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 - 강제윤 시인의 풍경과 마음
강제윤 지음 / 호미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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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답같은 제목에 끌려 읽게, 아니 보게 된 책입니다. 글보다 사진에 담긴 저자의 글을 읽어보려 했다고 할까요? 서문에 해당하는 ‘여행자의 서’에 적은 저자의 여행관(?)은 이렇습니다. “자기 존재의 소중함을 확인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가 여행이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 본 사람은 안다. 길에서 만나는 무수한 사람들에게 나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어떠한 여행도 존재의 근원을 찾아 떠나는 구도행 아닌 것은 없다.” 저는 아직 이런 여행을 해본 기억이 없는 것 같아 충격이었습니다.

 

강제윤시인은 특히 섬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8년 동안 한국의 섬 약 300여개를 걸으며 바다의 풍경과 그 바다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 그리고 이들에게서 삶을 찾는 여행자의 모습을 전해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에서는 섬여행을 통하여 느낄 수 있는 자연의 모습과 함께 여행에 비유되는 인간의 삶을 사는 지혜를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생적 여행자이며 길의 자녀들이다. 지구는 은하계를 여행하는 우주선, 이 순간에도 우리가 탑승한 지구는 시속 11만 킬로미터의 놀라운 속도로 우주를 항해한다.”(38쪽, 은하 여행자) “우리는 늘 삶에 서툴다. 그렇다고 삶이 실수투성이인 것을 책망하거나 탓할 이유는 없다.”(17쪽, 처음 살아보는 삶) 한번 밖에 살 수 없는 우리네 삶이기에 연습이라는 것을 할 틈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누구나의 삶은 특별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섬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폭풍이 거센 바다에서는 파도를 이길 도리가 없기 때문에 애써 중심을 잡으려 몸부림치지 말고 파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라 권합니다. 그리하면 마침내 평온을 되찾게 될 것이라구요. 섬에서는 느림의 미학을 절로 배우게 된다고 합니다. 카페리가 다니지 않는 섬에서는 오로지 두 다리에 의지해야만 어딘가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섬의 시간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게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릿느릿 걷고 또 걸어도 작은 섬에서는 시간이 모자라지 않는다구요. 이렇게 걷다보면 걷기의 의미를 깨닫게 되나봅니다. “온전한 걷기란 단지 다리 근육의 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잠들어 있는 생각을 깨우고 생각의 폭을 넓히는 정신의 운동이기도 하다.”(61쪽, 걷기는 정신의 운동)

 

