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연출의 사회학 -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기하는가
어빙 고프먼 지음, 진수미 옮김 / 현암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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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등지고 사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다양한 집단 속에서 어울려 살기 마련이고, 집단의 구성원들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겠습니다. 관계를 맺는 과정은 다양한 형태의 의사소통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표현하는 행동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 과정에서 타인이 자신을 잘 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를 나름대로 고민할 것입니다. 의사표현에는 말로써 하는 명시표현과 행동으로 보이는 암시표현을 모두 포함합니다.

스스로를 연출하는 행태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한 <자아연출의 사회학>은 미시사회학 분야를 개척한 어빙 고프만이 쓴 책입니다. 고프만은 자아연출을 개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개인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좋게 봐주기를, 자기가 그들을 높이 평가한다고 여겨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들에 대한 자기의 실제 느낌을 그들이 감지하기를 바라거나 그저 모호한 인상만 받기를 바랄 수도 있다. 그는 상호작용이 유지될 수 있도록 다른 이들과 잘 화합하기를 원할 수도 있고, 다른 이들을 따돌리고, 헷갈리게 하고, 적대시하고, 모욕하려 할 수도 있다. 개인이 염두에 둔 목표와 동기가 무엇이든, 그의 관심사는 다른 이들의 행동, 특히 자기를 대하는 다른 이들의 반응을 통제하는데 있다.(14)”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개인이 집단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개인 참여자의 구체적 내용이나 사회체계의 작동에 상호 의존적 행동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다루지 않는다. 이 책은 개인이 남들 앞에서 행동할 때 택하는 극적 연출의 문제만 다룬다. 연출 기법과 무대 관리는 사소하지만 사회생활에서 매우 보편적이어서 사회학적 분석이 필요한 문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사회학적 분석을 연극무대를 빌어서 설명을 한 점이 특이하였습니다. 대학 다니던 시절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제작에 참여한 바 있기 때문에 저자의 설명이 비교적 쉽게 이해되었습니다.


연극은 사회적 관계가 모종의 약속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을 설명해줄 수 있습니다. 연극은 배우들이 무대에서 상호간에 주고받는 명시표현과 암시표현을 관객들이 지켜보고 이해하는 장()입니다. 그런가 하면 무대에서 한편의 연극을 공여하기 위하여 무대 뒤에서 많은 제작진들 사이에 많은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제작진 이외의 사람들 역시 무대 뒤의 사람들과 접촉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연극무대를 빌어서 사회적 관계의 이론을 펼침과 동시에 다양한 집단에서의 사례를 인용하기도 하는데, 특히 영국의 셰틀랜드 섬의 공동체의 사례를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립정신병원의 연구원으로 활동핮 적이 있는 까닭인지 병원사회의 경우도 적지 않게 인용합니다. 저의 경험에 비추어 간혹 공감되지 않는 대목이 없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의과대학생들은 이상주의적 지향성을 지는 신입생에게 그 거룩한 포부를 한동안 제쳐놓으라고 말한다. 2년 동안 의대생은 시험에 통과하는 방법을 배우는데 시간을 보내느라 의학적 관심사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다은 2년은 질병에 관한 공부를 하느라 너무 바빠 정작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관심을 보일 겨를이 없다. 의학공부가 끝난 후에야 그들은 비로소 그들이 처음에 지녔던 일 활동의 이상을 되새길 수 있다.(35)”라는 대목이 그렇습니다. 모든 의대생들이 꼭 같지는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옮긴이에 따르면 1959년에 발표된 이 책은 미국 사회작계는 물론이고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고전으로 평가받았고, 대중적 명성을 누렸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추천사를 뜬 김광기교수는 어빙 고프만을 사회학게의 영원한 이단자이자 이방인이라고 했습니만, 미국 사회학회 회장을 지낸 이를 이방인이라 하는 것이 옳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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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의 철학 - 지속하는 삶을 위한 성격의 힘
제임스 힐먼 지음, 이세진 옮김 / 청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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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줄에 들어섰을 무렵 우아하게 늙어가는 방법을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고민했던 우아하게 늙어가는 법은 막상 나이가 들었을 때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실천에 옮겨본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간단한 것이라도 실행에 옮겨볼 것을 그랬습니다.


