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2 민음사 모던 클래식 2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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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http://blog.joinsmsn.com/yang412/13162772)에서 일어났던 엘레강스와 에니시테 살해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살인자는 이들과 같이 일하는 동료 세밀화가라는 점은 이미 밝혔기 때문에 범위는 넓지 않습니다만 역설적으로 쉬워 보이는 범인 추적이 더 어려운 상황입니다. 살인자는 전편에서 네 차례 등장합니다. 첫 번째 등장에서는 엘레강스를 살해하게 된 동기를 밝혔습니다. 즉 에니시테가 술탄으로부터 받은 과제에 참여하다보니 전통세밀화의 기법에 서양의 회화기법을 받아들여 새로운 화풍으로 그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엘레강스가 혼란에 빠져 의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자네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 엄청난 죄라는 것을 모르겠나? 그건 누구도 감히 시도해선 안되는 무신론자의 행동일세. 자네는 지옥의 화염에 불타게 될 거야. 절대로 끝나지 않을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게 되겠지. 게다가 자네는 날 공범자로 만들었어.(1편 43쪽)” 하지만 에스테르의 의논상대가 된 동료는 세밀화 기법에 변화를 주는 것을 크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 편이었던 것이 비극의 씨앗이 된 것 같습니다. 살인자는 엘레강스의 시체가 발견되어 장례를 치르는 동안 누구보다도 더 울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살인자는 에니시테를 찾아서 엘레강스가 제기한 문제를 확인하려 합니다. 즉 ‘원근법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것, 베네치아 화가들의 화풍을 모방하는 것은 악마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에니시테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세밀화가는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신이 믿는 원칙에 따르고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비로소 진정한 자신만의 예술 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289쪽)” 에니시테는 누가 엘레강스를 죽였느냐고 추궁하고, 살인자는 자신이 죽였다고 충동적으로 답변하면서 에니시테를 죽여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에니시테의 장례를 치루는 과정에서 누군가에 의하여 살해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고, 결국 술탄은 화원장 오스만에게 사흘 안에 범인을 찾아내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기한 내에 찾지 못하면 범인으로 지목될만한 사람을 모두 잡아들여 고문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오스만은 범인은 에니시테의 작업에 참여한 올리브, 나비 그리고 황새 가운데 범인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단서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근거는 죽은 엘레강스의 몸에서 나온 말그림에서 발견된 전통 세밀화기법과는 다르게 그려진 콧구멍 모습입니다.

 

범인을 찾는 과정은 술탄의 보물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역대의 세밀화작품들을 모두 살펴서 페르시아 세밀화의 화풍이 변화되어온 가닥을 추적하기로 합니다. 즉 현재 화원에서 세밀화를 그리는 화공은 선대의 화풍을 이어받기 마련이기 때문에 어느 계통의 화풍에서 범인의 특징이 나타나는지 확인하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 화공을 오랫동안 보아온 화원장 오스만이 자기 밑에 있는 화원들의 화풍을 모를 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기회에 보물창고에 수장된 역대 세밀화를 모두 살펴보려는 속셈은 아니었을까요? 그림을 모두 보고서 오스만은 “몇 세기 동안 수천 명의 세밀화가가 똑같은 그림을 은밀하게, 서서히 그림으로써 역시 은밀히, 서서히 변하는 세상을 반영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네.(2편 179쪽)”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장인 비흐자드가 사용했던 바늘을 자신의 두 눈에 찔러 넣습니다. 장인으로서의 삶이 완성되었다고 본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는 없었을까요?

