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1 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1
고든 리빙스턴 지음, 노혜숙 옮김 / 리더스북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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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었다라고 생각할 때가 바로 행동할 때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일찍 깨달았더라면 좋았겠습니다만, 끝까지 깨닫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고든 리빙스턴의 <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은 늦은 깨달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역시 이제라도 제대로 해보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려움은 서둘러 찾아오고 용기는 더디게 힘을 낸다; http://blog.joinsmsn.com/yang412/13155747>는 제목의 책을 읽고서 솔직하고도 대담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만, 책을 옮긴이께서 저자의 독특한 생각을 제목에 담으려 고민을 많이 했구나싶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시애틀에 사는 친척 형님을 찾아뵌 적이 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베란다에 의자를 나란히 놓고 석양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저에게서 선친과 닮은 점이 느껴진다는 말씀을 하셔 깜짝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친척 형님이 바로 이 책의 저자처럼 정신과를 전공하시는데, 나직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들려주시는 말씀이 듣기에도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리빙스턴의 에세이는 바로 그런 느낌, 즉 석양을 같이 바라보며 앉아서 나직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드는 글입니다.

 

저자는 <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에 모두 서른 꼭지의 글을 담고 있습니다. 특별하게 주제가 정해진 것 같지 않고 살면서 부딪힐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언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조언은 읽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옮긴이는 “이 책은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달콤한 위로를 해주지도, 꿈을 꾸는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워주지도, 성공하고 싶은 사람에게 특별한 요령을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직시하고 도망치지 말라며 머리를 쿵쿵 쥐어박는다.(238쪽)”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정리하고 있는 길지 않은 이야기들은 핵심을 콕 짚어내고 있어서 ‘그래 바로 그래!’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아무리 좋은 부모라도 훌륭한 스승이 되기는 어렵다’ 제목의 스물두번째 진실에서 저자가 적은 글을 읽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간혹 부모의 임무를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들의 행동을 바로잡기 위해 규칙과 처벌을 정한 뒤 그에 따라 아이들을 다스리는 게 부모가 할 일이라고 믿는 것입니다.(162쪽)” 돌이켜보면 저도 그렇게 자라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같은 방식으로 대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꼭 그랬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자는 아이들을 단순하게 사랑하는 정도의 보살핌 수준을 넘어 아무리 세상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확신과 희망을 심어주는 일을 최고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의 모든 일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먼저 자신만이 옳다는 믿음부터 버려야 한다.(191쪽)”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읽은 <음식중독; http://blog.joinsmsn.com/yang412/13159812>이라는 책에 대하여 나름대로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리뷰를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저보다도 한걸음 더 나아간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알코올중독을 예로 들었는데, “알코올 중독을 하나의 질병으로 간주하는 순간 우리는 알코올 중독자들에게 자발적인 금주를 기대하기 어려워집니다. 중독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 자포자기하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약물치료가 가지는 함정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118쪽)” 자신들의 치료법의 효용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극단적인 용어를 선택한 것이라고 보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모두 30꼭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말씀드린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 한 꼭지씩 읽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시는 것도 좋겠고, 아니면 당면한 고민과 가까운 꼭지를 읽고 나름대로의 해답을 만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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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치매 - 머리를 쓰지 않는 똑똑한 바보들
만프레드 슈피처 지음, 김세나 옮김 / 북로드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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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남자친구와 헤어진 충격으로 디지털치매라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자살을 기도했다는 뉴스를 듣고는 이 환자의 진단이 제대로 된 것인가 싶었습니다. 디지털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기억력이나 계산능력 등이 떨어진 상태를 ‘디지털 치매’라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만해도 전자계산기, 스마트폰이나 네비게이션과 같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굳이 외워서 기억하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디지털기기의 사용으로 인하여 제기되는 문제점이 종합적으로 정리된 <디지털 치매>가 번역되어 소개된 것은 참으로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독일 울름(Ulm-l이 묵음이 아닌가 싶습니다)에 있는 대학정신병원의 원장을 맡고 있는 만프레드 슈피처교수는 컴퓨터와 인터넷에 중독된 환자들을 치료해온 경험을 담아 디지털기기로 인한 폐혜를 알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 특히 어린이들에게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에 관심이 큰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디지털기기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막연한 기대가 크게 잘 못 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요즈음에는 보고 들은 사실을 기억하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구요? 무엇이든지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슈피처교수는 ‘구굴은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슈피처교수는 기억이 만들어져 저장되는 뇌과학적 기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었던 것은 환경으로부터 보고들은 것들을 기억하고 기억된 내용을 연합하여 판단하고 발전시키는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기억의 저장고에 채워진 정보의 양이 많지 않다면 좋은 생각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은 자명한 노릇입니다. 즉, 디지털 미디어는 정보처리의 깊이를 얕게 한다는 것입니다.

