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스러운 사이 - 제주 환상숲 숲지기 딸이 들려주는 숲과 사람 이야기
이지영 지음 / 가디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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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가 즐겨하는 꼬리를 무는 책읽기로 <숲스러운 사이>를 읽게 되었습니다. 숲에 관한 다양한 책들을 읽어왔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만, 제목이 독특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스럽다는 비유적인 표현인데 무엇들을 숲에 비유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숲스러운 사이>는 제주 곶자왈에 있는 환상숲에서 숲해설을 하고 있는 이지영님이 쓴 책입니다. 환상숲에서 만나는 자연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환상숲을 매개로 하여 만난 인연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제주에는 주로 일 때문에 급하게 다녀오는 경우가 많아서 곶자왈을 구경해본 적은 없습니다. 곶자왈은 숲을 의미하는 제주어 과 덤불을 의미하는 자왈이 합쳐진 말로 1990년대에 생겨났다고 합니다. 한라산의 중간 높이에 형성된 야생숲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화산이 분출할 때 쏟아진 점성 높은 용암은 세월이 흐르면서 크고 작은 바위로 쪼개지면서 요철(凹凸)이 심한 지형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지형은 경작지고 개발되지 못하고 버려져 있었습니다.


토양의 발달이 더뎠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나무와 덩굴식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자연림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의 155면적의 곶자왈은 2011년 제주 곶자왈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신평리 마을회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와 협약을 맺어 마을 소유의 토지 48.5를 도립공원의 일부로 편입시키면서 곶자왈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환상숲은 신평리 북쪽에 있습니다. 은행에 다니던 작가의 아버지가 빚을 내어 사들인 땅이었습니다. 아내의 할머니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돌밭을 평당 3백 원을 받고 육지 사람에게 팔았던 것입니다. 귤밭을 사자는 아내의 부탁도 저버리고 샀던 돌밭은 훗날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가 매달려 나무를 심으면서 숲을 이루게 되었고, 재활에 성공하는데 보탬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숲에서 작가가 숲해설을 하게 된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닌 듯합니다.


<숲스러운 사이>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부분으로 이루어졌지만, 이야기들이 계절과 특별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계절별로 정한 주제에 맞는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with라는 주제를 담은 봄에는 함께 숲을 걸은 사이: 숲에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through라는 주제를 담은 여름이야기는 숲 사이로 걷다보면: 숲을 통해 알게 된 생각들입니다. while이라는 주제를 담은 가을에는 숲에서 사는 동안에: 함께했던 이들과 그동안의 이야기입니다. gap이라는 주제를 담은 겨울에는 숲에서 산다는 거리감: 그 틈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네 가지 주제는 모두 시간적 혹은 공간적인 거리감, 즉 사이를 의미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보면 숲을 매개로 한 시공간적 사이를 이야기하는 셈이니 <숲스러운 사이>라는 제목이 이해되는 듯합니다.


책을 읽을 때 독후감 쓸 생각에 표식을 붙여두곤 합니다만, 책읽기에 몰입하다보니 표식을 붙여둘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유일하게 표지를 붙여둔 대목은 숲 근처 어린이집 아이들이 찾아와 숲에 들어갔을 때 여섯 살짜리 아이가 뛰어다니다가 넘어져 이마의 피부가 쓸려 피가 나는 사고를 당한 이야기입니다. 병원에 가서 꿰매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흉이 질 수도 있는 상처였는데 아이들을 인솔하고 온 어린이집 선생님은 당신 아들이 천방지축 뛰다가 생긴 사고이니 궤념치 마시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학교에서 일어난 사고로 다친 아이의 치료비를 내라는 학부모의 성화에 지친 선생님이 세상을 하직하는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작가님은 아버지의 숲이 딸의 숲, 가족의 숲이 되었지만 결국은 모두의 숲이라는 점을 <숲스러운 사이>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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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3 - 승자의 혼미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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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제3, 승자의 혼미>는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3차례에 걸쳐 벌인 카르타고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시점으로부터 카이사르가 등장하기 전까지의 시기의 로마 공화정을 변화를 담았습니다. 작가는 이 시기를 그라쿠스 형제 시대(기원전 133기원전 120)와 마리우스와 술라의 시대(기원전 120기원전 78) 폼페이우스 시대(기원전 78기원전 63) 등 제3장으로 나누었습니다.


