿈꾸던 중, 몇 번의 스릴 있는 모험을 경험하기도 하고, 생애 처음으로 자신을 긴장하게 만들었던 타인에게서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문학에 고취되어 소설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넓혀가기도 하고, 또 어느 한 순간 좌절하기도 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16세란 벽의 통과 관문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리얼하게 표현된 청춘의 페이지가 매섭고도 예리한 작가의 손길에 맞닿아있다. 여름, 해변, 새로운 친구, 떨림, 선택, 흥분, 질투, 우정, 사랑, 슬픔, 감동, 약속, 그리고 죽음! 이 모든 소재들의 집합으로「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라는 하나의 성(城) 도달하게 된다.


  작품이 주는 철학적 의미도 강렬하지만, 소설 자체에서 오는 문학적 성취감 역시 매우 큰 작품이다. 개성 있는 문체와 빠른 사건의 전환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기만 하다. 게다가 최초의 질문, ‘왜 헨리는 친구의 무덤에서 춤을 추었을까?’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느껴지는 미스터리 또한 작품의 재미를 한 층 더 극대화 시킨다. 하나의 코드로서 전락 할 수도 있을 동성애라는 소재를 매우 고급스럽고 산뜻하게 해석해 놓은 듯 하다.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는 작가임에도 선택의 후회가 없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에이단 체임버스’ 소설의 매력에 빠져 나오기 힘들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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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프랭크 밀러 글.그림, 린 발리 채색, 김지선 옮김 / 세미콜론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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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리우드 액션 영화들의 바이블이라 일컫는 ‘프랭크 밀러’의 원작 만화들은 하나 같이 세련된 감각의 결정판이라고 불릴 만 하다. 나열하기도 벅찬 많은 영화들의 원작 만화를 탄생시킨 ‘프랭크 밀러’의 ‘한 컷’은 이미 영화의 완성도를 능가하고 있다. 시적인 언어에서 느껴지는 묘하게 서정적인 전율과, 간결한 함축성이 더욱 돋보이는 신작「300」또한 마찬가지다.

  「300」은 초대형 와이드 화면을 보는 듯 착각이 들만큼, 책의 사이즈가 가로로 넓게 펼쳐져 있다. 튼튼한 양장이 소장의 기쁨을 더해주고, 화려한 색감의 일러스트 또한 상당히 고급스럽다. 단조로운 흑백의 작품에서 음울하면서도 퇴색미가 풍기는 ‘린 발리’의 색채가 더해져서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만족감이 탁월하다. 사실적인 묘사가 두드러지는 그림체의 매력은 오랫동안 미국인의 상징으로 자리를 지켜왔던 ‘프랭크 밀러’의 역량을 느끼게 해준다.