사실 제가 운동 삼아 하는 걷기는 속도를 붙여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느림의 미학을 깨우칠 틈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도 저자는 이렇게 꼬집고 있습니다. “동일한 풍경을 보고서도 사람마다 그려내는 풍경이 제각각인 것은 사물을 관찰할 때의 속도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속도고 놓치는 풍경을 걷기의 속도는 포획해 낸다.(60쪽, 걷기의 속도) 연전에 자전거로 유럽을 여행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외국여행하면 비행기를 타고가서 유명한 관광지를 둘러보고 버스나 비행기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느껴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자동차로 이동을 해도 그곳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업기 마련이지요. 최선이 걸어서 여행하는 것이고, 자전거만 해도 그래도 낫더라는 것이지요.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저자는 “집을 떠나 자연의 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바쁘게 걷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다시 속도의 노예가 되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온갖 헤찰을 하면서 느리게 걸어야 한다구요. 목적지가 여행이기 때문에 걷다가 길을 잘 못드는 일은 없다는 것이지요. 잘 못 든 길이 바로 여행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삶 자체가 여행이기 때문에 죽어가는 것이 삶이라는 누군가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늙음은 결코 죽어가는 일이 아니다. 삶을 완성해가는 일이다. 삶의 근원에 더 깊이 다가서는 일이다.”(156쪽, 늙음은 삶의 완성이다.) 삶을 완성해가다 보면 미래에 올 죽음이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고통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삶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다.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서 비롯된다.”(100쪽,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랴)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삶이라는 여행을 통찰하고 나만의 여행이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 될 수 있도록 느리게 걸으면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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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현자
김상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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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EBS 인문학특강] 공개강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의 김상근교수님이 진행하시는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입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3184697). [EBS 인문학특강] 시리즈의 마지막 공개강좌라고 합니다. 이렇게 좋은 강좌가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이날 공가강좌에서 김교수님 르네상스 미술을 완성한 엘 그레코와 카라바조의 미술세계와 르네상스의 절정기를 살았던 마키아벨리의 삶과 철학을 주제로 말씀해주셨습니다. 녹화된 공개강좌 내용은 8월 15일과 22일 밤 11시 15분에 각각 [EBS 인문학특강]에서 방영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혹시 교수님의 열강에 빠져있는 제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윌리를 찾아라!’는 게임처럼 저를 찾아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신학을 전공하시는 김상근교수님은 16세기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에 대한 연구로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Ph. D.)를 취득했다고 하는데, 학위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탈리아의 문화예술에 눈을 뜨게 되고, 16세기 동서양 문화와 사상의 원류를 찾기 위해 르네상스 예술로 표현된 유럽의 시대정신을 뒤쫓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EBS 인문학특강]를 통하여 김상근교수님이 그동안 정리해온 연구성과를 관심있는 분들에게 알리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이날 강의의 첫 번째 주제였던 화가 엘 그레코와 카라바조의 이름이 생소할지도 모르겠다는 교수님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귀에 익은 이름이다 싶었던 것은 영화기획자 고형욱씨가 아들과 함께 한 유럽 미술 기행기 <아빠의 자격; http://blog.joins.com/yang412/12327788>에서 읽어본 이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날 준비해오신 두 화가의 작품을 직접 보면서 김상근교수님의 