 

오스만은 그림을 살펴서 범인인 누구인지 윤곽을 잡아내게 됩니다. 그리고 카라는 범인을 확인하기에 이릅니다. 여기에서 오스만이 스스로 눈을 찌른 이유가 무엇인지 힌트가 될 것 구절을 적고 있습니다. “에니시테 때문에 (…) 나의 세밀화가들이 나를, 그리고 우리의 모든 회화 전통을 배반했고, 술탄이 원한다는 이유로 서양화가들을 의욕적으로 모방하기 시작했네. (…) 우리 세밀화가들은 우리에게 일감을 주는 술탄이 아니라, 우리의 기예와 예술의 종이 되어야 하네. 그래야만 천국에 갈 수 있지.(225쪽)” 에니시테은 세밀화가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추리소설을 리뷰하면서 범인이 누구인지 범인을 어떻게 확인하였는지를 귀띔하는 일은 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결말 역시 남겨두도록 하겠습니다. 페르시아 미술이 어떻게 이어져왔는지를 공부하는 기회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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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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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창가에 찾아온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셨습니까? 아니면 부엌에서 흘러든 향긋한 커피향이 잠을 깨우던가요? 다이앤 애커만교수는 <감각의 박물학>에서 이렇게 답했습니다. “여름철, 우리는 침실 창문으로 스며드는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잠에서 깨어난다. 망사 커튼에 비쳐든 햇빛이 물결무늬를 만들어내고, 빛을 받은 커튼은 바르르 떠는 듯 보인다. 겨울철, 침실 창유리에 새빨간 빛이 뿌려지면 사람들은 동트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7쪽)”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주위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온갖 자극을 받아들입니다. (물론 잠을 자는 동안에도 우리 몸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자극을 감지하지만 잠을 깨울 정도로 강한 자극이 아니면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받아들인 자극은 우리의 뇌에서 종합되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보로 저장됩니다.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뇌에 전해지는 경로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오감(五感)이라고 부르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여기에 더하여 자신의 위치에 관한 공감각을 더한 감각이 외부환경으로부터 우리가 정보를 얻는 경로입니다.

 

코넬대학에서 인문사회학을 가르치는 다이앤 애커만교수의 <감각의 박물학>은 바로 감각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책입니다. ‘박물학’이란 단어를 읽으면서 세종로에 있는 국립박물관보다 예전에 가보았던 위스컨신주 다지빌의 와이오밍골짜기에 있는 ‘하우스 온 더 락’이 먼저 생각났습니다. 몽상가 알렉스 조르단이 1949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는 이곳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전목마, 19세기의 옛 거리, 거대한 해양 생물, 신기한 악기, 갑옷과 투구 및 무기, 인형과 인형의 집, 미니 서커스 등 무궁무진한 볼거리를 볼 수 있습니다. 평소 기이한 물건에 관심이 많던 조르단이 수집한 물건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해서 이웃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한 일종의 민속박물관입니다. <감각의 박물학>은 제목 그대로 감각에 관하여 지금까지 알려진 과학적 사실부터 세간에 전해져온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잡다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감각의 중요성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감각은 뚜렷한 혹은 미묘한 사실들을 그대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인지하지 못한다. 감각은 현실을 아주 잘게 쪼갠 다음 그것을 다시 모아 의미있는 형태를 만든다. 감각은 우연한 표본을 받아들인다. 감각은 하나의 예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뽑아낸다. 감각들은 서로 의논하여 그럴듯한 예를 찾아내고, 작고 정밀하게 판단한다. 인생은 모든 것에 빛과 풍부함을 부여한다.(10쪽)”

 