  페이지 숫자로 따진다면 상당히 얇다고 할 수 있는 88p 분량의 만화책이지만, 넓은 가로의 큰 사이즈와 비례해 본다면 여느 만화책과는 차별성을 둬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분량에 상관없이 장대한 스케일이나 완성도 면을 따지자면, 결코 실망스럽지 않은 구성이라고 생각된다. 감동의 깊이도 남달랐고, 세련된 만화의 화려한 일러스트를 보고 있자니, 새삼 ‘프랭크 밀러’의 다른 작품들까지 섭렵하고픈 욕심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간략한 줄거리는 기원전 480년의 페르시아와, 스파르타인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300」은 실제로 기록되어 있는 ‘테르모필라이 전투’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탄생되었고, 소수정예 스파르타 군대는 수백만에 이르는 페르시아의 군대와 맞붙어 힘겹지만 정정당당한 승부를 겨룬다는 내용이다. 동원된 인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절대 물러서지 않고 마지막까지 남은 300명의 스파르타 인까지 희생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사람은 언제나 강자 보다는 약자를 응원하게 되는 것이 인지산정이므로, 실제 상황이 어찌 되었든 보잘것없는 숫자를 거느린 ‘스파르타’를 지지하게 된다. 만화적인 측면으로서나, 영화적인 측면으로서나, 드라마틱한 효과를 주기에도 만점일 것이다. 기강 있는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와, 스타일리쉬 한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의 멋진 대결이 볼만하다. 어디까지나 허구성이 짙은 역사물이긴 하나, 고대 그리스의 끝없는 매력을 깊숙하게 탐구하기에는 손색이 없는 작품 같다. 또다시 탄생될 2007년 ‘프랭크 밀러’ 제작의 「300」 영화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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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의 연인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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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더의 연인」을 읽기 전에는 묵직한 설렘 같은 것이 있었다. 첫사랑을 대하듯, ‘샨사’라 불리는 작가와 처음으로 대면하는 자리였기에 더욱 그랬다. 의례 사람의 첫인상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듯이, 작가의 소설작품을 읽기 전에는 그의 첫 느낌을 중요시하는 개인적인 습관에 기여한 탓이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국내에 소개된 몇몇 작품들에서 그녀의 탁월한 기량을 인정받은 ‘샨사’의 차기작에 개인적인 기대심이 다소 다른 방향으로 어긋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우선, 「알렉산더의 연인」은 굉장히 분주한 소설이다. 다르게 말하면 ‘산만’ 내지는, ‘어지러운’느낌을 자아내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즐비했다. 간결하게 끊어지는 문장이 긴 호흡을 요하지는 않으나, 맺고 끊음이 확실하지 않아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만큼 대체적으로 차분하지 못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가 제시하고 있는 ‘알렉산더’와 ‘알레스트리아’의 관계는 단순한 에로티즘을 넘어선 영혼의 화합이라는 거대한 목적아래 탄생된 인물이다. 그러나 허상의 느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순수한 열정을 잃어버린 느낌마저 들었다.


  역사가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인물을 다시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작가나 연출가의 개인적인 견해가 포함되기 마련이다. 일부 매체에서 다루어진 ‘알렉산더’라는 인물의 중추적인 묘사는 동서양을 화합해 대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정복자라는 강렬한 이미지를 부여해두었다. 반면 ‘샨사’가 말하고자하는 ‘알렉산더’라는 인물은, 동성애라는 성적인 취향의 퇴폐적인 측면을 강조한 채 수습은 엉뚱한 여인에게서 찾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알렉산더와 알레스트리아의 사랑에는 무언가가 빠져있다. 그 공허함의 중심에는 ‘알렉산더 2세’의 간절한 염원만이 가득하고, 서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불분명하게 나타나있다. 모든 사랑이 그렇듯 ‘운명’에 기초하여 부득이하게 이루어진 행위의 결과가 못내 안타까움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샨사가 전기소설을 쓰고자 노력했다면, 최소한 인물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고뇌와 번민의 깊이, 그리고 인물들 간에 이루어지는 폭넓은 갈등의 순간들 또한 헤아렸어야 한다. 스펙터클한 전쟁의 묘사는 애초에 이 책이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기에, 알렉산더대왕의 사적인 부분들의 솔직함만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방탕한 폭군 아버지를 둔 ‘알렉산더’는 그의 어머니에게 동정과 연민을 느끼는 동시에 증오를 품게 되고, 그것은 어긋난 여성에의 거부감으로 표출되어, 창남이나 남자하인들을 탐하게 된다. 스스로도 남성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만, 후에는 여왕을 맞이해 사랑의 마침표를 찍게 된다. 그리고, 유목하는 시베리아 아마존부족의 여왕으로서, 남성들을 능가하는 기상과 전투능력을 갖춘 ‘알레스트리아’…. 그러나 그녀는 여자들만 이루어진 집단에서 남자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을 깨고, 알렉산더라는 남성을 사랑하게 되어 결국 그를 차지한다. 


  알렉산더는 자신의 어머니 같은 ‘무력한 아내’를 인정할 수 없었기에, 남성 못잖은 힘과 능력을 지니고 있는 알렉스트리아를 선택하게 된다. 그녀에게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발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이다. 알렉산더 역시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기에, 많은 남성들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차지하게 된다.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 그러하듯, 작가가 그려낸 두 인물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자웅동체’의 이미지를 중점으로, 모든 스토리를 이끌어가고 있다.


