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가지는 슬픔의 깊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뒤따라 삶을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슬픔을 이기고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살아남아 돌아가신 분을 기억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선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시나 다양한 형식의 산문으로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전송열교수님은 <옛사람들의 눈물>에 선인들의 만시(挽詩)를 모았고, 문화사학자 신정일님은 <눈물편지>에서 어린 자식, 배우자, 형제자매, 그리고 벗과 스승 등을 잃은 슬픔을 담은 시, 제문 혹은 서한문 등을 모아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가늠해보았습니다.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문학가 롤랑 바르트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극진했던가 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날부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북받칠 때마다 글을 써 남겼다고 합니다. 일반 공책을 사등분해서 만든 쪽지에 잉크로 혹은 연필로 적어 책상위에 놓은 상자에 담아두었는데 그의 사후에 쪽지들을 엮어 <애도일기>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공책에 적은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쪽지에는 적은 날짜도 기록해두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애도일기>에 실린 쪽지의 내용은 적은 날자 순으로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목차에 정리된 것처럼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날(19771026)부터 2년여에 이르는 1979915일까지 쪽지를 써 남겼다고 합니다.


바르트가 남긴 쪽지들은 한줄짜리 짧은 것부터 몇 장을 이어붙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그런 글들임에도 그 슬픔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 어려웠다고 옮긴이는 토로하였습니다. 그 슬픔은 어머니와 맺어져 있던 사랑이 이제는 끊어진데서 오는 상실감에서 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 순수한 슬픔, 외롭다거나 삶을 새로 꾸미겠다거나 하는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슬픔. 사랑의 관계가 끊어지고 벌어지고 패인 고랑(1977119)”이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나 죽으면, 기다렸다는 듯 서둘러 세워지는 앞날의 계획들(새로운 가구 등등): 미래에 대한 광적인 집착.(1127)”이라고 적어둔 것을 보면 살아남은 자들이 보이는 일반적인 행태가 불만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죽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전하게 파괴되지 않은 채로 살아 있다. 이 사실을 무엇을 말하는 걸까. 그건 내가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 미친 것처럼, 정신이 다 나가버릴 정도로 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 건, 그 불안으로부터 한 발짝도 비켜날 수 없는 건 바로 그 때문이리라.(1030)”라는 글을 남긴 것을 보면 자신의 미래를 예견한 것 같기도 합니다.


라루스 백과사전의 메멘토항목에서 따온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18개월이 넘으면 안된다한도까지 적어두었으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그의 애도는 그 한도를 초과하여 이어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죽자마자 세상은 나를 마비시킨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거야, 라는 원칙으로(615)”라는 글을 남긴 것을 보면 애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거부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슬픔이 깊으면 그 슬픔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힘들기 마련입니다. 깊은 슬픔은 때로 자신을 파괴하는 결과를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모습을 담은 쪽지도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시 읽을 때 참고해보려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