감각을 통하여 들어온 외부 정보가 처리되는 방식은 모든 사람에서 똑 같습니다. 즉 감각의 정보는 대뇌의 해마에서 일차 처리되는데 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정도에 따라서 단기기억에 머물었다가 폐기되거나 대뇌의 다양한 영역으로 옮겨져 장기기억으로 갈무리되는 것입니다. 즉 감각은 우리를 과거와 밀접하게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감각의 박물학>에서 우리는 감각의 기원과 진화과정, 그리고 감각이 문화에 따라서 어떻게 다른지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어떤 향기에서 어린 시절의 여름을 떠올린다고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냄새보다 기억하기 쉬운 것은 없다는 점이 후각에 대한 이야기를 제일 먼저 다룬 것 같습니다. 인간은 태어난 이후 죽음에 이를 때까지 호흡을 멈추지 않습니다. 후각은 호흡을 통하여 들어오는 냄새를 담은 분자들이 비강점막에 녹아들고 점막에 있는 섬모가 있는 500만개의 수용기세포를 자극해서 냄새정보를 뇌에 보냅니다. 후각신경은 신경섬유로 구성되는 다른 대뇌신경과는 다른 형태로 되어 있고, 후각세포에서 오는 전기적 신호를 직접 받아 기억과 감정을 관장하는 신경회로에 직접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에드윈 모리스가 <향기>에 적고 있는 것처럼 단기기억은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당연히 냄새의 기억은 오래가고, 다른 정보를 학습하고 기억으로 저장하는 것을 도와주기까지 합니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려 한다면 자신만의 독특한 향기를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냄새는 시각이나 소리보다 더 확실하게 심금을 울린다.”는 키플링의 말은 후각의 특징을 제대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냄새에 관한 추억 한자락 정도는 가지고 계실 것 같습니다만 냄새와 관련해서 저자의 놀라운 감성이 느껴지는 구절을 음미해봅니다. “나는 몇 년전 바하마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두 가지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우리 안에 바다가 있다는 것과, 우리의 정맥은 조류를 흉내 내고 있다는 것. 물고기 알 같은 난자를 난소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인간 여성으로서, 우리 조상이 수억 년 전에 진화해 나온 바다의 부드럽게 물결치는 자궁 속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너무나도 감동받아 물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내 눈물의 소금기를 짠 바닷물에 보탰다.(40쪽)”촉각에 관한 글 가운데서는 <사이언스>에서 인용한 프레데릭 작스의 글을 인용합니다. “촉각은 최초로 점화되는 감각이며, 대개 맨 마지막에 소멸한다. 눈이 우리를 배신한 뒤에도 오랫동안, 손은 세계를 전하는 일에 충실하다. (…) 죽음에 대해 설명할 때, 우리는 촉각의 상실에 대해 말하는 일이 많다.(111쪽)” 아무래도 촉각에는 ‘사랑’이라고 하는 메시지를 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태어나서 본능적으로 시작하는 신체접촉을 통하여 나 아닌 타자(他者)를 인식하게 되고, 특히 가장 신체접촉을 많이 하는 엄마의 손길을 통하여 얻는 따듯한 느낌에서 엄마의 헌신적 사랑을 평생토록 기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통증은 촉각의 한 종류인 통각으로 느끼기 때문에 대부분 나쁜 기억으로 남게 됩니다만, 애무와 키스라는 접촉을 통하여 얻는 촉각은 사랑이라는 불을 지피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키스’로 로댕의 조각 작품 <키스>를 들고 이렇게 이유를 적었습니다. “암반 위에 앉아 부드럽게 서로를 포옹한 채 영원의 키스를 나누는 연인. 왼쪽 팔을 남자의 목에 두르고 있는 여자는 황홀경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보면 남자의 입 안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도 보이고. 남자는 오른손을 펴 여자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그가 잘 알고 있는, 찬탄해 마지않는 허벅지고, 그는 여자의 다리가 악기인 양 연주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감싸 안은 둘의 어깨, 손, 다리, 엉덩이, 가슴은 찰싹 붙어 있고, 둘은 서로의 운명을 입으로 봉인하고 있다.