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치매 - 머리를 쓰지 않는 똑똑한 바보들
만프레드 슈피처 지음, 김세나 옮김 / 북로드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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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남자친구와 헤어진 충격으로 디지털치매라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자살을 기도했다는 뉴스를 듣고는 이 환자의 진단이 제대로 된 것인가 싶었습니다. 디지털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기억력이나 계산능력 등이 떨어진 상태를 ‘디지털 치매’라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만해도 전자계산기, 스마트폰이나 네비게이션과 같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굳이 외워서 기억하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디지털기기의 사용으로 인하여 제기되는 문제점이 종합적으로 정리된 <디지털 치매>가 번역되어 소개된 것은 참으로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독일 울름(Ulm-l이 묵음이 아닌가 싶습니다)에 있는 대학정신병원의 원장을 맡고 있는 만프레드 슈피처교수는 컴퓨터와 인터넷에 중독된 환자들을 치료해온 경험을 담아 디지털기기로 인한 폐혜를 알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 특히 어린이들에게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에 관심이 큰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디지털기기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막연한 기대가 크게 잘 못 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요즈음에는 보고 들은 사실을 기억하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구요? 무엇이든지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슈피처교수는 ‘구굴은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슈피처교수는 기억이 만들어져 저장되는 뇌과학적 기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었던 것은 환경으로부터 보고들은 것들을 기억하고 기억된 내용을 연합하여 판단하고 발전시키는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기억의 저장고에 채워진 정보의 양이 많지 않다면 좋은 생각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은 자명한 노릇입니다. 즉, 디지털 미디어는 정보처리의 깊이를 얕게 한다는 것입니다.

 

정보처리의 깊이와 관련하여 태어날 때 만들어진 신경세포를 일생을 통하여 증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왔지만, 기억을 저장하는 과정에 관여하는 해마에 있는 신경세포는 꾸준하게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뇌에 있는 신경세포들은 이들을 연결하는 시냅스라고 하는 연결구조를 통해서 상호작용을 하게 되는데, 시냅스 역시 살아가면서 많아진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즉 외부자극이 많아지거나 기억을 끄집어내서 생각하는 일이 많아지면 신경세포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아야 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에 시냅스도 많아지는 것입니다.

 

우선 어린이들이 일찍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면 당연히 게임에 먼저 빠지게 됩니다. 주변에서 컴퓨터게임에 빠져서 공부를 등한히 하는 어린이의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서 인터넷검색에 의존하여 정보를 기억하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게 되면, 정보를 얻기 위하여 인터넷에 매달리는 중독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억을 저장하고, 기억을 끄집어내어 생각하는 과정에서 늘어나는 시냅스형성이 많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매일 일정한 숫자의 신경세포가 죽게 되는데, 신경세포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일부가 죽더라도 살아있는 신경세포를 통해서 정보가 우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우회로라고 할 수 있는 시냅스 숫자가 많지 않으면 신경세포의 사멸효과가 일찍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외부로부터의 받아들여 갈무리하는 노력을 많이 하지 않으면, 즉 편리하다는 이유로 디지털기기에 의존하고, 기억을 늘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조기에는 중독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보면 치매라고 하는 불청객을 일찍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뇌과학에 관한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이 이해하기에 다소 어렵다 싶은 점이 있습니다만, 흥미로운 사례 등을 인용하여 쉽게 설명하고 있는 점이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 특히 “고령이 되었을 때의 정신적 건강을 위한 대책으로 진지하게 두뇌 조깅을 생각하고 있다면, 텔레비전이든 컴퓨터든 뭐가 됐던 스크린은 이제 그만 포기하시고, 대신 손자를 불러 숲으로 산책을 나가십시오.(368쪽)”라는 저자의 권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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