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의 비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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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사회파 미스터리소설의 선두주자로 손꼽히고 있다는 다카노 가즈히로의 신작입니다. 사실 전작 <제노사이드;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53780>를 읽으면서 그 스케일이나 구성의 꼼꼼함에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데뷔작 <13계단;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48761>을 내쳐 읽었던 것 같습니다. <13계단>에서도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일본의 사법제도에 관한 방대한 자료들을 철두철미하게 조사한 흔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K·N의 비극>은 일본냄새가 물씬 나는 미스터리소설입니다. 임신이라는 고귀한 생명현상을 가볍게 생각하고 쉽게 중절을 선택하는 젊은이들의 경박함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일본냄새라고 적은 것은 예상치 못한 아내의 임신이 넉넉한 신혼을 위협하게 되자 중절을 선택하는 젊은 부부에게 아내의 초등학교 동창생의 혼령이 빙의하여 임신을 지켜준다는 설정을 가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즈히로는 이런 일본적인 생각이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현대 정신의학의 방법론으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즉 임신한 아내에게 죽은 초등학교 동창의 사령이 빙의한 것이라 믿는 주인공 슈헤이와 빙의현상을 정신의학적으로 설명하여 자칫 위험한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는 의사 이소가이를 대치시키면서도 초자연적 현상의 가능성에 대한 미련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점도 눈에 띕니다.

 

죽은 혼령이 빙의했다고 믿게 하는 현상은 시종 으스스한 분위기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등줄기에 서늘한 무엇이 흐르는 느낌을 주고,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할까? 나에게도 일어나는 것 아닐까?’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실재하지 않지만 혹시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은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혼령의 빙의를 다루는 스토리에 사람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임은 일본의 가정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임신이 되지 않아 시어머니의 끊임없는 스트레스에 결국은 자살을 선택하는 여성이 등장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불임 때문에 쏟아지는 시어머니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한 여성이 다행스럽게 생명을 구했는데 알고 보니 정신과적 치료를 받는 동안 임신이 되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살시도로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임신부의 생명의 끈을 붙들고 결국은 다시 의식을 회복하게 만든 것은 이 여성의 몸안에 자리잡은 새생명이었다는 점도 놀라운 반전이라고 하겠습니다.

 

작가가 데뷔작이었던 <13계단>을 통하여 일본의 사형제도와 사법제도에 관하여 꼼꼼하게 조사했더라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만, <K·N의 비극>에서도 빙의현상과 같은 심령에 관한 사항들이라거나 빙의현상을 설명하려는 정신의학적 설명에 대하여 꼼꼼하게 조사하여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잘 엮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임신과 중절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우려하는 작가의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의 전개는 <제노사이드>, <13계단>에서도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인간에 대한 작가의 무한한 신뢰감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모가 바리지 않은 아이는 안 태어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라는 슈헤이의 질문에 대하여 의사 이소가이가 ‘원하지도 않은 아이를 만든 부모는 그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어도 당연하다는 거만한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닙니까? 이 세상에 태어나서는 안 될 인간이 있을까요?’라고 되묻는 질문은 생명에 대한 작가의 사랑을 담은 것이라 보입니다.

슈헤이-나가미 부부의 기묘한 사건에 엮이게 된 의사 이소가이가 산부인과를 전공하다가 정신과로 전공을 바꾸었다는 설정은 임산부의 심리적 갈등에서 오는 문제, 특히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과 중절과 임신의 유지를 결정하는데 있어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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