(171쪽)” 년전에 방문했던 일본의 동경에 있는 국립서양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훔쳐보듯 했습니다만, 어쩌면 저자는 이렇게 꼼꼼히도 관찰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각하면 아무래도 프루스트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바로 마들렌의 추억입니다.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 생각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차의 첫 모금을 마신 순간으로 되돌아가본다. (…) 분명히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팔딱거리는 것은 그 맛과 연결되어 맛의 뒤를 따라 내게로까지 올라오려고 애쓰는 이미지, 시각적인 추억임에 틀림없다. (…) 그러다가 갑자기 추억이 떠올랐다.(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85~89쪽; http://blog.joinsmsn.com/yang412/12948920)” 마들렌을 넣은 홍차 한 모금에서 콩브레 시절의 추억을 길어 올리기까지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흘러야 했지만, 결국 프루스트는 이를 계기로 추억을 더듬어 기억의 심연에 가라앉아 있는 시간들을 되살리는 작업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미각적 자극이 시각적 기억을 이끌어내는 독특한 기억회상 패턴이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에는 아마도 홍차에 녹아든 마들렌의 맛에 대한 미각적 기억과 홍차의 향기에 대한 후각적 기억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 기억이 만들어질 무렵에 받아들였던 시각적 기억들을 이끌어낸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청각을 통하여 수용하는 소리라고 하는 자극은 어떤 물체의 움직임으로 시작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공기 분자의 파동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청각은 그리 예민하지 못해서 공기분자의 파동 가운데 일부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도 한창 젊을 때는 초당 16헤르츠에서 2만 헤르츠의 주파수 영역을 감지할 수 있고, 인간의 목소리는 남자의 경우 초당 100헤르츠 여자의 경우 150헤르츠 내외의 주파수를 가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토록 제한적인 가청범위마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고음영역이 더욱 축소된다고 하니 아무래도 청각에는 제한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음악은 인간의 감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청각에서 빠트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UCLA의대에서 독서를 하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나타나는 뇌의 활동을 PET로 조사했더니 독서는 뇌의 좌반구를, 음악은 뇌의 우반구를 흥분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기전을 밝히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음악은 감정을 상징하고, 반영하고, 타인에게 전달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를 골치 아프고 부정확한 말에서 해방시킨다고 주장합니다. 즉 음악에 언어적 기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언어 때문에 직접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들도 다른 문화의 음악에는 반응한다는 점을 보더라도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저자는 “외국어는 번역해놓아야 이해할 수 있지만, 흐느낌, 울음, 비명, 기쁨, 웃음, 한숨을 비롯한 부르짖음과 외침 소리는 본능적으로 이해한다. 음악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감정의 채석장에서 나온 절제된 외침이다.(318쪽)”고 적었습니다. 최근 우주에 존재하는 미지의 생물학적 존재와의 교신을 위한 방법으로 음악을 선택한 이유일 것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의 1977년작 영화 <미지와의 조우>와 로버트 저메키스감독의 1997년작 영화 <콘택트>가 바로 외계인과의 교신을 주제로 한 영화입니다.

