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이라는 넓은 영역이 포함하고 있는 범위의 한계란 있을 수 없다. 상대가 누가 되었든, 시기가 언제가 되었든 간에, 사랑을 하고 있다는 순간이 주는 쾌락은 실로 대단하다. 생애 처음으로 느끼는 첫사랑의 의미는 그런 의미에서 더욱 특별하다.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자신이 살아가고 싶은 목적을 탐구하게 해주는 인물을 만났을 때의 충만한 기쁨. 인생에서 가장 고독하고, 가장 절망적인, 그리고 가장 섬세한 나이라고 자부하는 열여섯에 만난, 그 특별한 사랑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는, 생애 처음으로 겪게 된 누군가를 향한 사랑의 떨림에 따르는 살벌한 공포감과, 환회로운 감정을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을 이끌어나가는 인물 ‘헨리’는 열여섯의 나이로, 분주하게 머릿속을 떠다니는 잡다한 생각들이 끝이 없는 복잡한 내면의 소년이다. 항상 ‘죽음’의 존재를 염두 해 두고, 지나칠 만큼 죽음에 대해 파고들며 사색하고 있다. 죽음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는 상태에서 가장 사랑하던 친구의 죽음을 맞게 되면서, 친구와 함께 했던 최초의 기억으로 돌아가 그를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강렬하게 다가오는 흐름의 특색을 읽을 수 있었다. 사건은 종횡무진 과거의 현재를 넘나들면서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간간히 등장하는 사건일지를 통해서 ‘왜 헨리는 배리의 무덤에서 춤을 추었는가?’라는 주제를 더욱 깊이 탐색하고 있다. 애초부터 이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질문의 답을 소설적인 형식으로 흥미롭게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첫 만남에서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사건이 주는 긴박감 속에서 끝없이 독백하는 주인공의 깊은 마음속까지 침범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선을 느껴볼 수 있었다.


  잔혹한 성장 통을 겪는 청소년 소설로 간주하기에는 이 책이 주는 감동의 스케일이 무척이나 광범위하다. 헤리는 누구나 한번쯤 꿈꿔 볼만한 인생의 ‘솔 메이트’를 꿈꾸던 중, 기적처럼 등장한 배리와 친구를 넘어선 사랑의 영역까지 침범하면서 영혼의 소통을 꿈꾸고 있다. 비록 그것이 자신이 이루어 낸 허상의 이미지라 할지라도 두 사람이 진정한 마음을 나누어 가졌다는 의미에서는 반문의 여지가 없다. 동성애라는 편견의 시선을 배제하고, 상대방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우주의 원리에 따라 그 속에 자신을 내맡기게 된 것이다. 친구라는 단순한 의미의 차원을 넘어선 영혼의 동반자는, 그는 그렇게 큰 의미가 되어 자신의 인생으로 뛰어 들었고, 그 후로 머릿속에는 온통 배리의 생각만이 동결된 채 서글픈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 어떤 종류의 사랑이 아닌, 단지 스스로의 인생을 걸고 싶었던 유일한 존재 일뿐….


  죽음은 최고의 자극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129p


  죽음은 진정 최고의 자극이자, 살아 있을 동안에는 영원히 풀 수 없을 신비의 ‘그 어떤 것’이다. 고뇌하는 해변의 카프카처럼, 이 책의 화자 ‘헨리’는 계속해서 죽음에 대한 미지의 영역 속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 하고 있다. 의례 모든 청소년 도서가 그렇듯, 그 시절 느꼈던 모든 불안과 흥분들이 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기분이다.


  친구와의 모험을 꿈꾸던 중, 몇 번의 스릴 있는 모험을 경험하기도 하고, 생애 처음으로 자신을 긴장하게 만들었던 타인에게서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문학에 고취되어 소설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넓혀가기도 하고, 또 어느 한 순간 좌절하기도 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16세란 벽의 통과 관문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리얼하게 표현된 청춘의 페이지가 매섭고도 예리한 작가의 손길에 맞닿아있다. 여름, 해변, 새로운 친구, 떨림, 선택, 흥분, 질투, 우정, 사랑, 슬픔, 감동, 약속, 그리고 죽음! 이 모든 소재들의 집합으로「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라는 하나의 성(城) 도달하게 된다.


  작품이 주는 철학적 의미도 강렬하지만, 소설 자체에서 오는 문학적 성취감 역시 매우 큰 작품이다. 개성 있는 문체와 빠른 사건의 전환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기만 하다. 게다가 최초의 질문, ‘왜 헨리는 친구의 무덤에서 춤을 추었을까?’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느껴지는 미스터리 또한 작품의 재미를 한 층 더 극대화 시킨다. 하나의 코드로서 전락 할 수도 있을 동성애라는 소재를 매우 고급스럽고 산뜻하게 해석해 놓은 듯 하다.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는 작가임에도 선택의 후회가 없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에이단 체임버스’ 소설의 매력에 빠져 나오기 힘들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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