설명을 듣게 되니 그림에 문외한인 저도 작품에 담긴 화가의 뜻과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림 이외에도 두 화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직접 다녀오신 그리스의 크레타섬과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피렌체 등, 그리고 스페인의 톨레도에 이르기까지 현장의 모습을 곁들인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설명을 통해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주제, 마키아벨리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생소했습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군주론>으로 유명하고, 이 책을 계기로 ‘국가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도 허용된다는 국가 지상주의적 정치사상’을 마키아벨리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키아벨리가 약자들의 수호성자였다는 김상근교수님의 재해석이 당혹스럽기도 하면서 참신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날의 공개강좌에서는 참석하신 분들을 추첨하여 교수님의 최신작 <마키아벨리>를 선물로 주는 이벤트도 있었습니다. 내심 기대를 했습니다만 아쉽게도 행운은 제 편이 아니었는데, 동행하신 분이 전 시간에 얻은 행운을 제게도 나누어주셨습니다. 덕분에 [북소리]에서 김상근교수님의 <마키아벨리>를 소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아무래도 자신과 생각이 같은 주장에 마음이 솔깃하게 기울고 다른 주장은 색안경을 끼고 보기 쉽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제 생각과 다른 주장을 담은 책도 열심히 읽는 편입니다. 그 이유는 그런 주장에 허점은 없는지 찾아서 저의 생각이 맞았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제가 틀렸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결국 다양한 생각을 두루 읽어 나름대로의 생각을 견고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김상근교수님께서 마키아벨리에 대하여 연구를 하게 된 동기는 한 마디로 ‘괘씸하다’는 이유였다고 합니다. 1469년 피렌체에서 태어나 1527년 사망하여 르네상스시대의 절정기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는 같은 시대에 같은 도시에서 살았음에도, 그가 남긴 그 많은 문장 가운데 피렌체예술이나 르네상스 예술가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에 관한 기록은 물론 그가 살았던 피렌체에서부터 그의 족적이 남아있는 길을 모두 뒤쫓았는데, 심지어는 마키아벨리가 공무차 네 차례 방문했던 프랑스의 모든 도시도 순례했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군주론>에 담은 마키아벨리의 진심이 왜곡되어 힘과 권력을 가진 강자에게 권모술수를 가르치는 음흉한 참모라는 누명을 쓰게 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김상근교수님은 마키아벨리의 모습을 이렇게 정리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마키아벨리는 진짜가 아니다. 마키아벨리의 정수를 이해하지 못하던 신학자들, 사회과학자들, 처세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그를 해석해왔고, 그의 심오한 사상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해 온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는 착한 심성을 가진 선량한 사람이었고, 르네상스 정신의 근간을 제공했던 인문학의 정수에 도달한 탁월한 인문학자였으며, 무엇보다 이 세상 모든 약자들을 품에 안으며, ‘울지마라, 인생은 울보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위로하고 격려하던 약자들의 진정한 수호성자였다.(6~7쪽)”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명망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법률가였던 아버지의 파산으로 훗날 “나는 즐거움 이전에 인고(忍苦)를 먼저 배워야 했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 베르나르도는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얻기 위하여 아홉 달 동안 색인작업에 매달리는 힘든 노력을 기울이고, 포도주 세병과 식초 한 병을 건넨 끝에 책을 제본하기도 했다고 전합니다. 그의 서재에는 로마 역사가 리비우스의 전집, 로마의 문법학자 마크로비우스의 책,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의 책, 로마를 대표하는 자연과학자 대(大) 플리니우스의 책을 비롯하여 당대 최고의 인문학자가 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석서 등이 소장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베르나르도의 파산은 변변치 않은 수입에도 불구하고 값이 만만치 않은 책들을 구입한 것이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베르나르도의 풍성한 서재가 아들 마키아벨리의 인문학적 소양의 바탕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마키아벨리의 이런 배경에서 조선 시대의 선비의 모습이 읽혀지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요즘 같으면 집안 살림에 관심 없는 남편이라면 쫓겨나기 십상일 터이지만 조선시대의 선비나 이탈리아의 학자들은 좋은 시절을 살았던 모양입니다.