 

시각은 빛에 근거한 감각입니다. 지구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태양에서 나오는 빛이 물체에 부딪혀 반사되는 파장의 색을 인식하는 과정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특별한 목적이 없다는 이상한 성질을 색체가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물과 식물이 가지는 색깔에는 환경에 대한 적응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가을에 식물의 색깔이 독특하게 변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나뭇잎의 색깔이 변하는 이유는 여름철 생존을 위하여 꾸준하게 만들어내는 엽록소에 감추어져 있는 본디 색깔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엽록소는 열과 빛에 파괴되지만 여름동안은 꾸준하게 만들어져 대체되는데, 가을이 되면 만들어지는 엽록소가 점점 줄어들면서 가려져 있던 다른 색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자연은 가려지지 않은 본래의 색깔이 가장 아름다운 것인 셈입니다. 저자는 가장 볼만한 가을 잎새, 즉 단풍을 미국의 북동부와 중국의 동부에서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 와보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내장산과 설악산의 불붙는 듯한 단풍을 보았더라면 절대로 빠트릴 수 없었을테니까요.

 

인간의 감각에 따라 다양한 예술행위가 발전해왔습니다. 후각은 향수를, 미각은 음식을, 청각은 음악을 그리고 시각은 미술과 조각을 발전시키는 근원이 된 셈입니다. 그리고 보니 현대에 들어와 시작한 연극, 영화, 뮤지컬 등은 한 가지 감각만을 위한 예술에 만족하지 못하게 된 인간의 끊임없는 욕심 때문에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예술의 모든 언어는 순간을 언어로 바꾸기 위한 노력 속에서 발전되었다. 예술은 아름다움이 하나의 예외,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어떤 질서의 기초를 이룬다고 가정한다.(408쪽)”고 한 존 버거의 말을 인용하면서 ‘예술은 자연을 문진(文鎭) 속에 가두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쯤해서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감각의 박물학>인 것처럼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인체의 감각의 신비로운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에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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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의 비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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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사회파 미스터리소설의 선두주자로 손꼽히고 있다는 다카노 가즈히로의 신작입니다. 사실 전작 <제노사이드;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53780>를 읽으면서 그 스케일이나 구성의 꼼꼼함에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데뷔작 <13계단;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48761>을 내쳐 읽었던 것 같습니다. <13계단>에서도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일본의 사법제도에 관한 방대한 자료들을 철두철미하게 조사한 흔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K·N의 비극>은 일본냄새가 물씬 나는 미스터리소설입니다. 임신이라는 고귀한 생명현상을 가볍게 생각하고 쉽게 중절을 선택하는 젊은이들의 경박함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일본냄새라고 적은 것은 예상치 못한 아내의 임신이 넉넉한 신혼을 위협하게 되자 중절을 선택하는 젊은 부부에게 아내의 초등학교 동창생의 혼령이 빙의하여 임신을 지켜준다는 설정을 가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즈히로는 이런 일본적인 생각이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현대 정신의학의 방법론으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즉 임신한 아내에게 죽은 초등학교 동창의 사령이 빙의한 것이라 믿는 주인공 슈헤이와 빙의현상을 정신의학적으로 설명하여 자칫 위험한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는 의사 이소가이를 대치시키면서도 초자연적 현상의 가능성에 대한 미련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점도 눈에 띕니다.

 

죽은 혼령이 빙의했다고 믿게 하는 현상은 시종 으스스한 분위기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등줄기에 서늘한 무엇이 흐르는 느낌을 주고,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할까? 나에게도 일어나는 것 아닐까?’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실재하지 않지만 혹시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은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혼령의 빙의를 다루는 스토리에 사람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임은 일본의 가정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임신이 되지 않아 시어머니의 끊임없는 스트레스에 결국은 자살을 선택하는 여성이 등장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불임 때문에 쏟아지는 시어머니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한 여성이 다행스럽게 생명을 구했는데 알고 보니 정신과적 치료를 받는 동안 임신이 되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살시도로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임신부의 생명의 끈을 붙들고 결국은 다시 의식을 회복하게 만든 것은 이 여성의 몸안에 자리잡은 새생명이었다는 점도 놀라운 반전이라고 하겠습니다.

 

작가가 데뷔작이었던 <13계단>을 통하여 일본의 사형제도와 사법제도에 관하여 꼼꼼하게 조사했더라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만, <K·N의 비극>에서도 빙의현상과 같은 심령에 관한 사항들이라거나 빙의현상을 설명하려는 정신의학적 설명에 대하여 꼼꼼하게 조사하여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잘 엮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임신과 중절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우려하는 작가의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의 전개는 <제노사이드>, <13계단>에서도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인간에 대한 작가의 무한한 신뢰감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모가 바리지 않은 아이는 안 태어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라는 슈헤이의 질문에 대하여 의사 이소가이가 ‘원하지도 않은 아이를 만든 부모는 그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어도 당연하다는 거만한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닙니까? 이 세상에 태어나서는 안 될 인간이 있을까요?’라고 되묻는 질문은 생명에 대한 작가의 사랑을 담은 것이라 보입니다.