카르타고는 한니발이라는 걸출한 장군이 로마의 본토를 유린하는 동안 본국의 내분에 휩싸여 지원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멸망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카르타고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로마 역시 승리의 달콤함에 취한 듯 내분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승자의 저주라는 필연적인 변화인지도 모릅니다. 리비우스가 <로마사>에 기록한 한니발의 다음과 같은 말이 예언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언제까지나 계속 평화로울 수는 없다. 국외에는 적이 없다 해도 국내에 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외부의 적이 접근하지 못하는 건강한 육체라도, 그 육체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내장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9)”


로마인 이야기 제1권에서는 로마왕국이 어떻게 성립하여 공화정으로 발전하게 되었는가를 다루었고, 2권에서는 로마공화정이 어떻게 작동하여 카르타고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는가를 다루었다면, 3권에서는 완벽하게 작동했던 공화정 체제가 어떤 문제를 안게 되었는가를 설명합니다.


귀족들이 중심이 된 원로원과 시민들이 중심이 된 민회가 상호 협력하여 외부 세력에 대항하여 카르타고를 필두로 한 외부세력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두 세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정치체계를 보완해온 결과입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왕정시대에 왕의 자문기관으로 시작했던 원로원의 위상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더하여 전쟁에서의 승리가 거듭되면서 원로원이 귀족계급과 시민계급 사이의 괴리가 심각해져 갔습니다. 로마 공화정이 발전해나갈 수 있었던 동력은 사회체제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포에니전쟁 이후에 심화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원로원과 민회의 기울어진 힘의 균형을 바로잡으려 한 그라쿠스 형제가 등장한 것입니다.


카르타고를 말살시키는 현장에서 스키피오 아밀리아누스가 폴리비우스에게 지금 우리는 지난날 영화를 자랑했던 제국의 멸망이라는 위대한 순간을 목격하고 있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 로마도 이와 똑같은 순간을 맞이할 거라는 비애감이라네라고 말하는 것을 마음에 새겨두었던 것은 아닐까요?


티베리우스 그라쿠스가 이 말을 들은 것은 16살 때였습니다. 평민출신으로 집정관을 지냄으로써 원로원이 일원이 된 평민귀족 가문의 떠오르는 별이었습니다. 원로원을 구성하는 귀족계급들은 전쟁의 승리를 통하여 노예와 토지를 늘려가게 되었지만 시민계급은 점차 재산을 잃고 무산계급으로 전락해가는 사회적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 그라쿠스는 토지개혁을 통하여 시민계급을 살리고자 하였지만, 원로원의 반발에 부딪혀 죽음을 맞았고, 티베리우스의 동생 가이우스 역시 같은 길을 걷고 말았습니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에 들어선 마리우스와 술라 그리고 폼페이우스 등은 원로원을 장악하면서 독재관이 된 술라는 300명으로 구성된 원로원의 정원을 600명으로 확대하여 새로 부상하는 기사계급이라 할 수 있는 경제인들을 국정에 참여시키려 하였습니다. 이처럼 술라는 로마공화정의 다양한 분야에서 개혁을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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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여행법 - 세상의 모든 길들
미셸 옹프레 지음, 강현주 옮김 / 세상의모든길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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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날 때면 철학자가 쓴 수필집을 챙겨가곤 합니다. 삶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읽기는 여행에서 빠트릴 수 없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옹프레가 쓴 <철학자의 여행법>은 여행을 단계별로 나누어 생각해봐야 할 점들을 정리하였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유목민과 정착민이라는, 인류 역사를 이끌어 온 두 가지 중요한 흐름을 대비시켰습니다. 유랑하는 여행자들의 세계주의와 정착한 농민들의 민족주의가 대립하는 구도로 인류역사를 움직여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정착하기 이전에 유목으로 삶을 꾸렸기 때문에 누구나 본능적으로 여행을 갈망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여행이 대중화되면서, “여행을 한다는 것은, 즐겁고 창조적인 여가시간을 미끼로 문명이 요구하는 노동에 시간을 사용하길 거부하는 것이다(16)”라고 저자는 단정합니다.


저자는 여행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따라서 목적지 정하기부터 집을 나서 여행을 시작했다가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목적지를 정하는데 있어 책, 소설, , 여행기 등의 자료는 다양한 부분을 참고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래서 저자는 여행은 도서관에서 시작된다. 혹은 서점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32)’고 말합니다. 지도를 포함하는 지리적 자료를 섭렵한 뒤에는 시()와 소설이 뒤를 잇는다고 합니다. ‘지도와 시가 절대적 개념을 형성하고 핵심을 추상화할 때, 산문은 더 느리고 더 긴 리듬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여행을 하는 동안 비행기, , 기차, 자동차 등의 이동수단을 이용하다보면 다은 여행자들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게 되믄데 이 과정에서 친교를 나눌 수 있습니다. 저자는 혼자서 하는 여행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여행이 낭만적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다양한 행태로 기억해두라고 합니다. 수채화, 사진, 크로키, , 짧은 메모, 긴 설명, 편지, 우편 엽서 등 각자에게 가장 편한 방법으로 기억을 고정시키라는 것입니다.