자신의 영혼보다도 피렌체를 사랑했고, 너그러웠으며 기본적으로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던 마키아벨 리가 간교하고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으로 자리매김된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군주론>에서 국가를 통치하는데 필요한 덕목을 강한 용어로 설명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고, 특히 이탈리아적인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프랑스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단어가 미친 영향도 크다고 합니다. 김상근교수님은 피렌체공화국에서 제2서기관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다가 스페인과 결탁한 교황청의 음모로 공직에서 쫓겨난 마키아벨리가 복귀한 메디치가문에 헌정한 <군주론>이 일종의 취업제안서였다고 보았습니다. 군주론에 담긴 내용은 일견해서 체사레 보르자가 이탈리아공국을 세워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에 대한 영감을 얻었던 것이고, 보르자를 이상적 군주로 보았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김상근교수님은 <군주론>에서 흔히 오독되어 마키아벨리의 진정성을 왜곡하는 대표적 사례로 군주론 3장의 내용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알아 두어야 할 것은, 대중이란 머리를 쓰다듬거나 없애버리거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 타인에게 해를 가할 때는 보복의 우려가 없도록 해야 한다.(219쪽)” 하지만 이런 상황에 대한 전제를 알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즉 “언어, 풍습, 제도가 다른 지역의 영토를 지배할 때는 여러 가지 문제가 따르게 마련인데, 그것을 유지하는 데 많은 노력과 함께 행운이 따라야 한다.”는 논지를 펼치면서 전제로 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민족을 통치하는데 있어 강압적인 방법을 써야 한다는 권고가 옳은지도 제고해 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마키아벨리 시절 이탈리아는 도시국가들이 난립하여 서로 경쟁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군주론>을 통하여 통일 이탈리아를 이끌어낼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군주상을 담았다고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군주론>이 복귀한 메디치 가문의 수장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되었다는 점에서 본다면 당신을 도와 피렌체가 이탈리아를 통일하는 위대한 과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마키아벨리의 염원을 담았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군주론>의 서문에서 “군주의 은총을 받으려는 사람은 군주가 받아서 기뿐 선물을 가져가는 것이 관습인데, 자신도 ‘전하에 대한 보잘것없는 충성의 표시를 가지고 찾아뵙고’ 싶다고 애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로렌초 데 메디치는 마키아벨리의 역작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김상근교수님은 이탈리아의 지정학적 위치와 르네상스시절의 시대적 상황이 현재의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을 비교하기도 합니다. 시대는 영웅을 요구하고 있지만, 운명은 마키아벨리나 우리국민 편이 아닌 것 같다는 안타까움이 배어있다고 할까요? 우리나라의 현 상황을 500년도 넘은 르네상스시대의 이탈리아와 비교하는 것보다는 당시 이탈리아의 상황과 비슷한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을 비교해보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시국가가 난립하던 이탈리아와 춘추전국시절 중국의 사회상에서 유사한 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이상주의적인 국가를 추구한 사람으로 공자를 마키아벨리와 대비시켜 비교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 사람이 추구하는 바나 인생행로에서 비슷한 점도 있을 것 같고, 차이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통해서 피력하고 있는 이상주의적인 군주상은 “원래 인간은 은혜도 모르고, 변덕이 심하며, 위선자인데다 뻔뻔스럽고, 신변의 위험을 피하려고만 하고, 물욕에 눈이 어두워지기 마련이다.(157쪽)”라고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견해를 기조로 하고 있습니다. 반면 공자사상의 근간이 되는 유교에서는 “인간은 교화(敎化)와 발전이 가능하고 개인적·사회적 노력을 통해 완벽하게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니 마키아벨리의 견해와는 차이가 있다고 보겠습니다.