나이 듦이란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과 마음이 쇄락해지고, 또 그런 변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을 전공하는 제임스 힐만은 다른 생각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그는 <나이 듦의 철학>에서 나이가 들어간다고 해서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하는 삶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무언가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저자는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했던 말, “성격이 운명이다를 인용하면서 성격이란 특징, 기벽, 즐거움, 헌신 등의 독특한 조합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지고, 판단은 냉철해진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삶의 막바지 기간에 우리의 성격을 완성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아주 친절한 듯합니다. 책머리 부분에 독자에게 전하는 글을 먼저 싣고, 서문이 이어진 다음에 이 책의 구조에 대하여 설명해두었습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었습니다. 1지속에서는 오래됨/늙음이라는 관념을 살펴보고, 우리가 어떤 인물, 장소, 사물의 성격에 품는 애정에 이 관념이 중요하게 작용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2떠나감에서는 우리가 삶의 무대에서 서서히 떠나기 시작하면서 일어나는 신체의 징후를 살펴보고, 그런 징후들이 성격 형성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합니다. 나이듦으로 인하여 생기는 기능장애가 성격의 기능으로 바뀌는 것을 보여줍니다. 3떠나버림/남음은 신체적으로는 떠나는 시기이지만 각 사람이 구현한 독특한 성격은 남아 후세에 전해진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서문으로부터 제1부에 이르기까지 나이 듦에 관하여 정의를 내리고 있다고 보았는데, 그런 까닭인지 읽는 호흡을 유지하는 것이 쉽니 않을 정도로 난해하였던 것 같습니다. 일종의 총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보았는데, 그래서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제2부는 각론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드러나는 신체 기능의 저하와 그에 따른 심리변화까지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각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라서인지 비교적 쉽게 읽히는 맛이 있습니다.


지속이라 함은 아마도 활력을 유지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떠나감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말하는 듯한데, 노화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시기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피부도 탄력을 잃어 늘어지기 시작하고, 밤에 자주 깨어나는 것도 나이가 들면 뚜렷해지는 증상입니다. 근유도 밭아지고, 기억력이 감퇴하면서 치매에 대한 걱정이 늘어가기 시작합니다. 성격이 성마르게 되고, 감각이 무뎌지며, 성에 대한 욕망도 줄어들게 됩니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는 세대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듯합니다. 옛날에는 나이든 사람은 조상’, 젊은이들의 본보기, 사회의 문화적 기억 및 전통의 전달자라고 인식되었는데, 최근에는 다양한 이유로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나이든 사람들이 오랜 세월 쌓아올린 경험치들이 누리망 공간을 비롯한 공유되면서 나이든 분들의 살아오면서 쌓아온 삶의 지혜를 누리망을 통하여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나이든 분들이 기억과 전통의 전달자라는 인식미 많이 희석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젊은이도 세월이 흐르다보면 나이든 사람이 됩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우리네 옛말의 의미를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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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9-07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늙는다는 것은 서서히 익어가는 것이라는 노랫말처럼 늙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 아닐까요?

처음처럼 2023-09-10 19:33   좋아요 0 | URL
우아하게 늙어가는 일도 행운이자 행복이라는 생각입니다.
 
데카메론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1
조반니 보카치오 지음, 박상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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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추천으로 읽게 된 데카메론입니다. 14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작가 조반니 보카치오의 작품입니다. 그 무렵 이탈리아에는 흑사병이 대유행을 하여 뒤숭숭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흑사병을 피해 숨을 곳을 찾고 싶었을 듯합니다. 보카치오 역시 흑사병을 피해보려는 일곱 명의 정숙한 부인들과 3명의 청년들이 피렌체 근교에 있는 피에솔레 언덕에 모여 열흘 동안 각자 한 편씩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꾸몄습니다.


