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생활자의 수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2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동현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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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독서회 이달 모임에서 읽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보니 최근에는 러시아 문학작품을 많이 읽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변두리에 있는 지하방에 세 들어 살고 있는 화자가 자신의 처지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전반부와 고립된 생활에 지친 화자가 친구들을 찾아 나섰다가 갈등을 빚고 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를 가는 친구들을 따라 매음굴을 갔다가 만난 리자라는 여인과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후반부로 구성됩니다.


나는 병적인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는 남의 호감을 사지 못하는 인간이다.”라고 운을 떼는 것을 보면 화자는 자존감이 많이 부족해 보인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자신이 충분한 교육을 받았고, 의학이아 의사를 존경하고는 있지만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저 고집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자신에 대하여 비관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에 대하여 삐딱한 시선을 가지고 있을만한데 실천적 인간을 부러워하는 속물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아 그리고 보니 화자는 40살이 되었습니다. 나이가 40에 이르렀으면 사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고 해서 불혹(不惑)의 나이라고 합니다만, 화자는 세상이나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앙앙불락(怏怏不樂)하고 있습니다. 관청에 다니고는 있지만 하위관리인 까닭에 생활에 여유가 없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녀를 부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후반부에는 하녀가 아니라 하인을 부리는 것으로 나와서 헷갈리기도 합니다.


후반부에 그동안 연락을 끊다시피하고 지내던 친구 시모노프를 만나러 집을 나섰습니다. 이런 그의 행동을 보면 지하에 처박혀 세상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고 사는 것은 또 아닌 듯합니다. 시모노프를 만나러 갔을 때 친구들이 장교로 근무하는 즈베르코프라는 친구가 먼 지방으로 전속가는 것을 환송하는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자신도 참석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리 친한 친구들도 아닌데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자신의 어려운 처지에 대한 반동에서 나온 행동이 아닌가 싶습니가. 그리고 보면 화자는 충동적인 성격이 아닌가 싶습니다.


친구들은 화자에게는 통보하지 않고 모임을 한 시간 늦게 시작합니다. 화자는 결국 한 시간 넘게 친구들을 기다려야 했고, 그 점이 불쾌한 까닭에 모임 내내 불퉁거리고 술에 취하게 됩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술을 마실 때 긴 건배사를 즐긴다고 하는데, 화자 친구들의 모임에서도 술을 마실 때 보니, “우리들의 과거와 미래를 축보하는 뜻에서 건배하세, 우라아!(113)”라고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앞부분은 건배사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고, 끝에 덧붙이는 우라아!”는 일종의 건배와 같은 구호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떻든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킨 화자는 친구들이 2차로 매음굴로 간다는 말을 듣고는 시모노프에게 돈을 꾸어 자신도 따라가게 됩니다. 이 또한 어려운 처지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충동적 행동의 일환이라는 생각입니다. 여기에서 만나게 되는 리자에게는 이런 삶을 청산하는 것이 좋겠다는 설교조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을 보면 과시욕도 만만치가 않아 보입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찾아오라고 초대하기까지 합니다.


이 작품은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적 모티프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어쩌면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는 반사회적 인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분위기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전반에서 느끼는 바와 결을 같이 하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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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해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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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연속극을 먼저 본 뒤에 읽게 되었습니다. 연속극을 보고서 원작 소설을 읽게 된 경우는 처음인 듯합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연속극의 장면들과 비교하게 되면서 몰입도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혁진 작가의 <사랑의 이해>는 은행에 근무하는 남녀 4명의 연애 이야기입니다.


비정규직인 안수영은 그 미모 때문에 남자직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지만 청경 정종현과 연애를 시작합니다. 청경 정종현은 은행에 근무하는 한편 경찰이 되기 위한 시험에 도전을 이어갑니다. 하상수 계장은 안수영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계수가 틀리는 바람에 저녁약속 자리에 나가지 못하면서 관계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대학 후배인 박미경 대리와 연애를 시작하게 됩니다.


연속극에서는 네 사람의 가족들도 등장하여 배역의 성격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만, 소설에서는 박미경의 부친과 사촌오빠가 식사를 함께 하는 장면이 잠깐 나올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네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구조에 대한 서술이 연속극과 비교해서 부족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연속극에서는 안수영의 주변을 감도는 하상수의 동선이 꽤나 집요하게 이어지면서 네 사람 사이의 갈등으로 발전해가는 반면 소설에서는 그런 부분이 분명치가 않습니다.


갈등 요소는 종현의 아버지가 다치는 바람에 수영이 종형과 동거하기로 결정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에 계속 실패하는 것이 두 사람의 관계를 파국으로 이끄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미경과 상수의 관계는 미경의 집안 배경이 걸림돌로 작용하여 관계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청춘남녀가 만나 사랑을 시작하고,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결혼에 이르게 되는데, 의외로 많은 요소들이 고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세상이 바뀌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이해>라는 제목 옆에 利害(이해), 理解(이해)라는 한자어를 붙여놓은 것 같습니다. 사랑을 하는 사이에 利害(이해) 관계를 따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갈등을 극복하고 서로를 理解(이해)하게 되면 결혼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사랑의 이해>에 등장하는 두 쌍의 남녀는 결국 利害(이해)를 따지는 과정에서 서로를 충분히 理解(이해)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해 좋은 결론에 이르지 못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연속극과 소설에서는 잠깐 보여주는 뒷이야기에도 차이도 있습니다.


