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을 한국 독자들에게 각인시킨 작품 <내 이름은 빨강>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파묵의 첫 번째 미스터리 작품인 것 같습니다. 배경은 1591년 겨울 이스탄불입니다. 당시 터키회화의 주류를 이끌던 세밀화를 모티프로 삼고 있습니다. 파묵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번역하여 소개하고 있는 이난아 교수님은 최근에 발표한 <오르한 파묵-변방에서 중심으로; http://blog.joinsmsn.com/yang412/13126504>에서 “페르시아의 회화 전통과는 달리 터키의 세밀화는 일상생활을 사실적으로 경쾌하고 묘사하고 있다.(이난아 지음, 오르한 파묵-변방에서 중심으로, 121쪽)”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파묵이 <내 이름은 빨강>에서 선보이는 독특한 소설적 구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즉,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마지막 숨을 쉰 지도 오래되었고 심장은 벌써 멈춰 버렸다.(13쪽)” 시작하는 첫 번째 문단의 제목은 ‘1. 나는 죽은 몸’입니다. 즉 죽은 자의 말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등장인물은 물론 죽은 자, 개, 나무, 금화, 혹은 죽음과 같이 살아있는 인간 이외의 무생물에서 무형물까지도 스토리를 이어가는데 필요한 증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동서양 문명이 충돌하고 있는 모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파묵의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내 이름은 빨강>의 여주인공 세큐레의 아버지 에니시테는 베네치아를 방문했을 때 보았던 중세유럽의 회화의 화풍을 터키의 전통 회화기법에 녹여보려는 새로운 시도로 술탄을 설득하여 헤지라 천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는 화집을 비밀리에 제작하게 되었는데, 이 작업은 참여하게 된 세밀화가들이나 참여하지 못하게 된 세밀화가들 사이에서 갈등을 불러일으켜 결국은 살인이 거듭 일어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여주인공 세큐레를 둘러싸고, 어릴 적부터 세큐레를 사랑해온 이종사촌 카라와 전쟁터에 나간 세큐레의 남편의 소식이 4년째 끊기면서 형수에게 연정이 노골화되어가는 시동생 하산, 그리고 아내의 하산의 구애에 놀란 세큐레가 두 아들과 함께 친정으로 돌아오자 딸에 대한 사랑이 점차 커져서 곁에 두려는 에니시테의 심리가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사랑이야기도 중요한 축입니다. 세큐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카라와 재혼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 중세 터키사회의 결혼풍습과 남녀관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죽은 채 등장하는 엘레강스와 세큐레와 카라의 혼인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는 에니시테가 죽음을 맞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터키인들의 생사관도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죽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무척 슬프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슴이 훼하니 뚫리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생을 떠나오는 순간, 뭔가가 팽창되는 기분을 맛보았다. 이쪽으로 넘어오는 과정은 꿈속에서 잠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 나는 잠들 듯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짜릿한 느낌을 맛보면서 이쪽으로 옮겨왔다.(17쪽)” 그리고 엘레강스를 죽였던 살인자에 의하여 죽음을 맞게 되는 에니시테의 증언도 중요합니다. 에니시테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리아의 동화에서 찾아온 죽음을 맞은 노인이 당호하게 “아니야. 너는 다 끝나지 않은 내 꿈이야”라고 말하면서 죽음이 손에 들고 있던 촛불을 단숨에 불어 껐는데, 그리고 노인은 20년을 더 살았다는 것입니다.

 

두 건의 살인이 진행되는 동안 살인자가 누구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즉 살인한 자는 있지만 누구인지 밝히는 과정으로 후반부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제목이 나오게 된 배경은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에니시테가 살인자가 내리치는 물감병에 맞고 쓰러졌을 때 암시되었다가, 이야기 중간에 등장하는 ‘31. 내 이름은 빨강’에서는 분명하게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전설적인 거인을 멋진 검으로 두 동강 냈을 때는 거인의 낭자한 피 속에, 뤼스템이 머물던 궁전에서 아름다운 공주와 사랑을 나누며 밤을 보낼 때는 그들이 덮었던 이불의 구김살 사이에 있었다.(331쪽)” 그렇습니다. 빨강의 본명은 피였습니다.

 

어떻든 살인자는 분명 엘레강스, 에니시테와 같이 세밀화작업을 하던 동료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가 왜 살인을 저질러야 했는지는 후반부에서 드러나게 될 것 같습니다.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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