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파는 남자 - KI신서 916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시간 금 이다.’ 혹은 ‘시간은 돈이다.’ 이 두 문장은 누구나 알고 있는 정석이다. 1분 1초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금보다 더 소중한 값어치를 할 것이 틀림없다. 시간은 금이자 돈이기도 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은 오히려 시간에 종속되어 있고, 시간에게 휘둘리고 있다. 바쁘게 쫓겨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마음대로 누릴 수 있는 자유마저 빼앗긴 것이다.

  「시간을 파는 남자」는 독특한 경제 풍자 소설이다. ‘빨리, 빨리’문화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잘 맞게 글의 흐름이 굉장히 빠르다. 시간 없는 독자들을 배려한 저자는, 독자가 최대한 빨리 읽을 수 있도록 주인공 이름들마저 이니셜로 간단하게 표기하고 있는 성의를 보여준다. 그러나 빠른 전개 속에서도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한 소설이다.


  저자는 흔히들 생각하고 있는 시간의 관념을 금이나 돈이 아닌, 인간의 자유를 결박하는 ‘인생의 부채’로 보고 있다. 이유인즉슨, 현대인들이 지나치게 시간에 휘둘리며 자유로움으로부터 결박당한 채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둘이나 셋 정도 낳아서 기르고, 성실히 직장에 다니고 있는 평범한 ‘TC’(Tipo Corriente = 보통 남자)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평범한 TC씨는 가정을 꾸린 후 내 집 장만을 위해 은행으로부터 주택자금을 융자 받았다. 18평 아파트와 거래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남은 평생 35년의 자유가 결박당한 것이다. TC씨는 자그마치 35년 동안 현재 다니는 회사에 꾸준히 다녀야만 은행으로부터의 빚을 청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시간의 관념은 평생 부채에 시달리는 반평생의 인생, 모든 자유를 빼앗긴 시간은 곧 ‘빚’이라는 사실이다.  


  TC는 ‘적두개미’라 불리는 희귀개미를 연구하는 꿈을 평생 동안 키워왔다. 지금이라도 당장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 개미 연구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주택융자금 때문에 직장을 그만둘 수 없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자신처럼 꿈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평생을 빚과 부채의 탕감이라는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시간’을 판매하는 것이다. 여기서 ‘시간을 판매한다.’는 사실은 한 마디로 말도 안 돼지만, 픽션에서 불가능이란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은 판타지의 범주에 넣어도 무방할 것 같다.      


  어쨌든 주인공 TC씨의 시간 판매 사업은 날로 번창해서, ‘5분, 일주일, 35년’ 이라는 시간들의 판매가 획기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회사에 얽매여서 자신의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나 간절하게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대환영이었다. 결국 전 국민 모두가 TC가 판매하는 시간을 구매하게 되고, 나라가 엉망으로 돌아갈 위기까지 처하게 되고 말았다. 저자는 이렇게 독특한 상상으로 서구 사회 시장의 경제원리를 따끔하게 질책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일이다. 일하는 기계가 되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회사에서 움직이는 ‘모던 타임즈’의 살벌한 풍경 속에서, 누구나 자유를 갈망한다. 모든 것이 돈으로부터 비롯된 인간의 욕심일 뿐이라고 하기에는 체제의 모순이 너무 강한 듯싶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전체주의에 포함되어 모두 같은 모습으로 시간의 빚에 쪼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시간을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다면, 정말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사업주는 분명 벼락부자가 되고 말테지만, 아마 그 나라의 운명은 고개를 젓게 만들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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