 

공자 역시 스스로를 ‘옛 것을 살려 새로운 것을 알게 하는(溫故而知新)’일의 전수자라고 했으니, 요새 말로 치면 바로 인문학에 정통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키아벨리와 통하는 점이기도 합니다. 옛것은 배움을 통하여 익힐 수 있는 것인데, 배우는 이유는 자신을 발전시켜 실현시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공자는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를 널리 펼치기 위한 방법으로 요즘으로 치면 정치라고 할 공직에 참여하기를 희망하였습니다. 공자는 50세를 전후하여 고국 노나라에서 최고위직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의 도덕적 엄정성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왕의 측근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여 결국 자리에서 물러난 다음 자신의 고결한 정치철학을 실현할 수 있는 나라를 찾아 천하를 주유하였지만 결국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에게 자신의 사상을 전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한때 유럽 각국을 누비며 놀라운 통찰력으로 피렌체의 위상을 끌어올리는데 기여하던 유능한 외교관 마키아벨리는 바뀐 정국에서 변신의 계기를 찾아내지 못하고 권력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고향 산탄드레아에 머물면서 <로마사논고>를 비롯한 저술작업과 루첼라이 정원모임을 통하여 젊은이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공자의 삶과 마키아벨리의 삶에서 닮은 점이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제환공이 관중의 권고에 따라 9차례에 걸쳐 제후들을 규합하여 동맹을 맺되 무력을 쓰지 않은 구합제후(九合諸侯)의 사례를 칭송한 것처럼 무력과 간교함과는 거리가 있었던 공자의 철학이고 보면 마키아벨리의 정치철학에서는 거리가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마키아벨리의 새로운 면모를 찾기 위한 책읽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그의 <군주론>을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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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아 프랑수아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조르주 상드 지음, 이재희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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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상드의 1847년 작품입니다. 프루스트 공부하기의 일환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스완씨의 방문으로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겨 슬퍼하는 마르셀을 위로하기 위하여 어머니가 읽어주기 위하여 고른 책입니다. 할머니께서 어린 마르셀의 생일에 주기 위한 선물로 고른 책인데, 처음에는 무세의 시집, 루소의 작품 한 권, 그리고 상드의 소설 <앵디아나>를 골랐다가 아버지의 반대로 바꾼 소설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입니다. 민음사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http://blog.joins.com/yang412/12948920>에 옮긴이가 붙인 각주에는 “ 방앗간 여주인 마들렌과 그녀가 입양한 업둥이 프랑수아 사이의 근친상간적인 사랑을 담은 이 이야기가 어머니와의 행복한 결합을 다룬다는 점에서, 어린 마르셀의 팡타즘을 구현한다(76쪽).”고 적었습니다. 이와 같은 해석은 유예진교수님의 <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들; http://blog.joins.com/yang412/13111784>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방앗간 부부가 프랑수와라는 남자아이를 입양해 기르다가 폭력적이며 괴팍한 남편이 죽은 후 젊은 아내가 입양한 아들과 결혼한다”는 근친상간을 다룬 소설로 성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103쪽) 한걸음 더 나아가 어머니의 사랑을 애처로울 만큼 맹목적으로 요구하는 프랑수와에게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적 잣대는 의미가 없는 것으로, 상드는 독자가 프랑수와의 순수한 열정과 그 표현방식을 안심하고 허용하도록 자연스럽게 이끈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3; http://blog.joins.com/yang412/12974277>에서는 1831년 당시 파리의 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떠돌이 생활하는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테나르디에부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딸은 귀하게 키우면서도 아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을뿐더러 어린 아들을 남에게 주어버리는 짓까지도 하는 모습을 보면 1847년에 발표된 이 작품의 주인공 프랑수와가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아 업둥이로 자라게 되는 시대적 배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남편 클레쟁제와의 갈등에서 오는 고통을 전원생활을 통하여 다독이는 가운데 상드는 ‘밤모임’에 가곤했는데, <사생아 프랑수와>를 밤모임에서 들은 이야기를 옮겨적는 형식으로 써내려간 것입니다. 상드는 버려진 아이에 대한 당시 사회의 편견에 맞서고 고아에 대한 부유한 사람들의 무관심을 질타하기 위한 의도를 담아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따라서 “소설적 상황, 즉 비정상적 사랑, 비도덕적인 출생, 부모로부터 버려진, 혹은 부모와 헤어진 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혈연관계로 이어지게 된 사람들 간으ㅟ 신비로운 애정 등에 대한 상드의 관심과도 관련이 있다.(251쪽)” 옮긴이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들렌과 프랑수와의 관계를 입양아와 어머니의 관계라고 하고 있지만, <사생아 프랑수와>에서는 입양에 따른 행정적 절차를 밟았다는 설명은 없습니다. 다만, 마들렌의 시어머니의 사주를 받은 프랑수와의 어머니 자벨이 프랑수와를 멀리 버리려 할 때 마들렌이 10에퀴를 내주면서 프랑수와를 사겠다고 선언하지만, 마들렌은 이를 기억조차 하지 못합니다. 또한 프랑수와를 친자식 자니와 꼭 같이 대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프랑수와가 근본적으로 착하고 심지가 굳은 아이라는 점을 상드는 “전 남에게 고통을 주는 쪽보다 차라리 제가 고통을 당하는 편이 나은걸요.(46쪽)”라고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들렌의 남편 블랑셰가 마음을 빼앗긴 세베르가 프랑수와를 유혹하였음에도 넘어가지 않자 블랑셰를 꼬드겨 프랑수와를 집에서 내쫓게 합니다. 결국 블랑셰를 속여 방앗간을 포함한 재산을 빼돌리고, 블랑셰는 빚만 남기고 죽었다는 소문을 듣게 된 프랑수와는 다시 마들렌에게 돌아와 사태를 수습하게 됩니다. 프랑수와의 친어머니는 프랑수와를 위하여 4000프랑을 맡겨두었던 것인데, 그는 이 돈을 이용하여 마들렌을 위험에서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베르와 블랑셰의 누이동생 마리에트가 공모하여 마들렌이 프랑수와 정을 통하고 있다고 입방아를 찧는 소리를 듣게 된 프랑수와는 고민에 빠지게 되고, 프랑수와가 일하던 에귀랑드 지방의 물방앗간집 딸 자네트는 전후사정을 듣고서는 마들렌에게 청혼을 하라는 조언을 하게 됩니다.

 