여행의 순수함을 회복하려면,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확인할 목적으로 어느 지역을 찾아가는 여행은 피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틀에 박힌 그런 것들을 찾아갈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전통적인 여행방식, 예를 들면 느림을 찬양하고, 빠름을 마치 모든 악의 근원인 것처럼 치부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여행을 한참 하다보면, 오직 자기 자신만을 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유목민들의 에고티즘(egotism), ,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상입니다. 이 경지에 들어서면 세상은 여행자의 주위에서 저절로 움직이며 풍경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마치 여행자라는 하나의 별을 중심으로 행성들이 돌고 있는 세계처럼 말입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여행에 의미를 부여하려면, 우리는 여행을 다시 조이거나 압축하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134)”라고 말합니다. 여행을 통하여 얻은 다양한 정보들을 잘 정리하여 기억이 퇴색하거나 뒤섞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진, 그림, 동영상 등 다양한 기억 저장방식이 있겠지만, 경험을 오로지 글로 쓰일 경우에만 그 전체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하여 기억의 편린들은 추억으로 갈무리될 것이라고 합니다.


최근에 유목민의 삶을 추구하라는 분위기 일색입니다. 저자는 여행에 대한 열정은 환경의 변화나 육체의 확대, 존재론적 고독, 형이상학적 이타심, 구체화된 미학이 가지고 있는 강렬한 독성을 경험한 육체를 떠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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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엘의 일기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지음, 김욱 옮김 / 바움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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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프레데릭 아미엘은 1821927일 주네브에서 출생한 스위스의 프랑스계 문학가이자 철학자입니다. 38세 편지를 통하여 만나게 된 여성과 애정을 나누게 되었지만, 50세가 되던 해에 헤어진 뒤로는 독신으로 지냈다고 합니다. 기관지염을 오래 앓아 병약했으며 고요함과 고독을 즐기는 성격이었습니다. 26살에 쓰기 시작한 일기는 60세에 사망할 때까지 이어져 17천 여 쪽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는 일기에 대하여, ‘남에게 읽히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추억의 실마리로 삼기 위해 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일기에는 인간과 역사, 구원과 심판이라는 전통적인 화두에 대한 처절한 고민과 내면의 갈등에 마주하는 생각을 담았습니다. 또한 19세기 중후반의 사회, 문명, 풍속에 대한 관찰과 당대의 작가들 혹은 철학자들에 관한 비평도 담겨 있습니다.


<아미엘의 일기>에서는 그가 쓴 방대한 분량의 일기 가운데 17개의 주제에 해당하는 글들을 뽑아 편집한 일기모음집입니다. 그의 치열했던 정신세계와 가치관, 그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겪는 일상의 변화를 엿볼 수 있으며, 인간, 사랑, 고독, 비애, 행복, 죽음에 관한 그의 깊이 있는 사고를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자신을 추슬리는 듯한 대목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아무런 계획 없이 세월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무언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55)”와 같은 대목입니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옮겼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글을 따라가다 보면 전후가 일치하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도 없지 않습니다. 어쩌면 문맥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을 무리하게 학대하지 말자. 네 속의 감정이 동요되는 대로 움직이자. 그것이 너의 인생이며, 네가 누릴 본성이다. 너보다 현명한 자들이 너의 고뇌를 대신할 것이다. 본능과 의지를 믿지 말라. 본능은 마녀이며, 의지는 폭군이다. 너의 순각적인 감동이 너를 삶의 포로로 만들고 있음을 명심하라.(26)”와 같은 대목입니다.


평소에 병약했던 까닭인지 의사에 관한 내용도 눈에 띕니다. 제가 의학을 전공하고 있어서인지 눈길을 끌었습니다만, 세월과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한계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 내 마음에 합당한 의사란 생명과 영혼을 인식하고, 인간의 부조리와 고통까지도 직관으로 감지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사가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사들은 환자들이 아파하는 내면의 환부를 투시하지 못한다. 병은 육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온다. 그것을 치유해야 할 의사들은 오히려 마음을 멀리하고 육신만 본다. 나는 이런 의사들을 천박하고 속된, 그리고 하나님과는 연분이 없는, 직관도 공감도 갖고 있지 않는 위인들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의사는 천재여야 한다. 그는 성자인 동시에 신의 대리여야 한다.”