 

정보처리의 깊이와 관련하여 태어날 때 만들어진 신경세포를 일생을 통하여 증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왔지만, 기억을 저장하는 과정에 관여하는 해마에 있는 신경세포는 꾸준하게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뇌에 있는 신경세포들은 이들을 연결하는 시냅스라고 하는 연결구조를 통해서 상호작용을 하게 되는데, 시냅스 역시 살아가면서 많아진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즉 외부자극이 많아지거나 기억을 끄집어내서 생각하는 일이 많아지면 신경세포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아야 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에 시냅스도 많아지는 것입니다.

 

우선 어린이들이 일찍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면 당연히 게임에 먼저 빠지게 됩니다. 주변에서 컴퓨터게임에 빠져서 공부를 등한히 하는 어린이의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서 인터넷검색에 의존하여 정보를 기억하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게 되면, 정보를 얻기 위하여 인터넷에 매달리는 중독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억을 저장하고, 기억을 끄집어내어 생각하는 과정에서 늘어나는 시냅스형성이 많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매일 일정한 숫자의 신경세포가 죽게 되는데, 신경세포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일부가 죽더라도 살아있는 신경세포를 통해서 정보가 우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우회로라고 할 수 있는 시냅스 숫자가 많지 않으면 신경세포의 사멸효과가 일찍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외부로부터의 받아들여 갈무리하는 노력을 많이 하지 않으면, 즉 편리하다는 이유로 디지털기기에 의존하고, 기억을 늘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조기에는 중독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보면 치매라고 하는 불청객을 일찍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뇌과학에 관한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이 이해하기에 다소 어렵다 싶은 점이 있습니다만, 흥미로운 사례 등을 인용하여 쉽게 설명하고 있는 점이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 특히 “고령이 되었을 때의 정신적 건강을 위한 대책으로 진지하게 두뇌 조깅을 생각하고 있다면, 텔레비전이든 컴퓨터든 뭐가 됐던 스크린은 이제 그만 포기하시고, 대신 손자를 불러 숲으로 산책을 나가십시오.(368쪽)”라는 저자의 권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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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2 민음사 모던 클래식 2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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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http://blog.joinsmsn.com/yang412/13162772)에서 일어났던 엘레강스와 에니시테 살해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살인자는 이들과 같이 일하는 동료 세밀화가라는 점은 이미 밝혔기 때문에 범위는 넓지 않습니다만 역설적으로 쉬워 보이는 범인 추적이 더 어려운 상황입니다. 살인자는 전편에서 네 차례 등장합니다. 첫 번째 등장에서는 엘레강스를 살해하게 된 동기를 밝혔습니다. 즉 에니시테가 술탄으로부터 받은 과제에 참여하다보니 전통세밀화의 기법에 서양의 회화기법을 받아들여 새로운 화풍으로 그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엘레강스가 혼란에 빠져 의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자네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 엄청난 죄라는 것을 모르겠나? 그건 누구도 감히 시도해선 안되는 무신론자의 행동일세. 자네는 지옥의 화염에 불타게 될 거야. 절대로 끝나지 않을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게 되겠지. 게다가 자네는 날 공범자로 만들었어.(1편 43쪽)” 하지만 에스테르의 의논상대가 된 동료는 세밀화 기법에 변화를 주는 것을 크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 편이었던 것이 비극의 씨앗이 된 것 같습니다. 살인자는 엘레강스의 시체가 발견되어 장례를 치르는 동안 누구보다도 더 울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살인자는 에니시테를 찾아서 엘레강스가 제기한 문제를 확인하려 합니다. 즉 ‘원근법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것, 베네치아 화가들의 화풍을 모방하는 것은 악마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에니시테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세밀화가는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신이 믿는 원칙에 따르고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비로소 진정한 자신만의 예술 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289쪽)” 에니시테는 누가 엘레강스를 죽였느냐고 추궁하고, 살인자는 자신이 죽였다고 충동적으로 답변하면서 에니시테를 죽여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에니시테의 장례를 치루는 과정에서 누군가에 의하여 살해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고, 결국 술탄은 화원장 오스만에게 사흘 안에 범인을 찾아내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기한 내에 찾지 못하면 범인으로 지목될만한 사람을 모두 잡아들여 고문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오스만은 범인은 에니시테의 작업에 참여한 올리브, 나비 그리고 황새 가운데 범인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단서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근거는 죽은 엘레강스의 몸에서 나온 말그림에서 발견된 전통 세밀화기법과는 다르게 그려진 콧구멍 모습입니다.