구전되는 이야기들을 집대성한 것이라는 점에서 천일야화(千一夜話)와 닮았습니다. 14세기에서 15세기 연간에 시리아에서 만들어진 사본이 있다고 합니다만, 보카치오가 혹여 중동에서 들여온 천일야화의 형식을 참조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프리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1400년에 초서의 사망으로 미완성 작품으로 남았습니다)도 같은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을 보면 초서가 데카메론을 참조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거나 단테를 숭상한 저자는 <신곡>과 닮은 책을 쓰고 싶었던 것 일수도 있습니다.


<데카메론>‘10동안의 이야기라는 의미입니다. 10명의 젊은 남녀가 각각 10개의 이야기를 발표하는 것처럼 10과 그 배수를 기본구조로 하고 있습니다. 10명이나 되는 인원이 모인 자리인 만큼 회동을 주관할 사람이 필요했을 터인데, 이 또한 10명이 돌아가면서 여왕 혹은 왕이라는 직책을 맡아 진행을 맡습니다.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매일 주제를 정한 것도 독특합니다. 열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순서대로 이야기를 하는 만큼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누군가 먼저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여섯 번째 날 아홉 번째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그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술자리에서 건배사를 이어갈 때 내가 하려던 건배사를 다른 사람이 먼저 하는 당혹스러운 상황처럼 말입니다.


첫날은 주제를 정하지 않고 각자 선호하는 이야기를 발표하기로 하였고, 두 번째 날에는 온갖 고난을 겪은 끝에 행복한 결말에 이르는 모험담을, 세 번째 날에는 오랫동안 원해온 것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 네 번째 날에는 불행한 사랑이야기, 다섯 번째 날에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 행복을 얻은 연인들의 이야기, 여섯 번째 날에는 기발한 재치로 위기를 모면한 사람들의 이야기, 일곱 번째 날에는 이러저런 이유로 남자들을 골탕 먹인 여인들의 이야기, 여덟 번째 이야기는 성별 구분 없이 남을 골탕 먹인 사람들의 이야기, 아홉 번째 날에는 다시 각자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마지막 열 번째 날에는 관대하고 도량이 넓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00개의 이야기를 담은 만큼 다양한 인물과 사건들이 등장합니다. 물론 같은 인물이 다시 등장하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보면 당시 피렌체 사람들에게 많은 화제를 뿌린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등장인물 가운데 피렌체 사람들이 다수인 듯합니다. 하지만 작가가 책에서 읽은 이야기거나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들로 구성한 것으로 보이는 피렌체 이외의 이탈리아 도시 혹은 외국의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100개나 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처음 들어본 것들입니다만, 두어 개는 분명 어디선가 읽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돈키호테>이던가 <켄터베리 이야기>였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세르반테스나 초서가 <데카메론>에서 직접 인용하였을 수도 있고, 보카치오가 인용한 자료에서 이야기를 끌어왔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화자들이 18~28살에 이르는 정숙한 부인들이었다고 합니다만, 여기 등장하는 이야기들의 상당수는 남녀 간의 부적절한 이야기들도 적지 않아 정숙한 부인들도 야한 이야기를 즐겼을까 싶기도 합니다.