전체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마들렌과 프랑수와의 관계는 일단 공식적으로 입양이 성립된 관계가 아니라 구두로 언약한 정도의 관계이며 모자간에 볼 수 있는 순수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데, 주변에서 이들의 사랑을 남녀 간의 사랑으로 발전하도록 촉진한 것에 불과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이 19세기 프랑스사회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모르겠으나 현대적 시각에서는 전혀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 마르셀, 아니 프루스트의 눈으로 보기에 <사생아 프랑수와>는 지극히 교훈적이고 모범답안 같은 삶이라고 판단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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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역사기행 - 지하철 타고 시간여행을 떠난다
로랑 도이치 지음, 이훈범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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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를 맡아 베르린과 런던 그리고 파리를 방문했던 것이 벌써 6년이 넘었습니다. 과제준비에 정신을 쏟느라고 도시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지만 그래도 파리는 마지막 방문지였기 때문에 하루를 더 머물렀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7664069). 루브르박물관을 보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센강을 따라 시테섬에서 에펠탑까지 왕복하면서 구경하는데도 하루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언젠가 아내와 함께 찾아가기 위해서 길눈을 뜨는 정도로 훑어보는데 만족하였기 때문에 언젠가 다시 찾아가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앙북스 리뷰어로 선정되어 처음 받은 책이 로랑 도이치의 <파리 역사기행>입니다. 7년 전에 읽었더라면 파리의 속살을 들여다보는데 도움이 되었을 터인데 아쉽습니다. 이 책은 두 가지의 독특한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1세기에서 시작해서 한 세기 단위로 파리에서 눈여겨볼 곳을 고르고 있다는 점, 두 번째는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하여 정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파리 지하철은 깨끗하고 이용이 편리하게 되어 있어 공항을 왕복할 때를 제외하고는 지하철을 이용하여 볼 일을 보았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7639895). 간단하게 요약하면 지하철을 타고 가는 파리판 문화유산답사기-덧붙이면 사진과 그림으로 설명하는-라고나 할까요?

 

파리의 역사를 안내하는 역사학자 로랑 도이치는 1세기 무렵의 센강의 중지도인 시테섬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최근에 읽은 <지중해신화; http://blog.joins.com/yang412/13181355>에서 고대 골(프랑스의 옛 명칭)에 거주한 갈리아 켈트인의 신화를 읽은 적이 있어 내심 친숙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골루아라고 부르는 프랑스 사람들의 조상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만화 아스테릭스는 프랑스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고, 우리에게까지 알려지고 있습니다. 마치 박물관의 도록처럼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진들, 그리고 그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을 안내하는 지도가 있어 지하철을 타고서 쉽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노트르담 성당, 에펠탑과 같이 직접 찾아가본 곳은 반갑고 정말 골목길에 숨어 있는 볼거리는 다음에 꼭 찾아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빅토르 위고의 명작 <레 미제라블 4, 플뤼메 거리의 서정시와 생 드니 거리의 서사시; http://blog.joins.com/yang412/12982807>에서 시민군이 근왕군에 맞서 시가전을 벌이는 장소인 생 드니거리가 기원 250년 기독교를 포교하기 위하여 이탈리아에서 파리로 왔다가 순교한 최초의 주교 드니(이탈리아 이름은 디오니시우스였다고 합니다.)의 이름에서 온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파리의 도로가 주먹크기의 네모난 돌로 포장되어 있던 것도 신기했는데, 이런 도로포장기술이 이미 3세기 때 부터 개발되어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역사적 장소들이 시테섬을 중심으로 흩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파리의 중심이 바로 시테섬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파리를 찾았을 때 루브르박물관 근처 좁은 골목에 있는 작은 호텔에 묵을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12세기 프랑스를 다스렸던 필립 오귀스트왕은 파리를 외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성곽을 쌓았다고 합니다. 그때만 해도 파리의 중심은 시테섬이었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쌓은 성곽은 세월이 흐르면서 부서지고 무너져 흔적만 남은 것은데, 이렇게 남은 흔적을 마저 없애고 건물을 지은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성벽의 흔적을 건물의 일부로 삼은 프랑스사람들의 발상이 깜찍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파리의 성곽은 서울성곽과 다른 점을 생각해보면 북악과 남산이라고 하는 천연의 방어벽이 있어 일제침략기에 시가지를 넓히느라 의도적으로 부순 곳도 적지 않지만, 이런 고난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옛모습을 전하는 곳이 많이 남아있어 참 다행입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곳을 그대로 보존하는 파리와는 달리 성벽이 없어진 곳에 서있는 건물을 부수고 성벽을 복원하는 것이 우리 방식이라는 점일 것 같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눈에 띄는 볼거리도 많지만 쉽게 얻을 수 없는 파리의 속살이라고 할 문화적 유적을 그것도 지하철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어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귀중한 정보가 될 것 같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파리판 문화유산답사기’를 글제목으로 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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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 - 인생의 모든 순간을 완벽하게 기억하는 삶, 그 축복과 고통의 시간들
질 프라이스, 바트 데이비스 지음, 배도희 옮김 / 북하우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기억에 대하여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점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듭니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들을 기억이라는 저장소에 어떻게 갈무리해 넣고, 또 필요할 때 끄집어내는지 알 듯 모를 듯합니다. 뛰어난 기억력을 자랑하는 사람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현대의 남성이 과거의 남성보다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다는 점을 적고 있는 피터 매칼리스터의 <남성퇴화보고서; http://blog.joins.com/yang412/12812543>에서 읽은 바 있습니다. 그밖에도 보르헤스의 단편집 <픽션들; http://blog.joins.com/yang412/12878043>에 나오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의 놀라운 기억능력과 한계점을 읽으면서 그야말로 픽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심리학자 루리야가 보고한 기억술사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http://blog.joins.com/yang412/13176657>에서는 그토록 놀라운 기억력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실존한다는 점과 함께 그 역시 입력된 기억들이 서로 충돌해서 엉키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루리야의 연구대상이 되었던 남자 S는 기본적으로 뛰어난 공감각력을 바탕으로 하여 주어진 과제를 암기하여 기억에 저장되면 그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기억능력에도 한계가 있었는데, 이미지가 없는 추상적인 단어를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시(詩)에 담긴 은유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문자 그래로의 이미지와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에 혼란에 빠지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예스24 검색을 통하여 알게 된 대단한 기억력을 가지는 사람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가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입니다. 루리야가 쓴 책의 제목에서 힌트를 얻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S의 기록과 루리야가 관찰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루리야가 쓴 글입니다. 반면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는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주인공 질 프라이스가 구성작가 바트 데이비스의 도움을 받아 기억에 관하여 자신이 겪은 일들을 구술하여 정리한 내용입니다.