 

범인을 찾는 과정은 술탄의 보물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역대의 세밀화작품들을 모두 살펴서 페르시아 세밀화의 화풍이 변화되어온 가닥을 추적하기로 합니다. 즉 현재 화원에서 세밀화를 그리는 화공은 선대의 화풍을 이어받기 마련이기 때문에 어느 계통의 화풍에서 범인의 특징이 나타나는지 확인하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 화공을 오랫동안 보아온 화원장 오스만이 자기 밑에 있는 화원들의 화풍을 모를 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기회에 보물창고에 수장된 역대 세밀화를 모두 살펴보려는 속셈은 아니었을까요? 그림을 모두 보고서 오스만은 “몇 세기 동안 수천 명의 세밀화가가 똑같은 그림을 은밀하게, 서서히 그림으로써 역시 은밀히, 서서히 변하는 세상을 반영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네.(2편 179쪽)”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장인 비흐자드가 사용했던 바늘을 자신의 두 눈에 찔러 넣습니다. 장인으로서의 삶이 완성되었다고 본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는 없었을까요?

 

오스만은 그림을 살펴서 범인인 누구인지 윤곽을 잡아내게 됩니다. 그리고 카라는 범인을 확인하기에 이릅니다. 여기에서 오스만이 스스로 눈을 찌른 이유가 무엇인지 힌트가 될 것 구절을 적고 있습니다. “에니시테 때문에 (…) 나의 세밀화가들이 나를, 그리고 우리의 모든 회화 전통을 배반했고, 술탄이 원한다는 이유로 서양화가들을 의욕적으로 모방하기 시작했네. (…) 우리 세밀화가들은 우리에게 일감을 주는 술탄이 아니라, 우리의 기예와 예술의 종이 되어야 하네. 그래야만 천국에 갈 수 있지.(225쪽)” 에니시테은 세밀화가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추리소설을 리뷰하면서 범인이 누구인지 범인을 어떻게 확인하였는지를 귀띔하는 일은 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결말 역시 남겨두도록 하겠습니다. 페르시아 미술이 어떻게 이어져왔는지를 공부하는 기회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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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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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창가에 찾아온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셨습니까? 아니면 부엌에서 흘러든 향긋한 커피향이 잠을 깨우던가요? 다이앤 애커만교수는 <감각의 박물학>에서 이렇게 답했습니다. “여름철, 우리는 침실 창문으로 스며드는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잠에서 깨어난다. 망사 커튼에 비쳐든 햇빛이 물결무늬를 만들어내고, 빛을 받은 커튼은 바르르 떠는 듯 보인다. 겨울철, 침실 창유리에 새빨간 빛이 뿌려지면 사람들은 동트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7쪽)”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주위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온갖 자극을 받아들입니다. (물론 잠을 자는 동안에도 우리 몸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자극을 감지하지만 잠을 깨울 정도로 강한 자극이 아니면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받아들인 자극은 우리의 뇌에서 종합되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보로 저장됩니다.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뇌에 전해지는 경로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오감(五感)이라고 부르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여기에 더하여 자신의 위치에 관한 공감각을 더한 감각이 외부환경으로부터 우리가 정보를 얻는 경로입니다.

 

코넬대학에서 인문사회학을 가르치는 다이앤 애커만교수의 <감각의 박물학>은 바로 감각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책입니다. ‘박물학’이란 단어를 읽으면서 세종로에 있는 국립박물관보다 예전에 가보았던 위스컨신주 다지빌의 와이오밍골짜기에 있는 ‘하우스 온 더 락’이 먼저 생각났습니다. 몽상가 알렉스 조르단이 1949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는 이곳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전목마, 19세기의 옛 거리, 거대한 해양 생물, 신기한 악기, 갑옷과 투구 및 무기, 인형과 인형의 집, 미니 서커스 등 무궁무진한 볼거리를 볼 수 있습니다. 평소 기이한 물건에 관심이 많던 조르단이 수집한 물건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해서 이웃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한 일종의 민속박물관입니다. <감각의 박물학>은 제목 그대로 감각에 관하여 지금까지 알려진 과학적 사실부터 세간에 전해져온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잡다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감각의 중요성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감각은 뚜렷한 혹은 미묘한 사실들을 그대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인지하지 못한다. 감각은 현실을 아주 잘게 쪼갠 다음 그것을 다시 모아 의미있는 형태를 만든다. 감각은 우연한 표본을 받아들인다. 감각은 하나의 예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뽑아낸다. 감각들은 서로 의논하여 그럴듯한 예를 찾아내고, 작고 정밀하게 판단한다. 인생은 모든 것에 빛과 풍부함을 부여한다.(10쪽)”