슈헤이-나가미 부부의 기묘한 사건에 엮이게 된 의사 이소가이가 산부인과를 전공하다가 정신과로 전공을 바꾸었다는 설정은 임산부의 심리적 갈등에서 오는 문제, 특히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과 중절과 임신의 유지를 결정하는데 있어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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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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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을 한국 독자들에게 각인시킨 작품 <내 이름은 빨강>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파묵의 첫 번째 미스터리 작품인 것 같습니다. 배경은 1591년 겨울 이스탄불입니다. 당시 터키회화의 주류를 이끌던 세밀화를 모티프로 삼고 있습니다. 파묵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번역하여 소개하고 있는 이난아 교수님은 최근에 발표한 <오르한 파묵-변방에서 중심으로; http://blog.joinsmsn.com/yang412/13126504>에서 “페르시아의 회화 전통과는 달리 터키의 세밀화는 일상생활을 사실적으로 경쾌하고 묘사하고 있다.(이난아 지음, 오르한 파묵-변방에서 중심으로, 121쪽)”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파묵이 <내 이름은 빨강>에서 선보이는 독특한 소설적 구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즉,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마지막 숨을 쉰 지도 오래되었고 심장은 벌써 멈춰 버렸다.(13쪽)” 시작하는 첫 번째 문단의 제목은 ‘1. 나는 죽은 몸’입니다. 즉 죽은 자의 말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등장인물은 물론 죽은 자, 개, 나무, 금화, 혹은 죽음과 같이 살아있는 인간 이외의 무생물에서 무형물까지도 스토리를 이어가는데 필요한 증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동서양 문명이 충돌하고 있는 모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파묵의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내 이름은 빨강>의 여주인공 세큐레의 아버지 에니시테는 베네치아를 방문했을 때 보았던 중세유럽의 회화의 화풍을 터키의 전통 회화기법에 녹여보려는 새로운 시도로 술탄을 설득하여 헤지라 천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는 화집을 비밀리에 제작하게 되었는데, 이 작업은 참여하게 된 세밀화가들이나 참여하지 못하게 된 세밀화가들 사이에서 갈등을 불러일으켜 결국은 살인이 거듭 일어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여주인공 세큐레를 둘러싸고, 어릴 적부터 세큐레를 사랑해온 이종사촌 카라와 전쟁터에 나간 세큐레의 남편의 소식이 4년째 끊기면서 형수에게 연정이 노골화되어가는 시동생 하산, 그리고 아내의 하산의 구애에 놀란 세큐레가 두 아들과 함께 친정으로 돌아오자 딸에 대한 사랑이 점차 커져서 곁에 두려는 에니시테의 심리가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사랑이야기도 중요한 축입니다. 세큐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카라와 재혼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 중세 터키사회의 결혼풍습과 남녀관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죽은 채 등장하는 엘레강스와 세큐레와 카라의 혼인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는 에니시테가 죽음을 맞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터키인들의 생사관도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죽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무척 슬프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슴이 훼하니 뚫리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생을 떠나오는 순간, 뭔가가 팽창되는 기분을 맛보았다. 이쪽으로 넘어오는 과정은 꿈속에서 잠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 나는 잠들 듯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짜릿한 느낌을 맛보면서 이쪽으로 옮겨왔다.(17쪽)” 그리고 엘레강스를 죽였던 살인자에 의하여 죽음을 맞게 되는 에니시테의 증언도 중요합니다. 에니시테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리아의 동화에서 찾아온 죽음을 맞은 노인이 당호하게 “아니야. 너는 다 끝나지 않은 내 꿈이야”라고 말하면서 죽음이 손에 들고 있던 촛불을 단숨에 불어 껐는데, 그리고 노인은 20년을 더 살았다는 것입니다.

 

두 건의 살인이 진행되는 동안 살인자가 누구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즉 살인한 자는 있지만 누구인지 밝히는 과정으로 후반부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제목이 나오게 된 배경은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에니시테가 살인자가 내리치는 물감병에 맞고 쓰러졌을 때 암시되었다가, 이야기 중간에 등장하는 ‘31. 내 이름은 빨강’에서는 분명하게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전설적인 거인을 멋진 검으로 두 동강 냈을 때는 거인의 낭자한 피 속에, 뤼스템이 머물던 궁전에서 아름다운 공주와 사랑을 나누며 밤을 보낼 때는 그들이 덮었던 이불의 구김살 사이에 있었다.(331쪽)” 그렇습니다. 빨강의 본명은 피였습니다.