 

질은 14세 이후 벌어진 매일의 일상에 대해 완벽에 가까운 자서전적 기억을 가지고 있어, 세계 최초로 과잉기억증후군(hyperthymestic syndrome)이라는 진단을 받은 인물입니다. 그녀의 기억이 가지는 특징은 하루의 일상이 별도 노력 없이도 저절로 기억이 될 뿐 아니라, 저장된 기억이 샘솟듯 되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원하면 일부러 기억을 끄집어낼 수도 있었지만, 보통은 자동적으로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에 기억을 떠올리려 억지로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기억술사라고 부르는 인물들이 나름대로의 기억을 강화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기억패턴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억술사들의 일반적인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늘어놓은 단어나 숫자들을 기억하는 능력이나 학과수업에서 흔히 요구되는 암기에 취약하다는 또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기억을 왜곡해서라도 낙관주의적으로 생각하고 기억하는 긍정적 편향을 가지도록 진화되어 왔다고 합니다. 탈리 샤롯은 <설계된 망각; http://blog.yes24.com/document/7310686>에서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낙관편향은 미래에 틀림없이 닥쳐올 고통과 고난을 정확하게 지각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보호하고, 인생의 선택권을 제한된 것으로 보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줄 것이다. 이런 낙관편향을 유지하기 위해 뇌는 무의식적 망각을 설계해두었다. 그 결과, 스트레스와 불안이 줄면서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져 행동하고 생산하려는 동기가 강해진다.(탈리 샤롯 지음, 설계된 망각, 16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 프라이스는 망각이라는 축복을 받지 못한 까닭에 슬픈 기억의 회오리에 휘말리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불행이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으면서 위기에 빠지는 과정, 당뇨를 앓던 남편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 등입니다. 그와 같은 고통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긍정적인 기억을 선별하는 능력은 내 마음의 작용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163쪽)”

 

신경심리학적으로 그녀는 시각적 영역과 언어적 영역의 기억력이 뛰어나고 주의집중능력도 좋으나, 인지능력이 보통사람들의 패턴과는 다르다는 점이 확인되었습니다. 즉 기억력이 뛰어나지만 학업수행이나 학문적 영역에서는 문제가 많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 캠퍼스의 심리학연구팀과 함께 기억이 저장되고, 저장된 기억을 회상하는 기전의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의 특별한 능력이 우리의 삶과 밀접한 기억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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