 

감각을 통하여 들어온 외부 정보가 처리되는 방식은 모든 사람에서 똑 같습니다. 즉 감각의 정보는 대뇌의 해마에서 일차 처리되는데 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정도에 따라서 단기기억에 머물었다가 폐기되거나 대뇌의 다양한 영역으로 옮겨져 장기기억으로 갈무리되는 것입니다. 즉 감각은 우리를 과거와 밀접하게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감각의 박물학>에서 우리는 감각의 기원과 진화과정, 그리고 감각이 문화에 따라서 어떻게 다른지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어떤 향기에서 어린 시절의 여름을 떠올린다고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냄새보다 기억하기 쉬운 것은 없다는 점이 후각에 대한 이야기를 제일 먼저 다룬 것 같습니다. 인간은 태어난 이후 죽음에 이를 때까지 호흡을 멈추지 않습니다. 후각은 호흡을 통하여 들어오는 냄새를 담은 분자들이 비강점막에 녹아들고 점막에 있는 섬모가 있는 500만개의 수용기세포를 자극해서 냄새정보를 뇌에 보냅니다. 후각신경은 신경섬유로 구성되는 다른 대뇌신경과는 다른 형태로 되어 있고, 후각세포에서 오는 전기적 신호를 직접 받아 기억과 감정을 관장하는 신경회로에 직접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에드윈 모리스가 <향기>에 적고 있는 것처럼 단기기억은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당연히 냄새의 기억은 오래가고, 다른 정보를 학습하고 기억으로 저장하는 것을 도와주기까지 합니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려 한다면 자신만의 독특한 향기를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냄새는 시각이나 소리보다 더 확실하게 심금을 울린다.”는 키플링의 말은 후각의 특징을 제대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냄새에 관한 추억 한자락 정도는 가지고 계실 것 같습니다만 냄새와 관련해서 저자의 놀라운 감성이 느껴지는 구절을 음미해봅니다. “나는 몇 년전 바하마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두 가지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우리 안에 바다가 있다는 것과, 우리의 정맥은 조류를 흉내 내고 있다는 것. 물고기 알 같은 난자를 난소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인간 여성으로서, 우리 조상이 수억 년 전에 진화해 나온 바다의 부드럽게 물결치는 자궁 속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너무나도 감동받아 물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내 눈물의 소금기를 짠 바닷물에 보탰다.(40쪽)”촉각에 관한 글 가운데서는 <사이언스>에서 인용한 프레데릭 작스의 글을 인용합니다. “촉각은 최초로 점화되는 감각이며, 대개 맨 마지막에 소멸한다. 눈이 우리를 배신한 뒤에도 오랫동안, 손은 세계를 전하는 일에 충실하다. (…) 죽음에 대해 설명할 때, 우리는 촉각의 상실에 대해 말하는 일이 많다.(111쪽)” 아무래도 촉각에는 ‘사랑’이라고 하는 메시지를 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태어나서 본능적으로 시작하는 신체접촉을 통하여 나 아닌 타자(他者)를 인식하게 되고, 특히 가장 신체접촉을 많이 하는 엄마의 손길을 통하여 얻는 따듯한 느낌에서 엄마의 헌신적 사랑을 평생토록 기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통증은 촉각의 한 종류인 통각으로 느끼기 때문에 대부분 나쁜 기억으로 남게 됩니다만, 애무와 키스라는 접촉을 통하여 얻는 촉각은 사랑이라는 불을 지피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키스’로 로댕의 조각 작품 <키스>를 들고 이렇게 이유를 적었습니다. “암반 위에 앉아 부드럽게 서로를 포옹한 채 영원의 키스를 나누는 연인. 왼쪽 팔을 남자의 목에 두르고 있는 여자는 황홀경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보면 남자의 입 안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도 보이고. 남자는 오른손을 펴 여자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그가 잘 알고 있는, 찬탄해 마지않는 허벅지고, 그는 여자의 다리가 악기인 양 연주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감싸 안은 둘의 어깨, 손, 다리, 엉덩이, 가슴은 찰싹 붙어 있고, 둘은 서로의 운명을 입으로 봉인하고 있다.