연속극에서는 안상수 역의 유연석 배우, 안수영 역의 문가영 배우, 박미경 역의 금새록 배우, 정종현 역의 정가람 배우 등이 배역의 성격을 잘 연기해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명의 젊은이들은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사랑을 망설이고, 시작하고 흔들리고 주춤대고 결국은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사랑은 지나치게 고민하고 계산하면 답이 나오지 않은 것 아닐까요?


망설였다. 관계를 더 발전시킬지 말지. 수영이 텔러, 계약직 창구 직원이라는 것, 정확히는 모르지만 변두리 어느 대학교를 나온 듯한 것, 다 걸렸다. 일도 잘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그 두 가지가 상수 자신의 밑천이었기 때문에, 상수가 세상에서 지금까지 따낸 전리품이자 직장과 일상생활에서 그 위력과 차별을 나날이 실감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라는 상수의 생각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수영 역시 상수에 대하여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수영은 어떤 생각에서 종현과 사귀기로 결정하게 된 것인지는 분명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녀와 사랑을 해보려는 남자직원들이 적지 않았다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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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파는 가게 담쟁이 문고
이하 지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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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붙들고 있는 화두인 기억을 팔 수 있다는 생각이 참신하다는 생각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기억을 파는 가게>는 이하 시인의 첫 번째 청소년 소설이라고 합니다. 사고를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어머니,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할머니와 함께 사는 태권소녀 채아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가는 모습을 그려낸 성장소설입니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라고 시작합니다. 채아리 주변에 있는 친구들 모두 나름대로의 고민을 한 가득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작가는 그런 고민들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기억을 지워주거나 심지어는 팔기도 하는 가게를 대안으로 내놓았습니다. 기억을 지우거나 사고파는 기술이 아직까지 개발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기술을 가진 외계인을 등장시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 후문 가까이 새로 생긴 메멘토이라는 가게 주인은 알고 보니 외계인이었습니다. 종족 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서로의 기억을 변생시키는 엄청난 기억전쟁이 벌어졌고, 그 결과 세계가 초토화되었다는 것인데, 기억을 재생시키는 실험을 하기 위하여 지구에 찾아들었다는 것입니다.


집안 형편은 어렵지만 태권도를 훈련하면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채아리입니다만, 어려서부터 함께 태권도를 배워온 정민에게 먼저 사랑을 고백하는 친구가 생기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설상가상 어머니는 평소 의지하던 민호 아저씨와 합치겠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자라는 아이에게는 우주적인 문제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래서 기억을 조작하는 우주인이 등장하는 우주적인 해결방안을 가져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괴롭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은 손쉬운 해결방안이 될 수도 있지만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괴로운 문제는 몸으로 부딪혀가면서 해결방안을 직접 찾아내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보라고양이가 아리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억은 항체이자, 신체라는 사실을 전하면서 네가 가진 기억들은 아무리 아픈 것들이라도 비슷한 체험이 반복될 때 하나의 면역기능을 한다(131)’고 설명합니다.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기억을 지워버리면 같은 상황을 맞게 되었을 때는 면역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상처를 안겨주는 셈입니다.


아빠는 아리에게 세상에서 최고로 비싼 금은 황금도, 소금도 아닌 바로 지금이라고말합니다. 지금의 기억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행복한 지금보다는 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고, 지나간 과거의 고통에 힘들어한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지금을 즐기는 긍정적인 마음이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억을 지우는 일이나 그로 인하여 생기는 문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는데, 기억을 파는 문제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남의 기억을 사가는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기억을 지우거나 파는 것일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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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
한만청 지음 / 센추리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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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암이나 치료가 어려운 난치병을 앓게 되면 투병(鬪病)을 한다고들 합니다. 병과 싸운다는 뜻이고 싸워서 이기겠다는 의지를 북돋우려는 생각으로 사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치명적인 말기암으로 진단받더라고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되라고 하시는 의사분이 계셨습니다. 간암을 진단받고 수술을 받고서 두달 만에 간에 전이가 되어 생존율이 5% 미만이라는 말기 간암임에도 절망하지 않고 치료에 전념하여 완치해낸 한만청 교수님입니다. 서울대학교 병원의 병원장까지 지내신 분입니다.