  양성을 탐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루어진 인간의 욕망이다. 오히려 모든 성적인 의미에서 탈피해서 한 영혼을 사랑하는 길이 모든 세상사의 순리일지도 모른다. ‘샨사’는 男女라는 염색체가 주는 기능을 떠나서, 사람 대 사람의 순수 운명적인 사랑 그 자체를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중심에, 희미한 전설로 남아있는 알렉산더라는 인물을 선택했다. 내가보기엔, 알렉산더가 샨사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알렉산더라는 고급 인물을 선택했을 뿐, 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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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06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매품으로 받으셨을 텐데. <바둑 두는 여자>는 좋아요. 읽어 보시면 후회 안 하실 겁니다. ^_^

mind0735 2007-03-07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은고양이님 - 앗.. ; 바둑두는 여자는 받지 못했습니다. 알라딘 서평단으로 받은 책이라서요. ㅠ_ㅠ <바둑두는 여자> 정말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을 파는 남자 - KI신서 916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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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금 이다.’ 혹은 ‘시간은 돈이다.’ 이 두 문장은 누구나 알고 있는 정석이다. 1분 1초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금보다 더 소중한 값어치를 할 것이 틀림없다. 시간은 금이자 돈이기도 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은 오히려 시간에 종속되어 있고, 시간에게 휘둘리고 있다. 바쁘게 쫓겨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마음대로 누릴 수 있는 자유마저 빼앗긴 것이다.

  「시간을 파는 남자」는 독특한 경제 풍자 소설이다. ‘빨리, 빨리’문화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잘 맞게 글의 흐름이 굉장히 빠르다. 시간 없는 독자들을 배려한 저자는, 독자가 최대한 빨리 읽을 수 있도록 주인공 이름들마저 이니셜로 간단하게 표기하고 있는 성의를 보여준다. 그러나 빠른 전개 속에서도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한 소설이다.


  저자는 흔히들 생각하고 있는 시간의 관념을 금이나 돈이 아닌, 인간의 자유를 결박하는 ‘인생의 부채’로 보고 있다. 이유인즉슨, 현대인들이 지나치게 시간에 휘둘리며 자유로움으로부터 결박당한 채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둘이나 셋 정도 낳아서 기르고, 성실히 직장에 다니고 있는 평범한 ‘TC’(Tipo Corriente = 보통 남자)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평범한 TC씨는 가정을 꾸린 후 내 집 장만을 위해 은행으로부터 주택자금을 융자 받았다. 18평 아파트와 거래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남은 평생 35년의 자유가 결박당한 것이다. TC씨는 자그마치 35년 동안 현재 다니는 회사에 꾸준히 다녀야만 은행으로부터의 빚을 청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시간의 관념은 평생 부채에 시달리는 반평생의 인생, 모든 자유를 빼앗긴 시간은 곧 ‘빚’이라는 사실이다.  


  TC는 ‘적두개미’라 불리는 희귀개미를 연구하는 꿈을 평생 동안 키워왔다. 지금이라도 당장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 개미 연구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주택융자금 때문에 직장을 그만둘 수 없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자신처럼 꿈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평생을 빚과 부채의 탕감이라는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시간’을 판매하는 것이다. 여기서 ‘시간을 판매한다.’는 사실은 한 마디로 말도 안 돼지만, 픽션에서 불가능이란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은 판타지의 범주에 넣어도 무방할 것 같다.      


  어쨌든 주인공 TC씨의 시간 판매 사업은 날로 번창해서, ‘5분, 일주일, 35년’ 이라는 시간들의 판매가 획기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회사에 얽매여서 자신의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나 간절하게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대환영이었다. 결국 전 국민 모두가 TC가 판매하는 시간을 구매하게 되고, 나라가 엉망으로 돌아갈 위기까지 처하게 되고 말았다. 저자는 이렇게 독특한 상상으로 서구 사회 시장의 경제원리를 따끔하게 질책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일이다. 일하는 기계가 되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회사에서 움직이는 ‘모던 타임즈’의 살벌한 풍경 속에서, 누구나 자유를 갈망한다. 모든 것이 돈으로부터 비롯된 인간의 욕심일 뿐이라고 하기에는 체제의 모순이 너무 강한 듯싶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전체주의에 포함되어 모두 같은 모습으로 시간의 빚에 쪼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시간을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다면, 정말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사업주는 분명 벼락부자가 되고 말테지만, 아마 그 나라의 운명은 고개를 젓게 만들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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