(171쪽)” 년전에 방문했던 일본의 동경에 있는 국립서양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훔쳐보듯 했습니다만, 어쩌면 저자는 이렇게 꼼꼼히도 관찰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각하면 아무래도 프루스트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바로 마들렌의 추억입니다.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 생각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차의 첫 모금을 마신 순간으로 되돌아가본다. (…) 분명히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팔딱거리는 것은 그 맛과 연결되어 맛의 뒤를 따라 내게로까지 올라오려고 애쓰는 이미지, 시각적인 추억임에 틀림없다. (…) 그러다가 갑자기 추억이 떠올랐다.(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85~89쪽; http://blog.joinsmsn.com/yang412/12948920)” 마들렌을 넣은 홍차 한 모금에서 콩브레 시절의 추억을 길어 올리기까지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흘러야 했지만, 결국 프루스트는 이를 계기로 추억을 더듬어 기억의 심연에 가라앉아 있는 시간들을 되살리는 작업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미각적 자극이 시각적 기억을 이끌어내는 독특한 기억회상 패턴이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에는 아마도 홍차에 녹아든 마들렌의 맛에 대한 미각적 기억과 홍차의 향기에 대한 후각적 기억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 기억이 만들어질 무렵에 받아들였던 시각적 기억들을 이끌어낸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청각을 통하여 수용하는 소리라고 하는 자극은 어떤 물체의 움직임으로 시작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공기 분자의 파동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청각은 그리 예민하지 못해서 공기분자의 파동 가운데 일부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도 한창 젊을 때는 초당 16헤르츠에서 2만 헤르츠의 주파수 영역을 감지할 수 있고, 인간의 목소리는 남자의 경우 초당 100헤르츠 여자의 경우 150헤르츠 내외의 주파수를 가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토록 제한적인 가청범위마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고음영역이 더욱 축소된다고 하니 아무래도 청각에는 제한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음악은 인간의 감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청각에서 빠트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UCLA의대에서 독서를 하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나타나는 뇌의 활동을 PET로 조사했더니 독서는 뇌의 좌반구를, 음악은 뇌의 우반구를 흥분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기전을 밝히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음악은 감정을 상징하고, 반영하고, 타인에게 전달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를 골치 아프고 부정확한 말에서 해방시킨다고 주장합니다. 즉 음악에 언어적 기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언어 때문에 직접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들도 다른 문화의 음악에는 반응한다는 점을 보더라도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저자는 “외국어는 번역해놓아야 이해할 수 있지만, 흐느낌, 울음, 비명, 기쁨, 웃음, 한숨을 비롯한 부르짖음과 외침 소리는 본능적으로 이해한다. 음악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감정의 채석장에서 나온 절제된 외침이다.(318쪽)”고 적었습니다. 최근 우주에 존재하는 미지의 생물학적 존재와의 교신을 위한 방법으로 음악을 선택한 이유일 것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의 1977년작 영화 <미지와의 조우>와 로버트 저메키스감독의 1997년작 영화 <콘택트>가 바로 외계인과의 교신을 주제로 한 영화입니다.