교수님은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에서 간암을 완치하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해냈습니다. 서문을 보면 저자는 내 몸에 찾아온 암을 굳이 싸워 이겨야 할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내게 있어 병은 다스림의 대상일 뿐 근절의 대상은 아니었던 것이다.(18)’이라고 했습니다. 억지로 싸워가면서 받는 치료와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온 정성을 다하는 치료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저자가 선택한 치료의 방향은 첫째. 치료의 주체가 될 자신을 믿는 것, 둘째. 임상적으로 검증된 증거 중심의의학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말기암 환자 가운데 흔히 용하다는 민간요법을 받느라 병원에서 권하는 표준치료를 소홀히 하다가 치료에 실패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환자들은 치료의 방향을 정하는 주체가 자신임은 맞지만 임상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에 매달려 병과의 싸움에 임하다가 치료에 실패하기 쉽다는 점을 설파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치료에 임하고 근거에 입각한 치료에 집중하게 되면 말기암이라고 해도 완치할 수 있다는 사실은 하버드 의과대학의 제롬 그루프만 교수가 쓴 <희망의 힘>에서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희망의 힘>에서 소개한 사례들을 보면 싸우듯 치료에 매달린 환자들은 완치에 이르고, 말기암에 절망하여 소극적으로 대응한 환자의 경우는 일찍 세상을 하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한만청교수님 역시 스스로 말기 간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근거가 있는 치료법에 집중하여 완치에 이르렀으니 역시 암과 싸워 이겨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암을 다스림의 대상이고 근절의 대상은 아닌 것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만,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환자의 경우는 그저 암을 이겨보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주변에서 추천하는 근거 없는 치료법에 매달리다 치료에 실패하는 경향이 있다는 차이를 그리 표현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암은 기본적으로 수술로 절제해내고, 화학치료, 방사선치료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보조요법으로 치료하게 됩니다. 환자에 따라서는 치료가 순조롭게 이루어져 임상적으로 잔존암이 발견되지 않는 관해에 이르기도 하지만 치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줄어들었다가 다시 커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치료에 저항하는 암세포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환자들은 이런 시점에서 근거중심의 의학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다양한 치료제나 치료방법이 나와 있기 때문에 새로운 치료법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병원에서 제안하는 근거가 확인된 치료에 집중하였고, 그런 치료가 효과를 보일 수 있도록 식사관리는 물론 운동도 열심히 하였던 것이 말기 간암을 완치할 수 있었다는 점을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에 담았습니다. 암환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으로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일상의 원칙을 비롯하여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적었습니다. 암환자라면 한번쯤 고민해보았을 것들이지만 역시 병원에서 추천하는 치료를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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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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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가지는 슬픔의 깊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뒤따라 삶을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슬픔을 이기고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살아남아 돌아가신 분을 기억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선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시나 다양한 형식의 산문으로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전송열교수님은 <옛사람들의 눈물>에 선인들의 만시(挽詩)를 모았고, 문화사학자 신정일님은 <눈물편지>에서 어린 자식, 배우자, 형제자매, 그리고 벗과 스승 등을 잃은 슬픔을 담은 시, 제문 혹은 서한문 등을 모아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가늠해보았습니다.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문학가 롤랑 바르트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극진했던가 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날부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북받칠 때마다 글을 써 남겼다고 합니다. 일반 공책을 사등분해서 만든 쪽지에 잉크로 혹은 연필로 적어 책상위에 놓은 상자에 담아두었는데 그의 사후에 쪽지들을 엮어 <애도일기>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공책에 적은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쪽지에는 적은 날짜도 기록해두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애도일기>에 실린 쪽지의 내용은 적은 날자 순으로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목차에 정리된 것처럼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날(19771026)부터 2년여에 이르는 1979915일까지 쪽지를 써 남겼다고 합니다.


바르트가 남긴 쪽지들은 한줄짜리 짧은 것부터 몇 장을 이어붙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그런 글들임에도 그 슬픔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 어려웠다고 옮긴이는 토로하였습니다. 그 슬픔은 어머니와 맺어져 있던 사랑이 이제는 끊어진데서 오는 상실감에서 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 순수한 슬픔, 외롭다거나 삶을 새로 꾸미겠다거나 하는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슬픔. 사랑의 관계가 끊어지고 벌어지고 패인 고랑(1977119)”이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나 죽으면, 기다렸다는 듯 서둘러 세워지는 앞날의 계획들(새로운 가구 등등): 미래에 대한 광적인 집착.(1127)”이라고 적어둔 것을 보면 살아남은 자들이 보이는 일반적인 행태가 불만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죽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전하게 파괴되지 않은 채로 살아 있다. 이 사실을 무엇을 말하는 걸까. 그건 내가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 미친 것처럼, 정신이 다 나가버릴 정도로 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 건, 그 불안으로부터 한 발짝도 비켜날 수 없는 건 바로 그 때문이리라.(1030)”라는 글을 남긴 것을 보면 자신의 미래를 예견한 것 같기도 합니다.


라루스 백과사전의 메멘토항목에서 따온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18개월이 넘으면 안된다한도까지 적어두었으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그의 애도는 그 한도를 초과하여 이어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죽자마자 세상은 나를 마비시킨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거야, 라는 원칙으로(615)”라는 글을 남긴 것을 보면 애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거부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슬픔이 깊으면 그 슬픔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힘들기 마련입니다. 깊은 슬픔은 때로 자신을 파괴하는 결과를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모습을 담은 쪽지도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시 읽을 때 참고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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