중세를 건너온 근대 유럽사회의 근간을 흐르는 기독교 전통이 느껴졌습니다만, 이런 사조는 현대에 들어서 많이 달라졌음을 고려하여 읽어야 하겠습니다. 그 가운데 파스칼에 관한 비평이 눈길을 끌어습니다. 그는 파스칼이 가톨릭적 운명론을 주어졌다고 본 것이 약점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가톨릭은 그에게 하나의 신성한 덩어리일 뿐 그것을 분석하지도, 설명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파스칼은 기하학적 인물인데 이런 인물은 흑과 백, 참과 거짓의 논리만 인정한다는 한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종교라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판단함에 있어 이와 같은 초보적인 논리로는 불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지병으로 고통을 받는 심정을 적은 환자로서의 생활은 마치 지루한 서사시를 읽는 듯하다. 벌써 5~6주째 나를 인내하고 달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만사가 다 싫증이 난다.(135)”는 대목을 읽으면서 전립선암으로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제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또한 생활이 단조로울 때는 일기 역시 단조로웠다. 같은 감정이 지속될 때면 일기 역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이 작은 페이지들이 나에게 뮤즈의 음성이며, 내 삶의 유일한 동반자다.(161)”라는 대목에도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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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 - 전 세계 독자들을 감동시킨 BBC기자의 암 투병기
아이반 노블 지음, 공경희 옮김 / 물푸레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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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전립선암으로 수술을 받고 회복 중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암에 관련된 책을 챙겨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는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는 아교세포종이라는 뇌암으로 진단받은 환자의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국영방송 BBC의 과학부문 기자로 활동하던 아이반 노블이 치료과정에서 느낀 점을 일기형식으로 BBC의 기사 누리망을 통해서 발표했던 글들을 독자들의 댓글 등과 함께 책으로 묶어낸 것이라고 합니다.


아교세포종은 비교적 희귀한 신경교세포종인데 악성도가 높아 예후가 좋지 않은 뇌암입니다. 처음에는 병명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치료받는 과정에서 느낀 생각을 중심으로 글을 써 발표하였고, 많은 독자들로부터 응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세계적으로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는 매체에 기사형식으로 발표되었고, 투병과정에 대한 느낌을 담백하게 적어낸 것이 같은 상황을 겪은 독자들의 반향을 이끌어낸 것 같습니다.


불치의 뇌암으로 진단을 받고서 특히 3년 이상 생존한 환자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동거하던 여자 친구와 결혼을 하고 냉동보관한 정자를 이용하여 두 아이를 낳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읽고서는 전공의 시절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임신 말기에 전격성 간염으로 죽음에 이른 산모가 있었는데 가족들은 산모가 죽기 전에 분만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뇌암으로 진단을 받은 직후에 투병과정을 일기형식의 글로 쓰기로 작정을 하였다고 하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고 합니다. 뇌암으로 진단받고 한 달 뒤인 2002912일에 글을 발표하기 시작해서 부정기적으로 이어지다가 미리 써둔 마지막 글이 2005127일자로 발표되고 나흘 뒤에 죽음을 맞았다고 합니다. 투병 초기에 적었던 것처럼 3년을 넘기지 못한 것입니다.


방사전치료와 항암치료 그리고 두 차례에 걸친 수술 등으로 뇌암 병소를 제거하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였지만 재발이 이어지다가 병세가 악화되어 결국은 죽음을 맞은 셈입니다. 마지막 글을 보면 이 칼럼을 쓰면서, 암에 무너지지 않고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이제 떠나야 하지만 할 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으니까(197)”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책의 우리말 제목은 이 대목에서 가져온 것 같습니다. 원제목 <Like a hole in the head>을 우리말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처음 글을 발표하기 시작할 때는 글 쓰는 이유가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마무리하는 글의 마지막 대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글을 쓴 덕분에 담배를 끊는 이가 두셋이라도 있고, 그중 금연한 덕에 암을 피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내가 글을 쓴 보람이 있을 것이다(197)” 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는 나름 글을 써온 것에 대한 생각이 정리된 듯합니다.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 대한 글을 써가면서 글쓴이를 비롯하여 댓글로 응원한 사람들은 암과 싸운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암의 나라에서 온 편지>의 주인공은 폐암으로 진단받고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몸에 생긴 암 덩어리를 싸워서 이길 대상이 아니라 같이 살아갈 운명체로서 이해했고,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5년 이상 생존하는여 완치판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간에 생긴 암이 폐로 전이되어 말기에 이르렀음에도 완치판정을 받은 한만청교수가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되가>는 책에 담은 생각을 참고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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