 

시각은 빛에 근거한 감각입니다. 지구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태양에서 나오는 빛이 물체에 부딪혀 반사되는 파장의 색을 인식하는 과정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특별한 목적이 없다는 이상한 성질을 색체가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물과 식물이 가지는 색깔에는 환경에 대한 적응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가을에 식물의 색깔이 독특하게 변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나뭇잎의 색깔이 변하는 이유는 여름철 생존을 위하여 꾸준하게 만들어내는 엽록소에 감추어져 있는 본디 색깔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엽록소는 열과 빛에 파괴되지만 여름동안은 꾸준하게 만들어져 대체되는데, 가을이 되면 만들어지는 엽록소가 점점 줄어들면서 가려져 있던 다른 색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자연은 가려지지 않은 본래의 색깔이 가장 아름다운 것인 셈입니다. 저자는 가장 볼만한 가을 잎새, 즉 단풍을 미국의 북동부와 중국의 동부에서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 와보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내장산과 설악산의 불붙는 듯한 단풍을 보았더라면 절대로 빠트릴 수 없었을테니까요.

 

인간의 감각에 따라 다양한 예술행위가 발전해왔습니다. 후각은 향수를, 미각은 음식을, 청각은 음악을 그리고 시각은 미술과 조각을 발전시키는 근원이 된 셈입니다. 그리고 보니 현대에 들어와 시작한 연극, 영화, 뮤지컬 등은 한 가지 감각만을 위한 예술에 만족하지 못하게 된 인간의 끊임없는 욕심 때문에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예술의 모든 언어는 순간을 언어로 바꾸기 위한 노력 속에서 발전되었다. 예술은 아름다움이 하나의 예외,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어떤 질서의 기초를 이룬다고 가정한다.(408쪽)”고 한 존 버거의 말을 인용하면서 ‘예술은 자연을 문진(文鎭) 속에 가두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쯤해서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감각의 박물학>인 것처럼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인체의 감각의 신비로운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에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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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의 비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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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사회파 미스터리소설의 선두주자로 손꼽히고 있다는 다카노 가즈히로의 신작입니다. 사실 전작 <제노사이드;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53780>를 읽으면서 그 스케일이나 구성의 꼼꼼함에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데뷔작 <13계단;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48761>을 내쳐 읽었던 것 같습니다. <13계단>에서도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일본의 사법제도에 관한 방대한 자료들을 철두철미하게 조사한 흔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K·N의 비극>은 일본냄새가 물씬 나는 미스터리소설입니다. 임신이라는 고귀한 생명현상을 가볍게 생각하고 쉽게 중절을 선택하는 젊은이들의 경박함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일본냄새라고 적은 것은 예상치 못한 아내의 임신이 넉넉한 신혼을 위협하게 되자 중절을 선택하는 젊은 부부에게 아내의 초등학교 동창생의 혼령이 빙의하여 임신을 지켜준다는 설정을 가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즈히로는 이런 일본적인 생각이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현대 정신의학의 방법론으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즉 임신한 아내에게 죽은 초등학교 동창의 사령이 빙의한 것이라 믿는 주인공 슈헤이와 빙의현상을 정신의학적으로 설명하여 자칫 위험한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는 의사 이소가이를 대치시키면서도 초자연적 현상의 가능성에 대한 미련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점도 눈에 띕니다.

 

죽은 혼령이 빙의했다고 믿게 하는 현상은 시종 으스스한 분위기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등줄기에 서늘한 무엇이 흐르는 느낌을 주고,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할까? 나에게도 일어나는 것 아닐까?’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실재하지 않지만 혹시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은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혼령의 빙의를 다루는 스토리에 사람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임은 일본의 가정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임신이 되지 않아 시어머니의 끊임없는 스트레스에 결국은 자살을 선택하는 여성이 등장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불임 때문에 쏟아지는 시어머니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한 여성이 다행스럽게 생명을 구했는데 알고 보니 정신과적 치료를 받는 동안 임신이 되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살시도로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임신부의 생명의 끈을 붙들고 결국은 다시 의식을 회복하게 만든 것은 이 여성의 몸안에 자리잡은 새생명이었다는 점도 놀라운 반전이라고 하겠습니다.

 

작가가 데뷔작이었던 <13계단>을 통하여 일본의 사형제도와 사법제도에 관하여 꼼꼼하게 조사했더라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만, <K·N의 비극>에서도 빙의현상과 같은 심령에 관한 사항들이라거나 빙의현상을 설명하려는 정신의학적 설명에 대하여 꼼꼼하게 조사하여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잘 엮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임신과 중절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우려하는 작가의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의 전개는 <제노사이드>, <13계단>에서도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인간에 대한 작가의 무한한 신뢰감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모가 바리지 않은 아이는 안 태어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라는 슈헤이의 질문에 대하여 의사 이소가이가 ‘원하지도 않은 아이를 만든 부모는 그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어도 당연하다는 거만한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닙니까? 이 세상에 태어나서는 안 될 인간이 있을까요?’라고 되묻는 질문은 생명에 대한 작가의 사랑을 담은 것이라 보입니다.

슈헤이-나가미 부부의 기묘한 사건에 엮이게 된 의사 이소가이가 산부인과를 전공하다가 정신과로 전공을 바꾸었다는 설정은 임산부의 심리적 갈등에서 오는 문제, 특히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과 중절과 임신의 유지를 결정하는데 있어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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