 

어떻든 살인자는 분명 엘레강스, 에니시테와 같이 세밀화작업을 하던 동료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가 왜 살인을 저질러야 했는지는 후반부에서 드러나게 될 것 같습니다.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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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일 - 개정증보판
최갑수 지음 / 예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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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이 너무 길어 읽노라면 숨이 찰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내 사랑, 당신 사랑>으로 줄여 부를까 합니다. 사실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은 그때그때 적어두지 않으면 잊어버릴 것 같지만, 세월이 흐른 다음에 적어두었던 글이나 사진을 다시 꺼내 들여다 보면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출판사 이벤트에 “오래 전 써 두었던 여행기록을 끄집어 내 읽고 있습니다. 어쩌면 나를 찾아가는 마음의 여행을 시작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나를 찾는 여행에 동반자로 삼아보고 싶어지는 책입니다.”라고 적어서 당첨이 된 책입니다.

 

<내 사랑, 당신 사랑>은 2007년 봄, 첫 번째 여행에세이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던 최갑수님의 여섯 번째(?) 여행에세이가 되는 모양입니다. <당분간>에서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정거장을 거쳐 어느 이름모를 역으로 이어지는 여행느낌을 정리했던 저자는 <내 사랑, 당신 사랑>에서는 첫 번째 계절, 두 번째 계절, 그리고 세 번째 계절을 거쳐 남아있는 나날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글보다 사진에 눈길이 더 머물렀다고 하면 작가에게 미안한 노릇입니다만, 그만큼 사진에서 무언가 사연이 읽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작정을 하고 여행을 떠나 써내려간 글이라기보다는 앞서 제가 적은 오래 전 써두었던 여행일기에서 낚아 올린 생각들을 정리할 것 아닌가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다보니 에필로그에 그런 심사가 읽힙니다. “다시 들춰보았다. 마루에 걸터앉아 봄이 가버렸다고 생각하는 그런 날이었다. (…) 다시 보아도 문장은 어색하고 사진은 유치했다. (…) 내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단 하루의 봄날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께서 우려하는 것처럼 문장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사진은 무언가 이야기를 건네고 있습니다. 작가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깨달은 것, “인생은 지나가며 사물은 사라지고 풍경은 퇴색한다는 사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 부디, 슬퍼하지 말자. 우리가 길을 추억하듯, 길은 때로 우리를 추억할 것이니.(17쪽)” 정말 길이 우리를 추억해줄까요?

 

저의 어릴 적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는 장소, 군산 철길마을을 다녀오셨군요. 그런데 군산에는 경안동이라는 동네는 없답니다. 아마도 경암동이겠지요. 그리고 2003년 여수가는 기차에서 만난 한 여자와 울진 용추곶에서 따로 만난 한 남자는 서로 아는 사이 맞아요? 아무리 세상이 좁다고 해도 이런 인연이 있을 수 있을까요?

 

세상 여행자가 100명이라면 100명 모두가 여행하는 이유가 제각각일 거라면서 ‘당신은 왜 여행을 떠나나요?’라고 묻는 작가는 퇴근길에 그저 여관이 그리워 허름한 여관에 들어 양말을 빨고 맥주를 시켜 마시면서 여관방을 구경하다가 집에 갔다는 고백(?)을 듣고는 타고난 여행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팔자에 역마살이 든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한순간이 때론 인생의 전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나,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는 사실’은 살아오면서 어떻게 알아지게 되었습니다만, 마지막 ‘우리가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길이 우리를 잃어버린다는 사실.(193쪽)’은 작가 덕분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보니 적지 않은 여행을 해보았지만 무작정 떠난 여행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니 작가님은 붙임성이 좋으신 모양입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스스럼없이 말을 섞을 수 있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오지랖이 넓어서인가요? 아니면 외로워서? “당신이 외롭다면 당신의 외로운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줄 사람은 여행자다. 여행자는 당신의 외로움을 가지고 먼 길을 걸어가 바다에 던져버리거나 깊은 숲 속에 묻어버릴테니까(138쪽)”라는 인도 순례자의 말에 대한 믿음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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