기억해두고 싶은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고삐를 느슨히 했을 때 우리를 가장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바로 분노입니다. 분노는 갑작스럽게 맞본 슬픔에서 솟아오르는 돌발적이고 예기치 않은 충동, 바로 그거예요. 분노는 이성을 완전히 추월하고 정신의 눈을 덮어 버리며 우리의 영혼을 광포한 격정으로 몰아넣지요.(데카메론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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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의 화해
스펜서 내들러 지음, 이충웅 옮김 / 이제이북스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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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회원이 된 동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책입니다. ‘어느 외과병리학자의 눈에 비친 일상의 영웅들이라는 부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병리학의 전공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병리학은 기본적으로 신체가 정상의 범주를 벗어났는지 여부를 밝히는 학문입니다. 여기에는 동물실험에서 형태학적 변화를 관찰하는 실험병리학, 병원에서 수술이나 시술을 통하여 얻은 조직을 조사하여 진단을 결정하는 외과병리학, 독성물질이 생물체에 어떤 효과를 나타내는지를 관찰하는 독성병리학, 혈액, 소변, 체액을 대상으로 이상소견을 밝히는 임상병리학(지금은 진단검사의학으로 바뀌었습니다) 등의 세부 분야가 있습니다. 혹은 장기별로 분야를 세분하기도 합니다.


<고통과 화해>의 저자 스펜서 내들러는 뉴욕의 브롱크스에 있는 앨버스 아인슈타인 대학에서 병리학 수련과정을 거친 뒤에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25년 이상 외과병리학자로 일하는 한편 다양한 글쓰기를 해오고 있습니다. <고통과 화해>의 원제목은 <The Language of Cells: A Doctor and Patients>입니다. <세포의 언어: 의사와 환자들> 정도의 의미입니다. 옮긴이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말 번역서의 제목을 정할 때 옮긴이는 고통을 편집자는 화해라는 단어를 각각 제시하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옮긴이가 제시한 고통은 저자가 오랜 세월 병리진단을 내려왔지만 그것으로 인한 환자의 고통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대목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편집자가 제시한 화해라고 할 대목은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병리의사는 세포가 보여주는 질병의 신호를 해독하는 사람이지만 직접 환자를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병리검사를 의뢰한 진료과 의사에게 진단 결과를 알려주는 것으로 일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자의 경우는 자신이 진단한 한자와 만남을 이어가는 독특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모두 9개의 장으로 구성된 글들은 하퍼스’, ‘리더스 다이제스트등 다양한 잡지에 실렸던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병리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라던가 병리학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손에 잡힐 듯 쉽게 설명한 대목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제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묻는 분들이 묻는 분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렇게 쉽게 설명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저자의 설명을 잘 정리해서 답을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저자는 비만, 파킨슨병, 심장질환, 알츠하이머병, 낫적혈구증, 척수마비, 그리고 암 등으로 진단받은 환자와의 만남을 통하여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 특히 질병을 이해하고 화해하는 모습에 중점을 두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처럼 병리학이라고 하는 특별한 의학의 분야에서 하는 일을 건조하게 설명하지 않고 영화, 소설 등 다양한 분야의 사례들을 인용하고, 환자 사례를 들어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어 해당 질환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1장의 첫머리를 인용합니다. “사람의 조직 생검을 해석하는 나의 일은 넓게 보면 미술에 가깝다. 나는 색깔의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섬세하게 조직(texture)의 변화를 느끼며, 그것들의 형태와 인상적인 장면을 연구하기 위해 세포들을 현미경으로 뚫어지게 들여다본다. () 실수로 오진을 해서는 안된다는 요구가 원치 않는 긴장을 유발할 수 있다. 어려운 생검의 경우에는 몇 시간이나 며칠 동안 그 조직의 이미지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도 한다.”


병리학을 처음 공부할 때는 현미경에 검체를 올려놓고 두어 시간을 꼬박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욕지기가 치민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들여다보면서 현미경으로 보이는 모습을 펼쳐놓은 책에 나오는 모습과 비교하여 진단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경험한 사례들이 이제는 저의 기억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왔습니다. 이제는 현미경을 들여다보면서 기억의 창고에 저장된 그림들과 비교해서 진단을 정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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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1900년
존 루카스 지음, 김지영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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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를 두 차례 가보고, 또 부다페스트 방문기를 적은 인연 때문에 읽게 된 책입니다. 첫 번째 방문은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을 때인데, 도나우강을 운행하는 유람선에서 열린 공식만찬에 참석한 것, 학회 기간 중에 숙소에서 학회장까지 걸어 다니면서 페스트 지역을 구경한 것, 그리고 학회가끝나고 부다지역을 걸어서 구경한 것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두 번째 여행은 동유럽 여행일정에 들어있어서 1박을 한 것이었는데, 학회때 돌아보았던 명소들을 다시 볼 수 있었고, 페스트 지역에 있는 성 이슈트반 대성당을 더 볼 수 있었습니다.


부다페스트 출신의 유대인인 존 루카스 교수는 부대페스트대학에서 유럽 외교사를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46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필라델피아에 정착하고 체스트넛힐 칼리지에서 역사학을 강의했습니다. 헝가리의 역사를 요약해보면, 800년대에 아시아민족인 마자르 족이 푸스타 초원에 이주하여 정착하면서 895년에 판노니아 평원에 헝가리 대공국이 성립되었습니다. 1000년 잠시 공화국이 되었다가 성립한 헝가리왕국은 1526년까지 독립국가로 발칸반도에서 패권을 과시했지만 모하치 전투에서 오스만군에 대패하면서 삼분할되었습니다. 1702년에는 합스부르크 제국에 편입되었다가 1867년에는 오스트리아와 병합되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되었습니다. 1918년 제1차 대전의 패전으로 잠시 헝가리 제1공화국이 되었다가 1919년에는 다시 헝가리 왕국이 되어 1946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어서 잠시 헝가리 제2공화국이 되었다가 소련이 압력으로 헝가리 인민공화국이 들어섰습니다. 소련사회의 개혁으로 1989년 헝가리 제3공화국이 성립되었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는 1900년 무렵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시기로 부다페스트는 빈과 더불어 쌍둥이 수도로 유럽에서는 가장 젊은 대도시였습니다. <부다페스트 1900>은 독특한 구성으로 된 역사서입니다. 1900년을 중심으로 기껏해야 1896년부터 1906년까지의 부다페스트라는 특정 지역의 모습을 정리해낸 것입니다. 1900년의 부다페스트는 흥미와 존경의 대상이 될 만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부다페스트 1900>은 모두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총론격에 해당하는 제1색체, 소리, 말씨에서는 의회와 정치질서의 붕괴에 따른 새로운 양식, 형태, 태도, 표현이 등장하면서, 부다페스트의 분위기, 음악, 언어 등이 변해가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2도시에서는 부다페스트라는 도시의 물리적, 물질적 상황을 소개하였고, 3사람에서는 당시 이 도시에 거주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4정치와 권력에서는 부다페스트가 주도하던 헝가리의 정치와 권력의 상황을, 5‘1900년 세대에서는 예술 및 지적 삶의 상황과 구현을, 6불행의 씨앗에서는 이 도시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의 성향을 묘사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제7그 이후에서는 일종의 종결부로서 이 책에서 다루었던 1900년 무렵 이후의 부다페스트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요약하였습니다.


<부다페스트 1900>100년도 넘은 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두 차례의 부다페스트 방문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배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소설가 쥘 로맹은 강변을 따라 형성된 도시 중 도나우강과 부다페스트는 가장 아름다운 도시 풍경을 보여준다. 그곳은 아마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일 것이다(357)”이라고 했다는 사실에 공감합니다.


헝가리의 시인이자 소설가 바비츠 미하이는 헝가리에서 모든 것의 중심에는 의회가 있다라고 했고, 헝가리의 문학사학자 세브르 언털은 국가의 안전이나 존립은 나 몰라라 하고, 오히려 실질적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를 둘러싸고 싸움이 벌어졌다.“라고 적은 헝가리 의회의 모습이 바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여의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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